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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恨, 민주공화국
시와사람 | 부모님 |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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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고려 태조가 만들었다는 ‘훈효십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난당한 전라도라는 공간성에 배태된 수난의 역사가 그 배경이 된다. 특히 근현대사가 배경으로 설정되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국가폭력으로 인한 전라도의 수난뿐만 아니라 왜곡된 역사가 정의로움을 극복하는 현대사를 작가의 예리한 시선으로 형상화되었다.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들의 힘과 더불어 그 이면에 일그러진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을 통해 전라도의 참 모습을 진솔하고 독창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풍전 세류풍전세류(風前細柳)란 고사성어로「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바람 앞에 늘어진 버드나무바람 앞에 나부끼는 버드나무바람 앞에 가녀린 버들가지」자기의 생각과 환경이 달라 풍전세류에 대하여 약간의 차이점으로 해석들 하고 있으나 좋은 뜻에서 보고 있으므로 이러쿵저러쿵 평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사자성어 풍전세류는 조선왕조의 건국 1등 공신 정도전(1342-1398)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은 정치적으로 한 몸이라는 것을 역사 기록을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조선왕조 건국 초기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8도 사람들의 특성과 기질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경기도 사람은 경중미인(鏡中美人)이요 (경기도 사람은 거울 속에 미인과 같고)•충청도 사람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이요 (맑은 바람, 밝은 달과 같고)•전라도 사람은 풍전세류(風前細柳)요 (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와 같고)•경상도 사람은 송죽대절(松竹大節)이요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 같고)•강원도 사람은 암하노불(巖下老佛)이요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 같고)•황해도 사람은 춘파투석(春波投石)이요 (봄 물결에 던지는 돌 같고)•평안도 사람은 산림맹호(山林猛虎)요 (산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 같고) 마지막 이성계 고향인 함경도를 두고 다른 지역처럼 거리낌 없이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이성계가 빨리 말하라고 하므로 독촉에 못 이겨 어렵게 말을 했습니다.•함경도 사람은 이전투구(泥田鬪狗)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강인한 것 같고)이성계가 자기의 고향 함경도를 개에 비유하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정도전은 마음속으로 겁을 먹고 석전경우(石田耕牛, 돌밭을 가는 소처럼 묵직한 품성)라고 정도전은 정정을 했습니다.풍전세류를 「바람 앞에 흔들리는 줏대 없는 사람이요, 간사하다. 경박하다.」고들 기록을 해놓고 있습니다. 전라도는 주관이 없이 자기 좋은 편으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으니 분노, 저항, 차별에 대한 한이 맺히기 마련입니다.개국공신 정도전이 전라도를 폄훼하고 차별을 하고자 전라도를 풍전세류라고 한 말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버들가지가 축 늘어져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지조를 지키고 변함없는 양심으로 변하지 않고 꺾이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길로 살아간다는 아름다운 말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서운하게도 2012년에 확실한 날짜는 모르지만,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개국공신 정도전의 말을 인용하여 풍전세류가 돼 나라를 책임지기 어렵다며 경상도가 태산준령이 되어야 한다고 전라도를 폄훼한 행동에 대하여 전라도 사람으로서 분통이 터질 일이었습니다.이어서 네이버를 통해 배영수 선생(2022년 1월 20일) 낙서장을 그대로 옮깁니다.태산준령과 TK 우리가 남이가.「대선을 앞두고 가짜 보수, 가짜 TK가 대가리 꼿꼿이 세우고 보수인 양 연기를 하고 있다. 끝없는 욕심이 발동하여 좌파의 똘마니에서 보수인 양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우습다. 삼봉 정도전의 팔도어록을 잠시 인용하면 TK가 바로 보수의 중심이고 경상도 사람을 태산준령(큰 산과 험한 고개)이라고 했다. 감히 충청도 핫바지가 넘볼 일 아니다.」이 문장 중 좌파라는 대목에 전라도(좌파니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충청도 뿐만 아니라 전라도는 백제, 고려시대 차현이남이니까요. 경상도여 언제까지 전라도를 차별, 폄훼할 것인가.전라도 사람이여!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 기세로 축 늘어진 버들가지처럼 살아남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풍전세류를 악의적으로 폄훼하는 지역감정과 차별과 한을 스스로 극복해야 합니다. 풍전세류로 지역차별을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빌미를 안 주는 행동을 해야만 그들의 입을 막는 길입니다.풍전세류를 악의적으로 인용하는 자에 말려들지 맙시다.
