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칠리아로 향하던 1997년의 여름, “그때 나는 지중해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는 고백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호메로스의 항해와 바오로의 표류,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이 겹쳐지며, “파스텔로 그린 것 같다”던 바다의 기억이 한 사람의 의식의 주소지가 된다.
이어 고대올림픽의 스타디온과 제전, 지중해가 품은 평화의 시간까지, 스포츠가 문명과 삶의 마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좇는다. “내가 손에 쥔 것은 차이를 전제한 반복”이라는 문장은 지중해의 빛과 어둠, 기억과 현재가 교차하는 이 책의 태도를 요약한다.
“이 책의 성격은 자서전과 같다”는 말처럼, 스포츠를 취재한 기자의 시간은 올림픽과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같은 대형 이벤트를 따라 한 챕터씩 정산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 산 30년’을 언어로 선적해 남은 삶을 가볍게 하려는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시칠리아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흥분했다. 이탈리아반도 앞, 장화부리 맞은편에 있는 역삼각형의 섬은 물론 매력이 넘쳤다. 한동안 인기를 끈 시오노 나나미가 광기 넘치는 필치로 써내려간 포에니 전쟁의 무대. 문학을 공부한 나에게는 신화와 상상력의 보물창고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시칠리아가 지중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그때 나는 지중해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유니버시아드 개최지가 시칠리아였든 사르데냐였든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여러 이유 때문에 지중해에 매혹되었다. 짐작컨대 첫 길라잡이는 호메로스였으리라.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트로이 전사(戰史)를 줄줄 외웠다. 오디세우스의 위험한 항해를 몇 번이고 따라나섰다.
호메로스의 지중해는 달콤하지 않다.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아름다운 내해(內海)가 아니다. 곳곳에 죽음이 덫을 놓았다. 암흑을 향해 가는 통로, 저주받은 노꾼과 돛잡이의 바다다. 10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표류는 신이 저주한 결과가 아닌가.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를 매듭지으며 서둘러 오라고, 겨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오라고 두 번이나 당부한다. 지중해는 그토록 혹독하기에 건너는 길에 목숨을 걸어야 함을 알았으리라. 바오로는 체험을 통해 배웠다. 로마로 호송될 때 유라굴로(Εὐρακύλων)라는 겨울 광풍을 만난 그는 표류 끝에 몰타에 닿아 겨우 목숨을 구한다. 운명은 사마귀의 앞다리와 같다.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만나기 전에 목이 잘린다.
그 여름의 지중해를 나는 “파스텔로 그린 것 같다.”고 일기에 적었다. 파스텔 톤이라고 쓰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황금빛 태양이 카타니아대학교 스포츠센터의 하늘을 가로지르던 그 오후, 나는 지상의 그 무엇도 보지 못하였다. 정신을 온통 바다에 빼앗겼으므로. 바람은 때로 강하게, 때로는 어린아이의 한숨처럼 간단없이 주변을 스쳐갔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올이 코카콜라 상표가 인쇄된 베이지색 파라솔을 흔들었다. 몇 가지 생각이 팝업창처럼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오늘의 일을 글로 남길 것이다. 이 태양과 바람과 파스텔로 그린 듯한 저 바다와 피부를 저며 나가는 시간에 대해서.’ 그 일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신탁과도 같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나는 장 그르니에의 책 표지를 떠올렸다.
<지중해의 영감>은 그르니에가 한때 거주했거나 여행한 북아프리카 알제와 오랑,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를 접한 여러 나라, 도시들과 그 내면화된 인상의 반영이다. 산타크루즈, 카지노 바스트라나, 알제의 카스바, 비스크라, 메디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로마의 평원, 베로나에서 세빌리아까지, 프로방스와 그리스. 그는 고백하기를, “지중해를 따라가며 여행했던 그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리기 위해서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들은 내게 늘 살아 있다. 알제의 구릉 위에서 맞은 열기 가득한 밤들, 욕망처럼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하는 시로코 바람, 이탈리아의 눈부신 풍경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열정, 그것은 내게 있어서 없어지지 않을 현란함이었다.”라고 하였다.
그 여름, 그 시간, 그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영감’과 같은 것이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르니에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 지중해를 아스라이 바라보며 느낀 침묵과 고독이 그 순간 나에게서 가까운 어디에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냥 장 그르니에를, 그의 책을 기억했을 뿐이다. 그르니에는 내 의식의 담벼락에 저 코발트색 바다를 영원의 이미지로 못 박았다. 그르니에와 그의 책은 전단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성가셨으나 계속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지중해의 영감’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겠다고. 내용이나 주제는 상관없었다. 그냥 그 제목이면 됐다. 사막에 세운 빈 천막 같은, 이 허위로 가득 찬 다짐을 오랫동안 떨치지 못했다.
현대의 스포츠는 모두 스타디온의 산물이다. 올림픽부터 그렇다. 고대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서 서기 393년 사이에 4년마다 개최되어 제293회까지 계속되었다. 초기에는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달리는 스타디온 경기만 열렸다. 스타디온은 거리의 단위다. 200m에 채 못 미친다. 델포이에 있는 스타디온의 트랙은 실측한 결과 178.35m가 나왔다. 스타디온 경기가 열리는 장소도 스타디온이라고 했다. 라틴어로는 스타디움(Stadium)이다. 기원전 724년 제14회 대회부터 경기장을 왕복하는 경주가 추가됐다. 기원전 708년 제18회 대회부터 레슬링과 5종경기(멀리뛰기·창던지기·단거리경주·원반던지기·레슬링) 등 종목이 점차 늘어 전성기에는 13종목에 이르렀다. 그래도 달리기는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혔다.
