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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  이미지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자 함석태 평전
글나무 | 부모님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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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변영남 선생은 대한치과의사협회 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이뤄낸 공적뿐만 아니라, 대한치과의사학회장과 협회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시면서 우리나라 치과의사 역사를 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하신 치과계 역사학자이다. 이번 함석태 선생 전기 발간은 한 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의미를 넘어, 오늘을 있게 한 수많은 혜안과 업적들을 되돌아보고, 미래 도약을 위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출판사 리뷰

서문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는 함석태(咸錫泰) 선생이다. 그는 호를 토선(土禪)이라고 했다.
조상 대대로 많은 농토를 갖고 있어 흙과 더불어 살았다. 그래서 흙을 사랑했다. 또 흙으로 빚어 구운 우리나라 토기를 사랑했다. 백자도자기 특히 <금강산 연적>을 제일 사랑했다. 그래서 호에 ‘土’ 字를 붙였을 것이다. 또 함석태 선생은 조국을 사랑했다.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이고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 단체인 한성치과의사회를 만들었다. 또 최초의 구강운동 계몽운동가, 사라져가는 문화재를 수집한 문화재 애호가, 독립운동가를 도운 애국자였다.
함석태 선생의 비극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다. 불행하게도 해방되기 약 두 달 전 일제의 소개령에 의해 갖고 있던 문화재 소장품을 지키기 위해 소장품을 고향 영변으로 끌고 갔다.
영변 근처 구장이라는 곳에서 짐도 풀지 못한 채 피신해 있다 해방을 맞았는데, 북한 땅을 점령한 김일성이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문화재를 갖고 다시 남하하기로 결심했다. 가족들과 헤어져 신의주로 가서 남하한다고 했으나 그 후 행방은 알 수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북녘 문화재가 서울에서 전시회를 한 바 있다. 그때 함석태 선생 소유 문화재가 다수 출품되었다. 특히 <금강산 연적>이 출품되며 우리를 흥분케 했다. 조선총독부 『고적도본』에 있는 함석태 선생의 것과 일치된 것이다. 남하하다 문화재급 소장품을 모두 뺏기고 본인은 희생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금년(2025년) 한성치과의사회 설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몇 년 전부터 함석태 선생에 관한 전기를 써보고자 마음먹었다. 후배로서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함석태 선생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김상엽 교수, 향토사학가 이승을 선생님, 치과의사 선배인 이한수, 기창덕 선생님, 치과의사 동료인 신재의, 권훈 선생님의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원고 입력과 편집을 도와준 박혜숙(구네군다)께 감사드린다. 1920, 30년대의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사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이러한 모든 자료를 수집 정리해 편저자 형식으로 전기를 썼다. 부끄럽고 부족한 부분이 많으리라 본다. 그러나 죽기 전에 함석태 선생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후배의 마음이니 널리 양해해 주기 바란다.

축사

미래 도약을 위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는 일


박 태 근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1호 치과의사 토선 함석태 선생의 전기인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 전기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함석태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치과의사 전문직업인으로의 이정표를 세우신 분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이시며 일본인 치과의사단체에 대항하는 한국인 최초 치과의사단체인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자였고, 우리나라 구강위생 계몽을 위한 선구자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화유산을 사랑해 지킴이 역할을 평생 노력한 참 지식인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면허 1호 치과의사로서 대한민국 3만 7000여 치과의사의 사실상의 시조가 되는 분입니다.
올해는 함석태 선생께서 창립한 한성치과의사회가 100년이 되는 해로써 한성치과의사회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치과의사협회가 100의 역사를 자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 선배님들이 일궈온 빛나는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의 전통과 가치는 역사 속으로 묻히지 않겠습니까?
함석태 선생의 전기는 독립운동가 지원부터 구강위생계몽운동, 문화유산 지킴이 역할 등 선각자적인 활동 등을 사실에 기초해 조명하고 있어,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기념비적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사업에 사재를 털어 선뜻 나서주신 변영남 선생께 대한치과의사협회장으로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변영남 선생은 대한치과의사협회 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이뤄낸 공적뿐만 아니라, 대한치과의사학회장과 협회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시면서 우리나라 치과의사 역사를 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하신 치과계 역사학자이십니다.
100년의 생일잔치를 맞이한 우리 치과계로서는 이번 함석태 선생 전기 발간은 한 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의미를 넘어, 오늘을 있게 한 수많은 혜안과 업적들을 되돌아보고, 미래 도약을 위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시의적절하고 고무적인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함석태 선생 전기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100년 역사의 소중한 자산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 해오신 변영남 선생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축사