반역향앞장에서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 앞에서 개국공신 정도전이 8도에 대한 특성들 평할 때 「풍전세류」라고 전라도에 대한 폄훼 발언이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습니다.대한민국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글 한글을 창제하셨기에 제1, 첫 번째로 꼽히고 있는 조선왕조 4대 세종대왕께서도 전라도를 폄훼한 발언을 했습니다.「전라도는 산수가 배치(背馳, 서로 반대로 되어 어그러지거나 어긋남)하여 쏠리고 인심이 지극히 험악하다.」성종과 맹현의 대화 (성종은 조선왕조 9대 왕)맹현-전라도는 인심이 박약하여 도적이 군기(떼도둑)하여 하극상 풍조가 있습니다. 풍속의 교화를 위해서는 100년 아니면 고칠 수 없으니, 위정자는 마땅히 이에 유념할 것입니다.성종-전라도는 옛 백제의 땅이라 백성들은 견훤의 반항 습성이 닮아있어 지금까지 변화시키지 못하였으므로 그 풍속이 그와 같다.전라도를 폄훼한 대표적 왕들의 발언은 그냥 술 취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나의 생각으로 왕 노릇을 하면 전라도에 대한 자기의 양심 가득 채우고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입니다.기축옥사(己丑獄事)기축옥사는 조선왕조 선조 22년 1589년 10월에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에서 시작되어 천여 명 이상의 동인(東人)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정여립(鄭汝立 1546-1589)사건 또는 난이라고 합니다.정여립은 예조좌랑(정6품) 홍문관 수찬(정5품)을 지냈습니다. 서인(西人)들에 촉망받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서인은 선조 8년 1575년 동서분당으로 생긴 당파의 하나입니다. 선조 즉위에 정권을 장악한 사림파(士林派, 사림에서 공부했던 문인·학자)가 훈구파(勳舊派, 혁명과 사대부를 계승한 세력으로 세조 왕위 찬탈에 협조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귀족적 관료학자)에 대한 처분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되었습니다. 강경파 김효원의 집이 동쪽이고 온건파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인·서인으로 불렀다.정여립은 선조 17년 1584년 이이가 사망한 후, 이이 등 서인을 비판하고 동인으로 갈아탔습니다. 선조는 정여립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군사일체의 시대에 정여립은 왕이 자기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선조 19년 1586년 사직을 하고 고향 전라도 전주로 낙향했습니다.낙향한 정여립은 전라북도 진안군 죽도에 서실(書室)을 차려놓고는 「대동계(大同系)」를 조직하여 신분에 관계 없이 중인, 노비, 승려 등도 받아들여 강론은 물론이요 말타기, 활쏘기, 칼 쓰기 등 무술연마를 하였습니다. 매월 15일에는 무술대회를 열어 술과 음식으로 잔치를 벌였습니다.대동계는 전주 부윤 남연경의 요청으로 고흥 손죽도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대동계 해체 후에는 왜구들의 약탈이 더욱 심해져 해안지역 백성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대동계는 빠르게 전라도 뿐만 아니라 황해도까지 조직이 확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황해도 관찰사는 정여립이 조직한 대동계가 황해도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관찰사 한준 등이 연명으로 정여립이 대동계 사병을 이끌고 결빙기를 이용해 황해도와 전라도에서 동시에 봉기하여 입경하고 신림과 병조판서를 살해하고 선조왕을 몰아내려 합니다. 고변(告變, 반역행위를 고발함)하였습니다.선조는 즉각 체포를 지시했습니다. 정여립 아들 정옥남과 함께 죽도로 달아나 관군에 포위되어 정여립은 자살을 했습니다. 아들 정옥남은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됐습니다. 정여립의 자살로 정여립의 모반이 사실로 인정되고 말았습니다. 정여립의 시신은 한양으로 이송되어 목을 잘린 후 철문교 밑에 매달았고, 몸뚱이는 사지를 찢어 능지처참시켰습니다.선조는 정여립 모반을 조사할 재판관에 정언신을 임명했으나, 정언신이 정여립의 9촌뻘 되는 먼 친척으로 밝혀져 송광 정철로 교체하여 임명을 했습니다.서인 정철은 정여립이 동인들과 교분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동인들을 숙청하여 서인의 정권을 잡기 위해서 이 사건을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2년 넘게 동인들을 심문하여 유배와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전라도 사람은 관련자와 가족 그리고 친족인 사람까지 1천 명 이상이 유배와 죽음을 당하여 전라도 동인의 사람이 씨가 말렸습니다. 경상도 출신은 몇백 명에 불과했습니다.또한 불교계까지 국문을 했습니다. 서산대사 휴정을 정여립과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묘향산에서 끌려가 선조에게 친히 국문을 받았으며, 사명당 유정은 오대산에서 강릉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 고초를 겪었습니다.훗날 정철을 향해 가혹한 옥사를 진행하였다 하여 「동인 백정」이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기축옥사는 선조 22년 1589년 10월에 시작되어 1591년 10월에 막을 내렸습니다.후세 사람들은 정여립은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라는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과 누구라도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하사비군(何事非君論) 등 왕권 체제에서 용납할 수 없는 혁신적 사상을 품은 인물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참고문헌 네이버)필자가 기축옥사를 꺼내는 것은 현재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에 정개청을 받들고 있는 「자산서원」이 있기 때문이요, 그가 정여립 사건(기축옥사)에 희생되었기에 세상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정개청(1592-1590)은 나주 출신으로 조선 중기 때 문신이요. 