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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이에야스의 길, 그 길을 걷다 - 밀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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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이에야스의 길, 그 길을 걷다
글로벌마인드 | 부모님 | 202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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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서울에서 도쿄까지 1,200km를 53일간 걸으며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되짚은 제10차 ‘21세기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의 기록이다. 을사늑약 120주년, 해방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겹친 2025년에 진행된 이 대장정은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길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걷는다.

조선통신사가 사명대사와 이에야스의 외교적 결단에서 출발한 평화의 상징이었음을 짚으며, 임진왜란 이후 국교 회복과 포로 송환, 300년 평화로 이어진 역사적 의미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사명대사의 생애와 역할, 이에야스의 통치 철학과 조선 성리학의 영향까지 함께 다룬다.

저자가 단장으로 참여해 일본 대원들과 함께 먹고 자며 걸은 53일의 현장 경험은 역사와 현재를 잇는 생생한 증언이 된다. 걷기라는 실천을 통해 한-일 관계의 과거를 성찰하고,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 정신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묻는다.

  출판사 리뷰

(사명대사-이에야스의 길, 그 길을 걷다)는 2007년에 처음 시작한 행사인 (21세기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의 열 번째 걷기 대장정의 동행기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도쿄까지 1,200km(3,000리)를 53일간에 걸쳐 조선통신사 선조들의 옛길을 걸어가는 이 행사가 열린 2025년은 을사늑약 120주년이자 해방 80주년에 한·일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6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사명대사와 일본 이에야스의 이니셔티브로 시작된 외교 문화 사절이기에 조선통신사의 길은 다름 아닌 ‘사명대사(泗溟大師)-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길이기도 하다.
“옳은 일이 아니고는 이로움을 찾지 마라. 밝은 곳에는 해와 달이 있어서 비추고, 어두운 곳에는 귀신이 있어서 다 안다. 참으로 내 것이 아니거든, 털 한 올이라도 탐하지 말라”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사명대사는 법명인 '유정'보다 당호인 ‘사명당’으로 더 유명하다. 승려의 몸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의승(義僧: 의로운 승려 즉 ‘승병·僧兵’을 이르는 말)을 이끌고 전공(戰功: 전투에서 세운 공로)을 세운 그는 전후의 대일(對日) 강화 조약 등 공훈을 세워 한반도의 평화 시대를 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조선 시대 16세기 후반에 일세를 풍미한 서산대사의 제자 사명대사는 당대의 고승이자 도승으로 그의 법력에 관한 무수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명대사는 훗날 일본에 특사로 가서 갖가지 도술을 부려 왜인들을 놀라게 하고 생불(生佛: 살아있는 부처) 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의 스승 서산대사는 1,000여 명에 이르는 제자들 중에서 그중 4대 제자로 알려진 사명대사 유정(惟政)을 비롯해 언기(彦機)·태능(太能)·일선(一禪) 중 편양선사 언기에게 그의 법통을 물려줬다. 수제자였던 사명에게 법통을 전하지 않은 까닭은 그가 비록 백척간두에 처한 조국을 국난에서 구하기 위해서였다 할지라도 임진왜란 중 불교에서 금하는 살생을 너무 많이 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명대사는 그후 임진왜란 당시 존망(存亡: 존속과 멸망)의 기로에 선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앞장섰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적진 일본으로 들어가 이에야스와 일대일 담판 협상을 벌여 그에게 인격적인 감동·감화를 주어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조선의 국익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 조일(朝日) 양국 사이 평화 시대를 연 불세출의 영웅으로 우뚝 섰다.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일본 열도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선 이에야스는 1599년 이미 쓰시마 번주를 통해 조선과 화평을 맺고 싶다는 전갈을 조선 조정에 보냈다. 그는 1603년 쇼군에 취임한 후 정식으로 조선에 국교 재개를 요청했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 특사로 파견한 사명대사는 공식적으로 조선통신사 사절단을 파견하기 2년 전인 1605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교토의 후시미성(伏見城)에서 쇼군 이에야스를 만났다.
