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용만 시인은 ‘산중’에 산다. 그렇다고 ‘자연인’으로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30여 년을 마찌꼬바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그 노동을 뼈와 근육으로 삼으면서, 떠나온 본연의 자리를 영혼의 밭에다 말없이 키웠다. 그리고 그 노동이 끝나는 날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30여 년 동안의 임금노동은 시인에게 마지막 선물로 병을 주었지만, 다행히 시인은 돌아갈 본연의 자리를 마침 마련한 상태였다.
김용만 시인은 세간의 ‘노동 찬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노동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분열이 되었거나, 미움을 기른 것도 아니다. 도리어 ‘신물이 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꾸준히 갈고 있었다. 그래서 ‘산중’으로 돌아간 생활도 단순한 자연 예찬이나 출세간적인 물러남이 아니다. 그가 30여 년 동안 말없이 꿈꿔왔던 ‘다른 삶’인 것이다.
독자들이 시인의 허름한 듯한 시 앞에서 자신의 경직이 스르르 풀리는 일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시인의 뼈와 근육이 기실은 부드러움의 결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30여 년의 마찌꼬바 노동이 어떻게 이런 시인의 내면을 만들었던 것일까. 어떻게 “저 대문 활짝 열고/ 찾아올 동무를 위해/ 일찍 등불 걸어야지”(「귀향」) 같은 마음을 낼 수 있을까.
출판사 리뷰
마찌꼬바 용접사 30년을 마치고 선 자리
김용만 시인은 ‘산중’에 산다. 그렇다고 ‘자연인’으로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30여 년을 마찌꼬바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그 노동을 뼈와 근육으로 삼으면서, 떠나온 본연의 자리를 영혼의 밭에다 말없이 키웠다. 그리고 그 노동이 끝나는 날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30여 년 동안의 임금노동은 시인에게 마지막 선물로 병을 주었지만, 다행히 시인은 돌아갈 본연의 자리를 마침 마련한 상태였다.
평생 그리던 시골집 하나 사놓고
덜컥 아팠다
속살이 타버린 줄도 모르고
하루를 못 버티고 다들 떠난
마찌꼬바 용접사로 삼십여 년 살았다
노동이 아름답다는데 나는 신물이 났다
살 타는 냄새를 맡았다
_「귀향」 부분
김용만 시인은 세간의 ‘노동 찬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노동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분열이 되었거나, 미움을 기른 것도 아니다. 도리어 ‘신물이 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꾸준히 갈고 있었다. 그래서 ‘산중’으로 돌아간 생활도 단순한 자연 예찬이나 출세간적인 물러남이 아니다. 그가 30여 년 동안 말없이 꿈꿔왔던 ‘다른 삶’인 것이다. 독자들이 시인의 허름한 듯한 시 앞에서 자신의 경직이 스르르 풀리는 일을 경험한다면, 그것은 시인의 뼈와 근육이 기실은 부드러움의 결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30여 년의 마찌꼬바 노동이 어떻게 이런 시인의 내면을 만들었던 것일까. 어떻게 “저 대문 활짝 열고/ 찾아올 동무를 위해/ 일찍 등불 걸어야지”(「귀향」) 같은 마음을 낼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영혼에 새겨진 어머니의 삶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시인은 어머니의 삶 옆에 언제나 서 있는 마음으로 30여 년 동안의 마찌꼬바 노동을 견뎠을지 모른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장에서/ 휘어진 손가락 감추고 뼈로 버텼”(「눈이라도 내리면 좋으련만」)을지 모른다. 시인은 언제나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밭에 섰다
싱싱하다
-야, 이놈아
너도 속 좀 차려라
-예
어머니
그렇게
가을이 갔다
_「배추밭」 전문
어머니의 삶이 시인 자신의 삶의 척도이자 바탕이 아니었다면 배추밭에 서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릴 리가 없는데, 밭은 곧 어머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난한 존재의 음성
어머니의 삶을 언제나 곁에 두면서 살아왔기에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장”에서도 평생 그리움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어머니의 삶을 척도로 두었기에 ‘산중’에서 만난 목숨들과 짠하게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라니며, 두꺼비며, 달팽이며, 딱새며, 꽃이며, 눈송이, 돌멩이들과도 시인은 ‘같이’ 산다. 그 존재들은 시인의 바깥에 있으면서 시인에게 관찰당하거나 평가받지 않는다. 도리어 그 존재들의 입장에서 인간을 관찰하고 평가한다.
