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국궁이라는 전통적 행위를 매개로 삶의 선택과 이후의 책임을 끝까지 사유하는 시집이다. 활을 쏘는 과정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와 윤리를 시험하는 구조로 작동하며, 만작의 기다림과 발시 이후의 잔신을 체화된 언어로 끌어올린다.
전문 용어와 규율은 장벽이 아니라 시적 밀도를 이루는 장치가 된다. 흔들림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개인의 수행과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사유하며, 감정의 과잉 대신 반복과 침묵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인간의 형상을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
이 시집은 국궁(國弓)이라는 전통적 행위를 매개로 한 인간이 삶의 선택 앞에서 취해야 할 윤리적 자세와 존재의 긴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이다. 활을 쏘는 행위는 여기서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몸과 마음, 개인과 공동체, 결과와 책임을 동시에 시험하는 하나의 구조로 작동한다. 시인은 설자리에 서는 순간부터 발시 이후의 잔신(殘身)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술적 설명이 아닌 체화된 언어로 끌어올린다. 만작에 이르기까지의 기다림, 놓아야 할 순간을 아는 절제, 쏜 뒤에도 남아 있는 마음의 무게는 결과 중심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비껴가며 과정과 태도의 가치를 전면에 세운다.
국궁의 전문 용어와 규율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적 밀도를 형성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동진동퇴’, ‘습사무언’, ‘집궁례’와 같은 개념들은 공동체 안에서 행위가 어떻게 윤리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의 기량보다 질서와 침묵을 앞세우는 태도는 이 시집이 지닌 미학적 선택이자 사유의 중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시집이 흔들림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살의 궤적은 직선이지만 삶의 궤적은 언제나 포물선을 그린다. 시인은 그 불완전한 곡선을 부정하거나 교정하려 하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하나의 완성으로 제시한다. 이 시집은 감정의 과잉이나 서사의 과시를 경계한다. 대신 반복되는 습사, 계절의 순환, 몸의 미세한 감각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사유의 깊이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읽히기보다는 머무르게 되는 시집에 가깝다.
활을 아는 독자에게는 수행의 언어를 문학으로 환원한 기록이며, 활을 모르는 독자에게도 자기 삶의 설자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보편적 사유의 장을 제공한다. 국궁이라는 구체적 세계에서 출발했지만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인간이 선택 이후를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서평
이 시집의 출발점은 늘 설자리(射臺)다. 그러나 그 설자리는 곧 일상의 은유로 확장된다. 「황학정의 사계」에서 계절은 자연의 변주가 아니라 활꾼의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리듬으로 감각화된다. 겨울의 긴장, 여름의 무력, 가을의 관조, 봄의 회복은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삶이 통과하는 내적 상태에 가깝다. 시인은 계절을 바라보지 않고 계절 속에 서 있다. 이 시집의 중요한 미덕은 전문성의 깊이를 숨기지 않는 태도다. ‘만작’, ‘발시’, ‘잔신’, ‘홍심’, ‘습사무언’, ‘동진동퇴’ 같은 활터의 언어는 주석과 해설을 동반하지만 시의 긴장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낯선 언어들은 삶의 특정 국면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개념어로 기능한다. 만작은 단순한 기술 용어가 아니라 넘치기 직전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되 멈출 줄 아는 삶의 상태를 상징한다. 발시는 포기가 아니라 결단이며 잔신은 끝난 이후에도 책임을 거두지 않는 윤리다. 특히 이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잔신’의 개념은 주목할 만하다. 화살은 떠났으나 마음은 떠나지 않는 상태, 결과 이후에도 태도를 거두지 않는 자세,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희소해진 덕목을 정확히 겨냥한다. 성공이나 명중보다 이후의 사람됨을 끝까지 붙든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수양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윤리로 확장된다. 「집궁례」, 「삭회」, 「동진동퇴」 같은 작품에서 활터는 하나의 사회다. 먼저 들어가고 함께 나서야 하며 혼자만의 성취는 허용되지 않는다. 활터의 규칙은 곧 함께 사는 세계의 최소한의 질서로 읽힌다. 이 시집은 개인의 수행과 공동체의 질서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몸의 경험을 통해 설득한다. 또한 이 시집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 매우 단단하다. 「집궁회갑」, 「납궁」, 「쏜 살」 같은 작품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화살처럼 날아간다는 진부한 비유를 넘어서 시간이 몸에 새기는 흔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닳아버린 궁대, 무뎌진 촉, 익숙해진 설자리, 시간은 회상이 아니라 마모의 감각으로 나타나며 그 마모를 부정하지 않고 끌어안는 태도에서 이 시집의 성숙이 드러난다.
