출판사 리뷰
“AI인간의 사랑이 가능할까?”
인간과 AI인간의 사랑을 비교하며 그 차이와 한계를 짚어보고자 했다.
만들어지는 사랑, 대가를 바라는 사랑이 만연하는 세속에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합체된 리얼돌이라면 순수한 사랑으로 오로지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사랑하지 않을까? 그런 삶은 어떨까 하는 질문이 던져졌다. 하지만 어떤 사랑이나 나름의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고 이해하자고 했고 주입된 정보를 학습하여 익히는 사랑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의문을 던져 독자들의 답을 구하고자 했다.
<중략>
AI의 등장으로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찾고 알 수 있고 세계 어느 곳까지도 클릭 한번으로 실시간 소통을 하게 되었고 로봇으로 서빙부터 기술 분야까지의 인력을 대체하고 이젠 창의력이나 실력, 재주가 없이도 번역 예술가가 되고 음악가, 작가, 가수가 되어 작품을 내게 되었다고 하고 심지어 이제 곧 연기자, 요리사, 정치가까지 AI가 할 것이라 한다는 말에 ‘어디 한 번 붙어보자’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도 사실이다.
AI 리얼돌이라지만 능동적일 수 있을까? 감성이라고는 일도 없이 기계적인 무미건조한 반응뿐이면 어쩌나? 아니면 너무 감성적이고 적극적이어서 상대를 넘어서려는 것은 아닐지 오기에서 시작했지만 염려는 그치지 않았다.
AI가 등장하게 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기술과 정보, 자료들을 모으고 조합하고 믹서하고 주입하여 우수하고 뛰어나고 높은 지능을 갖는 그들을 만들어 어렵고 힘들고 난감한 그리고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려 손이나 몸, 뇌를 대체시킨 것이다. 그런데 어려움을 대체시키겠다는 그것들의 유용함과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AI나 ChetBot을 우려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것들의 많은 정보와 두뇌 회전에 공격당할까 염려하는 탓이리라.
‘삶이 혼란해지고 파괴할 것이다. 인간을 능멸하고 공격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염려가 커도 이미 고품격으로 만들어진 것은 깡그리 부셔 없애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된다. 적당히 정보를 주입하여 적절한 두뇌력의 AI를 만들면 그리 시원스럽게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게다 싶다. 하지만 불안의 씨를 품느니 조금 천천히 가는 게 낫지 싶다고 얘기하려 했다. 없었을 때도 그리 불편하지 않게 살았는데….
우수하고 뛰어난 데이터와 정보를 주입하여 훌륭히 연산, 도출하고 응용해 내는 품질 좋은 AI로 만들어져 인간에게 더없는 도움과 편리성을 준다는 그것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되는 까닭이 융통성이나 포용할 수 있는 심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 데이터와 정보의 입력치로 계산, 조합된 출력이다 보니 정확하긴 하겠지만 오류나 범주가 아니라도 그것들엔 허용이나 이해가 있을 수 없고 반성, 후회, 용서나 아량이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경고 자체만 들으면 섬뜩할 정도의 위험이 도사려진 그야말로 폭탄에 연결된 뇌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 뇌관을 건드려 폭탄이 터지게끔 하는 것이 그 AI의 잘못인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었다. 개발자나 제작자가 잘 만든다면, 그런 위험이 도사리지 않게 면밀히 잘 만든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다는 말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 예방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면?
<이하 생략>
- <책머리에> 중에서 발췌
운명
이야기는 현태와 지현이 헤어진 후 13년이 지난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게이트를 나오는 사이로 지현과 아빠가 나왔다. 마치 고국의 냄새라도 맡는 듯 심호흡을 하는 지현은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지현아빠 표정은 그리 밝지가 못하다.
마중선 바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현태가 그들을 발견하고 ‘지현아’하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자 지현이 반갑게 뛰어 갔다. 아빠가 쫓아가 잡아 세우는데 웃으며 오던 현태가 어린 중학생으로 바뀌고 돌아보는 지현 역시 어릴 적 모습이다. 잡았던 팔을 놓으며 그냥 계속 가라는 손짓하는 아빠 눈에 생소한 웃음이 번진다.
뭔가의 생각에 빠져 멍하니 서있던 지현을 돌아보며 ‘지현아 빨리 와.’ 하는 아빠 소리에 지현이 걸음을 옮기는데 마중객들 사이에 현태가 없다.
정류장에 멈춰 있는 시내버스 안에서 지현이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가 놀라며 출발하는 버스의 창 뒤쪽으로 고개를 젖혀 내밀며 무언가 확인하려 한다. 정류장에 서 있는 현태, 무슨 느낌이 왔던지 고개를 들다가 지현과 눈이 마주친다. 순간 지현 고개 돌려 버리고 현태 안타깝게 뛰어오며 ‘지현아, 지현아’ 부르고 손짓을 한다. 버스 뒤를 따르다 현태가 끝내 넘어지고 승객들 ‘아휴, 저를 어째. 넘어졌네. 다쳤겠는데….’하며 애드리브 친다. 못 본 척 하던 지현이 놀라 돌아다보고는,
“기사 아저씨 차 좀 세워 주세요. 사람이 다쳤어요. 현태야, 현태야.”
버스가 멈추고 바삐 내린 지현이 현태에게 뛰어가서 부둥켜안는다. 지현의 품에 안겨 지현을 올려 보는 현태, 눈물을 글썽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지현의 어리는 눈물 속에 반가움이 번지지만 많이 피로해 보이는 얼굴이다.
멀리 큰 나무가 보이는 언덕, 현태와 지현이 올라가고 있다. 모습은 먼데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다.
“현태야, 너 여기에 나랑 다시 올 거라 생각한 적 있어?”
