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평론>
시와 일상의 미적 조화
최연수(평론가)
생동감 있고 따스한 느낌의 시에 열광하는 것은, 현실이 각박해서라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각이 없는 일상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인의 시가 독자와 시적 공감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박서현 시인의 시는 기쁨과 안위, 슬픔과 애달픔, 동정과 안쓰러움 등 다양한 정서에 고루 동화되게 만든다. 장황하지 않은 시, 거창한 주제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도 필요치 않은 시를 쓰는 시인. 보이는 사물과 풍경을 시인만의 심안으로 찾아 시인만의 보법으로 시적 미학에 접근한다. 그 미학을 위해 무던히 고민하는 박서현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자.
1. 시적 계절에서 오는 생동감
처음부터 시와 일상이 조화를 이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상과 시는 부조화 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마침내 조화를 이루어간다. 결국 시인 주변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원점의 회귀에서 좀 더 차원 높은 시적 의미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시적 생동감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시적 태도에서 비롯되는데, 박서현의 시는 생동감이 원천이다. ‘봄’을 소재로 한 시들에서 특징이 두드러진다.
티벳에서처럼
차마고도에 이르기 위해 두 손 모아 땅에 낮게 절하고
생각과 몸과 말을 부처님께 바쳐서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나는 둔치,
이 꽃무더기 아래 납작 엎드려 순례의 길에 들겠다
벚꽃잎 눈처럼 내려
마음이 그 겨울 한복판에 서니
모든 장면은 수묵화처럼 한 폭에 들어가고
지나가던 물오리
짧은 목으로 뒤를 돌아보는 이 순간,
이 순간이 멎겠다
한 줄기 햇살의 장난
다시 봄
—「다시 봄」 전문
화자에게 있어 기적은 다시 태어난 봄이다. 이름하여 ‘다시 봄’. 이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화자는 “납작 엎드려 순례의 길”에 든다. ‘둔치’는 화자의 현재 위치가 투영된 시적 장소, 시인과의 동일시다. “순례의 길”은 번듯하게 가는 길이 아닌 고행의 길, “두 손 모아 땅에 낮게 절하”는 수행자의 길이기도 하다.
유년은 “추억”이다. 또한 “봄”이다. 생의 걸음마다 기억이 묻지만 유년만큼 호기심 많은 시절은 없을 것이다. 이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봤던 풍경과 그것에 닿은 동심이 오래도록 각인되기 때문이다. “제비꽃에서 오는 추억은 유년의 작은 동심, 그러나 전 우주 같은 크기다.”(「다시 봄」) “나는 너이고 싶다”는 고백에서 보듯 산수유를 대하는 솔직하고 밝은 마음도 그렇다.(「산수유 꽃망울 터지듯」)
*다시 봄
티벳에서처럼
차마고도에 이르기 위해 두 손 모아 땅에 낮게 절하고
생각과 몸과 말을 부처님께 바쳐서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나는 둔치,
이 꽃무더기 아래 납작 엎드려 순례의 길에 들겠다
벚꽃잎 눈처럼 내려
마음이 그 겨울 한복판에 서니
모든 장면은 수묵화처럼 한 폭에 들어가고
지나가던 물오리
짧은 목으로 뒤를 돌아보는 이 순간,
이 순간이 멎겠다
한 줄기 햇살의 장난
다시 봄
*담쟁이
날 닮은 모습인가
온 시선
던져놓고
잎마다 마음 얹어
떠난 널 기다리네
보고파
버티게 하는 힘
내가 아닌
너라는 벽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서현
1991 불휘문학회2018 《강원문학》 신인상 시부문 등단2018 원주문인협회, 강원문인협회 <시집>『왜 그토록 수달을 찾아 헤맸을까?』
목차
3 시인의 말
Ⅰ 다시 봄
10 다시 봄
11 제비꽃
12 산수유 꽃망울 터지듯
13 라일락 향기
14 목련
16 아침을 위한 낭송
18 봄, 봄
20 보문사의 봄
22 화살나무
24 마음의 활
26 나를 설레게 하는 연두
Ⅱ 방울토마토 사랑
28 햇무리
29 능소화
30 부석사에서
32 차경(借景)
33 대서 무렵
34 치악산 몸부림
36 더 이상 시들어가지 않도록
38 바람
40 막국수
42 하얀 춤
43 고마리
44 장마
45 나에게
46 산을 오르며
48 잠 못 드는 밤
50 오디의 밤
52 방울토마토 사랑
54 느린 잠을 타고
Ⅲ 지나간 비는 기억하지 않는다
56 오늘은 어디로 가는가?
58 너에게 가는 시간
59 용문사의 가을
60 단풍
62 노을
63 커피 머신
64 계절의 경계엔 항상 비가 내린다
66 자책
67 기도
68 우리 집 감나무
70 저녁이 좋아
71 건조
72 줄음질
73 사포질
74 남편
76 지나간 비는 기억하지 않는다
Ⅳ 기억의 선명도
78 I won’t give up
80 ‘석일공예 목공소’에서
82 겨울 마중
84 미리보기
85 웃는다 찰칵!
86 시인을 위한 시
88 기억의 선명도
89 목디스크
90 노안
92 겨울 판화
94 손길
95 폭설
96 겨울, 이포보에서
98 왜 그토록 수달을 찾아 헤맸을까?
Ⅴ 일상의 기적
102 과거를 사랑하는 힘
103 유심
104 절단
105 안동산불
106 골목 모퉁이
107 담쟁이
108 다시 출산
110 빨강 여름 같은 여자
111 생각이 깊어져서
112 일상의 기적
해설 _최연수(평론가)
116 _시와 일상의 미적 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