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가 사는 ‘여기’ 말고 더 좋은 곳, 행복한 곳, 이상적인 곳을 ‘저기’라 부르는 언어와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여기’가 주는 고통, 불안, 모순, 불합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는 끊임없이 ‘저기’와 비교 당하고 또 ‘저기’는 ‘여기’를 그동안 지도해 왔다. 즉 ‘저기’는 ‘여기’의 목적으로 군림해 왔다.
이강문 시인은 이런 인식에 균열을 내며 “여기가 저기다”고 말한다. 그동안 “저기가 저 멀리 높은 곳에 모셔져 있”었던 것은 “내가 나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저기가 여기 너머 따로 있는 게” 된다.
그래서 ‘저기’는 숭배되고 ‘여기’는 폄하된다. 하지만 이강문 시인에게 ‘저기’는 “아침마다 눈뜨면 우렁우렁 도착하는”(이상 「너머의 너머」) 세계다. ‘너머의 너머’는, 즉 ‘저기’ 너머 ‘여기’라는 뜻이다. ‘여기’와 ‘저기’를 버리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함께 앉힌 ‘자리’는 여기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 사이다.
출판사 리뷰
여기가 저기다
우리가 사는 ‘여기’ 말고 더 좋은 곳, 행복한 곳, 이상적인 곳을 ‘저기’라 부르는 언어와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여기’가 주는 고통, 불안, 모순, 불합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는 끊임없이 ‘저기’와 비교 당하고 또 ‘저기’는 ‘여기’를 그동안 지도해 왔다. 즉 ‘저기’는 ‘여기’의 목적으로 군림해 왔다.
이강문 시인은 이런 인식에 균열을 내며 “여기가 저기다”고 말한다. 그동안 “저기가 저 멀리 높은 곳에 모셔져 있”었던 것은 “내가 나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저기가 여기 너머 따로 있는 게” 된다. 그래서 ‘저기’는 숭배되고 ‘여기’는 폄하된다. 하지만 이강문 시인에게 ‘저기’는 “아침마다 눈뜨면 우렁우렁 도착하는”(이상 「너머의 너머」) 세계다. ‘너머의 너머’는, 즉 ‘저기’ 너머 ‘여기’라는 뜻이다. ‘여기’와 ‘저기’를 버리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함께 앉힌 ‘자리’는 여기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 사이다.
올해의 꽃과 내년의 꽃 사이,
지금 이 꽃과 다른 저 꽃 사이,
이토록 환한 너머의 너머
—여기가 저기다
_「너머의 너머」 부분
이런 인식은 「빈집의 기억」에 와서 조금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얻으며 심화된다. “기다리는 두 아이들의 손과 발에 자물쇠를” 달아야 했던 건 엄마와 아빠가 “돈 벌러 나간” 상황과 연결돼 있는데, “수상한 밖이 안전한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사랑스러운 안이 위험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성냥불에 재가” 되고 말았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시인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거니와 아직도 우리는 “잿더미가 된 안쪽을 지키고 있”다. 「너머의 너머」와 「빈집의 기억」은 공히 여기와 저기, 안과 밖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을 떠받쳐주는 시적 정황은 사뭇 다르다. 하지만 「빈집의 기억」의 상황은 “여기가 저기다”는 「너머의 너머」의 인식이 현실화되지 않은 바탕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즉 ‘저기’는 “아침마다 눈뜨면 우렁우렁 도착하는” 것이라는 진실에 우리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며, 도리어 “잿더미가 된” 세계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비극적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강문의 시는 사실적인 현실로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다. 그 연유를 명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부조리한 사실 세계에 영혼을 던지기보다는 자신의 인식과 자리를 부지런히 경작하는 것을 소임으로 삼은 듯 보인다. 「사다리의 충고」에서 보이는 것처럼 시인은 분명 “폐업 철거 중인 점포의 내부”를 통해 “등뼈 훤히 드러날 정도의 안간힘”을 알고 있지만, 현실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보다는 그것을 내면의 주름으로 삼는다. 즉, 현실의 아래 심급으로 내려가서 내면의 눈을 맑게 닦으려는 쪽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 내면의 경작은 결국 “내가 지닌 것 가운데에 그림자가 그중 옳다”는 인식에까지 도달하게 되며 ‘그림자’를 통해 “그늘을 향한 깊고 끈질긴 사랑만이/ 내 안의 그림자를 부화할 수 있다”(이상 「그림자」)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긍정과 고독은 같은 편!
