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그저 동물에 불과한 존재는 아니다. 스스로의 취약성과 책임을 자각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이 책에서 <인간은 동물>이라는 사실과 <우리는 자연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경험 사이의 긴장을 정면으로 탐구한다. 해답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기술도, 자연에 대한 낭만적 환상도 아니다. 그는 자연과 동물의 근본적 타자성을 인정하고 알 수 없음 앞에서 겸허하게 응답하는 <무지의 윤리>를 제안한다.
최신 과학 논의와 철학적 사유를 넘나들며 가브리엘은 <인간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연을 완전히 해독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와 세계에 대한 책임을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런 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
인간 = 동물, 인간 ≠ 동물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이번 철학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동물>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신체와 행동, 인지 능력은 자연과학과 생명과학으로 원리가 탐구되기 때문에 분명 이 점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외로 이러한 관점은 과학의 발전이 있기 이전부터,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주된 인식으로 자리 잡혀 있었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은 마치 퇴색 불변의 진리처럼 시대를 넘어 존재했고 우리는 이것이 옳다고 여겼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여기에 반기를 든다. 그는 인간을 단지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만 이해하려는 관점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차원을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자연과 자기 자신을 나누어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단순히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어떤 삶이 의미 있는지 묻는다. 가브리엘은 이러한 특성이 인간을 자연의 질서에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을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규정하며, 인간을 동물과 동일시하려는 동물주의와 인간의 삶을 생물학적 사실로 환원하려는 생물학주의를 비판한다. 인간은 동물이라는 형식 위에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반성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며, 바로 이 자기 이해의 능력이 인간을 단순한 자연적 대상 이상으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된 예외적 존재로 세우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왜 자연 현상에 불과할 수 없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자연과 동물의 근본적 타자성,
윤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가브리엘이 다음으로 얘기하는 철학 논제는 <근본적 타자성>이다. 타자성이란 타인, 다른 생명체, 자연이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차원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뜻한다. 인간은 세계를 설명하고 분류하려는 존재이지만, 세계는 언제나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부분을 가진다. 다시 말해 인류의 과학과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 세상의 숨겨진 진리를 남김없이 밝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절대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말이다. 가브리엘은 바로 이 알 수 없음의 차원을 인정하는 태도가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다른 존재를 완전히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타자는 단순한 수단이나 자원으로 전락한다. 공장식 축산과 생태계 파괴가 이에 대한 명백한 사례이다. 그는 이러한 행위들이 효율성이나 경제성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못된 선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다른 생명체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타자성을 무시하는 행위는 윤리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인간, 동물, 자연을 위계적으로 배열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존재들이 지닌 타자성을 존중하는 관계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윤리는 인간 내부의 규칙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책임의 문제로 다시 자리 잡도록 만든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인간의 책임이 드러난다
앞서 가브리엘은 과학이 모든 진리를 알 수는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과학의 성과를 부정하거나 경시하지도 않는다. 가브리엘은 기후 변화에 관한 자연과학적 분석과 미래 시나리오가 중요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과학적 사실이 그 자체로 규범을 제시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기후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만으로는 어떤 선택이 옳은지, 어떤 삶의 방식이 미래와 모두를 위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과학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그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대신 내려 주지는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브리엘은 독자를 불편한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과학적 진단이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단순히 사실을 안다고 해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응답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겸손, 즉 무지의 윤리이다. 우리는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섣부르게 재단하지 말 것이며, 이를 수단화해서도 안 된다. 이 겸손은 무기력이나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과 세계 앞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려는 태도다. 가브리엘에게 인간은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알 수 없음 속에서도 판단하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존재다.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 위에서, 인간은 여전히 가치와 의미를 묻고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동물이다』는 이 책임의 자리를 우리에게 쥐여 준다. 자연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모든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거부하면서, 그 대신 인간이 어떤 태도로 세계와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가브리엘은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대신 인간이 왜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그 판단이 왜 겸손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과학의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사유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리한 동물들은 벌써 알아채지, 해석된 세계 안에서 우리가 그리 편안히 지내는 건 아님을.
