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동아시아 문화를 수놓았던 차와 향 그리고 꽃과 관련된 취미 문화를 한데 묶어서 살펴본 최초의 책이다. 동아시아 권역을 한국, 중국, 일본으로 나누고 국가별, 시대별로 흐름을 설명하면서 차·향·꽃을 바라보았던 여러 인물들의 시선과 그것을 담아낸 예술적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저자는 이들 삼국의 차·향·꽃 문화가 서로 어떻게 같고 다른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세심히 구별하고자 했으며, 문헌이나 고고학 출토품 등 근거가 명확한 자료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관련된 스토리와 인물의 서사를 적극 활용했고 이해를 돕기 위해 각 나라의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도판 자료도 충분히 제공했다.이야기는 중국에서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진다. 차는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향과 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 지역에서 먼저 관심을 보였다. 향과 꽃 문화가 동아시아로 이동한 경로를 보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출발해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되었고 그다음 한국과 일본으로 확산되었다.중국은 동아시아 차·향·꽃 문화의 출발점에 있으며 자료가 방대하고 문화의 역사적인 총량도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유구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저자는 이들 문화가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후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를 보여준다.본문에서는 차와 향, 꽃의 문화적인 흐름을 개별적으로 나누어 설명했지만 사실 차·향·꽃은 하나의 시공간에서 행해진 종합적인 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차 문화가 흥했을 때 향과 꽃도 그 자리에 있었으며 함께 커다란 시너지를 낳았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차와 향과 꽃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로, 이 책의 출간으로 동아시아 삼국의 차·향·꽃 문화와 그릇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음미하고
코로 느껴보는
동아시아의 고급 취미 생활사
신분과 종교, 교역과 시장, 문학과 그림, 유행과 모임, 장인 정신과
예술의 혼이 어우러지는 총천연색 동양 문화의 정수
1. 차 문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상류사회에서 차를 마시는 행위가 유행했으며 시장에서는 일상 음료로서 차가 유통되었다. 위진시대에 이르러 차는 술과 마찬가지로 연회나 모임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호품이 되었으며, 성당 시기에는 보급 범위가 더욱 넓어져 집집마다 차를 마시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제 차를 마시는 행위는 갈증 해소 차원을 넘어 정신의 긴장을 풀어주고 영혼을 고양시키는 치유적·예술적 생활풍습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즉 차를 마시는 의미를 정신문화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송·원 시대에는 다구의 외적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유희적 경향이 나타났고, 명·청 시대에는 실질적인 음다법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뤄졌으며 차 마시는 행위에 이상 세계를 연결 짓는 탐구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당·송 시대까지는 주로 병차餠茶(떡차), 단차團茶 종류가 애용되었으며, 명대 이후에는 엽차葉茶(산차散茶)가 유행했다. 차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적 트렌드에 따라 찻그릇 또한 다양한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의 차 문화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유적에서 양진 남북조시대의 청자완, 흑유계수호, 돌절구 등 차 관련 다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한반도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차를 죽처럼 끓여 마셨음을 의미한다. 통일신라시대의 문헌자료나 생활 유적에서는 다기로 사용된 당나라의 월요越窯 청자, 형요 백자, 장사요 청자 등이 확인되고 있으며, 실제로 최치원을 비롯한 상류 인사들은 당나라의 전다법과 점다법을 알고 있었으며,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암다법도 응용하고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무신 정권이 들어선 1170년 이후 은거생활을 하는 문인과 승려 집단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확산되었다. 점다법에서 한 걸음 나아가 차의 산지와 차 맛을 품평하면서 서로 아름다운 거품을 만들어 경쟁하는 투다鬪茶가 성행했고 동시에 전다법도 애용되었다. 고려시대에 차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다양하고 섬세한 다구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면서 고려의 자기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한반도 차 문화 역사상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고려의 차 문화는 중국 못지않은 수준을 선보였다.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억불 정책에 따라 차 문화도 침체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등장한 정약용·초의선사·김정희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중국·일본과 사행使行 교류를 통해 다양한 차의 세계를 경험하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점다點茶와 투다는 여전히 행해졌고 찻잎에 물을 부어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이 유행하자 손잡이가 달린 다관과 다종 등이 유행했다.