위봉산성 내리막길
불빛 따라 언뜻언뜻 뛰던
개구리, 두꺼비는
찻길 무사히 건넜을까
나는 돌아와 누웠는데
길 건너다 깔린
저 작은 목숨들
새벽에야 생각나네
인간들은 왜 자꾸 남의 봄을 빼앗나
지들 봄이나 잘 챙기지
_「지들 봄이나 챙기지」 부분
사람들은 모른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알싸한 매운맛
가난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서 근 반
이 작은 조마니의 무게를
_「서 근 반」 부분
김용만 시인의 이러한 시편들은 자신이 이미 바람 같은 가난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난’은 꼭 경제적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김용만 시인에게 가난은 무엇보다 존재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춧가루 “서 근 반”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시와 가난의 문제는 이렇게 단순하다. 그래서 시인에게 ‘경제적 가난’을 강요하거나 또는 시인이 ‘경제적 가난’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은 시와 가난의 문제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김용만 시인의 첫 시집이기도 한 이 시집은 이렇게 가난한 존재의 음성이 가득 담겨져 있다. 이것이 이 시집을 목가적으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또는 상투적인 자연주의나 생태시로 읽어서도 안 되는 이유이다.
연이틀 된서리에
호박 넌출 칡덩굴 주저앉아 버렸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들
하루아침에 아랫도리 힘을 잃었다
서리가 내리는 것은
살아 있는 뭇 생명들
눈이 얼까 눈 감으라는 신호다
산길 헤매는 것들
집 찾아들라는 것이다
있는 놈들 끌어내려 해마다
새롭게 함께 가자는 것이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게
몸을 낮추자는 것이다
_「서리」 전문
밤 열차로 온다는
딸 마중 나가다
위봉산 만딩이에서
고라니를 쳤다
서행으로 달리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 하는 사이
쿵, 하고 말았다
돌아보니 길가에
서 있다
다행이다
아마 많이 아팠을 것이다
아휴, 큰일 날 뻔했네
했을 것이다
_「고라니」 전문
우리 집 두꺼비가 죽었다
아무리 느려도
도로 건널 때는
좀 서둘러라
신신당부했는데
아이구 속 터져
차에 치여 죽었다
오늘 인간인 내가
종일 미웠다
나는 아니라고들 하지 말라
-「두꺼비」 전문
학동마을 구 이장님
장마철에도 또랑에
물이 없다며 마른장마라며
논 가상에 자전차를
삐딱하게 세운다
온종일
천둥소리 자갈자갈
돌 구르듯 끓어도
찔끔찔끔 애간장을 녹인다
난 하느님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
암 소리 안 하지만
낼 아침 구 이장님에게
하느님은 틀림없이 또 한소리 듣겠다
_「하느님도 혼나야지」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용만
임실에서 태어나 완주에서 산다.
목차
시인의 말5
제1부
호박꼬지 마르는 동안·12
고라니·13
두꺼비·14
지들 봄이나 잘 챙기지·15
또·16
꽃산 아래·17
메리 크리스마스·18
메아리·19
봄꽃·20
여자들은 좋겠다·22
하늘·23
하느님도 혼나야지·24
달팽이·25
돌담·26
지게·27
산중 풍경·28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29
꽃·31
코딱지나물·32
제2부
담쟁이·36
풀 생각·37
꼬마 눈사람·38
딱새·39
설레는 까닭·40
눈사람·41
밥풀·42
배추밭·43
벼·44
우수·45
멧돼지·46
왜·47
산·48
손을 감췄다·49
하현달·50
가을날·51
서리·52
호미·53
제3부
그리운 것들은 땅에 묻을 일이다·56
길·57
책보다 산이 좋다·58
맨날 그럽니다·59
아침 일기·60
산중 마을·62
새 떼·63
새벽 일기·64
춘정·66
오늘은 누구라도 볼 수 있을까·67
서 근 반·69
시인·70
집을 나선다·71
폭설·72
나는 배추 심었다·73
제4부
귀향·76
눈이라도 내리면 좋으련만·78
고무신·80
아따 겁나게도 오네·82
별밤·83
장마·85
작두·87
자꾸 호미 자루가 빠졌다·88
호야등·89
영어사전·90
그리고 어머니는·91
어머니와 호미·92
재수·93
첫눈·94
발문_세상에서 가장 선한 시의 마을·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