당시 이에야스는 임진왜란 전쟁에 자신은 관동 지역에 머물러 전쟁에 일체 간여한 바 없어서 조선과 원수진 일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양국 사이 외교적 교류를 재개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사명대사에게 강력하게 피력했다. 양국을 대표한 두 영웅이 서로를 알아보고 흉금을 터놓고 당당하게 대좌한 이 자리에서 통 큰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야스는 ① 일본은 조선을 다시는 침략하지 않을 것이며 ② 일본에 끌려온 피로인(被擄人: 적에게 포로로 잡힌 사람)을 모두 송환하고 ③ 전란 중 선릉·정릉을 도굴한 범인을 조선에 인도하겠다고 약속하고 상호 화평의 상징으로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야스는 포로 3,000여 명을 사명대사와 함께 귀국하도록 통 크게 배려했고 그 후 총 7천여 명의 피로인들을 추가로 송환하는 등 총 1만여 명의 포로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당시 조선으로서도 북으로는 만주족이 발흥해 명나라와 조선을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라 남해 일대를 안정시키는 것은 급선무였다. 이에야스로서도 국교 재개에 응하지 않는 명나라 대신 조선과의 국교 회복으로 후방을 안정시키는 성과를 바랐다. 아울러 통신사를 초청함으로써 막 출범한 에도막부의 권위를 세우고 7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일본 열도 경제 재건에 매진해 나가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이에야스는 100년에 걸친 혼란의 센코쿠(戦国)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로운 통일국가를 만들어 그의 꿈이자 대망을 이루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전쟁으로 삭막해진 ’칼의 사회‘, ’약육강식·하극상의 사회‘를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질서를 준수하는 평화의 나라 그 토대를 세우기 위한 통치 철학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이런 평화 국가의 모델이 이웃 조선이었고 그들의 국정 철학인 성리학을 염두에 두고 조선을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이에야스는 임진왜란 시 포로로 끌려온 조선의 유학자 강항(姜沆)을 통해 일본에 소개된 조선의 성리학에 오래전부터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참고로 전남 영광 출신의 유학자인 강항은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이후 포로로 있는 동안에 후지와라(藤原)에게 주자학을 전수해 그 후 일본에 퇴계학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유학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크게 미쳤다.
이에야스는 에도막부의 국정 이념을 조선의 퇴계가 확립한 성리학으로 삼아 성리학의 본고장에서 파견하는 수준 높은 통신사 일행들과의 교류를 통해 불모지에 가까운 일본 성리학의 수준을 끌어올려 일본 민중의 의식개혁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출병하지 않은 이에야스에 대해 조선 조정은 호의적이었다. 일본과의 화친과 국교 정상화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1607년 조선 조정이 첫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함으로 성사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1607년 철천지원수의 나라 일본에 여우길을 정사로 하는 467명의 외교사절이 파견되었다.
그런데 조선 백성들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1차부터 3차까지는 ‘통신사’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다. ‘피로인 송환을 위한 회답 겸 쇄환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4회부터 정식으로 ‘통신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임진왜란의 상흔이 채 아물지도 않은 시기에 국교 재개를 의미하는 ‘통신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백성들의 반발심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1차 통신사의 정사 여우길은 교토의 후시미성에서 당시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만나 국서를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에야스가 거처하는 순푸성을 방문하여 환대를 받았다. 이후 1811년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양국 간에는 평화 시대가 펼쳐졌다.
인접한 국가끼리 30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전쟁 없이 지낸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에도막부의 쇄국정책 아래에서도 조선과 국서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최고 권력자끼리 소통하며 다양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짐으로 일본은 번영과 평화의 에도시대를 열어갈 수 있었다.

