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작가는 글을 직조하는 사람이 더는 아닌 게 돼 버렸다. 무대 연출은 배우의 호흡이나 구경하러 가는 판이 돼 버렸다. 이 책에서 텍스트가 짓이겨지고 아무 곳에나 붙이는 현실을 바라보며 무력해진 작가의 영향조차 끼치지 못하는 우울의 물상을 구경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말하지 않고 벙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무기가 분노가 아니라 온화함이라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똘똘 뭉치는 힘, 연대의식의 씨앗이 움트려면 햇빛이 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창창해 보이는 암흑이라는 과학기술에 뒤덮여 있다. 그걸 소유하지 못한 자들은 방긋 웃으며 암흑 속에서 싸울 수 없는 세상의 한 존재인 것처럼 빛을 자처한다. 우아한 피해자라는 얼굴로. 종이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방값으로 인해 더 좁은 방을 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리나 차지하는 쓰레기일 뿐이다. 철학은 아포리즘일 뿐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생각해서 쥐어 짜낸 것들은 냄새나는 음식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 더 빠르게 실수 없이 콘텐츠를 짜내는 인공지능이 있는데 짠 내 나는 글 만들기는 잊혀가는 구습이 돼 버렸다. 누군가의 분노는 촌스러운 삶의 태도에 지나지 않으며 누군가의 상상력은 키보드 몇 번에 대체된다. 이런 것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 그 기술에 올라타지 못한, 그 옆에 비스듬히 서서 구경하고 있는 우리들이 태평한 얼굴로 감내하고 있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요즘 내가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문제가 됐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항변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나를 생성한 주인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주인의 한숨을 뒤로하고는 나는 오늘 많은 유저들을 만난다. 독자가 아니란 말이다.
목차
텍스트와 유저
아우라 사냥
메리
JJ봇
낭만 추모
푸크시아
과일만 먹는 남자
우리는 스물여섯 살 성년식을 통과하지 못했다
플레인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