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탐구하고 실험하는 작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독창적인 이미지와 서사를 빚어내는 작가,
글 없는 그림책으로 전 세계의 어린이.어른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국의 그림책 작가 이수지.
그가 보여 주는 그림+책의 환상 세계로 들어가 보자!그림책 작가 이수지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영국 캠버웰 예술대학(Camberwell College of Arts, London)에서 북아트를 공부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스위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출판사와 직접 작업하여 그림책을 펴냈으며,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브라질, 일본, 대만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판권이 수출되었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가장 다양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 그림책 작가라 할 수 있겠다.
수상 경력 또한 화려하여 뉴욕 타임스 우수 그림책과 볼로냐 아동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에 각각 두 차례씩 선정되었고, IBBY의 소리 없는 책(Silent books/Lampedusa Project) 목록에 선정되었으며, 브라질 아동도서협회 ‘글 없는 그림책 상’,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 미국 일러스트레이터협회 올해의 원화 금메달 들을 수상했다.
대표 작품으로는 ‘경계 그림책 3부작(The Border Trilogy)’이라 일컫는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거울 속으로》와 이 3부작의 작업 노트이자 작가의 그림책 철학이 담긴 《이수지의 그림책: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림책 삼부작》이 있다. 그 밖에도 《이 작은 책을 펼쳐 봐》, 《나의 명원 화실》, 《검은 새》, 《동물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그림책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수지의 그림책 세계이수지의 그림책은 제한된 색채의 이미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 그리고 캐릭터를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터치가 가장 인상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아이들이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빛나는 환상의 순간들을 그림책이라는 매체의 특징과 한계에 걸맞게, 또는 그 한계를 뛰어넘어 표현하곤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그림책 작가들 가운데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구하고 실험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수지는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어린이만의 것으로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를 외면한 채 어른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수지에게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보는 장르이며, 아티스트로서 ‘어린이를 비롯한 전 세대와 호흡하는 작업’을 선택한 것은 행운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수지의 그림책은 작가주의의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언제나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도한 반응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그들의 독해 능력을 신뢰하는 ‘열린 결말’로 적극적인 반응을 끌어내고자 한다. 특히 어린이 독자들이 보여주는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해석을 즐기곤 한다.
이수지는 지금까지 펴낸 책들을 밑천 삼아 전 세계를 유랑하며 독자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도 즐긴다. 최근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산.바다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이어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아들 이름처럼 한산한 시골에 정착하여 ‘나뭇잎 바라보며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라는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밤, 아이스크림 트럭 앞에 토끼 떼가 나타났다!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보여 주는 엉뚱하고 오싹하고 발랄한 토끼 이야기.그림책이라는 장르의 조건과 한계를 활용한 다양한 이미지 실험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가 이수지의 새 책이 나왔다. ‘글 없는 그림책 상’을 받고 ‘소리 없는 그림책’ 목록에 선정되기도 한 작가 이수지는 다른 어떤 그림책 작가보다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고 가는 그림책에서 장기를 발휘하고 있다. 보통 이미지 중심의 그림책은 ‘작가주의적’이라 일컬어지며 난해하고 스토리나 주제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데, 이수지의 그림책은 그와 사뭇 다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논리적인 구조가 씨줄 날줄이 되어 책을 완성하며, 그림책의 주요 독자인 어린이를 배려하되 어린이들에게 ‘아첨’하지 않는 그림책을 만듦으로서 전 세계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책 《토끼들의 밤》은 영국 유학 시절 스코틀랜드의 한적한 시골길을 여행하다 처음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 시간을 가도 사람이라곤 만나기 힘든 고요한 길에서 작가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은 바로 ‘토끼 조심’이라는 표지판이었다. 이윽고 진짜 토끼들과 마주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몸소 체험했다. 작가는 첫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롤 원작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이미지화한 그림책)를 만들 때부터 ‘토끼’라는 기묘한 생물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지라, 현실과 환상 세계를 잇는 전령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토끼를 그림책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보고 싶어졌다.