치과의사의 뿌리를 돌아보고


강 현 구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회장)

함석태는 대한민국 최초의 치과의사로 서울시치과의사회의 전신인 한성치과의사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대한민국 치과의사들이 함석태 선생을 기려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함석태 전기를 통해 선생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된 점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출판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사편찬위원회 변영남 고문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함석태 선생이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것은 1912년이지만, 당시 한국에는 치과의사제도가 없었습니다. 제도가 마련된 후인 1914년 2월 5일에야 국내 치과의사면허 제1호로 등록되었습니다.
한국인 치과의사만으로 조직된 한성치과의사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고, 국민의 구강위생을 위한 계몽활동에도 적극적이셨습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학생들의 구강검사와 치아위생에 대한 계몽운동에 동참하며, 일본인과 비교되는 한국인의 구강위생을 걱정하셨습니다.
“일본 아이들은 칫솔을 이용하지만, 조선 아이들은 소금을 이용해 이를 닦는 게 전부여서 구강 상태가 매우 안좋다”라는 내용의 1924년 2월 11일 《동아일보》의 기고, 「구강위생 긴급한 요건」에서는 국민의 구강건강을 걱정하는 함석태 선생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문화재 수집가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도 국보급 문화재를 지켜낸 위인으로 언론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가 지켜낸 <금강산 연적> 같은 경우 현재 북한의 국보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옥중의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이를 치료하는가 하면, 강우규 열사의 손녀인 강영재를 양녀로 키우는 등 한국 현대사에도 상당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함석태 전기를 통해 우리나라 치과의사의 뿌리를 돌아보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의 자긍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축사

함석태 선생님 전기 출판을 축하드리며


류 인 철 (대한치과의사협회사 편찬위원회 위원장)

인류 역사상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이유가 이닦기와 손씻기라고 합니다. 이들은 신체 감염을 예방하고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구강건강과 구강위생을 담당하고 있는 치과의료는 인류의 수명 연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25년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던 1925년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독자적으로 ‘한성치과의사회’를 설립한 것이 오늘날 대한치과의사협회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1922년 우리나라에 와 있던 일본인 치과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던 ‘경성치과의사회’가 있었으나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독립된 단체를 만들고자 했던 열망과 움직임이 일어났던 결과입니다. 일본 유학을 다녀왔던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인 함석태 선생과 1922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치의학 교육기관이었던 경성치과의학교 출신 치과의사들이 한성치과의사회를 결성했던 것입니다.
어떤 학문 분야이든 간에 최초라는 명칭을 갖는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서울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백두대간의 한 계곡에서 발원되었듯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 보호와 증진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치과의사협회도 함석태라는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로부터 기원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외국선교사들에 의해 근대 의료가 최초로 도입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해외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시절,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역사를 그 시대를 살았던 한 개인의 인생사를 통해 조명해 보는 것은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치과의사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대한치과의협회와 서울시치과의사회의 역사편찬에 주도적으로 활동하셨던 변영남 선생님께서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 선생에 대한 전기를 발간하신다니 후배 치과의사로서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그동안 함석태 선생님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전해 들어 왔던 치과의사로서, 독립운동가로서, 우리 문화재를 소중히 보존하고자 했던 수집가로서 그 분의 일대기를 정리하기 위해 관련 자료 수집에 쏟았을 변영남 선생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 험난했던 시절에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일생을 사셨던 함석태 선생님의 전기를 발간함으로써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후배들에게 의료인인 치과의사의 사명과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목차

