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엄마, 죽는 게 쉽지 않제?”
죽고 싶은 마음으로 가까스로 보내던 하루하루
기꺼이 죽음을 껴안는 엄마 곁에서 다시 삶을 배우다
★★★ 장일호, 홍승은, 곽민지 강력 추천 ★★★폐암 4기, 5년 생존율 8.9퍼센트. 하루아침에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 바다 건너 엄마 곁으로 달려오게 만든 숫자. 내가 죽고 싶었을 때 내 앞을 가로막던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서 “다 살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있는 힘껏 사랑했다”라고 듣는다. 나의 슬픔보다 엄마의 생에 초점을 맞춘 3년, 죽음을 곁에 두고 비로소 가장 선명한 사랑을 그리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
“당신을 잃는 과정이 이토록 치열하게 당신을 읽고 쓰는 태도라는 사실을 배운다.”
_ 홍승은(작가)
“이들의 투병과 돌봄은 예정된 죽음을 향한 행진과 에스코트에 가깝다. 어떤 상실이 상상만으로 내 삶을 집어삼킬 듯 거대하다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직면뿐이다.”
_ 곽민지(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
“송강원은 상실의 빈자리에 글로 몸을 만들고 옷을 지어 입힌다. 생활의 갈피마다 애도를 끼워 넣으며 엄마의 부재를 감당한다. 산뜻한 슬픔의 안쪽에 살아내려는 그의 안간힘이 포개져 있다.”
_ 장일호(시사IN 기자)어느 날 한국에서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 엄마가 폐암 4기라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먼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비밀로 하려고 했던 엄마(옥)에게 그는 담담히 말한다. “엄마, 우리 서로 편하게 아프자.”
얼마 전까지 엄마에게 죽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아들, 송강원이었다. 힘들다, 아프다를 건너뛰고 죽음을 함부로 입에 올릴 만큼 위태로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 미국에서 한국으로, 단숨에 옥의 곁으로 오게 만든 건 5년 생존율 8.9퍼센트라는 숫자였다. 새벽 3시에야 편한 표정으로 잠든 옥의 곁에서, 병실을 비추는 온열램프의 빛에 기대어 조용히 마음을 적는다. 비로소 엄마 곁을, 당신의 돌봄을 허락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지난 3년간 꾸준히 써온 글이 『수월한 농담』(유유히 펴냄)이 되었다.
『수월한 농담』은 자신의 최선으로 평생 애써온 옥이 그토록 원하던 생의 마지막을 위해, 오롯이 자신만을 생각하고 그다운 결말을 짓도록 함께 죽음에 직면한 시간의 기록이다. 죽음을 품으며 매일 다채로워지는 옥의 빛깔을 송강원은 성실하게 기록해나간다. 언젠가 다시 돌아봐도 지금의 우리를 무한하게 유지하도록 시간을 절이는 방법이 곧 글쓰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엄마, 죽는 게 쉽지 않제?” 슬픔으로만 덮치던 죽음이 어느새 장르를 바꾼다. 막막하게 드리운 슬픔을 걷어내고, 장르를 바꿔 농담을 건넨다. 엄마에게 남은 게 죽음뿐이라면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애써 외면하고 삶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송강원은 자신의 슬픔보다 엄마의 생에 초점을 맞춘다.
죽고 싶은 마음과 곁에 두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가장 선명한 삶이 시작되었다나의 엄마 옥은 자신을 맨 뒤에 두는 것이 익숙한 사람. 병실에 입원해서도 간호사에게 매번 부탁하는 것조차 미안해하는 사람. 주변에 걱정을 끼치는 걸,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자신을 향한 애정에 대해서는 고마움보다는 어쩐지 미안함이 앞서는 사람. ‘너 좋을 대로 해’에서 주어를 ‘나’로 바꾸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사람. 자신을 닮은 아들을 발견할 때마다 씁쓸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참고 또 참고 숨기고 또 숨겨도 내 슬픔을 단번에 알아차리는 사람. 나라는 존재를 누구보다 반가워했던 사람. 기뻐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
나는 이런 엄마가 자주 슬펐던 아들. 당신을 엄마라 부르는 유일한 사람. 아프고 나서야 엄마를 곁에 둘 명분이 생겨서 진심으로 좋은 사람.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편한 표정으로 잠을 자는 엄마를 보며 ‘편표잠’이라 일지에 기록하는 사람. 어렸을 적 디자이너였던 엄마가 주인공이었던 의상실이라는 무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 생에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을 처음 맞닥뜨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는 사람. 이제 슬프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닳도록 닮은 나였다. 엄마에게 우울증을 고백하니, 나를 가졌을 때 올려다본 푸른 하늘에서 캄캄한 우물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그 시절 이야기가 돌아온다. 내가 죽고 싶은 마음과 싸우면서도 죽을 수 없는 건 엄마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서 이제 엄마는 죽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죽고 싶어 하는 엄마가 내 곁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살아있다. 스스로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라며 죽음을 이야기할 때, 엄마에게서 생기(生氣)가 느껴진다.
