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피해자의 자리는 이제 특권이자 무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런던정치대학교 교수 릴리 출리아라키는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에서 피해자와 피해자성의 역사와 ‘무기화’ 현상을 파헤친다. 현대사회는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고통이 넘실대는 ‘고통의 민주주의’ 사회다. 성폭력 피해 여성,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 소수자의 고통도 확산하지만, 동시에 ‘역차별’을 억울해하는 남성, ‘소수자 우대 정책’을 한탄하는 백인, ‘무고’를 호소하는 가해자의 고통도 무차별적으로 확산한다. 그런데 누구나 고통을 호소하는 한, 인권이라는 대의 아래 그들은 모두 공감과 연민을 받아 마땅한, 발언권을 존중받아야 할 ‘피해자’로 보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할 시민으로서의 책무가 생기는 듯하다. 누구의 주장이든 ‘나는 억울하고 고통스럽다’라고 호소하는 개인의 호소를 무시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상처와 인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라는 지위가 공감과 연민, 정당성과 발언권을 얻기 위한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되는 것은 언제나 남의 목소리를 짓누르며 목청을 높이는 권력자들이다.첫 번째는 이 이야기가 전 세계로 퍼져 국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피해자성 주장은 미국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서구 문화권 전체의 관심을 사로잡는 포괄적인 사안이라는 통찰이다. 이는 새로운 시각이 아니다. 25년 전에도 미국 비평가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는 우리가 “모두가 부유하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고난에 시달리는 고통의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10년 후 디디에 파생Didier Fassin과 리샤르 레스만Richard Rechtman의 “트라우마의 제국”에 관한 중대한 연구는 피해자성을 오늘날의 삶에서 핵심적인 도덕적·정치적 조건으로 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는 정신의학 어휘에 한정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일상 용법으로 깊이 뿌리내렸다. 사실상 그것은 어떤 사건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다.” 캐롤린 딘Carolyn Dean은 최근에 이 주장을 되풀이하며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는 오늘날 서구 문화의 핵심에 자리한다”고 역설했다. 이 언설들은 피해자성을 서구 문화 일반의 지배 담론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블래시 포드와 캐버노의 이야기가 제기하는 핵심 문제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고난이 상대방의 고난보다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피해자가 범람하는 세상은 어떤 종류의 세상인가? 어떻게 세상이 지금처럼 변했을까? 그런 세상은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더 중요하게는, 그 대가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고심해보려고 한다._ 〈어째서 피해자성인가?〉에서
고통의 정치라는 틀 안에서 우리는 어째서 피해자성이 자아에 본질적인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부여하는 기표가 아니라, 반복해서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근대성에서 개발된 고통의 언어를 차용하여 취약한 자아를 위해 “나 상처 받았어” 또는 “나 억울해”라고 발언하고 가엾어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통 행위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피해자는 고정된 특정 사람이 아니라, 자아가 고난에 처했다는 주장을 통해 바로 그 순간 취약한 존재로 생성되는 반복적인 발화행위자이다. 피해자성을 공적 담론에서 일종의 투쟁 현장으로 만드는 것은 트라우마 또는 상해의 주장들이 즐비한 가운데 새로운 자아를 드러냄으로써 그 주위에 있는 다양한 인정의 공동체를 불러내는 수행적인 역량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정치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말했듯 “늘 필연적이거나 확정적이거나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이지는 않”지만, 정치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국면에 피해자의 정체성을 잠정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고통과 자아를 연결시키는 언어적 “체결articulations”이라는 가변성 높은 행위에 크게 의지하는 한 대체로 고통의 정치이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고난의 주장을 가지고, 어느 공동체에 속한 채 피해자로 생성되는가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 비판적인 공적 담론 분석을 요구하는 정치적 소통과 관련된 문제이다._ 〈어째서 피해자성인가?〉에서
피해자성의 어휘의 과거와 현재를 재고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피해자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공적 담론의 “표면에” 드러난 겉모습만으로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난을 소통할 때 고통의 주장과 자아의 조건은 결코 선험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으므로, 피해자성 연구는 피해자 개념의 근본적인 우발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주장과 조건(또는 맥락)을 재삼 구분하는데, 둘을 가르는 어떤 고정된 경계가 “저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분을 발견적 수단heuristic device으로 활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견적 수단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주장과 조건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유용한 분석적 틀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짜real” 피해자와 “가짜fake” 피해자를 구분하는 질문 대신,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해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 특정한 고통의 주장이 특정한 자아를 피해자로 여겨지게 하는가? 이런 자아는 어떤 권력의 입장에서 발언하는가? 이들의 주장은 이들에게, 이들이 호명한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안기는가? 이런 주장은 어떤 종류의 배제를 전제하고 공고히 하는가?_ 〈어째서 피해자성인가?〉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릴리 출리아라키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회학, 윤리학, 기호학, 페미니즘 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고통과 취약성에 관해 연구해왔으며,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매체와 공적 발언들을 분석하여 타인의 취약성이나 고통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 생각, 행동에 관한 책과 논문을 펴내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극우 포퓰리즘, 인종주의, 여성혐오 등에 관한 분석을 바탕으로 피해자(성) 개념의 역사와 무기화 현상을 파헤친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를 썼으며, 이 책으로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 최고단행본상을 받았다. 이외에 남반구 지역민들의 고통을 ‘구경거리로서의 고난’으로 바라보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고난의 구경The Spectatorship of Suffering》(2006)과 《아이러니한 구경꾼The Ironic Spectator》(2013)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