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색과 성찰을 담은 『명상록』에는 배움, 인생, 운명, 죽음, 인간의 본성, 자연, 우주, 선악, 영혼, 도덕 등에 대한 스토아적 사상이 기술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은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음이 자연의 이치이므로, 인간도 육체적 욕망에 몸을 맡기지 말고 불굴의 의지로 국가 안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것이 본연의 의무라는 도덕성을 강조했다.
출판사 리뷰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다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색과 성찰을 담은 『명상록』에는 배움, 인생, 운명, 죽음, 인간의 본성, 자연, 우주, 선악, 영혼, 도덕 등에 대한 스토아적 사상이 기술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은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음이 자연의 이치이므로, 인간도 육체적 욕망에 몸을 맡기지 말고 불굴의 의지로 국가 안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것이 본연의 의무라는 도덕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마르쿠스의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사상, 그리고 루소와 칸트와 J. S. 밀은 물론 괴테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양철학과 서양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양문화란 마르쿠스의 가르침을 더 심화시키고 확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픽테토스를 탐독한
섬세하고 사색적인 소년
마르쿠스 이전의 로마 황제는 혈육을 통해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명문가 출신의 뛰어난 소년을 양자로 삼아 계승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여느 귀족 자제들처럼 마르쿠스 또한 훌륭한 스승들에게서 탁월한 교육을 받았다. 특히 노예 출신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탐독하면서 철학에 흥미를 붙였고, 이후 자신의 사상 발전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5현제 시대에 로마 제국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점에서 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황금기였다. 그러나 권력이 완전히 황제에게 집중되어 원로원은 황제 휘하의 귀족집단으로 전락한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 결과 180년에 마르쿠스가 사망한 뒤 로마 제국은 급속하게 내전의 혼란에 빠져들었고, 제위를 물려받은 코모두스가 193년 암살될 때까지 내전이 계속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
마르쿠스는 일반적으로 스토아 철학자에 속한다. 스토아 철학에서 ‘스토아’란 원래 전방을 기둥으로, 후방을 벽으로 둘러싼 고대 그리스의 공공건축을 의미하는데,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이 아테네의 어느 스토아에서 강의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기원전 3세기를 ‘전기 스토아’ 시기(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 기원전 2~1세기를 ‘중기 스토아’ 시기(파나이티오스, 포세이도니오스), 기원후 1~2세기를 ‘후기 스토아’ 시기(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부른다.
마르쿠스는 ‘후기 스토아’ 철학자 중에서 세네카보다도 에픽테토스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에픽테토스는 선악은 오직 우리 선택에 존재할 뿐,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철학의 목표라고 주장했고 자유, 판단, 의욕, 정직이라는 네 가지를 강조했다.
이성과 양심에 따라
로마 제국을 통치한 철인왕
『명상록』은 총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에는 배움, 인생, 운명, 죽음, 인간의 본성, 자연, 우주, 선악, 영혼, 도덕 등에 대한 스토아적 사상이 기술되어 있다. 스토아 철학은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음이 자연의 이치이므로, 인간도 육체적 욕망에 몸을 맡기지 말고 불굴의 의지로 국가 안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것이 본연의 의무라는 도덕성을 강조했다.
마르쿠스는 19년 동안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의 첫 번째 파고를 막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로마를 지키기 위한 이 노력은 비교적 성공적이었고, 그로 인해 당시 로마인들에게 '현제(賢帝)'로 인정받았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으나, 자신이 배우고 익힌 사상에 따라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가다듬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부 베루스에게서 품위를 지키는 것과 온유한 성품에 대해 배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재위 161~180년)로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이자 후기 스토아학파 철학자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최고의 스승들 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진리를 추구하며 총명하여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관심을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후계자이자 마르쿠스의 삼촌인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에게 마르쿠스를 양자로 삼을 것을 권하여 마르쿠스는 안토니누스 황제의 양자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로마의 번영과 평화로운 시기 동안 최고의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수사학, 철학, 법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지식을 쌓았다. 138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안토니누스가 황제로 즉위하였고, 마르쿠스는 19세의 어린 나이로 집정관의 자리에 올랐으며, 161년 안토니누스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로 즉위하였다. 마르쿠스의 사상은 스토아주의의 도덕 철학, 특히 에픽테토스에서 비롯되었으며, 만물은 영원히 변화하는 유동 상태라고 보는 그의 견해는 『명상록』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다.
목차
역자 서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명상록』
해제: 이성과 양심에 따라 로마 제국을 통치한 철인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연보
제1권 / 제2권 / 제3권 / 제4권 / 제5권 / 제6권 / 제7권 / 제8권 / 제9권 / 제10권 / 제11권 / 제1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