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 사회와 문학을 함께 사유해온 문학과지성사가 창립 50주년에 맞춰 비평 앤솔러지 <동시대 문학사> 시리즈를 시작한다. 일제강점기부터 2020년까지를 시대순이 아닌 ‘나’ ‘젠더’ ‘사랑’ ‘폭력’이라는 테마로 조망하며, 동시대 문학이 던져온 질문과 논쟁을 새롭게 호출한다.
첫 권에서는 ‘나’를 중심에 두고 근현대 문학 속 자아와 정체성의 변주를 탐색한다. 우찬제·강동호 등 평론가 다섯 명의 글은 특정 사건 중심 서술을 벗어나 ‘일인칭 하기’, 낭만, 젠더의 관점으로 문학과 시대의 관계를 비평한다.
출판사 리뷰
불연속적이고 다층적인 한국문학사를 횡단하는
문학과지성사 〈동시대 문학사〉 시리즈
『나』 『젠더』 『사랑』 『폭력』, 1차분 4종 동시 출간!
2025년 12월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문학과지성사가 문학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궤적을 새롭게 읽어나갈 비평 앤솔러지 〈동시대 문학사〉 시리즈의 출간 소식을 알린다. 1970년 계간 『문학과지성』 창간을 모태로 출범한 문학과지성사는 1975년 12월 12일 출판사 창립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발하는 서적과 참다운 삶의 형상을 그리는 문학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문학과지성사는, 지난 50년간의 행보가 그러했듯, 문학적 상상력과 비평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을 심화할 사유와 한국문학을 풍요롭게 할 문학인들을 발견하고 조력하는 데 앞으로도 꾸준히 힘쓸 것이다.
문학과지성사가 새롭게 기획한 〈동시대 문학사〉는 시리즈는 일제강점기, 군사 정권과 국가폭력, 민주화, 페미니즘 등 역사적‧사회문화적 격변, 그 속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하며 목소리를 형성해온 문학적 자아에 이르기까지 지난 백 년의 한국 근현대문학을 다양한 관점으로 포섭하고자 한다. 특히 1910년부터 2020년까지의 한국문학사를 시대순 개괄이라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테마별로 조망하면서 시대마다 논쟁을 촉발했던 질문들을 제시한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지난 10년간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어온 ‘나’ ‘젠더’ ‘사랑’ ‘폭력’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필두로 삼은 이 시리즈의 1차분은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문학평론가 우찬제, 조연정, 강동호, 김형중을 포함해 현시점 한국문학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열아홉 명이 지난 1년간 각 키워드에 맞는 주제와 질문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1차분으로 묶인 스무 편의 글은 근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화두를 던져온 작가들을 호명하는 과정에서 문학작품이 시대와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묻는 폭넓고 독창적인 탐색을 시도하는 한편, 각 필자의 개성적인 독법과 문체를 보여주며 ‘문학비평 읽기’의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시리즈의 표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선은 각 권을 잇는 연결선으로서, 권마다 다른 제목의 글자꼴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키워드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시대의 문학사를 끊임없이 직조해나가고 있음을 표현한다. 키워드별로 표지와 본문을 아우르는 대표 색상을 선정해 묵직한 상징성을 담되 부드러운 질감과 깊이를 살려 감각적으로 구현해냈다. 작가와 독자,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삶에 대한 성찰을 궁극의 목표로 삼은 이 시리즈는 첨예한 시선으로 비평적 도전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첫 권인 『동시대 문학사 1―나』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라는 인간 보편의 욕망과 맞닿아 있는 ‘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국의 동시대 문학을 들여다본다. 정치‧사회‧문화 등을 비롯한 다방면의 질서가 급속하게 개편되던 20세기 문학장에서 개인이라는 주체에 대한 탐구는 곧 시대의 요청이었고, 이로부터 촉발된 침잠과 골몰은 자아, 정체성 등의 개념과 연결되면서 자기표현이 일종의 문화적 정동으로 자리하게 된 오늘날에도 중대한 문학적 화제로서 주목된다. 이 책의 다섯 필자는 문학에서 ‘나’의 모색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그치는 대신, 이러한 천착이 어떤 가치와 이념과 맞물리는지에 집중하며 특정한 시대적 사건을 분기점으로 삼는 기존 문학사의 방법론과 거리를 둔다. ‘나’의 잠재성을 실험하며 세계와 똑바로 대면하는 ‘일인칭 하기’(이광호), 사조나 운동의 차원을 벗어나 문학예술의 핵심 동인으로서 너르게 기능하는 ‘낭만’(강동호) 등 특유한 프리즘으로 근현대 문학작품의 수많은 ‘나’를 살펴보기도 하고, 젠더의 관점에서 글 쓰는 여성의 불안과 ‘나’의 함의를 재검토하며 여성시의 흐름을 계보화하거나(강계숙) 이방인 되기 또는 소외의 체험 아래 지속되어온 여성의 자기 발견 역사와 그에 깃든 전복의 힘을 짚어내기도 한다(심진경). 또 ‘나’에 대한 성찰과 발화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하다는 본질적 한계의 수긍을 ‘주름’이라는 키워드로 형상화함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우찬제). 이토록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동시대 한국문학의 ‘나’들이 남긴 자취를 좇는 다섯 편의 글을 경유하며 독자는 마침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얼굴을 발명하게 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문학은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축적해왔다. 근대 이후 문학의 역사를 기술하려는 노력은 ‘문학사의 불가능성’이라는 명제를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한다. 한국문학의 집적물과 제도적 양상에 역사적 인과성을 부여하는 총체적 문학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거대한 동일성으로서의 보편적인 진보 이념으로는 개별 텍스트들이 생성하는 비동일적이고 비균질적인 사건들을 탐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사는 하나의 일관된 사건이 아니며 여러 층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장소들’이다. 