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 작품 소개
무거운 악수
웃음은 끝이 둥글어 어디든 날아가 구멍이 되었다
수천 년 쌓인 소리의 층을 아래에서 위로 쓰다듬는다
너의 시선이 적신 벼랑마다 물의 방이 생겼다
물도 오래되면 채석강처럼 길게 누워 잠들었다
누군가의 서재처럼 암벽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다닥다닥 붙어있던 비린 소리의 생애, 금 간 파찰음들이
이따금 돌가루처럼 뚝뚝 떨어졌다
해풍의 발가락들은 얼마나 깊은 수심을 건너왔기에
돌의 벼랑을 닮은 발톱들 하얗게 목이 쉬었을까
아무도 잠그지 못한 파도소리, 절벽으로 올라가 단단한 높이가 되었고
문어 낙지 망둥어들이 드나들었던 입구들까지 해식동굴은
가슴에 안고 있었다 모나고 각진 돌의 등뼈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손을 대면 속살처럼 만져지는, 수십 층 착하고 순한 잎들
절벽이 안고 있는 주름 모두 해와 별의 지문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달빛은 돌의 상판을 매일 두드렸던 부드러운 망치일까
네가 뜨거워진 손을 내밀자 너보다 더 많은 네가 앞서 나가
돌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순간 칠천만 년 전, 백악기 중생대를 발바닥에 묻힌
거인의 발소리가 들렸다 신神들이 물이랑에 실려 보낸 두꺼운 돌 사이에
가름끈 대신 갈매기 깃털 하나 끼워놓는다면
손수건처럼 날려 보낸 나의 새들도 다시 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물멍하다 아주 바다가 되어버리기 전 어두워진 밀물에 너의 저녁을 씻고
붉게 빠져나오는 노을이 보였다
봄,비 올라 비올라
날개의 밥은 봄이죠 구름이 나비를 닮아
비올라 비이올라 비이가올라 비이가올라나
허공에서 이리저리 글썽이다 길쭉하게 뛰어내리는 비
그날 밤, 거미가 밤마다 현絃 좀 만지던 집에 문득 입성한
하이힐이 궁금한가요?
그렇다면 24시간 비 오는, 삼거리 목욕탕에 가보세요
그녀 매미처럼 온몸으로 울어본 듯, 호리병 곡선이야 끝내주지만
금값도 나름이죠 절대음감까지 바닥나 처분할 게 없는 여자
한때 드레스에 힘 좀 줬던 비올라연주도 그날 이후 끼니가 되지 못했죠
때밀이 손님 뜸한 날,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비올라 현絃과 꽃들의 예보를 수시로 곱하고 빼보는 여자
연주와 사고 후유증에 조바심을 걸칠 때
투명해서 슬픈 날개에 빗소리처럼 들려오던 마지막 박수 소리
때타월 낀 두 손으로 도돌이표가 태반인 세월의 등 밀다 보면
어느새 그녀 안에 출렁이는 어둡고 불규칙한, 마지막 음계들
(이젠 견딜 만해요 매미도 굼벵이로 7년 참아야 울 수 있잖아요)
아무리 덜어내도 복리로 늘어가는 통증의 늪에서
그날의 악몽을 대야로 퍼내듯 거칠게 물청소하는 그녀
눈을 타고 흐르는 젖은 머리칼에 문득 얼굴을 들면
목욕탕 타일벽에 일렬로 목을 맨 샤워기들
삐걱, 삼거리 밖 새벽을 삼킨 뿌연 안개
비올라꽃 만삭인 어느 집 화단에 잠시 멈춰선 그림자
화분과 화분 사이로 일어난 바람의 활 비브라토로
으- 응- 앵… 으- 응- 앵… 비올라 켜듯 들려오는 환청
목젖 어디쯤 딱딱해진 그녀 눈물, 별이 되어 쏟아질 시간이에요
밤비와 치통
