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40년을 시노동자로 교육노동자로 살아온 권혁소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 『거기 두고 온 말들』(달아실 刊)을 펴냈다. 달아실시선 80번으로 나왔다.
권혁소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번 시집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적고 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에 함께하면서 내 시는 달라졌다(고 한다). 시가 달라졌다는 것은 삶이 달라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년, 정신없이 살았다. 거리에서 자는 날도 많았다. 2년씩 세 번이나 노동조합 전임을 했다. 아들딸의 사춘기도 모르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사생활을 염탐하는 담당 형사가 있었으며 경찰서와 법원도 제법 들락거렸다. 조직이 내주긴 했지만 벌금도 적잖이 냈다. 명예퇴직이라는 걸 하고 싶었지만 각종 현행법 위반으로 기소된 상태라 그도 할 수 없었다. 삶이 어디 계획대로만 되던가.”
출판사 리뷰
슬픔이 가여워서 슬픔의 편에 선 사내
― 권혁소 시집 『거기 두고 온 말들』
40년을 시노동자로 교육노동자로 살아온 권혁소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 『거기 두고 온 말들』(달아실 刊)을 펴냈다. 달아실시선 80번으로 나왔다.
권혁소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번 시집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적고 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에 함께하면서 내 시는 달라졌다(고 한다). 시가 달라졌다는 것은 삶이 달라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년, 정신없이 살았다. 거리에서 자는 날도 많았다. 2년씩 세 번이나 노동조합 전임을 했다. 아들딸의 사춘기도 모르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사생활을 염탐하는 담당 형사가 있었으며 경찰서와 법원도 제법 들락거렸다. 조직이 내주긴 했지만 벌금도 적잖이 냈다. 명예퇴직이라는 걸 하고 싶었지만 각종 현행법 위반으로 기소된 상태라 그도 할 수 없었다. 삶이 어디 계획대로만 되던가.”
“내 시가 또 달라졌다(고 한다). 시가 달라졌다는 것은 삶이 달라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람과 제도와 통치 권력과 싸우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진 것일까, 사람 대신 풍경에 시선을 두는 날이 많아진 덕일 것이다. 죄 되지 않을 만큼의 땅에 씨를 뿌렸다. 뿌리기는 하는데 거두는 일은 영 서툴렀다. 그래도 즐거운 일이었다. 잃었던 원시성을 찾은 기분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내 땅, 어머니 살아생전 그렇게도 간절하셨던 땅이 준 기쁨이었다. 배추 심어 김장도 하고 고추 심어 장도 담았다.”
“이 시집은 정녕 마지막 시집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시가 찾아오면 맞이하기야 하겠지만 책으로 묶는 일은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권혁소라는 이름 앞에 놓였던 시인이라는 별호, 교육노동자로 살아온 40여 년에게 주는, 내가 내게 주는 훈장인 셈이다. 마흔 번의 입학식과 서른아홉 번의 졸업식을 거쳐 간 모든 아이들에게 무수히 많았을 오류에 대한 마지막 용서를 구한다. 거기 두고 온 못다 한 말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비로소 정치적 자유를 얻었으므로. 시절들이여, 부디 안녕.”
권혁소 시인은 지금까지 일곱 권의 시집―『論介가 살아온다면』(1987) 『수업시대』(1990) 『반성문』(1991) 『다리 위에서 개천을 내려다 보다』(2000) 『과업』(2006) 『아내의 수사법』(2013) 『우리가 너무 가엾다』(2019)―을 냈는데, 이번 시집을 끝으로 더 이상은 시집을 묶지 않겠다고 장담하지만,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니, 시마(詩魔)와 시업(詩業)이라는 게 그리 쉬이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장담할 일은 아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시집은 권혁소가 40년 동안 살아낸―선생이라는 직(職)과 시인이라는 업(業)을 정리하는 시집임에는 틀림없고, 시인이 스스로에게 주는 훈장이자 반성문일 테다.
