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8년 대선 경선 당시 버락 오바마는 포크너의 말을 인용하며 더 완전한 ‘연합’을 이루자고 미국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시를 가장 높은 문학으로 간주한 포크너는 이 책 『포크너 자선 단편집』으로 결코 죽지 않는 과거가 되풀이되는 현재, 말해지지 않은 진실, 그리고 끝내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사랑, 인간의 존재의 지층을 고요하면서도 무시무시하게 파고든다.『포크너 자선 단편집』은 20세기 미국 문학을 넘어 세계 문학의 거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 윌리엄 포크너가 직접 고른 단편들을 모은 선집이다. 그의 단편 세계를 총결산한 이 책은 1951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포크너 자신도 결과물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자신의 단편의 정수를 응축하고자 했던 이 책은 포크너에게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미학적 결정체이자 내면적 서사의 결산이라 할 수 있다.『포크너 자선 단편집』은 전체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크너는 작품의 선별과 각 부의 제목과 작품의 배치에까지 스스로 편집자가 되어 개입했다. 포크너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에밀리를 위한 장미 한 송이」, 인간의 양심과 계급 충돌을 날카롭게 파고든 「불타오른 헛간」, 인종 차별의 폭력을 응시한 「메마른 9월」, 그리고 기억과 죽음을 교차 편집하듯 구성한 「그 저녁의 태양」 등은 모두 그의 미학과 윤리, 그리고 언어 실험이 극단에 다다른 지점에서 쓰인 작품들이다.이 단편들의 중심 무대는 그의 장편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남부 미국 가상의 지역인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요크나파토파는 남북전쟁과 인종차별, 경제적 몰락과 종교적 죄의식이 뒤엉킨, 미국 문학사상 가장 정교하게 구축된 신화적 공간이다. 포크너는 이 공간을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가장 어두운 과거, 그 비극의 진흙탕 위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사랑하고 싸우고, 증오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존재임을 이야기하고 있다.그들은 주랑 현관을 가로질렀다. 이제 바닥을 딛는 아버지의 불편한 쪽 발소리가 시계처럼 돌이킬 수 없게 울렸다. 소리를 내는 육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이곳과 걸맞지 않은 소리였고, 하얀 문을 눈앞에 두고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마치 그 무엇에도 왜소해지지 않는 날카롭고 광포한 최소 음량이라는 성질을 획득한 것만 같았다 ― 납작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한때 검은색이었으나 이제는 늙은 집파리처럼 녹색으로 닳아 번들거리는 브로드천겉옷을 입은 그 육신은, 너무 커서 접어올린 소매 아래에서 갈고리발톱처럼 손을 들어올렸다.
‘이후 약 10초 동안, 아빠는 망치를 그대로 들어올린 채 솔론을 바라봤다. 뒤이은 3초 동안, 아빠의 눈길은 솔론은 물론이고 다른 무엇에도 향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는 다시 솔론을 바라보았다. 마치 정확히 2.9초가 지난 후에야 자신이 솔론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대한 빨리 솔론에게로 시선을 돌린 듯한 느낌이었다. “하.” 아빠는 말했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입을 벌리고 있는 데다 웃음처럼 들렸으니 웃음이라 해도 좋을 법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아빠의 잇새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아빠의 눈가 이상으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자네도 괜찮은 사람이야. 그저 돌아다니다 보니 온갖 규칙과 규제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을 뿐이지. 그게 우리들의 문제라네. 온갖 두문자와 규칙과 해결 방식을 고안해내다 보니 다른 아무것도 못 보게 되었거든. 두문자와 규칙에 끼워맞출 수 없는 대상을 마주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거지. 우리는 박사 친구들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존재처럼 변해 버렸어. 뼈를 발라내고 내장을 빼낸 후에도 여전히 살아서, 어쩌면 뼈와 내장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영원히 살려 놓은 작은 동물처럼 말이야. 우리는 등뼈를 발라내 버렸지. 사람에게 등뼈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결정을 내려버렸거든. 등뼈 따위는 구식이라는 식으로 말일세. 하지만 등뼈가 들어가 있던 홈은 여전히 남아 있고, 등뼈도 아직 숨이 붙어 있다네. 어쩌면 언젠가는 다시 등뼈를 끼우고 살게 될지도 모르지. 언제가 될지, 얼마나 심하게 몸이 비틀려야 그 필요를 깨닫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네.”
작가 소개
지은이 : 윌리엄 포크너
서사와 문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통해 세계 문학사의 지형을 바꾼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 미국 남부의 신화적 공간인 요크나파토파를 배경으로 독자적인 서사 우주를 구축했으며, 인간의 죄의식, 역사, 시간, 정체성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1897년 미국 미시시피주 뉴올버니에서 태어난 포크너는 옥스퍼드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 조지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셀린,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다. 1차 대전 당시 캐나다 공군에 지원했으나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우체국 직원, 대학 행정직원, 작사가, 시인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29년 발표한 장편 『소리와 분노』는 포크너 문학의 전환점을 이룬 작품으로 몰락하는 남부 사회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압살롬, 압살롬!』 등에서 더욱 급진적인 서사 실험을 이어나갔다.포크너는 허구의 남부 군郡인 요크나파토파를 창조해 이 지역의 인물과 사건,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19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을 엮어 ‘하나의 문학적 우주’를 건설했다. 그의 세계에는 과거 남부의 영광과 노예제의 그림자, 전쟁의 상처, 백인과 흑인의 갈등, 빈곤과 몰락의 현실이 교차하며, 이 모든 것이 언어와 시간, 의식의 실험 속에서 구현된다. 그의 분열된 화자, 중첩된 시점, 복잡한 문체는 난해하다고 평가되지만, 이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구조적 시도였다. 1949년 “심오하고 독창적인 예술적 기교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구했다”는 선정 이유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연설에서 그는 “작가는 사랑, 명예, 긍지, 연민, 희생, 인내 - 그런 것들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1951년에는 자신이 직접 선별하여 여섯 개의 주제로 분류한 『포크너 자선 단편집Collected Stories of William Faulkner』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100편에 이르는 단편 중 포크너가 42편을 추려낸 이 단편집은 장편소설 속 서사 구조와 미시적 현실 묘사를 압축해낸 포크너 문학의 정수이자, 요크나파토파라는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구성된 근대 미국인의 기억과 무의식의 지도이다. 그는 이 단편들 안에서 폐허와 침묵, 전쟁과 인종, 여성과 고통, 폭력과 슬픔을 주제로 남부 사회의 해체 과정을 치열하게 추적한다.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포크너의 장편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 단편들은, 그의 문학적 실험이 단지 형식에 그치지 않고 미국 역사와 인간 조건에 대한 총체적인 증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포크너는 프랑스 실존주의자들로부터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았고, 라틴아메리카의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모두 그를 “자신들의 문학적 아버지”로 언급했다.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중국의 모옌 등도 포크너의 영향 아래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의 이야기를 문학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62년, 미시시피 옥스퍼드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미국 남부의 역사와 상처를 하나의 신화로 바꿔놓은 작가”로 남았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독자와 비평가를 불러들이며, 언어와 인간 존재, 그리고 서사라는 개념 그 자체를 묻는 문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