학자이십니다. 단순하게 유학만 공부한 게 아니라 역사, 천문지리, 의학, 복서, 산수병법, 가무 등을 익혀서 학문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전라감사(선조 7년 1574) 박민헌과 선조 16년(1583) 전라도 출신 영의정 박순이 천거했으나 사양하고 고향 나주에서 학문정진과 후학양성에만 집중했습니다. 41살 때 지금의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에 윤암정사를 짓고 당좌를 떠나 학문에 열중했습니다. 그의 나이 50세가 되어 이산해로부터 천거 받아 선조 20년(1587)에 곡성현감에 재직한 것이 관직 생활 전부였습니다.1589년 (선조 22년) 정여립 사건이 터지자 정여립에 관계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였습니다. 정개청도 한양에 끌려가 국문을 받았습니다. 정개청은 정여립과 알고 지냈고, 정여립이 집터를 봐준 일이 있었는데, 이를 트집잡아 정여립과 반역을 획책했다는 혐의로 조사 끝에 왕권을 위협할 만한 권신이나 국정을 어지럽히고 나라를 혼란케 하는 간신으로 보이지 않아 모반에 연루되지 않을 뻔했으나 다른 데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정개청이 압송되면서 집에 있는 모든 책과 문서 등을 압수했는데 논설문 「동한절의진송청담설」을 배절(절의를 배격한다라는 의미. 절의를 배격하는 것은 왕에 대한 불충이므로 곧 반역이라는 논리다.)의 논설이라고 지목을 해버렸습니다. 풀이하자면 「동한 즉, 후한 때 절의를 숭상하고 진송 즉, 서진과 유송 때 청담사상이 유행했음을 비판했습니다. 절의는 지나치게 독선적이며 청담은 예가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정여립이 모반을 일으킨다는 상소가 있은 후, 선조가 정철에게 정여립 사건의 조사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정개청을 정여립 사건에 연루시켜 밟아버리겠다는 작심을 했습니다. 정철은 정개청의 논설 「동한절의진송청담설」을 먹잇감으로 삼았습니다. 정개청이 제대로 관직을 지내지 않았고, 관직이라고는 곡성현감 밖에 없으나 절의를 배격했다고 주장하며 왕권을 위협하는 권간(권력과 세력을 가진 간사한 신하)으로 정철이 몰아갔습니다.정철이 정개청을 미워한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개청이 곡성현감으로 있을 때 창평에 내려와 있었던 정철을 찾아보지도 않고 회피한 일이요, 또 하나는 술보로 유명한 정철에게 그렇게 술을 좋아하면 나이 어린 후학들이 뭘 보고 배우겠느냐고 충고를 한 이유입니다. 결국 정개청은 모반 혐의로 권간이란 누명을 쓰고 함경도 경원의 아산보(북한 아오지탄광이 있는 곳)에 유배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얼마 안 가 (선조 23년 1590년 6월 62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사실 정개청을 앞장서서 죽인 사람은 정철 본인의 원한 때문이었다는 뒷이야기가 무성했습니다. 정개청의 제자들이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정개청의 제자들이 4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자산서원(紫山書院)은 전라도 사림을 이끌고 우리나라 성리학을 정립시킨 대학자 곤재 정개청 선생이 기축옥사에 연루돼 유배지에서 병사하여 문인들이 스승의 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광해군 때 1616년 건립한 서원입니다. 자산서원의 이름은 숙종 때 1679년 사액(賜額,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림)하였다고 합니다. 1868년 서원 훼철령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나 철폐와 복원을 반복했습니다.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146호로 지정된 정개청 문집 「곤재 우득록」 목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기축옥사 후 전라도는 반역향(反逆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기축옥사가 조선조 붕당(朋黨)역사 속에서 한 사건으로 고문으로 가혹하게 희생시킨 사건이라는 증거로, 옥사에서 죽은 사람 10명에 불과하고, 귀향한 사람 3명에 불과하지만 고문에 의하여 죽은 사람이 거의 다라는 기록입니다. 이것뿐 아닙니다.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장원급제한 후에 동인의 거두가 된 이발(1544-1589, 조선 중기 문신)은 정여립과 친하게 지낸 것이 화가 되어 이발 본인, 동생 이길과 82세 노모, 8세 아들까지 희생되었습니다. 노모, 어린아이까지 이런 비극, 참상이 기축옥사의 잔인성을 말해줍니다.기축옥사가 조작이냐 진실이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선조가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꾸민 것으로 정철을 하수인으로 내세워 동인과 서인을 대립시켜 사대부가 힘이 없도록 무력화 시키고자 선조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지금에 와서 정여립을 「정여립을 왕위의 세습과 충군사상을 부인한 공화주의자로 보면서 기축옥사는 현실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는 주자학적 통치 이념에 대한 반발과 백성을 도외시한 위정자들의 권력투쟁, 그리고 지배계급에 의하여 수탈당한 백성의 불만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의하여 발발한 사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참고>대원군의 역사적 발언도 있었습니다.우리나라 가장 큰 폐단이1. 호서(湖西)의 사대부(士大夫)이요.2. 관서(關西)의 기생(妓生)이요.3. 호남(湖南)의 이서(吏胥)이라 했습니다.전라도 관리들의 착취와 학정이 인정사정 없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찬동