고대올림픽은 올림피아에 신전을 둔 올림포스의 주신(主神)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祭典)이었다. 올림픽을 제전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신을 위한 잔치이기 때문이다. 운동 대회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신들에게 바친 제사였다. 젊은 사나이들의 잘 발달한 신체는 신들을 기쁘게 할 제물이었다. 올림픽은 인간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이행했음을 보여준다. 원시의 신은 살아있는 제물을 원했다. 멕시코의 고대경기장 치첸이트사에서 벌어진 축구 울라마(Ulama)는 승자의 심장을 제물로 요구했다. 성경 속 아브라함은 외아들을 죽여 번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요구에 직면한다. 그의 순종은 야만의 질서를 함축한다. 신이 이사악의 주검 대신 수양(羊)을 받아들임으로써 주술은 종교가 된다. 문명은 생명을 전제로 한다.
올림픽은 지중해적 행사다. 그리스 본토와 지중해를 둘러싸고 발달한 수많은 식민도시의 청년들이 생명의 제전에 참가하기 위해 올림포스로 모여들었다. 신을 모독한 자나 범법자·노예만 아니면 순수한 헬라(Hella)인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참가선수는 10개월 이상 체육관에서 훈련했다. 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 전엔 제우스신전에 가 기도했다. 심사를 거쳐 선발된 선수는 한 달 동안 합숙하며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현대의 올림픽이나 운동대회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선수등록 규정을 운영하고 예선이나 선발전을 치르며 합숙훈련을 한다. 올림픽 전후로 한 달 동안 그리스 전역에 휴전이 선포되었다. 지중해는 평화의 바다였다. 가끔 스파르타와 같은 강대국의 일탈은 있었지만.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지중해는 내 의식의 주소지였다. 그러니 1997년 카타니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나를 통과해간 예감을 오늘에 불러내 언어의 방주에 선적해야 한다. 영감 따위는 없었지만 무언가 번득이긴 했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그 번득임은 장 그르니에의 스크린을 통과해 영원(이데아)으로서 내게 왔다. 그러나 나의 정신과 감정, 정체성을 지명하는 데 이데아는 우선하지 않는다. 오히려 빛은 차이로부터 온다. 빛과 어둠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물이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 조형물로서 번개이듯이. 카타니아대학교 스포츠센터 앞 파라솔 그늘 아래 나를 스쳐간 바람은 그 시절의 나와 그르니에를 모두 통과해 영원을 향해 사라졌다. 그러니 내가 손에 쥔 것은 차이를 전제한 반복이다.
이 책의 성격은 자서전과 같다. 스포츠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이벤트들은 삶의 마디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나의 시야는 선명해지고 태도는 분명해졌다. 대회 하나를 치를 때마다 성장했거나 최소한 달라졌다. 김덕기, 손장환 같은 뛰어난 기자들이 나의 교사였다. 나는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까지 기자로 일했다. 2014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은 스포츠기자로서 지켜보지 않았다. 겨울올림픽은 나의 시야 밖에 있다. 월드컵은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까지다. 이밖에 1992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와 1997년 유니버시아드, 1995년 NBA 파이널이 취재 경력의 챕터를 이룬다.
내가 살아온 삶은 ‘시인 절반, 기자 절반’ 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서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 산 30년, 어림잡아 내 인생의 절반을 정산하고 있다. 책을 준비하며 그 일이 원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나는 가벼워져 남은 생을 지고 가는 길이 가파를지라도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허진석
시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1994), <타이프라이터의 죽음으로부터 불법적인 섹스까지>(1994),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 2>(1996), <길거리 농구 핸드북>(1997), <X-레이 필름 속의 어둠>(2001), <스포츠 공화국의 탄생>(2010), <스포츠 보도의 이론과 실제>(2011), <그렇다, 우리는 호모 루덴스다>(2012), <미디어를 요리하라>(2012·공저), <아메리칸 바스켓볼>(2013), <우리 아버지 시대의 마이클 조던, 득점기계 신동파>(2014), <놀이인간>(2015·★2016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휴먼 피치>(2016), <맘보 김인건>(2017), <기자의 독서>(2018), <옆구리에 대한 궁금증>(2018), <한국 태권도연구사의 검토>(2019·공저·★2020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기자의 산책>(2019), <아픈 곳이 모두 기억난다>(2019·★2020 동국문학상), <금요일의 역사>(2020), 바스켓볼 다이어리>(2021), <여자이야기>(2022), <스포츠 보도학 개론>(2022), <농구인 김영기>(2023), <문학수첩>(2024) 등이 있다.
목차
시작하는말
Inspirations mediterraneennes
글래디에이터
음악과체육
얻어맞은챔피언
이소룡 할리우드의스승
델포이스타디온
자네스
피아차아르메리나
히포드롬
먼로와디마지오
에디트와마르셀
윔블던의춤
체육관과운동장
칼치오피오렌티노
Olympia Ⅰ
마라톤
에펠탑과인간동물원
불의전차
개막식과프로파간다
황금보다빛난우정
손기정
한국인학생
올림픽은움직인다
Olympia Ⅱ
올림픽과월드컵
2024년파리
1988년서울
2021년도쿄
올림픽찬가
런던올림픽동메달
Fever Pitch
서울야구 LG 트윈스라는운명
안세욱 김광호
바이아레나
페어플레이
축구 인천에내리다
루디ㅤㅍㅚㄹ러
방열
전성기의황혼
호모루덴스
쉼에대하여
정기전
소설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