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여기에는 한 인간으로서 내가 있어서 호젓하고 애틋한 기분이다”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글과 놀며 써 내려간
강인숙의 호젓하고 애틋한 산문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평생 반려자로서 개인 박물관인 영인문학관을 이끌어오고 있는 강인숙 작가의 산문집이다. 만년에 시간이 넉넉해진 덕에 ‘글과 오래 놀 수’ 있는 것이 재미있고 황홀하다고 밝혔듯 간결하고 담백한 글맛이 군더더기 없이 청량하다. 90대에 이른 저자가 삶의 다양한 국면을 통해 발견한 통찰이 예사롭지 않다. “삶은 마치 하나의 길과 같”다는 그는 여행, 가족, 자연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희로애락과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전한다. 길 위에서 접한 풍경과 색다른 경험들, 애틋한 가족사, 문학을 향한 열정이 독자들에게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삶은 마치 하나의 길과도 같고 그 여정은 각자의 몫이므로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길 권하는 저자의 속 깊은 성찰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넘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삶은 마치 하나의 길과 같다”
노년의 넉넉한 시간을 글쓰기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나는 글과 오래 논다』는 단순한 회고록이나 에세이를 넘어 삶의 여정을 추구하는 지적 통찰을 전하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저자는 여행 중에 만난 길과 풍경,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삶의 다양한 측면을 돌아본다. 아피아 가도를 비롯한 무수한 길을 걸으며 저자는 인간의 필멸성을 기억하고, 역사를 통해 삶의 가치를 반추한다. 그 길은 인간과 자연, 역사와 문화가 결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플랫폼이자,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안고 있는 거점이다. 또한 저자는 노년의 경험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 즉 죽음과 삶의 마지막 단계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는다. 저자에게 노년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삶을 재조명하는 기회다. 코로나19가 오히려 고독, 책 읽기, 자연에서의 사색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유쾌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노년에 주어진 넉넉한 시간을 글쓰기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두고두고 오타를 수정하고 글의 틀을 정리하고 문장을 이동해서 결을 맞추는가 하면, 플로베르처럼 형용사를 지우는 작업에 몰두한다. 이 역시도 삶을 보다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독자들을 깊은 사색과 내밀한 자기만의 세계로 이끈다.
“살아 있는데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있음을”
삶의 유한함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은 친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인간관계와 자연에 대한 교감과 성찰을 다룬다. 저자에게 형제와 가족이 있는 캘리포니아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형제, 자녀를 잃고 가족과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면서,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즉 “죽음은 삶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이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삶이 유한하므로 순간순간의 경험이 소중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나은 자신과 만날 수 있음을 캘리포니아에서의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깨닫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삶의 소소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나는 왜 문학을 하게 되었을까”
문학과 우리말에 대한 사랑
저자가 전하는 문학과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저자는 언어와 기록을 개인의 소통 도구로만 여기지 않고 인간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바라본다. 사투리와 옛말이 표현에 풍부함을 더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말의 미학을 논하면서, 사투리와 옛말은 시대에 뒤처진 언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고스란히 닮은 중요한 매개체임을 강조한다. 박완서 작가가 구사하는 독특한 토착어는 언어적 특징을 뛰어넘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사와 사회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또한 1930년대라는 범위 안에서 이상이 펼친 독립적이고 고립된 미학적 세계는 한국 문학에 대한 탐구와 가능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고 본다. 작가들의 작품 세계, 삶과 더불어 문학을 통해 되돌아보는 저자의 삶 역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창으로서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통찰의 장을 제공한다.
길에는 언제나 깊은 페이소스가 있다. 젤소미나(영화 「길」의 여주인공)의 남자 친구가 나팔로 불던 노래 같은 처절한 페이소스가 서려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길은 늘 죽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길은 무한해 보이지만 언제나 종착점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은 여로와 흡사하다.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그래서 길 위에 서면 종말 의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성숙기인 듯 카타니아의 광활한 밀밭은 모두 가을의 갈대밭 같은 색깔을 하고 있었다. 곡물이 지니는 그 성숙한 자연의 질감이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그런 밀밭 사이를 계속 달리는 기분은 가을의 논 사이를 달리는 것과 흡사하다. 사람을 먹여 살리는 실용적인 작물들이 그렇게 품위 있는 색상까지 지니고 있는 것은 얼마나 큰 공덕인가?
태곳적에 불던 바람이 지금도 그대로 불고 있는 곳……. 그 광야는 바다처럼 ‘무한’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비바람 속에서 태풍의 바다처럼 극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는 스톤헨지. 그 광대한 평원이 너무나 외경스러웠다. 옛사람들은 왜 저런 엄청난 돌들을 끌고 와 신에게 바치려 했던 것일까.
작가 소개
지은이 : 강인숙
문학평론가, 국문학자.1933년 10월 15일(음력 윤 5월 16일)사업가의 1남 5녀 중 3녀로 함경북도 갑산에서 태어나 이원군에서 살다가 1945년 11월에 월남했다. 경기여자 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으며, 1958년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퇴임 후 영인문학관을 설립했다.
목차
1부 La Strada━ 길
관광버스의 앞자리
새벽안개가 감싼 오스티아의 옛길
아피아 가도의 우산 소나무
아그리젠토로 가는 꽃길
카타니아 평원의 밀밭길
아드리아 바다의 해안 도로
침엽수림과 라벤더 꽃밭홋카이도
석양을 향해 달려라모하비 사막 도로
이스탄불의 삼중 성벽길
아말피로 가는 벼랑길
못 가본 유적
인도의 나무들
시간 너머에 있는 나라
어느 고양이의 꿈
정오의 공원
문 밑으로 밀어 넣은 사랑의 메시지도스토옙스키 기념관
아름다워라, 비석 없는 풀 무덤톨스토이의 집
오스틴 하우스의 서기 어린 풀밭제인 오스틴관
아시야 바닷가에서 만난 남자다니자키 준이치로 기념관
2부 오오! 캘리포니아
골든 캘리포니아
휠체어에서 보는 세상
6월의 새너제이
일정 없는 여행의 재미
졸업식
쉬는 날에 하는 일
LA로 가는 길
6년 만의 가족 상봉
한 사람씩 만나기
걸을 때마다 내 생각 해줘
LA에서 오는 길
3부 유행기(遊行期)의 얼굴
코로나 바캉스
유행기의 책 읽기
낙타가 달린다
풀꽃 이야기
노인네 망령은 곰국으로 다스려라
노인성 고집
강태공의 아내
노인과 아이
어느 바보가 본 하늘
피부 밑에는
칼의 주술성
질병과 양보
4부 국문학 산고(散稿)
나는 왜 문학을 하게 되었을까
옛말과 사투리의 미학
옛말에서 묻어나는 정감
사투리의 묘미
박완서의 토착어
최인호 소묘10주기에 생각나는 것
고래 사냥의 신바람
최인호의 새로움
Anti-physics에서 Physics로
최인호의 글씨체
이상, 그가 살았던 1930년대
구인회와 학벌
30년대와 폐결핵
다방의 30년대적 의미망
한일 모더니즘에 나타난 모던걸의 차이
이상 안의 19세기와 20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