일본에서는 적어도 8세기에 차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9세기 초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차 씨앗을 심어 재배했다. 헤이안시대에 당나라로 건너갔던 승려들을 통해 전다법과 함께 청자로 만든 찻그릇 형식이 유행했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점다법이 유입되었고 중국 강남의 증제한 잎차인 쌍정차雙井茶를 배워 일본의 말차末茶 원료인 덴차碾茶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마쿠라 막부는 경쟁심을 돋우는 투다를 활용하여 무사들의 정신 함양에 힘썼는데, 도박성이 높은 투다를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우려가 발생할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막부의 장군들은 가라모노唐物라 불리는 중국산 찻잔이나 연회용 장식물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당시 일본에서 주로 마셨던 차는 송대 황실이나 상류층에서 마시던 단차가 아니라 중국 강남의 증청 초차草茶(산차)였다. 무로마치시대에 이르면 기존의 가라모노를 중심으로 한 중국식의 서원차書院茶와 한적한 경지와 소박한 기물을 중시하는 와비차わび茶가 대립하는 가운데 활기찬 차 문화를 꽃피웠다. 거리에는 미즈차야水茶屋라는 찻집이 성행했으며, 차가 대중화를 넘어 일상화된 에도시대 이후에는 오늘날의 녹차인 센차煎茶가 정착했다.
차와 다기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삼국의 차 문화는 무척 닮았으면서도 각자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차가 병차, 단차, 산차(잎차)의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다구의 형태와 재질도 요구되는 바가 달라졌다. 병차 시대에는 청자 계통의 다기가, 단차 시대에는 청자나 천목 다기가, 산차 시대에는 백자가 환영받았다. 명·청대에는 차의 향을 오래 유지하며 보온 기능이 뛰어난 자사호가 탄생했고, 문향배나 개완 등 차를 정신적 건강과 연관 지으면서 다구의 기능도 확장되었다. 한국에서는 차 문화가 가장 번성했던 고려 때 도교의 자연합일 사상과 결합된 특성을 드러냈으며 중국에서도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빛깔의 고려청자가 제작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단조로우면서도 우아하고 소박한 특징을 지닌 백자 다기가 선보였다. 그런 반면 일본은 끊임없는 전쟁과 권력 다툼으로 인해 안으로 모으고 축소하는 독특한 심미관이 차 문화에 녹아들었다. 에도시대에 지배층인 무사를 중심으로 정립된 다도의식은 정치적 사교모임의 한 종류로 향유되었다. 그런 가운데 ‘와비·사비侘·寂’ 정신에 입각한 독특한 차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여기에 잘 어울리는 조선의 분청 다완이나 일본제 다기를 채택함으로써 소박한 찻자리의 미학을 숭상했다.
2. 향 문화
인류의 생활에 향이 처음으로 등장한 곳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오리엔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다시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루트를 이룬다.
