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수록된 40여 편의 산문에서는 저자의 서정적 감성을 잘 보여준다. 진솔한 내면의 고백은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부대끼다가, 세월이 흘러 화해로 순환한 삶의 기록이다. 국어교사로 일하다 퇴직한 후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저자의 일상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출판사 리뷰
“살며시 만지면
바스락 소리 내며 부서지는 것들,
아직도 물기가 촉촉이 남아 있는
내 감성의 분신이다”
수록된 40여 편의 산문에서는 저자의 서정적 감성을 잘 보여준다. 진솔한 내면의 고백은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부대끼다가, 세월이 흘러 화해로 순환한 삶의 기록이다. 국어교사로 일하다 퇴직한 후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저자의 일상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신형호 수필가는 2006년 《문학바탕》에 시로 신인상을, 2009년 《대구문학》에서 수필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수필집 『아름다운 외도』에 실린 40여 편의 수필에는 저자 특유의 예리한 감수성이 두드러진다. 살며시 만지면 바스락 소리 내며 부서지지만 ‘아직도 물기가 촉촉이 남아 있는’ 감성의 분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아름답지만 슬픔도 느낄 수 있다.
“흘러가는 물처럼, 떠도는 구름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말없이 하늘을 담고 우주를 담고 있는 저 적벽의 물이 섭리대로 고였다 흘러가듯 우리네 삶도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자연의 가르침이 핏줄 속에서 콸콸 솟아 나온다. 갑자기 뭉클해진 심장 소리에 눈가에서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구르고 있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말아라’는 섭리가 가슴 속을 스쳐 간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중에서)
1부에서는 「어머니라는 나무」, 「시방 새벽 2시」 등의 수필로 세대를 넘나들며 어머니와 손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때론 감성적이고, 때론 유쾌한 심상을 보여준다. 암 진단에도 배움, 베풂을 통해 퇴직 후의 삶을 확장시켜 나가는 모습은 「배움, 그리고 베풂의 향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부 「청산은 나를 보고」, 「‘의미 없다’는 ‘의미 있다’이다」 등에서는 지금까지의 여정과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3부, 4부에서는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만남과 깨달음의 순간을 포착하였고, 5부에서는 사회를 보는 저자의 시선을 드러내었다. 6부 「서예와 나」에서는 과거 서실을 운영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몰입했던 서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는 중,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하였으며, 현재 글쓰기 수업, 토론 지도 및 교도소 한글 강습 수업 등 글쓰기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수필집 『별을 업은 男子』와 『매화, 정에 취하다』, 서간시집 『노피곰 돋은 달하』 외 3권이 있다.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할머니를 보고 둘째 이준이가 치마를 잡고 착 달라붙는다.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은 모양이다. “그럼, 이준이 할머니 집에 갈래?” 할머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한다. 한쪽에 있는 포대기를 가리키며 빨리 업어달라고 채근한다. “정말 오늘 할머니 집에 가서 잘까?” 이번에도 “응.” 하며 바싹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엄마가 퇴근하면 곧 할머니가 집에 간다는 것은 아는 눈치다. 두 돌도 채 안 되고, 아직 말도 어눌하지만, 상황 파악은 번개다. 엄마한테서 떨어져도 괜찮다는 표정이다.
할머니 집과는 걸어서 20분 남짓 거리다. 아들의 승용차로 집에 들어선 이준이는 빙긋 웃으며 제집인 듯 얼굴에 꽃이 핀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이준이 독차지다. 제 집처럼 서로 차지하려고 형과 다툼이 없기에 더 좋은 모양이다. 장난감 차를 줄 세워놓고 혼자서 재미있게 중얼거린다. 정확한 발음은 안 되지만 소리를 내어 가면서 하는 짓이 아기 천사다. 손자 돌보는 재미가 이런 것일까? 석양의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일상에서 힘들지만 자잘하게 누리며 얻는 기쁨. 소확행이다. 흐뭇한 마음에 조용히 지켜보며 같이 놀아준다.