내 청춘의 한때는
탄가루 촘촘히 박힌
영암운수 철암행 버스, 빈자리 많았지만
앉을 수 없었던 불편으로부터 출발한다
월급봉투가 얇기는 했지만 나는
어엿한 정규직 노동자였는데
터져 갈라진 아이의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 줄 생각은 못 하던 때였다
아직도 생생한, 설거지 냄새가 묻어 있던
언 손등이 타전하던 엄마의 부재
츄리닝이나 운동화를
뇌물로 들고 온 봉제공장 영업부장에게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일부 아이들을
팔아넘기기도 했는데
선생들은 그것을 입고 신고 테니스를 쳤다
저탄장을 배경으로 튀어 오르던
작고 탄탄한 연두의 비행은 늘
불편한 몇 개의 이미지를 동반했다
그 마을엔 꽃집이 없었지만
월요일의 교무실 책상에는 늘
장미 몇 송이 안개에 싸여 피었고
일요일에 황지까지 다녀온
미정이가 피워 놓은 꽃이란 건
사환 김 양의 귀띔 덕이었다
그러는 사이 몇은 자퇴를 했고
또 몇은 꾸준히 학교에 오지 않았고
예억이 그 애는 교도소 검열인이 찍힌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답신을 보내고 싶었지만
쓸 말이 없었다
그로부터 사십 년, 나 그곳에
너무 많은 말들을 두고 왔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말에
상처 입었을 젊은 벗들에게
이제야 무릎 꿇어 사죄한다
― 「거기 두고 온 말들」 전문
이번 시집 뒤표지에는 이상국 시인, 이경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등 세 분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오랜 기간 문학 활동을 같이하면서 권혁소 시인과 함께 문학 행사에 참여한 그의 학생들과 숙식을 같이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들과 서로 할 말 다하며 친구처럼 대하거나 서로 존중해주는 관계가 부럽기도 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한 사람 있다’고 했다. 이를 따른다면 권혁소 시인이 교직 40여 년간 치러낸 마흔 번의 입학식과 서른아홉 번의 졸업식에서 만난 모든 아이들이 그의 도반이었고 스승이었던 셈이다. 그는 단순한 교사로서가 아니라 동류의 인간으로, 또는 어른으로, 아이들과 같이 희망을 이야기하고 삶을 즐기고 혹은 현실을 아파했지만 그래도 거기에 두고 온, 아직 못다 한 말이 있다. 오직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아린 마음, 그것이 이 시집의 말이다.”
― 이상국(시인)
“착한 사람은 험한 인상을 가진다고 한다. 명리학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이다. 존재는 모두 음양으로 되어 있어서 겉과 속이 정반대라고. 시인 권혁소는 이 말의 사람 답안이다. 그가 얼마나 산적같이 생겼는지, 그러나 속은 얼마나 여린지. 그가 마지막 시집이라고 지레 말하는 이 시집의 시들은 착하고 착하다. 그는 착한 걸 미약함으로 여기는 풍속에서 나고 자라고 늙은 사내. 그러나 착하고 정직한 건 늙지도 않고, 평창 진부에서 출발한 삶이 인제 원통에 이르도록 닳지도 않아서, 서울 변두리만 돌았을 뿐인 독자인 나의 닳은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새벽, 그저 부끄럽고 그립고 눈물겹다.”
― 이경자(소설가)
“대학 시절부터 전봉준의 머리만큼이나 무겁고, 황현의 붓끝만큼이나 거침없는 권혁소의 시를 읽어왔다. 학생이었고, 어느 결에는 민주운동가였고, ‘명태’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성악가이며 교육노동자인 권혁소. 그의 시는 해학인가 싶어 빙긋 웃게 하다가도 순간 정신 차리라는 준엄한 회초리 같다. 젊은 날 시와 소설로 만나 마주 보는 거울처럼 함께 글을 써온 것이 내 문학 인생의 커다란 행운이고 자랑이다.”
― 이순원(소설가)
해설을 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오민석 교수는 이번 시집을 “낮고 작은 것들의 성스러움”이라 요약하며 이렇게 평한다.