향을 태우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내세에 대한 관심과 종교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중국인은 예로부터 향을 현실과 사후세계 혹은 신선의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생각했으므로 향을 태우는 행위를 신성하고 고귀하게 여겼다. 따라서 책봉·가례·상례와 같이 의식을 치를 때마다 향을 태웠고, 경건한 의식의 과정으로 자리 잡은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향 문화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향이 개발되고 그에 어울리는 새로운 향구香具가 제작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서역을 개척한 한대에는 나무의 수지로 만든 향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그 성질에 맞는 향로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불교가 널리 전파되는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종교의식에 향이 적극적으로 쓰였으며, 수·당대에는 실크로드 교역을 통해 더욱 다양한 종류의 향이 수입되면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향구가 유행했다. 송대에는 사대부뿐만 아니라 상류층 부녀자 사회에서도 향 문화가 유행했는데, 특히 의복에 향내를 입히는 훈의薰衣가 널리 확산되었고, 여러 가지 향을 혼합한 새로운 형태의 향들이 등장했다. 향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도기나 청동기 향로에서 나아가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자기瓷器 향로가 애호되었다. 원대에는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선향線香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명·청대에 이르러서는 자체적으로 향초를 재배하고 향료를 제작하는 산업이 번영했다. 또한 금석학의 대유행과 더불어 옛 것을 모방한 향로와 향합 형태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향 문화가 시작된 시기는 삼국시대로,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향을 태우는 의식도 함께 유입되었으며 초기에는 질병을 치료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교역을 통해 향을 수입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향을 재배하여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모든 국가 행사에서 향을 태웠으며 귀족사회에서도 개인적으로 향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침향沈香이나 용뇌龍腦 등의 고급 향이 수입되었는데 조선의 왕들은 침향에 큰 관심을 보였다. 많은 문인도 향을 애호하여 아름다운 향로와 향완香埦이 문방도구와 나란히 서재 공간을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향 문화는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불교적인 공향供香으로 시작되었으나, 헤이안시대 이후 종교적 색채에서 벗어나 심미적 용도로 나아갔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들이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희귀한 침향을 즐겼다. 당시 무사들은 홀로 조용히 침향을 태우며 사색하는 문향 취미와 동시에 여럿이 모여 향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투향鬪香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무로마치 시대 무사 정권에서는 선禪 사상을 토대로 향에서 우러나는 고담枯淡을 숭상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당시 중국 문물을 수집하는 열풍이 불어 중국의 향목, 향로, 향합 등이 대량 유입되었다. 와비차가 유행했던 모모야마 시대에는 향로를 사용하지 않고 화로나 풍로에 향을 직접 넣어 즐기는 방식이 유행하기도 했다. 에도 시대 상류층에서는 독특한 옻공예 기법으로 제작된 화려한 향구가 환영받았으며, 찻자리에서 차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향합이 차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동아시아 3국의 향 문화를 종합해보면 중국에서는 한대 이후 동서 문명이 융합되고 도교·불교·유교가 소통하는 과정에서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향 문화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계층은 황실과 문인 사대부로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투다鬪茶, 삽화揷花, 괘화掛畫와 함께 향을 즐겼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어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귀족과 문인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향 문화가 쇠퇴했다. 한국은 오랫동안 중국과 교류하면서 향 문화를 발전시켰으나 종교의 영향에 따라 성쇠의 과정을 겪었다. 즉 불교가 번성했던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향과 향구가 등장했으나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주로 제례와 상례에 국한해 왕실과 문인층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조선 후기에 장식적이고도 관념적인 형태로 향을 즐기곤 했다. 향에 대한 일본의 접근은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훨씬 심미적이다. 가마쿠라 이후 등장한 무사 계층은 향 문화를 선도해왔으며 향을 예술로 승화시켜 오랫동안 전통을 이어왔다. 오늘날에도 일본의 향 문화는 다도茶道, 화도花道와 함께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3. 꽃 문화
꽃은 차, 향과 마찬가지로 머나먼 고대부터 인류의 삶과 함께해왔다. 화기花器를 이용해 꽃을 감상하는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및 이집트 지역에서 시작되어 그리스와 로마로, 다시 인도 간다라 지방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될 때 꽃을 바치는 의식이 함께 유입되면서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했고, 이어서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전해져 각기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다. 화기에 꽃을 담거나 꽂는 것을 중국에서는 ‘병화甁花’, 한국에서는 ‘꽃꽂이’, 일본에서는 ‘이케바나’라고 한다.