  목차

■ 작가의 말

1부_ 전라도 폄훼

훈요 10조 —— 14
풍전 세류 —— 20
반역향 —— 24
전라도 개똥쇠 (새) —— 33
전라도 하와이 —— 41

2부_ 5·18특혜

5·18 민주화운동 —— 48
5·17이 삼킨 서울의 봄 —— 71
5·18 민주화운동 명칭 —— 80
소급입법 5·18 특별법 —— 84
5·18 민주화운동 헌법전문에 수록하려면 —— 93
5·18에 쪼라든 보수들 —— 108

3부_ 황색깃발

박정희와 김대중 첫 인연 —— 120
처음 본 김대중 —— 125
첫 대선에 대한 김대중 —— 130
유신헌법 —— 137
황색바람 —— 141

4부_ 운 좋은 김대중

영부인 비명과 명동 사건 —— 150
대선 두 번 낙선한 김대중 —— 156
네 번째 죽을 뻔한 김대중 —— 165
서경원 공작금에 시달린 김대중 —— 178
연고도 주민등록도 없는 경상도 사람 함평 영광에 공천 —— 184
김영삼 덕에 대통령과 노벨 평화상 수상 —— 191

5부_ 탄핵 인용은 탄핵세상 만들어

보수를 잡아먹은 보수가 좌파 정권을 세워 —— 200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 208
탄핵 인용하면 뒤에 탄핵 세상이 돼 —— 215
전광훈 목사 애국운동 —— 220

6부_ 전라도 한 민주공화국

대통령 못 해 먹겠다 —— 228
안철수 반란으로 샛별 된 이개호 의원 —— 232
전라도 한 민주공화국 —— 236
김대중, 5·18정신 계승 —— 241

7부_ 역사논쟁

3·1 운동 100주년 남북공동 행사 —— 248
건국 전쟁 —— 253
제주 4·3 남로당 폭동 —— 260
여수 제14연대 10·19 남로당 반란사건 ——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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