하오 8시 30분. 이준이 잠잘 시간이다. 자기 집에서도 늘 이 시간에 잠을 잔다. 할아버지가 함께 자면 방해되지 싶어 나는 뒷방으로 침구를 옮겼다. 습관대로 컴퓨터 유튜브에 백색소음 ‘물 흐르는 소리’를 틀어놓고 잠을 재운다. 처음에는 잠시 잘 자는 듯하더니 잠자리가 바뀐 것을 아는지 계속 뒤척이며 깊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네 시간 남짓 흘렀을까?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아파트를 흔들어 댄다. 선잠을 잤는지 다독여도 계속 칭얼거린다. 조심조심 재우려고 하나 계속 울어댄다. 잠시 자는 듯하더니 또 깨어 운다. 땀이 바짝바짝 난다. 아뿔싸. “엄마, 엄마.” 이젠 엄마까지 찾는다.
막무가내로 울어대니 대책이 없다. 안고 얼러도 소용없다. “지금 엄마한테 갈까?” “응.” 계속 달래다가 묻는 할머니의 물음에 대답이 선명하다. 손자는 자다가 깨 보니 곁에 엄마가 없어서 당황한 모양이다. “정말, 지금 엄마한테 갈까?” “응.”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할 수 없었다. 머리맡에 치워둔 포대기에 다시 둘러맸다. 근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업힌 손자의 얼굴을 빤히 보니 생긋이 웃고 있지 않은가? ‘아이고, 뭐 이런 여우 같은 놈이 있나?’ ‘정말 자기 집에 가고 싶은가?’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아들 집 주차장에서 한동안 기다려도 아내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잠시 들어가서 손자만 내려놓고 오면 될 터인데 왜 이렇게 안 올까? “아이고, 고놈. 참.” 한참 만에 내려온 아내의 첫말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는 내 말에 대답이 황당하다. 글쎄 손자가 또 할머니에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 엄마를 보고 생긋이 웃고 좋아하더니, 가려고 하니 또 할머니 치마를 잡았다. “다시 할머니 집에 갈까?” “응.” 뭐 이런 놈이 있나? 황급히 혼자 내려왔단다.
- ‘시방 새벽 2시’ 중에서
마른 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바닥을 구른다. 잔디밭에 떨어진 은행잎이 노랗게 익어간다. 산책로 따라 걸으니 마른 햇살이 발길 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그때였다. 이쪽 잔디밭 중앙에 할머니 세 분이 앉아서 무엇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풍이라도 나왔을까? 호기심에 울타리를 넘어 가까이 갔다. 윷놀이하고 있었다. 간식은 옆으로 밀쳐놓고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윷을 던지며 놀이에 빠져 있었다. 이 대낮 땡볕에 윷놀이라니?
“재미있습니까?”
바보 같은 질문에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윷을 던진다.
“무슨 큰 재미가 있겠소. 시간 보내는 것이지.”
그들이 던지는 것은 윷이 아니라 세월이었다.
공원 전체가 한눈에 안기는 벤치에 앉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저물어가는 볕이지만 온몸이 따뜻하다. 몸은 노곤하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하다. 몇 해 전부터 불쑥불쑥 떠올라 괴롭히던 상념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하다. 강박증과 조급증이다. 수많은 선배의 삶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희미하게 답은 보이지 않고 마음만 허허하다. 자연스럽게 살아온 대로 사는 것이 답이지만 어렵다. 내 삶의 시간은 어디쯤 와 있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어디쯤 가고 있을까’ 중에서
얼마 전 우연히 수년 전에 방영된 〈미생〉이란 작품을 만났다. (중략) 어제저녁이었다. 거실에서 같이 시청하던 둘째 아들도 나처럼 드라마에 푹 젖었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대기업의 문턱까지 갔다가, 마지막 면접에서 번번이 좌절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 나도 저런 곳에서 한번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잘 적응할지 못 할지는 몰라도 내 인생에서 큰 경험을 하고 싶었는데요.”
말끝을 잇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에 머릿속이 감전된 듯 찌릿했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인연이 없는 것을 어떡하겠니. 다 잊어 버려라.”
