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광산김씨의 후손인 작가가 23대에 걸친 경주김씨 족보를 근거로 하여 신라의 역사와 함께 가족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은 글이다. 조상의 삶을 기록한 글은 단순한 역사를 넘어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뿌리를 이해하고, 공동의 기억을 공유하며, 후손에게 자신들이 어떤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가족의 일원인지 알게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혁거세에서 시작하는 신라의 역사가 김알지로 와서 신라 왕통의 후손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고, 나중에 23세손에 와서 광산김씨의 시조가 되는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광산김씨의 후손으로 역사적 인물과 근현대사의 인물, 방송 연예인들까지 망라한 유명인들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이렇게 다양하게 조사한 작가의 노력에 탄복할 만하다. 신라의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매우 흥미롭게 읽히리라 자신한다. 특히 경주김씨, 광산김씨 가문 일원이라면 더욱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김알지에서 광산김씨로 이어진 천 년의 족보.
그 속에 담긴 뿌리와 자긍심의 역사를 찾아 나선
한 연구자의 깊고도 치열한 역사 탐색!
천 년 동안 빛나는 문화와 정신으로
한민족의 근원을 세운 신라
그 뿌리를 알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아는 길이다!
광산김씨 후손이
문헌을 뒤지고 발품을 팔아
천 년의 계보를 한 줄 한 줄 복원한
인문·역사 교양서
역사는 우리 문화유산의 뿌리를 찾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과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며 과거를 분석하여 미래를 대비하는 힘을 키운다는 것이다. 약 천 년 동안 한반도를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신라의 화랑도와 불교문화, 신라의 언어, 풍습, 예술은 한국 문화의 중요한 원형이 되었다.
이 책은 광산김씨의 후손인 작가가 23대에 걸친 경주김씨 족보를 근거로 하여 신라의 역사와 함께 가족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은 글이다. 조상의 삶을 기록한 글은 단순한 역사를 넘어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뿌리를 이해하고, 공동의 기억을 공유하며, 후손에게 자신들이 어떤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가족의 일원인지 알게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혁거세에서 시작하는 신라의 역사가 김알지로 와서 신라 왕통의 후손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고, 나중에 23세손에 와서 광산김씨의 시조가 되는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광산김씨의 후손으로 역사적 인물과 근현대사의 인물, 방송 연예인들까지 망라한 유명인들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이렇게 다양하게 조사한 작가의 노력에 탄복할 만하다. 신라의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매우 흥미롭게 읽히리라 자신한다. 특히 경주김씨, 광산김씨 가문 일원이라면 더욱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후 백제는 167년과 170년에 걸쳐 신라를 침공하며 167년에는 신라 서쪽 국경의 두 성을 점령하고 주민 1천여 명을 포로로 잡아가는 등 큰 피해를 입혔어요.
이에 아달라이사금은 흥선에게 2만 명의 군사를 주고, 자신도 8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강력한 반격을 가했어요. 신라의 강력한 반격에 백제는 결국 약탈해 갔던 주민들을 돌려보내고 화친(和親)을 요청하며 갈등을 봉합했어요.
167년에 발생한 지방 촌장 또는 귀족 세력의 반란을 진압함으로써, 아달라이사금은 왕권 강화의 기반을 다졌어요.
아달라이사금 치세에는 왜(倭)와의 교류 기록이 눈에 띄어요. 158년에 왜인이 신라를 방문했으며, 특히 173년에는 고대 왜의 강력한 정치체였던 야마타이국(邪馬臺國)의 여왕 히미코(卑弥呼)가 신라에 사신을 보내왔어요. 이는 신라와 왜국 간의 외교 관계가 비교적 일찍부터 형성되었음을 시사해요.
157년의 일로 전해지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설화는 한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이 설화는 당시 신라와 왜국 간에 활발한 인적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되어요.
김의관(金義寬)은 경주김씨(慶州金氏) 16세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김법선(金法宣)이며, 아들은 김위문(金魏文)이에요. 아들 김위문의 이름에 쓰인 ‘위(魏)’ 자는 ‘나라 이름 위(魏)’로, 중국(中國)의 위나라(魏)를 가리키는 글자예요. 이 한자의 한글 표기 과정에서 종종 ‘왜문’으로 잘못 기록되기도 했으나, 정확한 표기는 ‘위문(魏文)’이에요. 김의관은 신라의 왕족이자, 후에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추존된 신라 왕실의 중요한 인물이에요. 그는 내물왕(奈勿王, 내물마립간)과 지증왕(智證王)의 직계 후손이며, 신라 제38대 왕인 원성왕(元聖王)의 조상이기도 해요. 김의관은 생전에 이찬(伊湌)이라는 높은 관직을 역임했어요.
김집(金集)은 1574년에 태어나서 1656년에 별세한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예요. 그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아버지의 학문을 계승하여 예학을 심화시키고 조선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어요. 김집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장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특히 예학(禮學)에 깊은 조예가 있었어요. 그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학맥을 잇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중심인물이 되었어요. 그의 학문은 단순한 이론적 탐구를 넘어, 실천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어요. 호인 신독재(愼獨齋)는 『중용(中庸)』의 ‘홀로 있을 때도 삼간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그의 학문적 태도와 인격을 잘 보여줘요. 예학의 계승 및 발전에서 김집은 아버지 김장생의 예학을 계승하여 『상례비요(喪禮備要)』를 저술했어요.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승수
수원대학교 전자계산학과 학사수원대학교 공학대학원 컴퓨터학과 석사수원대학교 근무역사는 현재의 사회, 제도, 문화, 기술 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또한 우리 문화유산의 뿌리를 찾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때문에 신라의 역사 이야기를 우리의 자손들과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물려주고 싶은 작은 바람에서 힘을 모아 글을 쓰게 되었다. 저서로는 『내친구 삼행시』가 있다.
목차
머리말
01 김알지金閼智
02 김세한金勢漢
03 김아도金阿道
04 김수유金首留
05 김욱보金郁甫
06 김구도金仇道
07 김말구金末仇
08 내물왕奈勿王
09 김복호金卜好
10 김습보金習寶
11 지증왕智證王
12 김진종金眞宗
13 김흠운金欽運
14 김마차金摩次
15 김법선金法宣
16 김의관金義寬
17 김위문金魏文
18 김효양金孝讓
19 원성왕元聖王
20 김예영金禮英
21 김균정金均貞
22 신무왕神武王
23 김흥광金興光
부록 김흥광 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