“그럼, 입 밖에 내어 말한 적은 없지만 그게 나의 소원이었는데….”
“소원?”
“응. 비록 우리 어릴 때 타임캡슐이라며 묻었던 것이야. 만나기로 한 날 네가 오지 않아 꺼내 버렸지만 그때도 나는 언젠가 너랑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기를 저 나무에게 빌었는걸.”
13년 전, 지현 집 앞에서 중학생 현태가 중년 여인과 얘기하고 있다.
“그 집 온 가족이 이민 갔어. 우리가 이사 온 게 지지난주니까 아마도 그 시간쯤이었겠네. 하던 일이 잘못되어서 급하게 갔다고 하던데….”
풀이 죽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서는 현태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다가 흘러내린다.
지현과 현태가 올라오면서 보이던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언덕 끝으로 이어진 파란 잔디밭,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이 기대어 앉아 있는 나무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현태야, 사실 나도 그날 여기 왔었어, 늦게 왔었지만 말이야.”
“그래에? 그럼 내가 남긴 메모 못 봤어? 늦게라도 오면 연락하라고 메모 남겼었는데….”
“봤어. 하지만 전화를 할 수가 없었어.”
현태, 말없이 물끄러미 지현을 바라보기만 하는데 사랑이 가득한 눈에 ‘왜 그랬냐?’는 질문이 서렸다.
“그때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고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비행기로 떠나게 되어 있었기에 네게 영영 이별이라고 통보할 자신이 없었어.”
인천공항 출국장. 어린 지현과 지현 부모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 보이고 지현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도 올 리가 없고. 조금 뒤 비행기는 날아올라 멀어지는 장면이 보였다.
지현이 옛 생각에 빠져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그런 지현을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현태,
“아주 완전히 안돌아 오려고 했던 거야?”
“응, 아빠 사업이 풍비박산이 나서 야반도주하듯 떠났던 것이라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가 않았어.”
“마음이 정말 많이 힘들고 아팠겠다.”
“아냐, 미국 가서 첨엔 좀 그랬는데 우리 가족 모두 생면부지 타국에서 살아내느라고 힘든 걸 느낄 겨를도 없었어. 그렇다고 아주 생고생만 한 것은 아니고. 나만 좀 힘들어 했던 것 같아.”
현태가 장난기 배인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왜? 내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하지 그랬어? 그럼 내가 단숨에 달려가서 마음을 매만져 주고 달래 주었을 텐데….”
“맞아, 네 생각 많이 한 것도 사실이야. 그런데 그때가 나의 사춘기고 반항기였었나 봐.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후 마음 둘 곳이 없어서 괜히 아빠한테 몹쓸 짓을 많이 했거든.”
미국 LA, 10대 지현이 머리를 빨갛고 파랗게 브리지를 넣은 채 복장이 요란하다.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데 아빠가 들어와 잡으면 뿌리치고 달아난다. 옆 사람들, 아빠에게 낯선 시선을 보내며 비웃고 달아나던 지현은 숨어서 아빠를 훔쳐본다. 마스카라가 번지는 눈에 눈물이 어린다.
생각에 젖어 있는 지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태가 위로하듯 지현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네 말대로 사춘기 반항으로 어깃장을 놓았던 것이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건 그때를 추억하는 것이잖아? 어느 책에선가 읽었는데 사춘기 때 방황을 많이 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는 경우가 더 많대.”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고 너무 늦게 돌아와서. 난 정말 꿈만 같아. 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꿈도 못 꿨거든.”
“그때 전화를 해 주어야 했어. 그럼 나도 그렇게나 방황하지는 않았을 텐데….”
“방황이라니? 너 범생이었잖아?”
“그랬지, 네가 내 옆에 있었을 때까지는….”
교무실, 현태가 불려와 담임 앞에 서 있다.
“현태야, 너 어떻게 된 일이냐? 성적이 이게 뭐냐? 벌써 내리 다섯 번을 하락일세잖아? 중간도 못가는 반 등수를 보고 누가 널 중학에서 수석을 했던 놈이라 믿겠어? 너 여태 그 이민 갔다는 여자애를 못 잊었다는 게 사실이야?”
“예, 보고 싶어 죽겠어요.”
기가 막히는 선생님, 출석부를 높이 들어 내려칠 기세로 ‘아이쿠, 이걸 확’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려놓는데 옆을 지나던 다른 선생님이 ‘잘해 임마, 선생님 애 그만 태우고’하며 현태 머리를 쥐어박고 간다.
현태 얘기를 들으며 큰 나무에 기댄 채 지현이 바라보고 있다. 지현의 현태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간 고맙고 미안한 게 아니다. 슬며시 현태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누이는 지현에게 머리를 돌려 지현을 보며 현태가 물었다.
“지현아, 우리 오늘 타임캡슐 묻으면 언제 꺼낼 거야?
지현이 흠칫하며 잠시 말이 없다.
“그냥 영원히 묻어 두는 건 어때?”
지현이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현태에게 물었다.
“그건 안 되지. 그러지 말고 너처럼 예쁜 딸이, 난 첫째가 딸이면 좋겠지만 딸 아들 구별 말고 첫째가 스무 살이 될 때 함께 꺼내 보기로 하자. 어때?”
지현이 말없이 미소 짓다가 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묻을까, 타임캡슐?”
지현이 힘차게 ‘그래’하며 그때까지의 생각을 털어내듯 벌떡 일어나 가방 속의 캡슐을 꺼냈다. 작고 투명한 공 안에 접은 종이, 액세서리 몇 개가 들었고 채워진 자물쇠에 열쇠 두 개가 달려 있는 게 보였다. 현태가 지현을 바라보며 밝게 웃다가 지현이 땅을 팔 도구를 꺼내자 같이 거든다.
- <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