중국의 병화 문화를 확인해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기물은 서진西晉 당시의 관罐(항아리)이다. 이후 남북조 초기에는 크고 높은 형태의 병이 등장하고 꽃을 공양하는 방식도 다양해졌으며, 말기에는 도교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반영한 양식이 출현했다. 수·당대에 이르러 병화는 어엿한 예술 분야로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북송 시기에는 새로운 방식의 화훼 감상이 전개되었다. 오대에는 괘화掛花와 조화弔花 그리고 대나무를 활용한 통화筒花가 등장했으며, 정기적으로 꽃 전람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송대에는 왕실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병화가 생활 사예四藝에 포함되었을 만큼 보편화되었다. 명대에는 이학理學 사상과 꽃을 연결한 서적이 문인들에 의해 저술되었고, 찻자리에서 꽃꽂이를 즐기는 다화茶花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청대 들어 병화 문화는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꽃피웠다. 역대 황제들은 명대의 고아한 한인의 아취를 동경하여 병화에 적극적이었고, 세상이 안정되고 물자가 풍부하여 풍류생활을 즐기는 분위기가 그러한 발전의 계기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경盆景과 분재盆栽 예술이 크게 발전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전반적으로 중국인은 자신과 꽃을 동일시하고 대담한 직관을 표현하면서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특징이 엿보인다.
우리나라의 꽃꽂이 문화는 삼국시대 문헌 기록에서 처음 발견되고 있다. 백제와 신라의 왕실에서는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기이한 동물과 화초를 길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신라가 당나라에 꽃을 선물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꽃꽂이 문화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귀족사회의 고급 취미로 자리 잡았다. 국왕들은 왕실 화원에 신하들을 초대하여 화초와 진귀한 물건을 관람케 하고 잔치를 베풀어 군신관계를 공고히 다졌다. 사대부 계층에서는 송대의 이학 사상을 반영한 이념화理念花가 유행하여, 이상적인 ‘군자君子’의 모습이 투영된 꽃을 자기수양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고려의 꽃꽂이 문화는 분명 불교의식을 토대로 성장했으나 점차 종교 영역을 벗어나 선비들의 취미로 환영받았으며, 이는 고려청자라는 뛰어난 화병이 제작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화훼 재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여러 관련 서적이 저술되었으며, 궁중과 상류 사회의 높은 취향을 반영하는 병화도甁花圖라는 새로운 회화 장르가 등장했다. 이 그림에서는 꽃이 아니라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병이 주인공으로 채택되고 있다.
고려와 조선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고려에서는 왕실과 사찰을 중심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성격을 드러내며, 다양한 화기가 제작되었고 꽃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한 흔적을 남겼다. 반면 조선은 실용적 측면이 강하다. 즉 생화보다는 인조화, 분화盆花, 기명절지도와 화병에 그려진 꽃꽂이 그림까지, 꽃을 직접 체험하기보다는 매개체를 통해 감상하는 정서가 더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 가운데 한국의 꽃꽂이 문화는 예술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면서도 이성적이며 경제적으로 접근했다.
일본의 이케바나는 꽃에 깃든 신에 대한 숭배에서 출발했다. 문헌상으로는 「겐지모노가타리原氏物語」를 비롯한 헤이안시대의 고전문학 작품에서 먼저 접할 수 있다. 뚜렷한 형태의 화기가 그림에 등장한 것은 9세기경의 불화에 그려진 정병 모양의 보병寶甁이다. 가마쿠라시대의 불화에서는 화병에 꽃이 꽂혀 있는 형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신화와 전설적인 인물을 묘사한 그림에서 동, 자기, 유리 등 다양한 재질의 화기가 등장한다. 가마쿠라 후기에 중국으로부터 선종禪宗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일명 ‘가라모노唐物’라 불리는 중국 그림이나 기물이 유입되어 대유행했다. 이 가운데 중국 화병의 진귀함을 겨루는 ‘하나카이花會’라는 모임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모모야마시대에 들어서는 이케보池坊 가문에 의해 꽃꽂이 이론과 리카立花 양식이 완성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화기가 주인공으로 대접받은 자리는 화도花道가 아닌 다도茶道였다. 그 후 소안草庵의 차, 와비차わび茶 문화가 유행하면서 화기보다는 꽃이 중심이 되어 자연스러운 이케바나가 전개되었다.
