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수운 최제우의 구도와 득도, 해월 최시형의 도통 계승과 포덕, 그리고 동학농민혁명·동학의병전쟁으로 이어지는 동학-천도교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서사로 복원한 작품이다. 저자는 사람과 현장을 중심으로 동학의 실체를 재구성한다.
여시바윗골에서의 신비한 체험, 용담정의 창도 선언, 은적암의 경전 집필과 호남 포덕뿐 아니라, 해월이 산하를 전전하며 펼친 마당포덕,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라 가르친 법설, 탄압 속에서도 접을 재건한 행적 등이 드라마처럼 살아난다. 동학농민혁명의 장대한 역사가 세밀하면서도 거시적인 전망하에 펼쳐지고, 우금티·백화산·대둔산 등에서 이어진 항쟁과 순도의 순간까지, 동학의 길은 생동하는 장면들로 엮인다.
이 책은 동학을 낡은 민란이나 종교가 아닌, 인간 존엄·자주·평화·공동체를 향한 근대적 자각 운동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그동안 소외되었던 동학의병전쟁과 전국적 기포를 입체적으로 정리해 동학농민혁명의 ‘항일구국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부각한다. 이 책은 동학의 진실을 복원하는 동시에, “사람이 하늘”이라는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밝히는 가장 충실한 대중서이자 현대적 인간학의 안내서다.
출판사 리뷰
수운에서 동학 항일의병전쟁까지,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인간 개벽사, 166년!
『모두가 하늘이었다』는 동학의 166년 역사를 한 권에 아우르되, 단순한 사건 배열이나 교리 해설을 넘어 한 인간의 깨달음이 어떻게 공동체의 실천이 되고, 민중의 혁명이 되며, 국가적 항쟁이 되고, 결국 한 시대의 정신으로 남았는지를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동학을 종교적 영역에만 가두지 않고, 인간학·철학·역사·민중운동·근대정신·공동체 사상의 영역까지 확장해 설명하는 최초의 대중적 서사 작업이다. 수운 최제우의 ‘한울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동학이 해월 최시형의 실천적 내실화를 거쳐, 손병희와 전봉준 등 수많은 동학 농민·의병의 피와 삶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근현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의 뿌리로 남는 과정을 한 연결선으로 복원한 점에서 이 책의 의의는 매우 크다.
1. 수운 최제우 — 한 인간의 내면에서 열린 하늘, ‘사람이 하늘’의 탄생
수운 최제우의 깨달음은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상실·불안의 삶을 온몸으로 겪으며 시대의 절망을 보았던 한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붙들고 치열하게 탐구한 끝에 진리의 세계에 도달한 결실이다. 그는 청년기 내내 조선 신분제의 허위, 수탈과 부패, 굶주림 속의 백성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고, 유도와 불도 등 기존의 정신지도 체계가 와해된 상황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극복할 길을 찾기 위해 방황(구도)의 길을 걸었다. 이 시대적 고통이 내면에 깊이 새겨지면서 그는 “무너진 세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도는 무엇인가?”를 묻게 되었고, 이 물음은 곧 구도자의 길로 이어졌다.
여시바윗골에서의 신비로운 체험은 그가 하늘이 인간에게 응답할 수 있음을 직감한 첫 순간이었다. 그러나 수운은 그 체험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리의 근거를 찾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양산 천성산의 적멸굴과 내원암에서 두 차례 49일 기도를 결행했다. 비록 기대한 ‘큰 도’를 얻지 못했으나, 이 수행은 그의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번뇌를 내려놓고, 하늘의 뜻을 구하고, 인간의 삶을 근본에서 다시 세우려는 결심을 굳히는 시간이었다.
고향 용담으로 돌아온 후 수운은 자신의 모든 체험을 천천히 회고하며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갔다. 여시바윗골의 체험, 수행 속의 집중, 길 위에서 본 백성들의 고통이 한 지점에서 응결되던 순간, 용담정에서 그는 마침내 인간과 하늘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실존적 깨달음을 체득한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라는 선언(한울님의 계시)은 바로 이 순간 탄생했다. 하늘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삶 속에 드러나는 근원적 존엄이라는 새로운 인간학이었다.
그는 1년여 동안 이 깨달음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며 동학의 사상적 체계를 정리했다. 이어서 포덕을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교리 전파가 아니라, 백성들의 삶 한가운데에서 그들의 고통을 듣고, 인간의 존엄을 다시 세우며, 새로운 문명 세계를 지향하는 다시개벽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수운의 가르침은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기존 권력에 위협이 되었다. 탄압이 시작되자 그는 은적암으로 피신하여 동학의 체계 정립(경전 저술)으로 동학의 장래를 공고히 했고, 이후 접주제를 도입하여 동학이 전국적 공동체로 확장될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
그러나 수운은 결국 혹독한 탄압 속에서 체포되고 순도의 길을 걷는다. 그는 죽음으로 몰리는 순간에도 자신의 가르침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동학이 끝났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동학이 사람들 안에서 새로운 실천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시작점이 되었다.
