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정숙과 작곡가·음악감독인 심연주가 서로에게 보낸 34통의 편지를 통해, 창작자의 삶을 통과하는 고난과 회복의 시간을 기록한 서간 에세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작업실에서 겪는 막막함, 무대와 음악 사이에서 반복되는 슬럼프, 그리고 병과 우울이 드리워진 시기를 숨기지 않는다. 편지는 이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한 조언이나 위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서로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힘―정직한 말, 꾸준한 응답, 함께 버티는 자-을 보여준다.
각각의 편지는 과장 없이 담담하게 이어지지만, 창작자의 내면을 관통하는 긴장과 결심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짧은 문장 속에서 작업의 지속 가능성, 예술의 의미, 삶의 균열을 견디는 방식이 조용히 탐색된다. 빠르게 소모되는 메시지의 시대에 이 책은 느린 글쓰기로 서로를 붙들어 온 두 예술가의 관계를 통해, 창작자가 어떻게 스스로를 회복하고 다시 무대와 악기로 돌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적 기록을 넘어, 예술로 생계를 이어가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담백한 용기를 건네는 작품이다.
출판사 리뷰
자신을 다시 빚어내는 두 사람의 내밀한 변주
빠르게 스쳐가는 말들, 화면 속에서 즉시 사라지는 메시지들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깊은 대화”를 잃어가고 있다. 그 공백을 메우듯, 극작·연출가인 김정숙과 작곡가·음악감독인 심연주는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잠깐의 위로도 아니고, 일상의 보고도 아니고, 그저 “지금의 나를 정확하게 건네기 위한 느린 기록”이었다. 그렇게 오간 34통의 편지가 엮여 『창작과 삶 사이, 편지가 있었다』라는 한 권의 서간 에세이가 탄생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두 저자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다시 빚어내는 방식에 있다. 편지는 두 사람을 지탱하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일종의 광학 장치처럼 기능한다. 심연주는 김정숙의 언어에서 새로운 감정의 리듬을 발견하고, 김정숙은 심연주의 직관에서 자신이 놓쳤던 삶의 색을 읽어낸다. 이 교차하는 이해의 구조는 흔히 말하는 우정의 범주를 넘어선다. 두 사람은 서로의 거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가능성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빛의 입자”처럼 작동한다.
물론 이 편지들이 기록하는 것은 가벼운 감상이나 감정의 공유가 아니다. 이 책은 창작자가 겪는 슬럼프, 우울, 투병 생활, 공허함, 무대 뒤의 조용한 피로감 등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이 기록이 단순한 고통의 나열이 아닌 이유는, 편지 속에서 고통이 언제나 “어떤 전환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창작이 때로는 막혀 있더라도, 우울이 가라앉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그 어려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떤 새로운 시도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서로에게 묻는다.
이 책은 단순히 ‘견디는 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다시 살아낼 것인가, 어떻게 다시 창작의 감각을 회복할 것인가를 꾸준히 탐색하는 기록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 각성에 가깝다는 점이다. 예술가에게 위로는 필요하지만, 때때로 위로는 스스로를 더 깊은 무력감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그러나 두 저자의 편지는 “괜찮다”는 말보다는 “다시 일어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의 목소리에 가깝다. 그 정직한 언어들이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누군가는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잊고 지낸 감정의 결을 발견할 것이다. 편지는 그렇게 개인의 내면을 건드리고, 다시 외부를 향하게 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책의 문체적 특징이다. 두 사람의 문장은 짧고 건조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온도가 미세하게 살아 있다. 과잉된 은유나 장식적 문장 대신, 감정의 핵심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독자는 화려한 말이 아니라, 담백한 문장 속에서 삶의 진짜 밀도를 느낄 수 있다. 무대의 조용한 빛, 피아노 앞에서 머뭇거리는 손가락, 눈발이 흩날리는 버스정류장, 작업실을 채우는 새벽의 공기. 이러한 이미지들은 과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 속에 머문다.