“권혁소의 시집을 읽으면 내심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 시집은 왜 유의미할까? 이 시집은 독자들 내부의 무엇을 건드리나? 이 시집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권혁소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률 때문이고, 그것이 독자들의 가슴에 있는 도덕률을 울린다. 그는 근 40년 이상 교사로서 교육 노동운동을 하였고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그의 마음속에서 빛나는 것은 이런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 노동운동은 교육만이 아니라 교육 현실과 연관된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필요할 것이고, 그의 도덕률은 이런 맥락과 같은 궤도에 있다. 또 하나, 그가 주로 거주한 강원도의 시골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삶, 가족들의 생애 역시 그의 도덕률을 구성하는 중요한 자원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권혁소 시인의 내면에 세워진 도덕률은 한마디로 ‘작고 낮은 것들’에 대한 애정과 그런 것들의 편에 서서 그런 것들의 성스러운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별 하나쯤은 키우고 산다. 하늘의 별에 버금가는 마음속의 별을 무엇이라 부르건 간에, 주체의 내부를 환히 밝히는 그것 없이 인간의 삶은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권혁소는 이 시집에서 작고, 무력하고, 낮지만, 하늘의 별처럼 신성한 존재들의 편에 서서 살아온 사십여 년의 세월을 반추하고 있다. 사랑이 큰 자만이 사랑의 결핍을 안다. ‘젊은 벗들’에게 ‘무릎 꿇어 사죄하는’ 한 ‘산골 선생’의 모습에서 또 하나 아름다운 별이 떠오른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무언가? 하나는 자기의 준칙(도덕률)이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을 수단(대상)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 아닌가. 시인으로서 권혁소든, 선생으로서 권혁소든 그가 평생 지켜온 정언명령이기도 하겠다.
이번 시집을 편집한 시인 박제영은 권혁소를 일러 “슬픔이 가여워서 슬픔의 편에 선 사내”라며 “화려한 꽃들은 안중에 없고 오직 앉은뱅이꽃들에게 정을 주는 사내다. 거악과 싸우기 위해 적당히 악할 줄 알고 진실을 좇기 위해 능히 거짓말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악함과 거짓말을 끝끝내 부끄러워하는 사내다”라고 덧붙였다.
권혁소 시인은 이번 시집이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라 장담했지만, 과연 마지막 시집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의 첫 시집이 될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권혁소
평창 진부에서 났다.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처음으로 「論介가 살아온다면」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다별곡」이 당선하였다.시집으로 『論介가 살아온다면』 『수업시대』 『반성문』 『다리 위에서 개천을 내려다 보다』 『과업』 『아내의 수사법』 『우리가 너무 가엾다』 등을 펴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장,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작가회의 강원지회장 등의 일을 했다. 제3회 강원문화예술상과 제6회 박영근 작품상을 받았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그 봄|용기가 필요 없는 일|새벽 생각|산양, 사랑을 보다|그 꽃|그러는 사이|거짓말의 힘|에이뿔|어떤 부끄러움|서러운 풍경|모두 내 책임|어떤 고향 사랑|마시오와 하시오|마스크|국수|명의 처방전|바이든을 날리면|무뚝뚝한 사나이|신돌석|선 긋기
2부
개망초|깨가 쏟아진다는 말|끝내 풀이 이긴다|윤병열|찔레꽃 덕분에|만약을 위해|육십 년 만에|각방|장독대|아내의 화장대|어떤 당부|폐경 무렵|매 버는 말|장작을 패며|아버지 냄새|악성중피종|달빵|1969년, 엄마
3부
거기 두고 온 말들|소리로 오는 것|자기소개|아이들이 묻지 않겠나|한희와 두희|산골 선생|살다 보니|너 좀 재수없어|그때도 지금처럼 겸손했더라면|꿈을 위한 잠|거짓말탐지기|딸기의 시절|복수는 너의 것
4부
졸렬한 핑계|낡은 희망|미자|2학년 1반|야외수업|면온국민학교|군사우편|우리나라|돌 반 담임|교과서대로라면|쓸쓸한 풍경|난로를 피우며|노가바
해설 _ 낮고 작은 것들의 성스러움 · 오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