2. 해월 최시형 — 수운의 깨달음을 현실 속 삶으로 옮긴 실천의 지도자
해월 최시형은 수운의 도통을 이어받은 후, 동학을 실제 민중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실천적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의 삶은 한 인간이 스승의 뜻을 어떻게 몸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학의 두 번째 중심축이었다. 수운이 사상적 근거를 세웠다면, 해월은 그 사상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삶의 방식’을 만들었다.
해월의 마당포덕은 동학의 인간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실천이었다. 장터, 마을 어귀, 농부의 집 마당에서 그는 백성들에게 사람이 하늘이라는 진리를 생활의 언어로, 몸짓과 삶의 자세로 전했다. 그의 가르침은 관념이나 종교적 기적이 아니라 백성의 삶을 바꾸는 윤리·태도·관계를 정립하는 실천적 사상이었다.
해월은 ‘대인접물(待人接物)’이라는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동학을 사실상 하나의 공동체 철학으로 정비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하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삶의 중심에 두는 윤리를 세웠다. 이것은 조선 후기의 신분제 사회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혁명적 사유였다.
수운 순도 이후 탄압이 극심해졌지만 해월은 수배 속에서도 포덕을 멈추지 않았다. 밤에는 도피하고 낮에는 백성을 만나며, 그는 지도 체계를 재건하고 접주들을 조직했다. 그의 실천은 동학이 단절되지 않고 전국적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마침내 그는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자신의 사상을 굽히지 않았으며, 수운과 같은 순도의 길을 걸었다. 해월의 죽음은 동학의 끝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임을 자각하게 하는 불씨가 되었고, 이는 곧 동학농민혁명과 동학의병전쟁으로 이어진다.
3. 동학농민혁명과 동학의병전쟁 — 인간 존엄을 위해 목숨을 건 민중의 분출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은 탐관오리 처벌과 부패한 구조의 변혁을 넘어서, 동학이 밝힌 인간 개벽의 정신이 직접 역사 속으로 들어온 장면이었다. 전봉준은 혁명가이기 이전에 동학의 인간관을 삶에서 실천한 사람이었고, 혁명은 민중의 각성이 집단적 실천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고부기포, 백산기포, 황토현·황룡촌 전투, 전주성 점령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늘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나선 ‘삶의 투쟁’이었다. 전주성 점령 후 제시된 27개조 폐정개혁안은 부패한 구조를 넘어 새로운 사회 질서를 제안한 문서로, 한국 근대 개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청·일 군대의 개입은 조선의 개혁 의지를 짓밟았고, 혁명은 더 큰 폭력 속으로 휘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굴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동학의 두 번째 봉기인 동학의병전쟁(일명 동학농민혁명 2차 기포)이 시작된다. 남접과 북접이 손을 잡고 전국 곳곳에서 의병군이 기포했다. 손병희가 해월의 명을 받들어 전봉준과 합류하여 남북접 대연합이 이루어졌고, 그 밖에 김개남·손화중·최경선 등 지도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의 존엄과 하늘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였고, 우금티·북실·남원·백화산 등지에서 처절한 항전을 이어갔다.
일본군의 무차별 학살 속에서도 백성들은 솥뚜껑, 문짝, 낫과 괭이로 무장하며 끝까지 맞섰다. 동학의병전쟁은 군사적 승패를 넘어, 한 민족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간적 항쟁의 기록이다. 지도자들은 모두 참혹한 최후를 맞았지만, 그들의 죽음은 시대가 감당할 수 없었던 인간 존엄의 진리를 확인하는 행위였다.
4. 동학의 정신이 20세기–21세기 한국 사회에 남긴 유산
동학은 19세기 말의 운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정신은 천도교로 이어지고, 1919년 3·1운동의 중심에 서며, 한국 근현대사의 밑바닥에서 조용히 흐르는 ‘정신의 주류’가 되었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는 동학의 인간관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민족의 독립은 특정 계층의 권리 회복이 아니라, 하늘을 지닌 각 개인의 존엄을 세계 앞에 천명하는 사건이었다. 애국계몽운동, 어린이 인권운동, 지역 교육운동, 농촌 계몽 역시 모두 동학의 인간 중심 사상이 사회운동으로 확장된 흐름이다.
해방 후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도 동학의 정신은 “백성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원리로 계속 작용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시민의 참여, 공동체적 연대는 동학의 인간학이 사회적 층위로 확장된 결과였다. 21세기에 들어 동학은 생태·평화·공동체 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자원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 존재 상호성, 경물(敬物)의 윤리 등은 현대 문명 전환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5. 동학 166년을 ‘하나의 인간 이야기’로 재구성한 최초의 작업
『모두가 하늘이었다』는 수운–해월–의암–동학농민군으로 이어지는 동학의 전 역사를 하나의 흐름, 하나의 정신, 하나의 인간 이야기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 동학의 역사·사상·사람·운동·현장을 각각 분리해 다루던 기존 서술과 달리, 이 책은 동학의 탄생–실천–혁명–항쟁–계승–현대적 의미까지를 관통하여 보여준다.
