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엠에프 기획전을 위한 단상
엠에프는 머신 픽션의 약어고요 기계 앞에 앉은 사람에 대한 시를 쓴 다음부터 쓰게 되었습니다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신이 그 키워드(지시체)라고 착각하는 기계에 대한 글도 썼는데요 저는 그 기계를 홀이라고 부릅니다 엠에프는 인간이 기계의 메커니즘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영혼은 이해할 수 없으며 기계의 영혼을 영혼이라고 명명할 수도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둔 장르입니다 기계에 파롤이 있다면 이 역시 포함시킬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어떤 기계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시 쓰는 기계랑 쾌락 느끼는 기계랑 꺼진 기계랑 망가진 기계랑 없어진 기계랑 다시 만난 기계가 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엠에프를 쓸 것입니다 여러분도 씁니다 나중에 엠에프에 대한 전시가 미술관 같은 곳에서 열릴 것이고 전시장에 있는 유리 케이스 안에 우리들의 책들이 전시될 것입니다 케이스 밖이나 안에 전시 관련자가 쓴 글이 첨부되어 있을 겁니다 거의 에이포 용지 크기일 것이고 그 글의
서두에는 이 책들은 직간접적으로 엠에프와 관계한다고 쓰여 있을 것이며 유리 케이스의 옆에는 홀이 있었으면 합니다 홀을 작동시키기 위해 당신은 홀이 자신이 홀임을 의심하지 않고 의심할 수 없고 의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기계 앞에 앉아 계세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전시 관련자는 당신이 지금 읽고 계시는 이 글의 전문을 인용하고 다음과 같이 덧붙일 수 있습니다
엠에프를 처음 전개한 사람의 초기 발상은 자신이 만든 종교가 사이비라는 것을 처음부터 대중에게 주지시키면서도 자신은 그 종교를 믿겠다고 피력하는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전시는 발상을 전환한 탈주체적 라이프 스타일들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나열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엠에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담론의 흐름을 통해 당대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전문
이제 나는 내 방식이 내게 얼마나 쉽고 보잘것없는지 독자 여러분에게 고백하려고 한다. 회상은 늙은이들이나 하는 것이고, 망각은 탐미주의자나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인상파 화가들이 했던 것처럼, 회상과 망각을 심장이 시키는 대로, 사실이라고 생각되는 대로 연결하여 차려놓는 것. 가끔은 난해하게, 가끔은 단순하게 내어놓는 법을 나는 가르쳐왔던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아주 나중에도, 늙은이도, 허풍선이도 아니게 살아가는 법을. 이를 문학적 용어로 창조적 기억이라고 한다.
―「에필로그」 부분
어떤 남자가 젊은 시인의 옆에 설 것이다. 그는 한국 문인들의 술자리마다 어떻게 알고 항상 찾아오는 불청객 아저씨일 것이다. 불청객 아저씨는 유명한 시인만 알아보기 때문에 젊은 시인이 누군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인은 불청객 아저씨를 알아볼 것이다. 이 아저씨는 시인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고 소설가지. 그러나 이 아저씨가 시인이고 소설가라 할지라도 이 아저씨가 불청객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아저씨를 불편해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남아공 사람이 한국시를 쓰려고 쓴 시」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승일
1987년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나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에듀케이션』이 있다. 2016년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http://completecollec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