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2024년 12월 3일 밤의 바보 같은 선택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1억3000만원대에 거래되던 비트코인 가격이 순간적으로 8000만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사건에 극도로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패닉 셀’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반대편에선 헐값에 비트코인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필사적으로 매수 버튼을 눌러댔다. 한밤중에 비트코인을 팔려는 자와 사려는 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잠시 먹통이 됐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비트코인을 판 자와 산 자 중 어느 쪽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금세 판가름났다. 비상계엄 해제 불과 몇 시간 만에 비트코인 가격은 원상회복했고, 이튿날 사상 처음으로 10만달러를 돌파했다.
비트코인은 한국 정치 경제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글로벌 자산이다. 한국의 불확실성이 극적으로 커지면 국내 주식이나 원화를 매도하고, 글로벌한 자산 또는 달러를 매수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비트코인 보유자들은 정반대로 판단해 큰 손실을 봤다.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다. 어쩌면 돈, 금융, 투자, 경제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던 것일 수 있다.
당신은 정말 돈을 알고 있는가?이 책은 비트코인에 대한 책이기 이전에 돈에 대한 책이다. 돈에 대한 이해 없이 비트코인을 이해할 수 없다. 돈을 깊이 파헤치는 이 책 1부의 제목은 ‘피아트 피아스코(fiat fiasco)’,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법정화폐의 폭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자가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들이 돈의 정의에 대해 고민할 일은 잘 없다. 비트코인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17년 즈음 ‘돈이 무엇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논의가 일었다. 화폐는 가치저장의 수단, 경제적 교환의 매개, 사회적 합의에 의해 수용되는 단위화된 지불수단 등등인데, 비트코인이 그런 자질을 갖췄는지를 다투는 따위의 논쟁이 일어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논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저자는 기술의 발전, 국제교역의 확대, 전쟁, 대공황, 금융위기, 팬데믹 등 굵직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함께 변화해온 국제질서, 주요 강대국의 통화정책, 그에 따라 점점 심화된 법정화폐의 부조리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서술한다. 특히 시간과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차원의 관점에서 장부와 매개의 분열을 설명하고, 그 분열이 점점 커짐에 따라 깊어지는 법정화폐의 위기를 진단하는 대목에서 저자만의 독특한 통찰이 돋보인다.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하버드 대학에서 정책학을 공부한 내공에 뛰어난 이야기 실력까지 더해진 덕분에 여느 경제서와 달리 전세계를 무대로 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드라마의 귀결은 국가 총부채 36조 달러, 연간 이자비용이 정부 예산의 16%를 넘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계속해서 달러를 찍어낼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적으로 불가피한 인플레이션,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이다.
역사적 국제질서의 맥락을 이해해야 우리에게 익숙한 돈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비트코인이 등장한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야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가 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보유하려는 이유를, 백악관과 내각의 요직에 비트코인 열혈 지지자들을 대거 심어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라는 발명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비트코인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9쪽짜리 비트코인 백서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다. 비트코인이 언제 얼마까지 오를 테니 빨리 사라는 류의 책에 비하면야 훨씬 의미가 있지만, 그런 접근법으로는 비트코인이 작동하는 기술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이상을 얻기 힘들다.
이 책의 단연 빼어난 미덕은 비트코인의 본질적 요소들의 의미를 고차원적으로 개념화하고, 독창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해석해내는 데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이제껏 출판된 모든 비트코인 관련 서적과 차별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작가는 뜬금없이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여준다.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놓은 작품이다. 그림은 그림일 뿐 진짜 파이프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도가 영토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고, 법정화폐에서 장부가 지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비트코인에서는 장부가 곧 돈이다. 장부와 매개의 ‘동기화’는 기존 법정화폐의 치명적 결함을 극복한다.
이처럼 작가는 예술, 물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비트코인의 고유한 시간’, ‘시공간 이동에 가치 손실이 전혀 없는 에너지로서의 비트코인’과 같은 의미들을 설명해낸다. 지적이고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해석 덕분에 비트코인이라는 발명품의 위대함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 제목이 ‘사토시 테라피’인 이유는 비트코인 치료사(?) 거스 쿤과 평범한 Z세대 청년의 상담치료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로 쓰여진 덕분에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내용도 쉽게 읽힌다는 건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이다.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채택한 다크웹 장터 실크로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탄압, 비트코인 진영 내에서 벌어진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록 사이즈 전쟁’, 샘 뱅크먼 프리드의 FTX 사태 등 비트코인이 지난 16년 사이에 이겨낸 거센 도전에 대한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비트코인 첫 번째 블록에 새겨진 신문기사 외에도 비트코인 백서가 공개된 날짜, 사토시 나카모토의 생일 등에 숨겨진 수수께끼도 이 책에서 접할 수 있는 쏠쏠한 재미다.
윤석열이라는 치명적 ‘단일장애점’이 주는 교훈비트코인은 역사상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자산이다. 12년이 걸렸다. 페이스북은 17년, 테슬라는 18년, 구글은 22년, 아마존은 24년, 엔비디아는 31년, 아람코는 86년, 금은 수천년이 걸렸다.
2024년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를 승인했고, 이 ETF 상품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ETF 상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비트코인 ETF 판매와 중개를 금지했다.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됐지만, 한국에서 비트코인 ETF 금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오래돼 익숙한 것의 문제를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익숙한 것의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새로운 개념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윤석열 내란은 한국의 정치 체제가 최소한 얼마만큼은 안정적이라는 우리의 익숙한 믿음을 산산조각냈다. 한국 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빠졌다. 친위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국가라면,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사유재산 역시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는 국가다. 이것이 윤석열이 전세계에 확인시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현실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최고 권력자는 국가적으로 치명적인 ‘단일 장애 점(single point of failure)라는 현실을 모든 국민이 목도했다. 이런 단일 장애 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비트코인이다.
돈은 에너지야. 돈은 가치를 보존하며 시공간을 이동하는 경제적 에너지라고.
장부는 ‘확장성’이 강해. 무슨 말이냐 하면, 장부는 정보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전달 전파하기 쉽다는 거야. 반대로 사회에서 합의 신뢰하고 서로 주고받는 금화는 ‘확장성’이 떨어져. 왜? 물리적 매개는 일단 움직이기가 힘들어. 공간이동이 정보처럼 빠르지 못하니까. 그래서 두 요소 사이에는 부조화가 있을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