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최근 들어 기쁨과 행복, 정신적이고 육체적이며 영적인 풍요로운(flourishing) 삶에 대한 신학 운동이 서구 세계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프(Justin Crisp)의 말대로 기쁨이라는 주제를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위치시킨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는 신학이라면 말이다. 인간의 고난이나 고통, 그리고 악의 문제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지 않은가. 주변과 현실을 둘러 보건데 행복의 신학이나 기쁨의 신학이 서있을 자리가 있기나 한 것인가. 그럼에도 행복과 기쁨, 플러리싱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매우 필요한 신학운동이다. 기쁨과 행복은 기독교 신앙과 삶과 실천의 핵심이며, 성경의 중심사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쁨과 희망을 다시 말하기 어려운 시대에, 그리고 기쁨과 행복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부족한 시대에 최근 일고 있는 기쁨과 행복의 신학, 즉 긍정신학은 기독교 신학 토론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것이다. 한국의 신학계에서도 이에 관한 토론의 장이 조속히 열리길 기대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날의 세계는 고통과 아픔과 죽음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다. 개인의 삶도 그리 녹록치는 않다. 플러리싱한 삶을 살기는커녕 행복을 소망하고 삶을 긍정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절망과 좌절에 눌려 의미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삶에 대한 의미와 감사를 포기하고 냉소적, 비관적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희망을 다시 노래해야 하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고난 속에서도 가져야 할 삶의 용기를 자극해야 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누구든 말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오늘날 실존적 현실을 고찰케 하는 삶론이 바로 한편은 실존적-긍정심리학이 말하는 비극적 낙관주의, 혹은 고난의 긍정심리학이며, 또 한편은 몰트만의 긍정의 삶의 신학이다. 이글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몰트만의 고난의 경험과 신학에 나타난 긍정의 삶론을 프랭클 (V. Frankl)의 <삶의 의미>론에 근거한 폴 웡(Paul T, P. Wong), 해럴드 쾨닉(Harold Koenig), 알프리드 랭클(Alfried Langle)의 실존적-긍정심리학적(existential-positive psychological) 관점, 그중에서도 특히 폴 웡의 <비극적 낙관주의>의 관점으로 읽어보려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이글을 진행하면서 폴 웡에 나타난 비극적 낙관주의가 무엇인지 소개하고, 그 다음 긍정심리학의 시각으로 몰트만의 초기 고난의 경험과 삶론을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상 프랭클이나 웡은 인간의 비극적 상황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웡의 시각으로 몰트만을 이해하려 할 때 몰트만의 초기 전쟁 경험과 그로 인한 삶의 절망과 희망은 몰트만의 많은 주제들 중에서 우리의 해석에 매우 적절한 주제일 것이다.
무신론에 대한 변증은 오늘날 매우 중요한 교회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무신론의 행태들과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과연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요즘 무신론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교회를 향한 도전이 점점 거세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신론자가 없었던 때가 없었고, 이단이 없었던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초기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하고 변호하려는 변증가들과 신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어떻게 보면 신에 대한 물음이 있고, 종교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무신론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시편기자의 탄식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 많은 무신론자들이 등장했다. 포이어바흐, 사르트르, 마르크스, 프로이드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최근에 과거와는 색다른 무신론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신론의 주장들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려 한다. 기존의 모든 종교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제거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주장만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고 실천하기 위해 어이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안타까운 수준이다. 거의 광신도, 맹신도에 가깝다. 그들의 저술들을 보면 분노와 왜곡과 거짓과 오도로 가득 차 있다. 의도적으로 무신론은 좋은 점만, 기독교는 무조건 나쁜 것만 열거하고, 통계를 왜곡 해석한다. 루이스의 말대로 여섯 살짜리의 기독교를 만들어 놓고 증오심에 불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공격한다. 그런데 정말 슬픈 것은 그들은 기독교나 신학이나 성경에 놀랄 정도로 무지하다는 점이다. 권위 있는 신학서적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비난해대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도훈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Th. B), 신학대학원(M.Div), 대학원(Th.M)에서 신학을 전공하였고, “사망일을 부활의 날로 기록해 달라”며 얼마 전(2024.6.3) 작고하신, 세계적인 조직신학자인 몰트만(J. Moltmann) 교수의 지도하에 독일 튀빙엔(Eberhard Karls Universitat Tubingen) 대학교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1997.7. Dr. theol.)를 받았으며, 1999년 3월부터 2024년 1월 현재까지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포스트모던과 디지털 시대의 성경적 변증적 성육신적 교회론>, <성경적 개혁신학적 종말론>, <길 위의 하나님:일상, 생명, 변증으로 읽는 신학> <생태신학과 생태영성>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이머징 교회>, <영화관에서 만나는 기독교 영성>, <몰트만의 신학>(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