말하자면 이것은 뒷모습들만 사는 집에 관한 줄거리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었다 딸꾹질하듯,
고시원은 취준생을 끝없이 뱉어냈다
젖은 소리에 이토록 많은 뼈가 들어있었다니,
H의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서 밤새 종이구기는 소리가 쏟아졌다
식은 컵라면처럼 제 몸을 부풀리던 달이 고시원 지붕을 빠져나갔다
분식점 여자가 TV에 담갔던 시선을 꺼내 이쪽으로 보았다
오래전 물길을 분실한, 낡은 물푸레나무 식탁에 라면을 올렸다
H는 고향 앞바다를 데려와 테이블 앞자리에 앉혔다
버섯 같은 섬 몇 라면 그릇에 띄웠다 고향 노을을 소환한 매운 국물 속에서
볼펜이 찢어버린 어제와 해송 껍질 같은 아버지의 손등이 그와 마주쳤다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새벽까지 프린터기가 취업을 출력했다
속수무책은 책상과 책임을 혼동했다
그것들은 내일 날씨처럼 믿으면 안 되었다 그곳에서 죽음과 뒷모습은 동급이었다
죽음이 사는 고시원 옥상은 어떤 국어기출문제보다 비유체계가 탄탄했다 하루는 저무는 것이 아니고 납작해지는 거였다 어떤 날에는 방과 방 사이 허술한 벽 속에서 바퀴벌레들이 밤새 치통처럼 자랐다
통증도 오래 묵으면 권력이 되었다 손바닥만 한 창이 딸린 방
좀처럼 오지 않는 내일에 감금된 채
밤새 거리에 왁스칠하는 빗줄기를 멍하니 내다보았다
노량진 어느 고시원 커튼이 침묵의 아가미를 닫고 돌아누웠다
얼마 전까지 노숙자였던 옆방의 중년이 초저녁부터 잠꼬대를 했다
낡은 벽이 충혈된 눈으로 그것들을 밤새 받아 적었다
전자동 죽음
몇 해 전 폐업한 주유소 입구를 잡초가 가로막고 있었어
휘발성을 배운 풀씨들은 사방 어디든 번져갔지
깨진 유리창 안으로 햇살을 묻히고 침투한 새들은
갈라지고 부서진 시멘트 위를 총총총 뛰었어
여문 풀씨를
쓰레기 가득한 화단에 퉤, 직파하고는 이내 또 뒷산으로 날아갔어
씨앗을 놓고 작은 부리가 대신 물고 간 건,
풍선처럼 부푼 불길한 고요였어
숲 쪽으로 투명도화선처럼 설치된 새 소리를
머리 희끗한 바람이 불안스레 따라갔지
바로 그때 일제히 퐁↗ 퐁퐁↗ 퐁퐁퐁↗
수류탄처럼 터지던 먼지버섯들, 근데 누가 건드린 걸까
놀란 새들이 둥지 속으로 신속히 대피했지
주유소 지하, 폐유가 저장된 탱크로 내려가는 인부들 뒤로
작업반장의 가래 끓는 음성이 들렸어
(이봐 허 씨, 인화성이 강허니께 조심 허드라고- 잉) 펑- !
용접봉보다 먼저 어디선가 날아든 불똥
(고와 잉 사이)에서 이승과 저승이 갈리고 말았지
화염에 휩싸인 폐유 탱크에서, 로켓포처럼 불기둥이 솟았지
네 명의 인부와 주유소 지붕까지 단번에 날려버린 화염이
까마득히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집까지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어
그날 우리 기억에서
몇 개의 비명이 매장되고 곡소리가 티슈처럼 얇아졌지만
죽은 이들은 무덤 속에서 한 번 더
벌레들에 의해, 전신폭발을 겪고 있을 테지
옆집과 옆집의 옆집과 옆집
조난은 어두운 물속에서 더 빨리 자랐다
그날 바다는 빙판처럼 미끄러웠다
한순간의 배와 수백 개의 비명을 수거해 갔다
파도가 배와 사람을 단번에 삼켰을 때
물이 육식성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세상은 경악했다
겁먹은 눈동자들은 몸보다 한발 빨랐다 심하게 기운 갑판