서문 4
축사 | 미래 도약을 위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는 일 / 박태근 6
축사 | 치과의사의 뿌리를 돌아보고 일 / 강현구 08
축사 | 함석태 선생님 전기 출판을 축하드리며 / 류인철 10
후기 223

Ⅰ. 함석태 이야기
1. 함석태 선생 연보 18
2. 함석태 선생 생애 20
3. 함석태 선생 학력 26
4.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 29
5. 한성치과의사회 33
6. 골동품소장가로서의 함석태 38
7. 함석태 선생의 수장품 46

Ⅱ. 함석태 글 모음
1. 齒科學 56
2. 하계(夏季)에 대한 위생 문제 59
3. 구강위생 긴급한 요건 61
4. 먼저 습관을 곳치라 64
5. 골동한화(骨董閑話) 68
6. 이조의 도자기 71
7. 공예미 74
8. 방산심수(訪山尋水) 79
9. 청복반일(淸福半日) 83

Ⅲ. 함석태 관련 글 모음
1. 취미인(趣味人) 순례기 94
2. 三일은 충치예방데-무료진찰을 한다 97
3. 이조고려의 자기들 100
4.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의 흔적을 찾아서 102
5. 손자 함각(咸珏)을 만나다 108
6. 함각(咸珏)선생을 떠나보내며(함석태 선생님 손자) 113
7. 함석태 선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116
8. 함석태 선생 개원 100주년 기념 흉상 제막식 118
9. 함석태 선생 흉상 제막식을 마치고 122
10. 고미술품 수장가 함석태 125

Ⅳ. 함석태 사람들
함석태 선생의 인맥 128
1. 교육과 저항의 이름으로: 강우규 136
2. 붓으로 싸운 지도자: 박은식 138
3. 조용한 진료실에서 피어난 연대: 안창호 141
4. 수집의 정신으로 잇다: 오세창 145
5. 남기고 지키는 사람들: 전형필 149
6. 근대의 길목에서 이어진 손길: 윤치호 154
7. 조선의 지조와 침묵의 품격: 조만식 156
8. 꺽이지 않는 조선의 정신: 이승훈 159
9. 격랑 속에서 품은 예술의 안목: 장택상 161
10. 조선의 숨결을 품은 백자의 길: 박병래 164
11. 문학의 뜰에서 피어난 우정: 이태준 168
12. 성북동에서 이어진 인연: 김용준 172
13. 붓으로 경계를 넘다: 길진섭 174
14. 그림자 속의 책방: 배정국 176
15. 먹과 손끝으로 지킨 품격: 손재형 179
16. 점(點)으로 피워낸 그리움의 풍경: 김환기 181
17. 시대의 여백을 그린 화가: 조중현 183
18. 손끝으로 지킨 기억: 김성수 185
19. 조선의 골통까지 아팠던 날들: 김약수 187
20. 붓과 산길의 동행: 노수현 189
21. 수장과 수집, 그 너머의 동지애: 오봉빈 195

Ⅶ. 함석태 소장품과 관련 작가
1. 하늘이 내린 신필: 연담 김명국 200
2. 묵죽의 세계를 잇다: 수운 유덕장 202
3. 진경의 붓으로 조선을 그린 화가: 겸재 정선 204
4. 붓으로 피운 예술의 경지: 현재 심사정 206
5. 해학과 문기, 조선 화단의 별: 단원 김홍도 208
6. 품격 있는 삶과 예술을 살다: 이재 권돈인 211
7. 전통과 근대를 잇는 조선의 거목: 완당 김정희 213
8. 조선의 아웃 사이더: 호생관 최북 216
9. 꽃과 붓의 경계의 예술: 북산 김수철 219
10. 붓끝에 깃든 고요한 자존: 석파 이하응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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