부처님께 바치는 공화供花로 시작한 일본의 이케바나는 다다미방, 서원조 등 건축의 성격과 구조에 따라 꽃을 감상하는 양식이 등장하면서 화병의 배치도 특정한 양식을 얻었다. 이후 와비차의 유행과 함께 소박한 이케바나가 등장하는 등 꾸준히 중국의 병화를 받아들이면서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독특한 길을 개척했다. 일본의 이케바나는 꽃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자기수련을 통해 삶을 깨닫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삼국 가운데 가장 이미지적이며 감성적인 기풍을 이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영미
성신여대와 이화여대에서 한국 한문학을 공부하고, 베이징대학 고고학과에서 「여요연구汝窯硏究」 및 「월요연구越窯硏究」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며 신안 해저 문화재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관련 전시를 기획했다. 대표적인 전시로 2016년 발굴 40주년 기념 특별전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안선과 도자기 길』 『마음을 담은 그릇, 신안 향로』 등이 있다. 정양모 전前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고려청자』를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목차
머리말
1부 차 문화
1장 중국의 차
――차죽의 시대: 당 이전
――『다경』의 시대: 당
1) 전다와 다기
2) 암다와 다기
3) 점다와 다기
――투다와 각양각색의 다기: 송
1) 화려하고 격렬하게 점다
2) 아름다운 포말로 승부하는 투다
3) 포말 위에 문양을 그리는 분다
4) 흰색 거품을 위해 탄생한 흑유 다완
5) 초차를 마시기 위한 다구
6) 차의 맛과 기운이 뛰어난 석제 다구
7) 그림 속 차를 준비하는 모습과 다구
――변방으로 전파된 다례: 요·금
――말차와 엽차의 과도기: 원
――차의 빛깔보다 맛과 향: 명
1) 다기와 차 맛의 긴밀한 관계
――황제에서 평민까지 차를 즐기던 시대: 청
1) 법랑채 다기를 애호한 강희제와 옹정제
2) ‘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던 건륭제
3) 재스민차를 세계에 알린 자희태후
4) 궁중의 귀한 차, 티베트의 밀크티
5) 의흥 자사호와 공부차
――외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차: 근현대
2장 한국의 차
――한반도 차 문화의 시작: 삼국
――『다경』을 향한 동경: 통일신라
1) 통일신라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다기
2) 옥벽저완과 옥환저완
3) 장사요 청자
――한반도 차 문화의 절정기: 고려
1) 고려 문인과 스님들의 운치 있는 음다법
2) 월요 청자를 능가한 고려청자
3) 다양하고 세련된 고려 다구
4) 중국과 대등한 고려의 차 문화
5) 고려인을 매혹한 중국 다기
――국제적 감각의 차 문화: 조선
1) 차 문화 부흥의 주역들
2) 중국·일본 교류로 부흥한 차 문화
3) 조선시대에 유행한 차와 다법 그리고 다구
――외부의 지배 속에 명맥을 유지하다: 근현대
3장 일본의 차
――견당 승려가 들여온 차 문화: 나라·헤이안
――중국 점다의 유입과 일본 덴차의 시작: 가마쿠라·난보쿠조