이 책은 동학을 단지 종교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한 시대의 인간이 자신 안의 하늘을 발견하고, 그 하늘을 삶에서 실천하며, 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기어이 현실로 바꾸려 했던 인간 개벽의 역사로 그린다. 또한 여시바윗골, 용담정, 은적암, 보은 북실, 황토현, 우금티, 백화산 등의 실제 지명을 통해 독자가 동학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험하는’ 역사로 재구현한 점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이 책은 166년의 시간을 흐르는 하나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존엄한가?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수운의 깨달음, 해월의 실천, 전봉준의 결단, 이름 없는 농민들의 항쟁, 의병들의 최후는 이 질문 앞에서 분명한 길을 보여준다. 하늘은 멀리 있지 않으며, 인간은 그 하늘을 현세에서 완성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
이 책은 그 길을 다시 밝히는 책이며, 동학을 오늘의 독자에게 새롭게 건네는 21세기 개벽의 서사다.
을묘천서乙卯天書 이야기는 선생께서 직접 거론한 적은 없지만, 선생의 제자 강시원(강수)이 지은 『최선생문집도원기서』 등 동학 초기 역사서에 전해지고 있다. 다만 수운 선생이 지으신, 늙은이와 젊은이가 꿈속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인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에 “…잠을 놀라 살펴보니 불견기처不見基處 되었더라.”즉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살펴보니, 그곳에 아무도 보이지 않더라.’ 등 을묘천서와 닮은꼴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설화를 낳은 체험이 어떠한 형태로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수운 선생은 득도 후에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라고 그 기쁨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기쁨만 계속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무왕불복’이란 수운 선생의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세상에 기쁨만 있고 굴곡과 고난은 없는 그런 경우는 없다. 가면 오는 것이고 오면 가게 되어 있다. 자신과 가족이 겪어야 할 고난을 예감하고 있었다. 도를 받았다는 것은 고난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굳센 다짐이기도 했다.
순도 30년 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30년 전 수운 선생이 대구의 경상감영에서 악형의 고문을 받다가 넓적다리가 부러지며, 벼락을 치는 소리에 모든 관리가 놀래자빠졌다는 그 1월에,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혁명의 서막을 열게 된다. 특히 수운 선생이 조선 왕조의 칼날에 목이 떨어진 그 참형의 30년 후 혁명의 본격 출발을 선언한 대규모 봉기인 무장기포와 혁명군의 명분과 조직을 완비하여 전봉준 접주를 대장으로 추대하였던 백산대회가 모두 3월에 기포한 것은 수운 선생의 순도인 3월과의 관계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순도는 동학의 끝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1958년 2월 25일(음)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서 태어났다. 1989년~2024년까지 《전북일보》, 《전주신문》, 《전북도민일보》, 《브레이크뉴스》, 《천도교신문》, 《브릿지경제》, 《오마이뉴스》 등에 칼럼, 논단, 특별기고, 시민기자 등 역사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벗』, 『신인간』 등에 동화·종교 이야기 등 총 1백여 편을 기고했다. 특히 수운 최제우 선생 탄신 200주년과 동학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모두가 하늘이었다’를 2024년 10월 2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오마이뉴스》에 74화에 걸쳐 연재하였다. 2025 동학·천도교 문화대상을 수상했다. 동학혁명연구소 소장,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준)동학농민혁명선양사업회 회장, 정치개혁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지도위원,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천도교인권도덕실천회 회장, 세계종교평화협의회 이사, 천도교선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만고풍상 겪은 손』(신인간사, 2014), 장편소설 『혁명』(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8), 『동학농민혁명 이야기』(거름, 2019)이 있다.
목차
제1편 천년의 적막을 깨다
1. 동학의 근원을 찾아서
2.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창건하니
3. 동학이라 이름하고
4. 삼절의 수를 잃지 말라
5. 들불처럼 타오르는 동학
6. 동학, 동방의 가르침이다
7. 거룩한 이의 죽음
제2편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열다
동학농민혁명과 동학의병전쟁
1. 거부할 수 없는 운명
2. 교조신원운동, 백성은 나라의 주인
3. 혁명의 불꽃이 치솟다
4. 외세 개입, 청군과 일본군의 상륙
제3편 나라 위한 붉은 마음
1. 갑오왜란, 동학의병전쟁
2. 청일전쟁, 동아시아 패권을 일본이 차지하다
3. 동학의병군 총기포령, 남북접 연합전선
4. 최후, 나라 위하는 오직 붉은 한마음 그 누가 알리오
5. 동학의병전쟁을 주도한 의병장의 최후
6. 동학의병항쟁, 전국적인 기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