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일본의 근대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대표 풍속 소설
일본의 근대 소설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는 아마 다니자키 준이치로일 것이다. 그는 일본문화훈장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드물게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 되었으며, 죽지 않았다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받은 노벨 문학상도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세설』은 오사카의 몰락한 상류 계층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깊은 정과 상냥함을 드러내면서 기품을 지닌 간사이 여성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 호흡법과 말투 등 여성들의 문화를 소설이라는 구조 속에 처음으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계절의 변화가 태평양전쟁 와중의 사회적인 사건이나 인간의 의지 이상으로 작품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관습과 제도에 길든 인간의 자아와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등장인물의 마음이 마치 남의 것이 아닌 양 느껴진다. 유키코가 하루빨리 결혼하기를 바라면서도 때 묻지 않은 <영원한 여성>으로 남아 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예술은 통속적이면서 또한 고급 문학이어야 한다>라고 했던 다니자키를 통해 여성과 여성 문화의 요염하면서도 커다란 매력을 맛볼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먼저 후보에 올랐으나 그가 사망함으로써 상이 가와바타에게 돌아갔다는 사이덴스티커(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당시 전 세계 지식인의 스타였던 사르트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만사 제쳐 놓고 교토 근교의 다니자키 묘에 참배했다고 하니 세계 문학사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니자키야말로 서구인의 눈에 가장 일본적인 작가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작가 생활을 하는 55년 동안 그는 자신만의 감각적인 취향에 충실한 작가였다. 이상 성욕과 악마주의적 경향이 짙은 그의 소설이 일본 독자에게 수용되고 또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일본 문화에 그런 토양이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니자키는 평생 동일한 소설화했고, 그의 소설은 그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여성 숭배, 페티시즘, 마조히즘 등의 변태 성욕, 악마주의, 예술지상주의, 탐미주의 등이 그것이다. 특히 미쓰코의 발을 빠는 소년 <나>의 풋 페티시즘을 다룬 「소년」(1911)에서 「악마」(1912), 「열풍에 날리며」(1913), 「조타로」(1914), 「후미코의 발」(1919), 「아베마리아」(1923)를 거쳐 네 발로 기면서 며느리의 발을 빠는 노인이 등장하는 『미친 노인의 일기』에 이르기까지 그런 경향은 일관되게 지속된다. 한마디로 50년 넘게 작가 활동을 하는 내내 그는 여자의 발을 빨고 거기에서 오는 희열을 소설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다니자키의 작품은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간사이로 이주한 것을 계기로 서양 숭배에서 동양으로 회귀했다고 평가된다. 『치인의 사랑』의 서양 숭배에서 『여뀌 먹는 벌레』를 전환점으로 하여 동양, 즉 일본의 전통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으로 회귀한 그가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작품이 『세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설』은 그가 간사이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던 작품인 셈이다. 다니자키는 『세설』로 아사히 문화상,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으며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작가 소개
저자 : 다니자키 준이치로
일본 근대문학가. 메이지 말엽부터 쇼와 중엽까지 평생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을 받아 노벨문학상 후보에 네 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번역을 맡았던 사이덴스티커는 다니자키가 생존했더라면 노벨상은 다니자키의 것이었다고 말할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높다. 1886년 도쿄 니혼바시의 부자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다니자키는 유복한 유년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은사 이나바 선생님의 권유로 가정교사로 입주해 학업을 이어가며 『신시초新思潮』를 창간해 처녀작 희곡 『탄생』에 이어 『소년』 『호칸』 『비밀』 등을 연이어 발표한다. 특히 『문신』은 미타 문학지의 격찬을 받으며 일본 탐미주의의 등장이라는 문단적 지위를 안겨준다. 이렇듯 초기 작품에는 탐미주의의 일파로, 인간의 향락적, 관능적 감각 묘사가 두드러지나 그 후 소재, 문체, 표현 기법이 다양하게 변천한다. 한어漢語와 아어雅語를 비롯해 속어와 방언까지 현란하게 구사하며 걸쭉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작품마다 뉘앙스를 달리하는 게 특징이다. 1911년 등록금 미납으로 도쿄대를 중퇴하고 신경쇠약에 걸리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징병을 피한다. 1915년 지요코와 결혼, 『오쓰야고로시』 『오사이와 미노스케』 같이 당시의 모던한 풍속에 영향을 받은 대중적 소설을 발표하지만 처제 세이코(소설 『미친 사랑』의 실제 모델)와 내연관계를 맺으며 아내 지요코와는 사이가 멀어진다. 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시나리오와 희곡을 쓰던 중, 1923년 간토 대지진이 발생해 간사이로 이주한 뒤 아내 지요코를 친구에게 양도하는 내용을 신문에 실어 또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두 번째 부인과는 사별한 뒤, 1935년 모리타 마쓰코와 결혼, 그녀의 영향으로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다니자키의 작품은 고전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고 1948년 그의 나이 예순두 살에 출간한
목차
제2부
제3부
여성문화의 〈황천〉 - 다나베 세이코
위대한 예술은 통속적이면서 고급 문학이어야 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