문체 또한 이 시집의 큰 성취다. 과장되지 않은 언어, 군더더기 없는 직진성, 그러나 결코 건조하지 않은 밀도, 시인은 설명하려 들지 않고 보여주되 끝까지 버틴다. 활을 당기는 동작처럼 문장은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다가 정확한 순간에 풀린다. 이 덕분에 시편들은 짧아도 가볍지 않고 길어도 늘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시집은 삶을 위로하기보다 바로 세우려는 책이다. 아픔을 달래기보다는 자세를 고치고 감정을 풀어놓기보다는 중심을 낮춘다. 그래서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설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가, 그리고 쏘고 난 뒤의 마음을 책임지고 있는가.
결국 이 시집이 도달하는 곳은 명중의 환희가 아니라 끝까지 서 있는 인간의 형상이다. 활은 과녁을 향하지만 시의 화살은 독자의 삶을 향해 날아온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당신의 삶은 과연 만작에 이르렀는가.
작가 소개
지은이 : 정희동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나 진해고등학교를 졸업했다(38회).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였고(43기), 해군 중위로 전역했다. 한진정보통신(주)의 대한항공 /정보시스템실에서 근무했다. 현재 한토스(주) 대표이사 및 핀하이골프(주) 대표이사이다.2013년 황학정 입사하여 박용범 사범 및 윤상만 명궁, 김순희, 김진영, 이민 명궁 교수진에게 활을 배웠다.
목차
서문 4
1부 황학정과 활터의 사계
황학정의 봄 16
황학정의 여름 18
황학정의 가을 20
황학정의 겨울 22
봄 활터의 꽃이 전하는 말 24
황학정 1 25
황학정 2 28
신 황학정 팔경 30
활터의 봄나물 32
활터의 꽃 34
한천각에 앉아서 36
활 쏘러 가는 길 38
2부 활터 풍속과 사람들
활병 42
집궁 44
납궁 46
출전 48
활 배웁니다 50
명궁 52
집궁례 54
삭회 56
사우 1 58
사우 2 60
집궁회갑 61
한량 1 62
한량 2 64
열정 66
어르신 떠나신 날 68
벽안의 궁사 1 70
벽안의 궁사 2 72
사범 74
3부 사자성어
파사현정 78
물아일체 80
만개궁체 82
우문현답 83
동진동퇴 84
습사무언 86
일촉즉발 88
4부 활과 인생 그리고 사랑
어느 활꾼의 기도 92
쏜살 94
활 그리고 인생 96
과녁에서 배우는 삶 99
끝까지 100
화살기도 101
활 그리고 화살 102
변심 104
애기살 105
어느 활꾼의 사랑 106
호위무사 108
가시버시 110
5부 습사초물기
살의 행 114
한산정 116
새벽 습사 118
관중으로 가는 길 121
마치고 122
설봉정에서 124
무제 125
습사 126
내 활을 쏘다 128
활과 꿩 130
구순 몰기 132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134
얼마나 좋을까? 136
접장 138
스나이퍼 140
눈 털기 141
쏘는 맛 142
6부 우리 활활쏘기활과시
각궁 1 144
각궁 2 146
새 활 148
활과 소 149
궁시장 150
범아귀 151
날것 152
궁체 154
과녁 156
되는 날 158
탄생 159
야사 160
겨냥 161
만작 162
나는 살[箭]이다 163
살날이[運矢臺] 164
비겁한 활꾼 166
두 번째 화살 168
4천 년 전 화살 171
더블 타깃 174
활은 활[活]이다 176
깍지 179
활, 그 치명적인 유혹 180
추천사 182
작가 후기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