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농산어촌 의료 사각지대에서 40여 년간 보건진료소장으로 일해 온 박도순 작가의 편지와 일기를 엮은 산문집이다. 간호대 입학 시절 아버지의 편지로 시작해 첫 발령지 구천동의 기록, 의료와 삶의 경계를 고민한 서신까지 한 인간의 성장과 헌신이 담긴 농촌 보건의료의 현장이 펼쳐진다.
“환자는 증상 집합체가 아니라 삶의 맥락이 얽힌 사람”이라는 신념 아래 주민과 환자를 돌본 이야기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의료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손편지가 사라진 시대에 느린 기록의 정서를 복원하며, 삶의 갈림길마다 글로 마음을 건네던 시간을 따뜻하게 되살려 주는 산문집이다.
출판사 리뷰
“40년간 편지와 일기로 담은 농촌 간호 이야기”
박도순 산문집 『바람의 초상』 출간
― 보건진료소장의 삶으로 기록한 가장 따뜻한 한국 보건의료 이야기
『도서출판 윤진』은 40여 년 가까이 보건진료소장으로 활동해 온 박도순 작가의 산문집 『바람의 초상』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박도순 진료소장이 간호대학 입학 시절부터 보건진료소장으로 퇴직을 앞둔 현재까지 가족·친구·스승과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를 엮은 기록문학이자 한 인간의 성장과 헌신이 응축된 삶의 초상이다.
『바람의 초상』의 첫 장은 1986년 3월, 간호대학에 진학한 딸의 안부를 걱정하며 아버지가 보낸 편지로 열린다. 맞춤법은 서툴러도 진한 부성과 애틋함이 묻어나는 문장이 독자의 마음을 단숨에 잡아당긴다. “몸 성히 진학하느냐”로 시작하는 아버지 편지에는 농촌의 일상과 공부한다고 타향으로 나간 자식을 향한 온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보건진료소는 약국도 없고 병원도 없는 농산어촌 의료 사각지대 주민을 위하여 설치 운영되고 있는 최소 규모의 공공 보건의료시설이다. 박도순 소장은 첫 발령지인 무주 구천동에서 지역 주민과 피서철 관광객을 진료하며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도 간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환자는 증상 집합체가 아니라 삶의 맥락이 얽힌 사람”임을 강조한다. 보건진료소가 작은 포스트라고 해서 가벼운 증상의 환자만 오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생생한 일화들을 소개하며 전달한다. 이는 농촌 간호 현장에 사람 살리는 의료와 ‘사람’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제1부 ‘몸 성히 진학하느냐’: 간호대 입학 후 가족·연인·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
제2부 ‘오지 않는 새’: 첫 발령지 보건진료소에서 상주하며 써 내려간 일기와 편지
제3부 ‘갈림길’: 주민 건강 문제 앞에서 외면과 돌파 사이에서 고민을 나눈 박사님과의 서신
제4부 ‘이정표’: 간호학 교수와 나눈 편지와 간호 철학의 깊이를 더해가는 기록
제5부 ‘길에서 만난 사람들’: 농촌 간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순간을 사진과 함께 담아낸 섹션
손편지가 사라지고 빠른 메시지가 하루를 대신하는 시대, 『바람의 초상』은 잊어버리기 쉬운 시간의 층위를 채집한 느린 기록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삶의 갈림길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글로 마음을 건네던 시절의 정서를 소중히 복원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길 산문집이다.
서문
나와 너
온갖 참된 삶은 만남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관계’ 속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나’는 ‘너’와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이다. 『바람의 초상』은 그 말의 가치와 깊이를 오롯이 실감하게 만든다. 이 책은 박 소장님이 간호학과에 입학한 20대 초반부터 보건진료소장으로 은퇴하기까지 40여 년간 농촌 간호 현장에서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를 담은 삶의 초상이다. 이 기록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며 간호 실무 전문서도 아니다. ‘나’와 ‘너’가 만나 시간 속에서 빚은 관계의 산물이며, 한 사람이 간호사로 살면서 타인의 삶과 고통을 얼마나 정직하고 따뜻하게 때로는 얼마나 치열하게 감당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고백서이다.
지난가을이었다. 무주로 여행을 갔다. 그때 들렀던 장안보건진료소 사택에 쌓인
서류뭉치를 지금도 기억한다. 가족과 주고받은 손 편지, 연인과 주고받은 연애편지, 출력된
이메일까지 꼼꼼하게 정리하여 서류철에 보관한 흔적들. “아니! 이런 것이 어떻게 아직도
남아 있는 거죠?”라는 질문에 소장님은 “너무 소중해서 차마 버릴 수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버려지지 않은 그 기록들은 단지 개인의 아카이브가 아닌 관계의 표식이며, 이 책으로 탄생하게 만든 숨은 공력자라 아니 할 수 없다. 「관계」 덕분에 한 간호사는 고립된 농촌 오, 벽지 간호 현장에서 ‘너’를 마주하며 ‘너’를 기다리며 ‘나’를 견디며 나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소장님이 일하는 보건진료소. 그 공간에 오시는 환자들은 밝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명랑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보건진료소에 별로 오지 않습니다.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를
풀어놓고 어두운 이야기를 풀어놓죠.” 진료가 끝난 후 문을 나서는 환자의 뒤태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그대로 진료실 안에 남아 그녀는 그들이 놓고 간 아픔과 슬픔에 젖어 허우적거리다가,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되뇐다. 그러나 그녀는 매번 다시
일어선다. “나는 다시 아프고 슬픈 누군가의 삶을 기꺼운 마음으로 동행하리라. 그것이 신이
나를 부르신 목적일 것이고, 일단 그렇게 살아보자” 다짐하면서. 이 문장은 이 책의 중심에서
조용히 빛난다.