지금 인간은 복잡한 위기 시나리오 안에서 산다. 우리의 보금자리인 환경은 누가 보더라도 우리의 근대적 삶꼴이 가하는 압력에 눌려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다. 자연과학과 기술의 도움으로 우리는 생존을 위한 조건을 한편으로 급속히 향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더 급속히 악화했다. 이 딜레마는 온갖 근대적 위기와 더불어 더욱 심화하고 있다.
- <들어가는 말>
1장의 출발점은 인간-동물의 기원에 관한 다음과 같은 견해다. 즉 인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를 다른 생물들과 구별하기 시작함으로써, 바꿔 말해 <자기를 정의하기 시작함으로써 동물이 되었다>라는 견해다. <자기를 정의함으로써 인간은 자기가 동물 플러스 무언가(예컨대 언어, 이성, 정신, 불명의 영혼)>라는 견해를 도입하고, 바로 이를 통해 인간이 될 뿐 아니라 자기가 보기에 특수한 동물이 된다. 요컨대 인간은 자기를 동물로 간주하기 때문에 동물이다.
- <1장 우리, 그리고 다른 동물들>
작가 소개
지은이 : 마르쿠스 가브리엘
현대 철학의 신실재론을 주도하며 세계적 명망을 받는 철학자. 1980년 독일의 진치히에서 출생하였고 본, 하이델베르크, 리스본, 뉴욕에서 수학했다. 29살인 2009년에 본 대학교에서 인식론 및 근현대 철학을 가르치는 석좌 교수에 임명되며 독일 최연소 교수로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는 국제 철학 센터와 과학 및 사상 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뉴욕의 사회 연구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내 철학 및 새로운 인문학 연구소Institute for Philosophy and the New Humanities 창립 이사 중 한 명이며, 2024년부터는 교토 철학 연구소Kyoto Institute of Philosophy의 수석 글로벌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펴낸 책으로는 삶의 보편적 가치를 다룬 『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와 인본주의 3부작인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뇌가 아니다』, 『생각이란 무엇인가』가 있으며, 그 외에 『허구의 철학』, 『예술의 힘』, 『초예측, 부의 미래』(공저), 『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우리, 그리고 다른 동물들
논리-동물: 어떻게 인간이 동물로 되는가
특별한 무언가
자연은 사파리가 아니다
자기 과대평가로서의 인류세
연결망: 식물, 박쥐, 균류
연속, 불연속, 혹은 모종의 방식으로 양쪽 모두?
거울 앞 주먹질
자기를 동물로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왜 우리는 양면 존재가 아닌가
아니모: 왜 동물원은 없는가
동물주의, 「프레스티지」, 『아노말리』
인간은 동물이고, 동물은 기계다?
우리를 비롯한 동물들? 코스가드의 가치
앨리스 크레리: 『윤리학 내부에』
주관성과 객관성: 자연 안에서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다
생명 시대의 새로운 계몽
칸트의 네 가지 질문: 문답(問答)으로서의 인간
동물이 아니고자 하는 동물로서의 인간
2장 삶과 생존의 의미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의 근본이념
생명의 역사
생명의 이념
삶과 생존: 인간 사회의 기본 형태
영원히 살면 어떨까?
삶 속의 의미
삶의 의미는 무의미하지 않다
무의미는 의미 박탈이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의 한계?
우리는 누구이고, 누구이고자 하는가: 근본적 자율과 새로운 계몽
사회적 자유와 삶의 의미
자연과학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았다
정신에서 다시 자연으로
3장 무지의 윤리학을 향하여
자연, 환경, 우주
그 자체이며 자기를 마주한……
자연과학은 허구일까
자연과학적 인식의 한계
다름: 생태학적 윤리를 향하여
복잡성 부족, 복잡성, 복잡성 초과
호모 사피엔스: 소크라테스의 지혜
견해, 앎, 선의 이데아
도덕적 사실들과 윤리적 사실들이 있음을 거듭 강조함
무지
무지의 윤리학
감사의 말
용어 설명
주
옮긴이의 말
인명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