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강수원 시인의 첫 시집 『들어오세요』은 ‘바다 이미지’가 오버랩 되어 자연과 일상 삶에서의 잔잔한 성찰의 시편으로 가득하다. 강수원 시인의 삶과 시에서 바다는 간과할 수 없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이때의 바다는 ‘낚시’와 더불어 ‘섬에 대한 사랑’까지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을 지칭한다. 시인은 “가느다란 섬에서 피어오르는” 연민의 근원을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형상화한다. 이처럼 알 수 없는 연민이 바다를 그리워하게 하고 바다는 곧 따뜻한 마음을 내게 하는 근원으로 아름답게 함축되어 강수원 시인만의 시 세계를 독특하게 구축하고 있다.밤송이가 떨어지며땅의 단추를 눌러요가을 냄새가 눈으로 들어와 숨구멍을 두드려요들어오세요목소리와 냄새를 인식하는 문여름내 무거웠던 짐을 벗어 놓고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오세요울긋불긋한 아기 손을 만져보세요해바라기 애틋한 마음을 세어보세요―「들어오세요」 전문
하늘을 쳐다보다가 가지에 남아 있는 잎사귀를 본다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들기에는엉덩이가 너무 무겁다가을은 편지 속에 벌써 묻히고 찬 서리를 견디는 나무,햇살이 나른하다청명한 하늘과 뿌연 시간이 교차하는 가을날헐렁한 치마를 입은 여자가 벤치에 앉아가을의 끝을 붙잡고 있다 ―「마지막 잎새」 전문
낙엽 사이로 가을이 구겨지고따사로운 햇볕이 애기 손을 감싸 안으면지독한 고뇌가 은행알을 물들인다고독을 온몸에 두르고 벤치에 내려앉은 냉기를 받아들일 때면끝 모를 깊이로 빠져드는 우물어딘가에 서성일 무지개를 찾아보지만 잎 진 가지 사이, 국수 같은 햇살만이 내리꽂힌다오만이 땅바닥을 구를 때노숙자의 하루처럼 움츠러드는 어깨가 체온을 갈구한다 ―「구겨진 경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