눈동자가 비명을 끌고 유리구슬보다 빨리 굴러다녔다
급회전 지점에서는 배의 지느러미마저 익사했다
그날 침몰사고의 원인을 매스컴이 뒤적였다
희생자는 너와 나, 옆집과 옆집의 옆집과 또 다른 옆집이었다
뉴스는 사망자 생존자 실종자를 레고블럭처럼 연일 갈아끼웠다
특종은 세상을 수심 깊은 무기력감에 빠트려 조금씩 익사시켰다
우리들의 재난 방송도 또 하나의 재난으로 침몰 중이었다
한 주 날씨도 비와 바람, 두 개만 교체되고 있었다 한 생존자가
배가 급격히 기울자 사람이 순식간에 새처럼 바다로 날아갔다 했다
또 다른 생존자가, 바다 한가운데서 배의 엔진이 푸드덕, 멈췄다고도 했다
그 증언을 들은 뉴스특보 아나운서와 기자, 많은 앵무새들이
데스크에서 벌떡 일어나 새 떼보다 더 푸드덕대며 소란을 떨었다
임시막사가 넙치처럼 뻐끔거리는 사고현장, 유족이 몰렸다
눈물은 휴대용이 아니었다 빗물은 멈추지 않았다 티슈나 손수건으로 닦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우비를 입고 검푸른 물을 바라보았다
이젠 세상에 없는 배가 다시 거대한 전광판에 나타났다
누군가 신처럼 단상에 올라 현장 브리핑을 이어갔다
얼굴에 추자를 쓴 채 추측만 추가하던, 책임자들
그 뒤에도 여러 번
바다는 바람으로 바다를 바꿨고 바쁜 바지들이 바보처럼 바삐 배를 몰았다
너와 나의 슬픔이 아니어서, 우리의 기억은 매번 사이좋게 단명했다
구명튜브 없이도 아주 잠깐씩은 사방이 조용했다
무거운 악수
웃음은 끝이 둥글어 어디든 날아가 구멍이 되었다
수천 년 쌓인 소리의 층을 아래에서 위로 쓰다듬는다
너의 시선이 적신 벼랑마다 물의 방이 생겼다
물도 오래되면 채석강처럼 길게 누워 잠들었다
누군가의 서재처럼 암벽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다닥다닥 붙어있던 비린 소리의 생애, 금 간 파찰음들이
이따금 돌가루처럼 뚝뚝 떨어졌다
해풍의 발가락들은 얼마나 깊은 수심을 건너왔기에
돌의 벼랑을 닮은 발톱들 하얗게 목이 쉬었을까
아무도 잠그지 못한 파도소리, 절벽으로 올라가 단단한 높이가 되었고
문어 낙지 망둥어들이 드나들었던 입구들까지 해식동굴은
가슴에 안고 있었다 모나고 각진 돌의 등뼈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손을 대면 속살처럼 만져지는, 수십 층 착하고 순한 잎들
절벽이 안고 있는 주름 모두 해와 별의 지문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달빛은 돌의 상판을 매일 두드렸던 부드러운 망치일까
네가 뜨거워진 손을 내밀자 너보다 더 많은 네가 앞서 나가
돌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순간 칠천만 년 전, 백악기 중생대를 발바닥에 묻힌
거인의 발소리가 들렸다 신神들이 물이랑에 실려 보낸 두꺼운 돌 사이에
가름끈 대신 갈매기 깃털 하나 끼워놓는다면
손수건처럼 날려 보낸 나의 새들도 다시 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물멍하다 아주 바다가 되어버리기 전 어두워진 밀물에 너의 저녁을 씻고
붉게 빠져나오는 노을이 보였다
봄,비 올라 비올라
날개의 밥은 봄이죠 구름이 나비를 닮아
비올라 비이올라 비이가올라 비이가올라나
허공에서 이리저리 글썽이다 길쭉하게 뛰어내리는 비
그날 밤, 거미가 밤마다 현絃 좀 만지던 집에 문득 입성한
하이힐이 궁금한가요?
