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말하는 자유조차 밀막았던 유신체제 아래에서 젊은 연극인들은 어떤 언어로 살아가고 사랑했는지를 묻는다. 1979년의 살벌한 시대를 배경으로, 연극판 청춘들의 사랑과 저항, 좌절을 풍속화처럼 구체적으로 그리며 무대 안팎에서 벌어지는 숱한 단막극을 펼쳐 보인다.
1980년 5월 광주 ‘사변’을 둘러싼 해석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정보와 지식이 위증을 조작하는 도구가 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말과 글, 신문과 소설이 ‘풍문’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대학사회의 무사 안일주의와 위선을 풍자하며, 경험과 기억, 기록과 서사를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를 끝까지 질문한다.
출판사 리뷰
→말하는 자유조차 밀막았던 유신체제 아래서 연극인들은 어떤 ‘언어’로 살아가며 사랑을 나눴는가.
→1980년 5월의 광주 ‘사변’을 정직하게 ‘해석’하는 근거의 눈씨는 어디에 있는가.
⇒1979년, 살벌했던 유신체제를 너끈히/씁쓸히 이겨내는 젊은 연극인들의 사랑·저항·좌절을 구체적으로 그린 풍속화.
⇒다방교회/강당교회에서 단련한 양이의 정연한 말솜씨는 연애·남자·가족을 얼마나 잘 해석, 조정하는가.
⇒야유·조롱·편견·너스레·해학으로 대응하는 무대밖에서의 숱한 단막극들.
⇒정보/지식은 ‘위증’을 조작하는 수단/도구임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1980년 5월의 정치적/사회적 사유의 전시장.
⇒모든 말/글, 신문/소설/저작물의 실체는 한낱 ‘풍문’에 지나지 않는다.
⇒무사 안일주의에 젖어 사는 대학사회의 위선을 저며내는 통쾌한 풍자극.
⇒경험/사실/기억과 기록/소설의 내용 일체를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그 부실의 근거를 밝혀내는 이메일상의 토론장.
―물건을 싼값에 잘 사겠다고 흥정한 게 아니라 장사꾼들 말솜씨를 더 많이 주워 들으려고 그랬던 거야. 저 사람들의 집요한 권매에는 묘한 심리적 암투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거든. 민수 말을 빌리면 공갈이 살아 있지. 민수는 연출할 때 연극 대사를 공갈치기라고 해. 설명하고 해설하고 설득하기의 다른 말이 곧 공갈치기라 이거지. 우리나라는 여전히 공갈치기만이 먹히는 희한한 세상이란 소리야, 그럴 듯하잖아? 어쨌든 장사꾼의 말솜씨에는 뉘앙스가 있어. 내가 그 말씨름의 뉘앙스를 새기며 살아가는 사람이잖아. 그런 하찮은 업이야 물론 자랑거리도 아니지만. 그뿐이야. 사실은 내가 꼭 사고 싶은 물건은 없었어. 매번 그렇지만 오늘은 특히나 좋고 값싸고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이 하나도 없대. 그래도 샀어. 말씨름을 들은 값으로.
―저는 그런 싸구려 물건만큼이나 아주 값싼 여자예요.
누구에 한해서. 누구가 골라주는 한.
나는 얼핏 날씨만큼이나 더운 여자와 함께 걷고 있으며, 땡볕에 오래 달구어진 차돌처럼 뜨거운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양이가 예의 다방교회 사경 회원 출신답게 그 묘한 진지성을 또 휘둘러댈까봐 더럭 겁이 났다. 묘한 진지성이라고 말했지만, 양이는 나 이상으로 이 시대에 대한 사랑이랄지 연민을, 갈등을, 또한 그 속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헐뜯는 듯한 자기비난, 자기변명을 너무 길게 불쑥불쑥 들이밀어서 나를 때때로 적잖이 곤혹스럽게 따돌렸다. 어쨌든 그날의 사설은 내가 꼭 들어 두어야 할 것이었고, 양이도 언젠가는 털어놓으려고 약속한 사연이었다.
― 《젊은 연극》에서
굳이 보충 설명으로 그녀의 좀 튀는 성 의식을 두둔, 규정한다면, 그녀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인들의 생활관을 유별나게 바꿔놓았다는 그 소위 자기중심주의, 곧 미국에서 상용하는 보통명사로는 ‘미-데케이드’(me-decade)의 한복판을 관통했다. 그 변혁기가 그녀의 유학 시절과 정확히 일치한다. 거기서도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니까 모르긴 해도 그녀의 면학 기간은 개인적인 행복부터 먼저 추구하고, 자기만족을 위해서는 모든 기성의 관습과 불문율을 내팽개칠 수 있다는 미이즘(meism)의 숨 가쁜 실습기였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자기중심주의의 정점은 널리 알려진 대로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이 대변하고 있다. 1969년 8월 15일부터 꼬박 3일 동안 50만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 곤죽 같은 일상을 마음껏 질펀하게 누려봐도 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 그 신념이야말로 미-제너레이션(me-generation)의 성문법이었다.
― 《회오리바람》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원우
1947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북대 영문과와 서강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 졸업했다. 1977년 월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임지」를 발표, 등단했다. 그동안 『무기질 청년』 『장애물경주』 『아득한 나날』 『벌거벗은 마음』 『객수산록』 『젊은 천사』 등의 중단편소설집과 『짐승의 시간』 『가슴 없는 세상』 『일인극 가족』 『모노가미의 새 얼굴』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돌풍 전후』 『부부의 초상』 『운미 회상록』 『이 세상 만세』 등의 장편소설과 문학담론집 『산책자의 눈길』, 일본 문화/사회 체험서 『일본 탐독』, 산문집 『편견예찬』, 에세이집 『반풍수 세상』 등 30여 권의 저작물을 펴냈다. 한국창작문학상, 동인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