『창작과 삶 사이, 편지가 있었다』는 창작자의 책인 동시에,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책이다. 창작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기획하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10~30대 여성 독자—커리어 우먼, 예술 전공자, 콘텐츠 제작자, 프리랜서 창작자—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더 나아가 10~40대 남성 독자 역시 일과 삶의 균형, 자기 정체성의 회복, 미래의 설계라는 보편적 질문 속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이 보내온 편지가 결국 다음과 같은 진실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들어 간다.”
창작과 우정, 고난과 회복, 예술과 일상 사이를 오가는 이 편지들은 독자의 삶에도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 책을 덮고 나면 어느새 마음속에 누군가에게 쓰지 못했던 편지가 떠오른다. 자신의 가능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꿈꾸기 위해, 혹은 그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빛나게 하기 위해.
그렇게 이 책은 두 사람의 기록을 넘어,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창작과 삶은 언제나 서로를 향해 길을 열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한 권이다.
삽화_ 정수미
프리랜서 무대 디자이너. 세트 작화 팀장 및 무대 세트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강아지똥〉 〈숙영낭자전을 읽다〉 〈심청전을 짓다〉 〈춘섬이의 거짓말〉 등이 있다.
연극을 하면서 나의 관심사는 언제나 무대와 배우와 관객이었어. 그들 사이에 내 이름은 뭐랄까, 거창하게 작가, 연출, 제작이지만, 난 핑계 혹은 이야기, 또는 뭐라 해야 하나…, 난 그들을 ‘모시는 사람’이지. 그들 사이에 이야기가 흐르는 것을 보는 사람. … 주모네 주모!
오늘도 걷기 위해 나왔습니다. 운수 좋은 날입니다. 하얀 눈이 적당히 내렸거든요. 눈 쌓인 길을 걷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얀 땅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도 의미 있게 느껴지고요.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 놓이지 않는 자 없을 거예요. 행복한 순간보다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더 많은 게 인생이고요.
제가 목격한 위대한 인간들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고통 앞에서 겸허하고 고통 속에서 성장합니다. 어둠이 빛으로 승화하는 순간. 삶의 학교에서 배우는 가장 큰 보석 같은 거.
전 위대한 인간은 못 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기특한 일은 한 것 같습니다. 불행을 축복처럼 여기고 사니까요.
결국, 선생님에게 다시 검사해 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안다. 그 말씀이 내게 먼저 달려와 온통 먹구름 속에 허우적대게 만들었다는 것을….
진찰실을 나오며 나는 오히려 맑음이 되었어. 이제, 다 멈추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을 때까지 나는 휴업이다!!!
아무것도 미리 걱정하지도, 반성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테다.
단지,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서 ‘멍’ 때리고 싶다.
연주야.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정숙
극작가, 연출가, 극단 모시는사람들(1989) 대표.33만의 관객을 모으며 대학로 소극장 창작연극의 신화가 된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을 비롯, 뮤지컬 〈들풀〉 〈블루사이공〉 어린이극 〈반쪽이전〉 〈강아지똥〉 〈내꺼야〉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국적 정서가 깃든 작품을 창작했다. 저서로는, 『블루사이공』(1997), 『쌀밥에 고깃국』(2005), 『오아시스에서 사랑을 꿈꾸다』(2007), 『들풀Ⅱ』(2014),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2015), 모들씨어터북 『블루사이공』(2019) 『조선여자전』(2025, 이상 모시는사람들) 등이 있다.