특히 간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무게와 농촌 간호 현장의 복잡함을 어떤 이론서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에 담겨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 마주하는 환자들은 낯선 사람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람, 동네 어르신들,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다. 이러한 비-익명성의 관계 안에서 박 소장님의 역할은 더 미묘해진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논문에서 설명하는 간호사와 어려운 환자와의 대인관계는 농촌 간호사의 너무 알아 어려운
관계 맺기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너무 잘 알아서, 너무 오래 알아서, 오히려 불편한 거리. 그 속에서 간호사로서의 자아와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모습에서 간호사와 대상자 관계에 대한 소장님의 깊은 고뇌를 느끼게 한다.
진료실에서 소장님은 진심으로 환자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증상은
그 자체로 생의 아픔이며 삶의 역사다. “찬바람이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머리가 시리시리
해가꼬 수건을 머리에 똘똘 말아서 쫌매야 잠이 오지, 그냥 못 잔당께요.” 이 말을 진료 기록지에 어떻게 옮겨 적어야 할까. 고민은 단지 임상 용어를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증상 속에 스민 삶의 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호사로서의 청안(靑眼)이 깃들어 있다. 진료의뢰서에 어떤 철자로 적어 보냈을지 소장님을 만나게 되면 꼭 묻고 싶다.
소장님은 질문한다. “경청과 공감에 지쳐버린 간호사는 누가 돌봐줘야 하는가?” 환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의료진에게 쏟아낸다. 그러나 간호사는, 돌보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어디에
쏟아야 할까?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을 쓰는 행위로 해소합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죠. 씻김굿처럼. 글밭 고랑 사이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웅크린 채 쓰고 읽다 보면,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인류가 되어버린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쓰기를, 책 읽기를 도무지 끊을 수 없어요” 이 고백은 지난한 농촌 간호 현실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관계를 이어가고, 믿고 견디며 버틴 한 존재의 생존 방식이다. 간호사란 결국, ‘자기 고통쯤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지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지켜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본문 곳곳에 후배 간호사들과의 만남도 등장한다. 일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만나는 중이고, 곧 꽃도 만나고 토끼도 만나겠죠. 제가 지나오는 길에 보았던 나무는 더 자라 있을 것이고. 꽃은 졌을 것입니다. 맹수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날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다만 지나온 길에 만난 나무와 맹수를 보여주면서도 후배들은 그 길에서 다른 꽃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자세는 진짜 선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겸손이고 사랑이 아니겠는가.
『바람의 초상』은 또한 한 여성으로서의, 한 어머니로서 삶의 고백이기도 하다.
보건진료소를 집 삼아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읍내로 원거리 통학을 시키고, 보건진료소 고유 업무와 가족 사이에서 자주 갈등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무 반짝거리는 것만 드러낸 것 같아 미안하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라. 반짝거리는 빛 아래에 녹아 흐르는 눈물과 가시까지도 미루어 읽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말은 소장님이 살아낸 삶, 그리고 이 책 자체를 설명해 주는 본연 자체이다.
이 기록은 간호사가 쓴 글이지만, 간호사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바치는 조용한 찬가이며, 진심으로 존재 자체인 모든 이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존재에 대한 사색, 삶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이처럼 투명하고도 따뜻한
기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를 돌보고
있는가. 나의 ‘너’는 누구인가. 너의 ‘나’는 누구인가.
이 책이 저마다 은밀한 귀소 본능을 책꽂이에 채우며, 저마다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나’들이 새로운 ‘너’를 만나 다시 한번 참된 삶의 자리로 저벅저벅 걸어가기를.
2025년 부산 동아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유정옥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도순
40여 년 가까이 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한 간호사. 간호대학 졸업 후 보건진료소장으로 무주군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퇴직을 앞두고 있다. 「간호는 예술」이라는 신념을 간호 철학으로 삼고 있다. 삶의 맥락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간호를 실천하며 삶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을 기록한 편지와 일기를 묶어 산문집 『바람의 초상』을 펴냈다. (사)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작가회의, 대한간호협회, 한국농촌간호학회 회원.
목차
제1부 몸 성히 진학하느냐 | 1986∼1988
우리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선생님
일기1
사랑하는 이에게
제2부 오지 않는 새 | 1989∼1998
발령
결혼
제3부 갈림길 | 1999∼2016
박사님께 소장님께
일기2
제4부 이정표 | 2016∼2021
교수님께 소장님께
제5부 거기 사람 있어요 | 2019∼2025
일기3
길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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