’21세기 조선통신사 서울-도쿄 우정 걷기‘ 행사는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이 되는 2007년 한국체육진흥회와 사단법인 일본걷기협회가 공동으로 기획해서 2년마다 실시해 왔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한·일 선린 우호 관계를 이루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파견한 그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계승·발전시키자는 취지였다.
이 책의 저자는 20대 후반에 당시 베스트셀러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던 야마오카 소하치(山岡 壯八)의 20권짜리 <대망>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의 긴 이름에 질려서 한 권을 채 읽지 못하고 덮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을 70세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재미가 있어서 32권짜리 대하소설을 단숨에 읽었다고 한다. 아울러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매력에 푹 빠져 그의 흔적을 찾아 일본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염원했을 정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1543~1616)으로 처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밑에 있었으나 그가 죽은 뒤 도요토미 일족을 진멸하고 전국(戰國)을 제패하여 에도 막부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일본은 물론 중국 대륙 침략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못지않게 잘 알려져 있다.
2023년에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했다. 필자가 현역에서 일본 관련 일을 하던 1980~90년대만 해도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가 일본과 동일한 라인에 서 있을뿐만 아니라 일본을 크게 앞지른 분야도 나타났다.
저자는 지난 2019년에 60여 일에 걸쳐 일본 열도 1,111km를 도보로 종단한 이후 그해 11월에 출간된 책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를 일본의 지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오사카와 도쿄를 방문했다. 그 직후 바로 엄습해온 코로나 사태로 무려 5년 넘게 일본에 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평생을 일본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그로서, 한번 새로운 각오로 일본의 영웅 이에야스의 대망(大望)이 서려 있던 그 길을 걸으며 오늘날 일본 열도의 현주소를 두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조금 여유 있게 시간을 잡아 일본을 찾아 현장을 둘러보고 시민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을 새롭게 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2024년 12월경 ‘제10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도쿄 우정 걷기 행사’에 추가 회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신청했다.
그리고 저자는 제10회 조선통신사 대장정의 출발을 앞두고 선상규 회장으로부터 정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락했다. 한국 측 참가자 가운데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지난 세월 일본과 경제협력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왔다는 게 지명된 이유였다. 그런데 출국 임박해 선 회장의 건강 악화로 결국 단장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이번 걷기 행사에 참가한 양측 대원은 구간 참가자를 포함 총 69명에 이르렀는데 일본 측 대원들의 고령화와 물가 인상 등 여러 사정으로 이번 10회 조선통신사 우정 걷기가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하고 있었다.
이번 우정 걷기 행사에 함께한 대원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고 10회 연속해서 참가한 엔도 야스오 대장이 걷는 내내 완벽하게 선도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날씨가 도와주었고 우리 대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일본 대원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힘입어 사고 없이 목적지 도쿄 히비야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1,200km(3,000리)의 길을 걷는 동안 조선통신사 선조들의 노고는 물론 조선통신사를 초청함으로 조선과의 평화와 번영의 에도시대를 활짝 연 이에야스의 인생 여정을 여러 측면에서 목도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라는 그 의미와 함께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라며 당시 거센 국민의 반대 속에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라는 결단을 내렸던 박정희 대통령의 고뇌에 공감하고 그 후 대한민국의 오늘날 경제 기적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그동안 수백 회나 일본 열도를 다녀왔으나 장장 53일이라는 긴 기간을 일본인들과 함께 먹고 자고 걷고 교류하는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고. 24시간을 함께하며 일본과 일본인들의 속살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원들을 인솔하고 일본 측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양국의 각종 환영 행사에서 단장으로서 혹은 정사로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명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완수할 수 있었다.
이번에 도쿄까지 무사히 완보한 데에는 일본측 엔도 대장의 도움이 컸다. 아사히신문 간부 출신인 그는 술을 매개로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교류하는 것을 즐긴다. 술을 통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남다른 그의 소탈한 성격에 힘입어 즐겁게 걸으며 우리는 흉금을 터놓는 친구가 되었다.
저자는 지난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았고 다가올 새로운 60년도 앙국이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 정신을 바탕으로 평화롭게 공존공영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우리들이 흘린 땀방울이 그 여정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조선통신사, 에도막부 초청 외교문화 사절