“엄마…… 실망이 크제? 이왕 눈 뜬 거 오늘 내랑 잘 지내보자.”
죽음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엄마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그는 농담을 건넨다. 기다리던 비행기가 지연되었다고,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보자고. 공항에서 머무는 게 불편하겠지만, 심심하지 않게 내가 같이 있어주겠다고.
무엇보다 나의 행복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 옥
평생 애써온 삶에서 ‘엄마’라는 이름표마저 떼어주고 싶은 사람, 강원언젠가 복잡한 얼굴로 당신의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 엄마는 “니가 행복하기만 하면, 그게 제일 중요하다”며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 지지 기반으로 지금껏 자신을 더 꺼내고 나누는 방식으로 그는 살 수 있었다. 지난한 20대를 지나오며 7년간 촬영한 다큐 「퀴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혼자라고 굳게 믿었던 시절에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우쳤으므로. 삶을 살아가는 건 서로 기대는 것이 전부였다.
자신답게 살게 해준 엄마에게 필요한 건 그다운 삶의 마무리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엄마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다만 그 이후에 닥친 슬픔은 상상 이상이었다. 분명히 있었던 유일한 한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현실을 다시 살아내는 일.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견디는 일. 대책 없는 슬픔의 파도는 온몸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있었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 ‘슬픔’ 그 자체가 되어버린 엄마를 오래오래 그리워하는 것만이 자신의 일일 거라고 송강원은 꾹꾹 눌러 적는다.
조금씩 파도가 잦아들 때면 비로소 엄마가 남긴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은 송강원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타고난 감각과 의상디자이너였던 안목으로 ‘기가 맥히게’ 발견한 가방과 옷 등을 사다주며 취향을 키워주었고, 아들의 친구들 이름 앞에 ‘우리’를 붙여 부르며 먹이고 재워준 엄마 덕분에 지금 그는 친구들에게 기꺼이 치대고 기대어 살아간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삶을 나누면서. “니는 본 기 많아서 잘하고 잘 살 끼다.” 외쳤던 옥의 말 그대로다.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마주하고, 슬픔 가운데, 어느 때보다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은 결코 모순이 아니었다. 내게 생명을 주고 죽음까지 가르쳐준 엄마 곁에서 나는 삶을 아끼지 않는 법을 배웠다.”
_ 「쓰는 일」 중에서

옥이 이번 검사 결과를 두고 드물지만 분명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이제껏 자신의 병 앞에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마음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원치 않은데 시작된 기나긴 연극 같은 것이 삶이라면 죽음만이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도록 엄마가 저물어가는 것 같아 슬펐는데 이번에는 옥의 말을 듣고 있는 내 표정에서 어떠한 슬픔도 비치지 않았기를 바랐다. 옥의 죽음을 엄마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아들의 슬픔이 내비치지 않기를. 옥 앞에서는 아들인 나를 죽이고, 죽음 덕분에 더욱 오롯해지는 옥의 삶을 응원할 수 있다면.
「수월한 농담」
의상실은 어린 나에게 펼쳐진 가장 해상도 높은 세상이었다.
단연코 그 세상의 주인공은 엄마인 옥이었다. 옆에 꼭 붙어 앉아 놀 때면 표정 없는 마네킹도 신비롭게 느껴졌고, 무시무시한 크기의 원단 가위는 마법을 부릴 것만 같았다. 평소에 검소하고 수수한 옥은 의상실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이었다. 손님들에게 좋은 예를 보여주기 위함이라 했지만 옥의 취향은 어떠한 설명 없이도 향기처럼 풍기는 무엇이었다.
차분한 톤의 투피스에 감각적인 포인트가 되는 꽃 코르사주를 가슴 한쪽에 달고, 은은하게 돋보이는 보라색 펄 아이섀도는 손톱 끝만 살짝 칠한 빨간 매니큐어와 조화를 이루었다. 양 귓불에 반짝이는 클립온 진주 귀걸이와 귀 뒤로 넘긴 짧은 머리칼은 우아했다. 과하지 않게 화려하고, 애쓰지 않아도 세련된 착장. 그리고 그에 절묘하게 어울려 떨어지는 화장까지. 옥은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팔레트였을지도 모르겠다. 손님들과 한참을 떠들다가도 어느새 빈 종이에 의상 디자인을 슥슥 스케치하곤 했는데, 나는 이때의 옥을 어떤 생기生氣로 기억한다.
「의상실과 팔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