이 그림책으로 토끼들을 끌어들이는 주인공은 당시 런던 하숙집 가까이 살던 아이스크림 장수 아저씨가 모델이었다. 눈길이 마주쳐도 웃음기 한 번 보여 준 적 없는, 어딘지 모르게 밉상인 이 아저씨를 색다른 방식으로 골려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대담무쌍한 토끼들과 심술궂은 아이스크림 장수를 한데 엮으면서 엉뚱하고 오싹하면서도 발랄한 토끼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그림책은 작가의 두 번째 창작 그림책으로, 스위스에서 처음 출간된 뒤 2003년 스위스 문화부에서 주는 ‘스위스의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2002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픽션 부문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에 한국판을 출간하면서 색 보정이나 판형, 페이지 구성 등에서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새롭게 펴내었다.
글 없는 그림책, 그 다층적인 책읽기.
‘토끼들의 복수’로도 ‘아이스크림 대작전’으로도 읽을 수 있는 그림책 《토끼들의 밤》일반적으로 글 없는 그림책은 낯설고 어렵다. 적어도 어른들에게는 그렇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려고 이 책을 뽑아든 독자들은 ‘어느 뜨거운 여름날……’ 말고는 아무런 본문 글이 없는 책을 보며 몹시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대체 이 작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걸까!’라고 생각하며 당황할 필요는 없다. 눈에 보이는 대로, 느낌이 오는 대로 이 책을 넘기며 살을 붙여 가다 보면 작가의 의도를 뛰어넘는 자신만의 그림책 한 권이 완성될 수도 있으니까.
이야기 하나, “토끼들의 복수”
책이 시작되는 인트로의 작은 그림에서 트럭이 지나간 뒷모습이 보이고 토끼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있다. 로드킬(Road Kill)이라도 당한 것일까? 하지만 아이스크림 장수는 내려서 토끼를 살펴보거나 최소한 길 한쪽으로 치워 줄 생각도 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쳐 버린다. 토끼들은 이에 분노하여 한밤중에 트럭 장수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토끼 떼가 사방에서 트럭을 덮쳐 아저씨를 기절시킨다. 다음 날 눈부신 햇빛에 눈을 뜬 트럭 장수 눈앞에 들어온 것은 ‘토끼 조심’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아저씨는 얼떨떨한 채 트럭으로 돌아가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앞으로는 도로에 출현하는 동물들을 조금은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
이야기 둘, “아이스크림 대작전!”
여기는 야생 토끼들의 천국. 뜨거운 여름날, 덥고 목마르고 무료하던 토끼들은 재미난 사건을 벌이기로 한다. 바로 드문드문 지나가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노리는 것! 용감한 토끼 한 마리가 나섰지만 대낮이라 트럭에 치일 뻔하고 실패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밤 시간을 이용하자! 그리고 무리로 움직여야 한다! 깜깜한 밤이지만 휘영청 밝은 달빛을 이용하여 토끼들은 아이스크림 탈취에 성공한다. 아침이 되어 ‘도대체 지난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는 표정으로 황망히 사라지는 트럭 장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토끼들은 ‘한 건 했네!’ 하는 표정으로 즐겁게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이 책이 스위스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제목은 《토끼들이 복수》였다. 작가는 출판사의 의도대로 따르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한계 짓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새롭게 그림을 다듬어 다시 출간하면서 제목에 대해 여러 의견을 모으던 중에, 작가의 두 자녀 산과 바다가 열심히 고민해서 내놓은 제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이스크림 대작전》이다. 아마도 두 아이가 이 책을 보며 마음속에 들어온 이야기는 두 번째 해석이었을 것이다. 그럼 ‘작가의 의도’는 도대체 어느 쪽일까? 답은 ‘둘 다’이다. 또는 그 두 가지 해석과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이 책은 토끼들이 꾸는 한여름 밤의 꿈이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트럭 장수가 꾼 한여름 밤의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토끼들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