문학사는 단일한 이념과 역사적 필연성의 무게를 덜어내고 각각의 시간들을 내포하며 역동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다층적인 문학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이제, 문학사를 횡단하고 분절하면서 작은 계보학의 문학사를 재구축하려 한다. 이 작은 복수의 문학사는 지배적인 역사와는 다른 층위에서 불연속적으로 움직이는 문학사의 동인과 변이의 지점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현대문학사’ 대신 ‘동시대 문학사’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라는 시간적 구획은 중세와 근대를 넘어선 선조적인 시간대를 의미하지만 ‘동시대’는 과거적인 것이 잔존하는 채로 ‘현대적인 것’이 발생하는 비균질한 시간대를 의미한다. ‘동시대’ 안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교차하고 경쟁하며 뒤섞인다. 그곳에서 우리는 ‘현재가 개입된 과거’와 ‘과거가 잔존하는 현재’라는 시간의 혼융을 만나게 되며, ‘동시대’라는 이름 아래 비동시성을 사유할 수 있다. 동일성으로서의 현재와 기원으로서의 과거, 그리고 미래라는 발전의 형상에 의지하지 않고 현시대 속의 틈과 불확실성을 고찰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적 준거에도 의지하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도 속박되지 않는 문학사의 잠재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된다. 이제 문학사적 실천은 ‘현대’ 혹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 속에서의 다층적인 동시대성을 성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어떤 기원도 특권화하지 않는 문학사적 실천은 도래할 문학사의 잠재성이다. 이러한 문학사적 수행은 문학사를 ‘열린 시제’로 쓸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문학사 기획이 문학과지성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시작된 것에 대해 작은 긍지를 가지며, 그 긍지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동시대 문학사〉 기획위원 일동
‘나’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믿는 ‘나’는 이미 무지한 육체이다. ‘말하는-쓰는 나’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언어는 이데올로기적 호명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필연성과 인과관계를 우발적이고 우연한 ‘나’의 존재론으로 전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원의 부재로서의 ‘나’는 우연이고 공백이며 그럴 때 ‘나와 세계’의 불안정하고 무질서한 잠재성이 열린다. [……] ‘나’의 비결정성은 ‘세계’의 비결정성이고, 그것이 ‘나’와 ‘세계’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다. 문제는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지의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미지의 ‘아이-노인’을 지금 껴안고, 그렇다면 ‘나’는, ‘너’는.
―이광호, 「‘나’는 쓸 수 있는가―‘일인칭 하기’의 역사적 몽타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진실한 나’를 지향하고, 그에 부합하는 사상적・이념적 내용과 언어적 표현 형식을 모색해왔던 근대문학의 역사를 낭만주의라는 틀로 다시 바라보는 작업은, 문학이라는 자기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시험해왔던 지난 시기의 수많은 분열과 실패의 국면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미완과 미결의 풍경들을 다시 포착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과거의 역사적 분열과 실패를 동시대의 문화적 현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균열과 연결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강동호, 「낭만적 무의식―진실한 ‘나’의 역사적 근원들」
작가 소개
지은이 : 우찬제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욕망의 시학』 『타자의 목소리』 『고독한 공생』 『프로테우스의 탈주』 『애도의 심연』, 문학 연구서 『텍스트의 수사학』 『불안의 수사학』 『나무의 수사학』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 『생태학적 상상력과 녹색 수사학』 등이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이 : 이광호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미적 근대성과 한국문학사』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 『익명의 사랑』, 문학 연구서 『시선의 문학사』, 비평 에세이 『작별의 리듬』 등이 있다.
지은이 : 심진경
1999년 『실천문학』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떠도는 목소리들』 『여성과 문학의 탄생』 『더러운 페미니즘』, 문학 연구서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등이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이 : 강계숙
2002년 창비신인평론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미언』 『우울의 빛』 등이 있다. 현재 명지대학교 인문콘텐츠학부 국어국문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이 : 강동호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지나간 시간들의 광장』 등이 있다. 현재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동시대 문학사〉 시리즈를 펴내며
기획의 말
우찬제 ‘나’와 ‘남’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광호 ‘나’는 쓸 수 있는가─‘일인칭 하기’의 역사적 몽타주
강동호 낭만적 무의식─진실한 ‘나’의 역사적 근원들
강계숙 한국 여성시의 시작(始作/詩作)을 돌아보다─‘탄실이’부터 ‘비리데기’까지
심진경 여성 자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타자 되기의 미학─‘여성-나’의 서사 전략과 정치학
우찬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나를 위하여─탈존의 주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