따뜻한 답을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더 울컥했다.
지난 수년의 세월이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둘째 아들의 꿈은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사범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했지만, 적성은 인문 경영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나름대로 차분히 준비하여 1차 시험인 직무적성검사는 늘 통과하였다. 하지만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최종 면접이 문제였다. ‘스터디 그룹’도 만들어 대비하고 준비를 했건만 결과는 제자리였다. 기대하던 문자 메시지는 번번이 그에게 아쉬움과 좌절만 안겨 주었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하는 것이 보였다. 스트레스가 심해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결승점 바로 앞에서 밀려난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여위고 쇠약해졌다.
“무슨 기준으로 채용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요, 아버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잣말처럼 내뱉는 소리가 초겨울 들녘의 시든 풀잎 되어 내 가슴을 훑어갔다.
미생의 넋두리였다. 그날도 조용히 방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고 같이 누웠다. 별말은 없었지만, 가슴이 서늘해졌다. 몇 마디 말 이외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미웠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을까?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대졸 실업자 100만 명 시대에 사는 이 시대의 미생이 아닌가. 정보화 사회를 지나 신자유주의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의 초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대처하느냐는 허공 속에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밤하늘 별만큼이나 쏟아지는 자기개발서나 ‘행복해지는 법’이란 주제 강의도 현실에선 모래 위의 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완생完生’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최소한 ‘미생’에서 벗어나야 인간다운 삶의 근처에 갈 수 있으리라. 행복이란, 가진 것을 원하는 것으로 나누었을 때 그 수치가 클수록 크다고 한다. 통계학적으로 실험한 자료를 보면 수입이 일정액 이상을 넘으면 행복지수는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 오래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로 손꼽히는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 그룹의 회장인 마윈 씨가 방송매체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는 그도 절대 행복하지는 않다고 얘기한다. 물질의 완생은 이루었으나 정신은 아직 미생이란 뜻일까?
- ‘완생을 꿈꾸며’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신형호
1953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봉화법전중, 의성금성고, 대구심인중, 대구계성중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했다. 2006년 《문학바탕》에 시로 신인상을, 2009년 《대구문학》에서 수필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제2회 전국민잡지읽기 수기 공모전(은상), 정지용문학관탐방 문예공모(최우수상) 등의 공모전에서 다수를 수상했으며, 〈대구일보〉 전국수필대전 운영위원을 비롯해 다수의 공모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지은 책으로는 수필집 『별을 업은 男子』와 『매화, 정에 취하다』, 서간시집 『노피곰 돋은 달하』 외 3권이 있으며, 수필문예대학 교수, 수필문예회, 대륜문학회, 대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1부 어머니라는 나무
벽고목霹古木
겨울에 스미다
달다!
어머니라는 나무
아름다운 외도外道
해 질 녘 연밭에서
배움, 그리고 베풂의 향기
시방 새벽 2시
담과 벽
2부 청산은 나를 보고
뛰지 말고 걸어라
청산靑山은 나를 보고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내 삶의 무늬는?
나는 몽상가인가
‘완생完生’을 꿈꾸며
‘의미 없다’는 ‘의미 있다’이다
걱정을 걱정하다
가을편지
3부 꽃이 지고 있다
달밤-6
시간의 고향
달밤-7
새우 몸짓을 키워라
문학관에서 시간을 읽다
꽃이 지고 있다
벽 속의 여자 3, 4
새벽안개
4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길 따라 물 따라
선암사 봄을 읽다
낭만, 낭도狼島의 봄
루앙프라방의 깊고 푸른 밤
힐링의 고향 육신사와 삼가헌
춘양구곡을 품다
문수전文殊殿 봄을 두드리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물, 바람, 원시림의 보고寶庫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5부 창의성과 시험문제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면서
작은 지혜로 삶을 풍요롭게
이웃사촌을 살리자
창의성과 시험문제
‘난사람’ ‘든 사람’ ‘된 사람’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고전을 읽자
스승의 참뜻
6부 서예와 나
서예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