1) 무사의식을 고양시킨 투다
――서원차와 와비차의 대립: 무로마치
1) 리큐와 와비차의 계보
2) 와비·사비와 고려 다완
3) 리큐의 한 칸 다실
4) 일본 차 문화의 리더: 마치슈와 다이묘
――차의 대중화와 센차의 정착: 에도
1)일본 다도의 정신, 와비·사비 그리고 일기일회
2부 향 문화
1장 향의 종류
모향 | 침향 | 용뇌향 | 용연향 | 강진향 | 소합향 | 백단향 | 자단향 | 정향 | 유향 | 사향
2장 중국의 향
――합향 기술의 발전
――합향의 종류와 사용법
향환 | 향병 | 향전 | 선향
――향의 사용과 향구의 변천
1) 신선 세계에 대한 동경: 전국·진한
도제 훈로 | 동제 훈로 | 박산향로
2) 낭만적인 향훈 문화의 유행: 삼국·위진남북조
관형 향훈 | 삼족형 향훈 | 박산향로 | 두형 향훈 | 병향로
3) 동서 교류를 통한 다양한 향과 향구의 유행: 수·당
다족 향훈 | 향 훈구 | 병향로 | 박산향로 | 향합
4) 다양한 향료의 유입과 향구의 발달: 송
5) 향의 대중화와 선향의 등장: 원
정형 향로 | 역형 향로 | 염형 향로 | 궤형 향로 |
향저·향시·향병
6) 고급 장식물로 자리 잡은 향구 : 명·청
선덕로, 인향로 | 노병삼사
3장 한국의 향
――불교와 함께 시작된 향 문화: 삼국·통일신라
1) 삼국시대에 유행한 박산향로
2) 통일신라의 다양한 향로
――향 문화의 전성기: 고려
1) 격조 높은 복고풍 향구의 유행
연화형 향로 | 향완 | 정형 향로 | 상형 향로 | 병향로 | 현향로
2) 수도 개경에서 유행한 송대 향로와 향합
――유교 문화와 문인들의 향 취미: 조선
1) 정형 향로와 향완
2) 중국 향로의 유입과 유행
4장 일본의 향
――향 문화를 적극 수용한 일본인들: 아스카·나라·헤이안
――무인들의 문향과 투향 그리고 가라모노 열풍: 가마쿠라·아즈치모모야마
――다실의 주인공이 된 마키에 향구: 에도 이후
3부 꽃 문화
1장 중국의 꽃 문화, 병화
――인도 불교에서 유래된 병화: 위진 남북조
1) 중국 병화의 외래적 요소
――병화 예술의 황금시대: 수·당·오대
1) 신에게 바치는 꽃의 노래
2) 감상의 대상으로 격상된 병화
――연회석을 풍성하게 장식했던 병화: 송
1) 차, 향, 꽃 그리고 그림
2) 송대의 병화, 원체화와 이념화
3) 화병을 노래한 시와 그림
――병화 문화의 침체: 원
――병화 문화의 부흥: 명
1) 병화에 관한 인문학적 시선
2) 장소와 쓰임에 따라 다양해진 화기
――병화 문화의 정점: 청
1) 화왕의 탄생
2) 분재 예술에 담긴 상징
3) 창의적인 꽃꽂이 도구, 내담
2장 한국의 꽃 문화, 꽃꽂이
――당나라로 간 신라의 꽃: 삼국·통일신라
――호화스러운 어원, 금은화로 장식한 연회: 고려
1) 불교 공화와 유가 이념화의 공존
2) 꽃의 생명을 연장하는 비책: 토실과 빙화
3) 꽃꽂이의 종류에 따른 화기의 사용
――꽃꽂이 이론과 기술의 향상: 조선
1) 화훼 재배 기술에 눈뜨다
2) 글과 그림에 나타난 조선의 꽃꽂이
3장 일본의 꽃 문화, 이케바나
――꽃에 깃든 신의 영역: 아스카
――노래로 전해지는 이케바나: 헤이안
――카라모노의 유행과 이케바나의 융성: 가마쿠라·난보쿠조
1) 실내에 장식된 이케바나
2) 가라모노 취미와 이케바나
3) 불화에 나타난 이케바나와 화기
4) 신화와 역사적 인물이 즐긴 이케바나와 화기
――이케바나의 정점: 무로마치
1) 종교의 경계를 넘어 예술적 양식으로
2) 그림 속에 보이는 이케바나와 화기
――이케바나와 차노유의 결합: 모모야마·에도
1) 리카와 유예의 등장
2) 차노유와 이케바나의 절묘한 결합
――전통과 혁신의 모색: 근현대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