필자는 일전에 일본과 중국을 알자는 전직 외교관들의 모임에서 연락이 와서 제10회 21세기 조선통신사에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엇다. 주어진 시간이 30분이었는데 참석자들의 질문이 많아 결국 1시간이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이날 오간 질문 가운데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본의 새로운 쇼군이 취임했을 때 등 축하 사절로 간 것이니 조공 사절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필자도 사실 이 길을 걷기 전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전의 조선 시대 전기에 조선국왕사의 일본 막부 파견은 10회 정도에 불과했으나 일본국왕사의 조선 방문은 61회나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일본국왕사가 오지 않은 것은 조선이 접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길이 임진왜란 때 침략의 길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경 거부는 전쟁 도발에 대한 응징 중 하나였는데 일본 사절은 동래의 왜관까지로 제한했다.
필자가 이번에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조선통신사는 에도막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외교문화 사절이라는 점이다. 초청 당사자인 막부의 지시로 지나가는 지역의 각 번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경쟁하듯 최고의 접대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쇄국 정책을 취한 당시 에도막부는 유일하게 조선과 국교를 맺고 있었고 민중들도 생애 처음 접하는 외국 사절을 크게 환영했다. 통신사가 올 때마다 조선 붐이 일었으며 민중과의 다양한 교류가 있었다.
필자는 이들이 바로 ‘한류’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일본 대중의 환영 열기는 통신사 일행의 사행록이나 일본인들이 그린 그림, 춤, 인형 등 각종 기록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멀리 타지방에서 온 구경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소식을 전했으며 본토의 북쪽 끝인 아오모리(靑森)에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통신사가 다녀가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간 일본 측이 사용한 경비는 약 1백만 냥(지금의 화폐가치로 5,000~6,000억 원 규모)으로 당시 에도막부의 1년 예산에 필적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719년 제9차 통신사에 참가한 제술관 신유한의 <해유록>에는 아이노시마에서 기상악화로 무려 23일간이나 체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후쿠오카번의 이들에 대한 접대가 얼마나 융숭했던지 그가 번의 재정을 걱정하는 문구가 나올 정도다. 그들은 체류하는 동안 그곳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이번에 필자는 조선인가도를 걸었다. 42km의 이 길은 쇼군만 다니는 길이었는데 이 길을 오직 조선통신사 사행만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삿타도우게 고개에 새로이 길을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통신사가 위험한 바닷길을 피해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대략 열흘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그 후 따끈따끈한 현장에서의 체험담을 녹여낸 단행본을 만들어내고자 걷는 동안 매일 기록한 블로그 글을 정리함은 물론 다양한 자료를 추가해 원고를 탈고하느라 여념없이 보냈다.
필자는 이 책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임진왜란 이후 백척간두에 선 조선과 벼량 끝으로 내몰린 조선의 백성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홀연히 살신성인(殺身成仁: 자신을 희생해서 어진 일을 햄함)을 자처한 사명대사의 그 우국충정(憂國衷情: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참된 마음)이 마음 깊이 새삼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사명대사의 나이는 요즘 수명을 감안해 말하자면 80대에 해당한다고 봐도 무방한 60대 초반이었다. 중요한 사명을 생전에 꼭 이루겠다고 오랫동안 염원해온 사람은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의 뜻이 있으면 필자 역시 사명대사처럼 그 일선으로 나아가 지난 세월 그러해왔듯이 한·일 관계 우호증진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고 싶다고 한다.
필자는 옛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일관계 60년을 열어나가기를 기대한다. 한·일 사이에 놓인 각종 현안은 오랜 고질병으로 덧나지 않도록 양국 정부가 슬기롭게 관리하며 대처해나가고 민간교류가 보다 활성화되도록 적극 지원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기성세대와는 달리 지금의 젊은 세대는 모두 선진국에서 태어나 서로에 대한 열등감이 없고 일본의 젊은이들도 한국을 선진국으로 여기며 최근의 한류 붐의 영향으로 한국을 동경하며 한국어 붐이 일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 없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맹자는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라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을 일찍이 설파했다. 변화된 환경에서 한일관계도 이전보다는 여유 있는 자세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한일의 젊은이들이 이끌어갈 미래의 한·일관계를 기대하며 그들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소통하며 200년간 평화로운 양국 관계를 만들었듯이 양국의 수뇌도 셔틀 외교를 통해 가능한 한 자주 만나 악수하며 웃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21세기의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가장 지름길이라고 필자는 평소 생각했다. 같이 자주 만나서 식사하고 술도 한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둔 지난 2025년 6월 16일 자 도쿄신문의 사설은 “국교정상화 60년. 한·일 양국의 경제적인 격차가 거의 없는 지금의 수평적인 관계는 양국 시민이 서로를 존중하며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류를 계속하기에 매우 양호한 환경”이라며 바로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의 정신을 강조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허남정
경남 진주(지수) 출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일과 졸업(문학석사 동시통역사)일본 와세다대학교 어학연구소한양대학교 국제학박사(일본지역학)외환은행(KEB하나은행 근무)(사)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재)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이사인천대학교 겸임교수(일본어과)한국PHP동우회 회장에스포유 회장㈜지겐코퍼레이션 수석부사장(사)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정책자문위원 (현)일본 오비린대학교 아시아유라시아총합연구소 객원연구원(현)(사)한국체육진흥회 상임이사(현)◎ 저서[박태준이 답이다]·[산티아고 순례자들]·[경색된 한일관계를 타개하라(일본)]·[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립습니다]번역서 [보답받지 못하는 노력은 없다] 등◎ 상훈한국 정부 국무총리상(사회 분야)2015년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 인물 대상(한국발전 외교공로 분야)일본정부훈장 욱일소수장(2011년)