그렇다면 24시간 비 오는, 삼거리 목욕탕에 가보세요
그녀 매미처럼 온몸으로 울어본 듯, 호리병 곡선이야 끝내주지만
금값도 나름이죠 절대음감까지 바닥나 처분할 게 없는 여자
한때 드레스에 힘 좀 줬던 비올라연주도 그날 이후 끼니가 되지 못했죠
때밀이 손님 뜸한 날,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비올라 현絃과 꽃들의 예보를 수시로 곱하고 빼보는 여자
연주와 사고 후유증에 조바심을 걸칠 때
투명해서 슬픈 날개에 빗소리처럼 들려오던 마지막 박수 소리
때타월 낀 두 손으로 도돌이표가 태반인 세월의 등 밀다 보면
어느새 그녀 안에 출렁이는 어둡고 불규칙한, 마지막 음계들
(이젠 견딜 만해요 매미도 굼벵이로 7년 참아야 울 수 있잖아요)
아무리 덜어내도 복리로 늘어가는 통증의 늪에서
그날의 악몽을 대야로 퍼내듯 거칠게 물청소하는 그녀
눈을 타고 흐르는 젖은 머리칼에 문득 얼굴을 들면
목욕탕 타일벽에 일렬로 목을 맨 샤워기들
삐걱, 삼거리 밖 새벽을 삼킨 뿌연 안개
비올라꽃 만삭인 어느 집 화단에 잠시 멈춰선 그림자
화분과 화분 사이로 일어난 바람의 활 비브라토로
으- 응- 앵… 으- 응- 앵… 비올라 켜듯 들려오는 환청
목젖 어디쯤 딱딱해진 그녀 눈물, 별이 되어 쏟아질 시간이에요
밤비와 치통
말하자면 이것은 뒷모습들만 사는 집에 관한 줄거리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었다 딸꾹질하듯,
고시원은 취준생을 끝없이 뱉어냈다
젖은 소리에 이토록 많은 뼈가 들어있었다니,
H의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서 밤새 종이구기는 소리가 쏟아졌다
식은 컵라면처럼 제 몸을 부풀리던 달이 고시원 지붕을 빠져나갔다
분식점 여자가 TV에 담갔던 시선을 꺼내 이쪽으로 보았다
오래전 물길을 분실한, 낡은 물푸레나무 식탁에 라면을 올렸다
H는 고향 앞바다를 데려와 테이블 앞자리에 앉혔다
버섯 같은 섬 몇 라면 그릇에 띄웠다 고향 노을을 소환한 매운 국물 속에서
볼펜이 찢어버린 어제와 해송 껍질 같은 아버지의 손등이 그와 마주쳤다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새벽까지 프린터기가 취업을 출력했다
속수무책은 책상과 책임을 혼동했다
그것들은 내일 날씨처럼 믿으면 안 되었다 그곳에서 죽음과 뒷모습은 동급이었다
죽음이 사는 고시원 옥상은 어떤 국어기출문제보다 비유체계가 탄탄했다 하루는 저무는 것이 아니고 납작해지는 거였다 어떤 날에는 방과 방 사이 허술한 벽 속에서 바퀴벌레들이 밤새 치통처럼 자랐다
통증도 오래 묵으면 권력이 되었다 손바닥만 한 창이 딸린 방
좀처럼 오지 않는 내일에 감금된 채
밤새 거리에 왁스칠하는 빗줄기를 멍하니 내다보았다
노량진 어느 고시원 커튼이 침묵의 아가미를 닫고 돌아누웠다
얼마 전까지 노숙자였던 옆방의 중년이 초저녁부터 잠꼬대를 했다
낡은 벽이 충혈된 눈으로 그것들을 밤새 받아 적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서정
전북 임실 개금실 출생2008년 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2004년 『시안』 등단2024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문학뉴스 &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수상2025년 전북문화관광재단 지원금 수혜
목차
** 시인의 말
1부 ‘알리바이가 눈부시다’의 어원
점프 위블 - 프레세나 핑크 빙하 12
‘알리바이가 눈부시다’의 어원 14
양계장 근처 또 다른 날개 16
어쩌면 노랑 18
허공을 체포하다 21
엄마는 외계인 24
S의 정오 26
발등에 별빛을 28
무거운 악수 30
뒤축을 읽는 시간 32
물고기연 35
2부 봄,비 올라 비올라
봄,비 올라 비올라 40
그녀의 노루 43
소리를 단풍이라 믿을 때 46
나, 눈감고 천 번쯤이 된 적 있다 48
‘바’와 ‘수’의 동류항 50
노란 탁란 52
파도를 돌려요 54
전지적, 그들의 앞치마 시점 - 새우먹는 애인들 57
끝없는 잠행潛行 - 백제금동신발 60
화아악 62
유쾌한 철새 64
3부 작은 물이 돌아오는 골목
그러고 보면, 68
맛있는 농담 71
끄터리 풍경 74
어쩌다 파, 그래도 파 76
작은 물이 돌아오는 골목 78
표지판, 식지 않는 81
그때 수돗가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나는, 기다란 이라고 외쳤다 84
밤비와 치통 87
죽여주게 웃는 법 90
이혼이 타고 있어요 93
뜻밖의 민들레 96
4부 옆집과 옆집의 옆집과 옆집
전자동 죽음 100
찍고 간 102
오발탄 104
옆집과 옆집의 옆집과 옆집 106
개구리 家 109
못갖춘마디 112
불시착한 서술어 115
알베도 효과 118
그래, 그래도 120
그 저녁이 너의 속눈썹에 갇힐 때 122
밑줄과 비명 124
** 해설
저녁의 뒤축┃강연호(시인, 원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