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27년, 1929년, 1934년에 기록된 기행문을 엮어 일제강점기 국토를 바라본 민세의 시선을 담았다. 현실의 고통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전작과 달리,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 속에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투영한 서정적 기행문으로 구성된다.
영남의 고갯길과 무등산, 남해 이순신 유적지를 따라 걷는 여정에서 저자는 국토의 풍경을 넘어 민족의 기억과 정신을 되짚는다. 조령과 문경새재, 다도해에 대한 묘사는 국토의 불변하는 아름다움을 민족적 저력으로 해석한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영호남의 산하와 이순신의 바다에서,
눈부신 경치 속에 깃든 민족의 역사를 묻다
『영호남기행 1』이 1926년의 국토를 치열하게 ‘감각’한 기록이었다면 이 두 번째 책은 1927년, 1929년, 1934년 세 차례에 걸쳐 민세가 보고 듣고 느낀 ‘감상’이 담겨 있다.
1926년의 기행문을 ‘실제적 기행문’으로 불렀던 이유는 글쓴이가 우리 민족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현장성을 담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기행문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비극 속에서 국토의 아름다움을 웅장화려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서정적 기행문’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 산하의 돌 하나, 나무 하나, 꽃잎 하나까지에도 민세가 느낀 정서와 감흥이 풍부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1927년 9월, 민세는 신간회 총무간사로서 영남 지역에 설립되는 신간회 지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대구, 상주, 예천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험준하기로 유명한 조령(鳥嶺)을 넘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략에 무너졌던 문경새재의 성벽과 구한말 의병들이 피 흘렸던 전적지를 밟으며 민세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찾고자 했다.
1929년 9월에는 광주를 찾아 무등산(서석산)에 올랐다. 무등산의 웅장한 산세를 바라보며 그곳이 고대 ‘무진국’의 진산(鎭山)이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통찰을 덧붙인다. 꿋꿋하고 헌걸차게 서 있는 바위를 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력을 떠올리고 한편으로는 민족의 고대사 탐구로 감상을 확장한다. 국토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읽어낸 민세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1934년 8월에는 위당, 석전과 함께 남해 충무공 유적을 순례했다. 여수 좌수영에서 시작해 고금도, 진도 벽파진, 울돌목을 거쳐 목포에 이르는 여정은 단순한 유적지 답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끼고, 이순신이 보여주었던 불굴의 의지와 구국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순례’였다. 민세는 다도해의 풍경을 일본의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와 비교하며 “시원스럽고 맑고 그윽한 품격으로는 다도해가 더 낫다”라는 짧은 결론으로 풍경 묘사를 마친다. 이는 미적 우월성에 관해 평가했다기보다 우리 강산에 대한 자주적 자부심과 민족적 애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험난한 식민지 현실 속에서 국토의 불변하는 아름다움을 붙잡고 그것을 민족의 저력으로 해석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번 기행문 출간을 계기로 1925년 최남선의 ‘심춘순례’ 여행에 동행했던 박한영이 1934년에 민세와 위당의 35일 간의 국토 순례에 함께 한 의미를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민세와 위당, 육당의 기행문에 나타난 국토 비평 인식에 대한 비교와 교차 검토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민세는 『영호남기행 2』 이전과 이후에도 구월산, 백두산 등 조선의 웅혼한 산하를 찾아다니며 순례의 기록인 기행문을 남겼다. 이러한 기록들은 민세가 남긴 국토 순례의 또 다른 역작들이며 독자 여러분이 다음 기행문들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멈추지 않는 민족혼을 계속해서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안재홍
독립운동가, 국학자, 민족사학자, 언론인, 정치인.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민세(民世).1891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하였고, 1907년 서울 황성기독청년회 중학부에 입학하였으며, 1910년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에 입학하였다. 1913년 상해, 북경 등 중국을 여행하였고, 신규식 선생 주도하의 독립혁명단체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으며, 1914년 일본 조도전(早稻田)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1917년 민족종교이자 당시 독립지사들의 구심점이었던 나철 선생의 대종교(大倧敎)에 입교(入敎)하였으며, 1919년 11월 비밀항일결사인 청년외교단 활동으로 일경에 검거되었다. 이후 1943년까지 독립운동으로 9차례 투옥되며, 도합 7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르었다.1924년 <조선일보> 주필 겸 이사로 입사하였고, 이후 발행인, 편집인,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7년 신간회 총무로 선임 1930년 백두산에 오르고 <백두산등척기>를 <조선일보>에 연재하였으며, 여순 감옥에 수감 중이던 단재 신채호의 한국사론을 <조선일보>에 연재시켰다. 또한 1934년 단군 유적지인 구월산을 답사한 후 <구월산등람지>를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다. 위당 정인보와 함께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4년 여에 걸쳐 교열·간행하였다.1946년 1월 상해임시정부 주도하의 ‘비상국민회의’ 주비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 2월 미군정 민정장관에 취임하였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9월 인민군에 의해 납북되어 1965년 평양에서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9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저서로는 《백두산등척기》(1931), 《조선상고사감》(1947~1948),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1945), 《한민족의 기본진로》(1949), 《민세안재홍선집》(1981) 등이 있다.
목차
문경새재
광주 · 서석산
남해 충무공 유적
부록
주
안재홍 연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