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툭, 툭, 툭…”
까만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지네마을에 비가 내린다. 그나시리온이 하늘을 보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네마을의 대장이었다.
“오늘 밤엔 틀림없이 태풍이 몰려오네. 마을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모두 단단히 준비해두게.”
지네들은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해서 축축이 젖은 바위틈, 나뭇잎 속에서 산다. 이 지네마을은 죽은 떡갈나무 안에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 안엔 촉촉한 흙과 이끼, 나뭇잎이 깔려 있어서 지네들이 살기에 적합했다. 게다가 떡갈나무 껍질로 이루어진 천장은 지네들이 무서워하는 강력한 햇빛을 가려주었다.
햇빛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지네 몸이 건조해져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시리온은 이 떡갈나무로 이사해 정착한 여러 지네 중 하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떡갈나무 지네마을이 번창하여 수백 마리의 지네가 사는 큰 마을이 되었다.
초기에 떡갈나무에 정착한 지네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나시리온만 남게 되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지만 총기만큼은 여느 젊은 지네들 못지않았다. 게다가 수많은 세월 동안 쌓여온 경험과 지식으로 인해, 그는 자연스럽게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였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저희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비 피해가 없도록 준비 단단히 해두라고 일러두겠습니다.”
마을의 청년 지네들은 그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마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안에 진리 있니?”
“네, 누구세요?”
당차면서도 아직은 어린 목소리, 어린이 지네 진리였다.
“나, 라라 누나야. 전할 말이 있어서 왔어.”
“누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어른들은 집에 안 계시니? 어머니는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시고?”
“네. 아빠는 엄마 병간호하러 병원에 가셨어요.”
“그렇구나. 빨리 쾌차하셔야 할 텐데. 어쩔 수 없이 진리 너한테 얘기해야겠다. 지금 태풍이 오고 있대. 그나시리온 님이 천장을 단단히 정비하라고 말씀하셨어. 너희 집 천장에 큰 구멍이 있지 않니?”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네가 엄마 다리를 고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나한테 자랑하면서 얘기하지 않았니? 아무튼 큰 비가 내려서 떡갈나무 천장에 빗물이 새지 않도록 구멍을 꼼꼼히 메꿔야 한다. 알았지? 잘못하면 우리 지네마을이 물에 잠기게 돼.”
“알겠어요. 단단히 메꿔 놓을게요.”
“그럼 널 믿고 가도 되겠지? 다른 집에도 이 말을 전하러 가야 해서 말이야.”
“네. 걱정 마세요.”
라라가 사라지자 진리가 혼자 중얼거리며 문을 닫았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저 구멍을 만들었는데. 단단히 메꿔놓으면 언제 다시 구멍을 만든담. 대충 나뭇가지로 덮어놔야겠다.”
지네들은 축축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곰팡이에 감염되기 쉽다. 특히 지네 알은 곰팡이에 취약하다. 그래서 암컷은 알을 낳자마자 온몸을 돌돌 말아 알을 감싸고 곰팡이에 감염되지 않도록 알을 핥아준다. 알이 부화할 때까지 무려 한 달 동안 암컷은 움직이지도 않고 알을 보호한다. 진리 엄마 역시 알을 낳은 후 꼼짝 않고 알을 핥아주다가 감염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었다.
“이쯤 해두면 되겠지? 설마 그깟 비에 구멍이 무너지려고?”
진리가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서 대충 구멍을 채워 넣고선 아빠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재은
40대, 남편이자 아빠, 치과의사. 이 단어들은 나를 주체와 객체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둘을 분리하지 않고 삶과 하나 되고 싶었다. 삶이 내게 소설을 써보라고 제안했다. 2년간 틈틈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삶은 나를 통해 자신의 생명력을 표현하길 간절히 바라왔다는 것을. 장편소설 『지네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