  목차

[추천사]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의 한·일 우정 걷기 대장정

[추천 및 감사의 말씀]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 456일 여정

[프롤로그]
‘조선통신사의 길’은 곧 ‘사명대사·도쿠가와 이에야스 길’

[제1부] 일본의 옛 뱃길을 버스로 가다

23일 차(2025년 3월 31일)
쓰시마(?馬島)에서 일본 첫 일정을 시작하다

24일 차(2025년 4월 1일)
이키섬(?岐島) 길 걸으니 마음의 평화가

25일 차(2025년 4월 2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26일 차(2025년 4월 3일)
통신사에 대한 막부의 환대는 상상 초월

27일 차(2025년 4월 4일)
‘일동제일형승(一東第一形勝)’ 도모노우라

28일 차(2025년 4월 5일)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의 생생한 현장

[제2부] 일본 본토 구간 본격적 도보 행진

29일 차(2025년 4월 6일)
김치 한 접시가 4,000원이라니…

30일 차(2025년 4월 7일)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다

31일 차(2025년 4월 8일)
윤동주 시인께 한국 신문지로 싼 꽃다발을

32일 차(2025년 4월 9일)
도대체 축지법을 쓰나?

33 일차(2025년 4월 10일)
출세의 길 ‘조선인 가도’를 걷다

34일 차(2025년 4월 11일)
아즈치(安土)성터에서 인생무상을 보다

35일 차(2025년 4월 12일)
‘야생화 천지’ 평화로운 길 걸으며 힐링

36일 차(2025년 4월 13일)
일본의 혹독한 최악의 날씨를 경험하다

37일 차(2025년 4월 14일)
‘권력 세계’라는 게 허망하고 무상하다

38일 차(2025년 4월 15일)
묘젠지에서 열린 감동적 환영 세리머니

39일 차(2025년 4월 16일)
역사의 현장 ‘오케하자마’를 지나다

40일 차(2025년 4월 17일)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41일 차(2025년 4월 18일)
오누이처럼 보기에 참 아름다웠다

42일 차(2025년 4월 19일)
스즈끼 씨 가족의 뜨거운 환대에 큰 감동

43일 차(2025년 4월 20일)
이렇게 맛있는 다꾸앙은 처음이다

44일 차(2025년 4월 21일)
푸른 차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45일 차(2025년 4월 22일)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

46일 차(2025년 4월 23일)
빗속의 슨푸(駿府)성이 고즈넉했다

47일 차(2025년 4월 24일)
그 유명한 삿타 고개를 넘었다

48일 차(2025년 4월 25일)
드디어 오매불망 후지산을 보았다

49일 차(2025년 4월 26일)
난코스 하코네 고개를 넘었다

50일 차(2025년 4월 27일)
남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는 일본인들

51일 차(2025년 4월 28일)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다

52일 차(2025년 4월 29일)
내일 도쿄에서 이별하자니 서운함이…

53일 차(2025년 4월 30일)
히비야 공원 도착하니 감격의 눈물 주르르

[3부] 조선통신사 옛길 국내 구간을 걷다

1일 차(2025년 3월 9일)
경복궁 출정식 후 3천리 대장정에 나서다

2일 차(2025년 3월 10일)
내 무덤에 침 뱉어라

3일 차(2025년 3월 11일)
그녀는 천사이자 멋진 스승이었다

4일 차(2025년 3월 12일)
온나라가 거대한 쓰레기통이었다

5일 차(2025년 3월 13일)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6일 차(2025년 3월 14일)
인간사(人間事)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깝다

7일 차(2025년 3월 15일)
여전히 아날로그에 익숙한 일본 대원들

8일 차(2025년 3월 16일)
영남 제3 관문 설경(雪景)이 그림 같았다

9일 차(2025년 3월 17일)
‘부산→서울’ 사이클링하는 일본 젊은이들

10일 차(2025년 3월 18일)
어찌하여 세상에 이런 일이!

11일 차(2025년 3월 19일)
묘한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12일 차(2025년 3월 20일)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13일 차(2025년 3월 21일)
한국전쟁 옛 전우의 제사를 지내다

14일 차(2025년 3월 22일)
분실한 휴대폰을 찾자 환호성 터지다

15일 차(2025년 3월 23일)
영천 시민들과 함께한 조양각 전별연(餞別宴)

16일 차(2025년 3월 24일)
민간교류의 진면목을 보다

17일 차(2025년 3월 25일)
한줄기 비가 내리기를 염원했다

18일 차(2025년 3월 26일)
초등학교 5학년 소연이의 손편지

19일 차(2025년 3월 27일)
굵은 빗줄기, 하느님 감사합니다

20일 차(2025. 3. 28)
은혜로운 비를 몰고 왔다며 환대받아

21일 차(2025년 3월 29일)
부산까지 520km를 버틴 두 건각(健脚)에 감사

22일 차(2025년 3월 30일)
한국인의 임기응변, 능수능란하다

[제4부] 1,200km 완주 후 도쿄에서의 휴식

54일 차(2025년 5월 1일)
서양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도쿄

55일 차(2025년 5월 2일)
와다 가족의 환대, 평생 잊지 못할 추억

56일 차(2025년 5월 3일)
56일 만에 귀가하니 역시 집이 최고다

[에필로그]
에도막부 초청 외교문화사절, 조선통신사

[부록]
1) 조선통신사 파견현황(1-12)
2) 조선통신사 전체 행로 약도
3) 후원자 명단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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