지은이 : 심연주
극음악앙상블 Dramusician 대표, 극단 벼랑끝날다 상임 작곡가 겸 음악감독.연극 〈방정환의 사랑의 선물〉 〈내꺼야〉, 음악극 〈카르멘〉 〈클라운타운〉 〈낭만 드라이브〉 〈더클라운〉 〈십이야〉 〈알퐁스도데의 별〉 〈그래도 조이풀〉, 뮤지컬 〈시블링시블링〉 외 다수 작곡 및 음악감독, 음악극 〈그래도 조이풀〉 총괄 프로듀싱 및 드라마터그, 소우시노학회 〈윤동주를 노래하다〉 전곡 위촉 작곡 및 공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제작 음악극 〈수박등사람들〉 작곡 및 음악감독, 서울시 한양도성문화제 주제곡 〈한양도성의 꿈〉 작곡, 서울예술단 30주년 기념공연 〈놀이〉 음악감독, 원주시립합창단 오페라 〈이화이야기〉 조연출 및 연기감독, 한국독일합작 음악극 〈슈바르츠발트왕자〉 연출, 극음악앙상블 Dramusician 단독 콘서트. 2020 서울연극인대상 음악부문 스태프상 수상, 음악극 〈그녀를 구하라〉 2015 의정부음악극어워드 대상을 수상하였다.
목차
서문 / 김정숙·심연주
추천사 / 황훈성
#1 심연주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 다시 다빈치처럼
#2 심연주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 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날
#3 김정숙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 하루를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
#4 심연주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 오늘도, 강아지똥을 새롭게
#5 심연주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 ― 멍의 터널을 지나며
#6 김정숙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 걷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노래
#7 심연주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 내 꿈은 우리였다는 걸 알게 되다
#8 심연주에게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 연극은, 사랑으로 남는 것
#9 김정숙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 희망도 절망도 없이, 오늘도 쓴다
#10 심연주에게 보내는 일곱 번째 편지 ―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연극
#11 심연주에게 보내는 여덟 번째 편지 ― 아하! 강아지똥
#12 김정숙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 ― 딸국이와 나, 다시 시작하는 하루
#13 심연주에게 보내는 아홉 번째 편지 ― 엄마, 저 이제 제 힘으로 살아볼게요
#14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 번째 편지 ― 강아지똥의 민들레가 되기까지
#15 김정숙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 나에게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오는 걸까
#16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한 번째 편지 ― 마음속 작업실에 불이 켜지는 날
#17 김정숙에게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 외로움은 고독으로 두려움이 사랑으로
#18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두 번째 편지 ― 오늘은 그런 날
#19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세 번째 편지 ―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20 김정숙에게 보내는 일곱 번째 편지 ― 나의 음악, 피아노, 그리고 우울증…
#21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네 번째 편지 ― 이제는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는 연극을 향하여
#22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다섯 번째 편지 ― 내가 나를 살리는 날
#23 김정숙에게 보내는 여덟 번째 편지 ― 나의 작은 두 발로, 다시 처음부터
#24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여섯 번째 편지 ― 말은 줄이고 마음을 묻는다
#25 김정숙에게 보내는 아홉 번째 편지 ― 다친 손가락, 그래도 피아노…
#26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일곱 번째 편지 ― 오늘도 그 집엔 달이 뜬다
#27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여덟 번째 편지 ― 꿈을 손에 꼭 쥔 여자, 에딘버러를 걷다
#28 김정숙에게 보내는 열 번째 편지 ― 음(音)의 어부, 사랑으로 그물을 던지다
#29 심연주에게 보내는 열아홉 번째 편지 ― 진짜 모시는 사람, 우리 집 아저씨 이야기
#30 김정숙에게 보내는 열한 번째 편지 ― 나의 행복 리스트
#31 김정숙에게 보내는 열두 번째 편지 ― 사십이 넘어서야 읽히는 ‘엄마’라는 여자의 일생
#32 심연주에게 보내는 스무 번째 편지 ― 내 꿈에 놀러 와
#33 김정숙에게 보내는 열세 번째 편지 ― 남편과 나, 우리의 러브스토리
#34 김정숙에게 보내는 열네 번째 편지 ― 마침표가 없는 마지막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