이런 내면의 여정이 어린아이의 긍정으로 귀결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공명」에서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지엽말단”이나 “지지부진”이 없다는 맑고 청랑한 목소리는 시의 정황상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뱉는 탄성이지만, 시인이 내면의 주름을 늘리고 깊게 하는 간단치 않은 과정을 통해 얻게 된 득의의 광채이기도 하다.
과거와 미래는, 놀이의 배턴을 주고받는 순간일 뿐
찬란한 현재와 협연하는 도중일 뿐
나 자신과 나 자신의 릴레이를 지속할 뿐
아이들에게 덧없는 시간이란
온몸에 지은 오두막 성당의 종소리
놀이의 빛나는 신전— 손과 발, 눈, 코, 입, 귀
몸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공명(共鳴)일 뿐
_「공명」 부분
이 대긍정의 순간은 이 시집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암암리에 추정 가능한, 지난한 밥벌이로서의 삶을 안으로 안으로 새겨 넣으며 도달한 경지일 것이다. 어쩌면 주어진 삶을 감내하고 살면서도 그 비루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도달한 자기 긍지의 순간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아이들에 대한 혈연적 사랑을 넘어선 환희의 기운이 넘치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증명해 줄 작품은 더 있는데, 「세상의 꽃다발」 「생일」 「봄눈」 등등이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순간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은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자신의 자존심, 또 하나는 삶의 짐을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으려는 책임감. 이 둘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인이 부조리한 현실을 빤히 알려면서도 섣불리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그동안 안으로 뭔가를 쟁여 넣은 것은, 그러면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존의 조건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것에만 머물지 않는 수련을 나름 닦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이 시집에 실린 작품을 통해서는 그렇다. (이강문 시인은 통상적인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 시집 한 권으로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리고 있다!) 하지만 니체적 의미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낙타와 사자를 지나온 지평이라기보다는 낙타와 사자와 ‘함께’ 사는 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그럴 때만이 어린아이의 울음은 떼가 아니게 된다. 왜냐면 그 마음에는 커다란 고독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본래 긍정과 고독은 같은 편이다!
해와 달과 별의 메아리 안으로 침입한 한 사내
처음과 끝을 함께 자기에게 출산한 한 사내
노란 집 빈방 의자에 홀로 앉아 있네
_「하늘 광부―고흐 생각」 부분
이 노랫소리는 이름 모를 한 마리 새가
나무의 귀에 석삼년 세 들어 살면서
둥지에 알뜰히 물어다 놓은
대웅전 주인의 울음을 닮았습니다
절집 풍경 소리 밑에서 배운
담장 없는 금빛 울음은
작은 새의 가슴에서 알이 되었습니다
노란 부리의 새가 품은 이름 없는 노래는
둥지를 울리고 나무를 울리고 아침을 울려서
가지 뒤에서 귀 기울이던 바람을 울려서
어느덧 제 울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오래 품었던 어둠 깨치고,
대웅전을 울리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아침은 노래의 둥지
자기 울음을 품은 작은 새의 둥지
울음이 많은 이 세상은 노래의 주인을 닮아
금빛 울음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 마음의 처마 끝에서 처마 끝으로
풍경(風磬)이 멀리 멀리 보내는 낮은 휘파람
눈부신 울음 가득
자기 이름의 주인이 된 새
_「자기 울음을 품은 새」 전문
누가 내려왔던 흔적일까
아니면, 올라가던 중이었나
어느 여행의 발자국이 이리 어지러운가
폐업 철거 중인 점포의 내부
등뼈 훤히 드러날 정도의 안간힘만 남기고
한쪽 벽 구석에 서 있는
사다리 하나
가파른 두 손 두 발 벗어놓고
잠시 숨 고르고 있는 탑—
가만히 창가로 다가가 매만지듯 둘러본다
바닥에선 내려갈 곳 없어
두 손발이 언제나 탑의 시작이었다고
늘 머뭇거리는 내게 일러주고 있다
거리의 매연과 속도에 지친
가로수 나뭇가지도
층층이 흔들리는 탑
사다리 아닌 생이 어디 있겠는가
한 칸 한 칸 다짐하듯 내게 짚어주고 있다
-「사다리의 충고」 전문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듯
인간은 자연의 중심이 아니다
저 별 하나가 밤하늘의 주인 아니듯
별빛 같은 내가
어처구니없게도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모든 의미들의 중심이고
부재가 모든 있는 것들의 주인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자연은, 세상은, 중심은 어두운가
그렇듯 분명한 어둠은
인간에게 왜 보이지 않는가
_「어두운 중심」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이강문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삼양사 홍보실에서 17년간 근무한 후 학원 운영, 자영업 등을 거쳐왔다. 삶창에서 펴내는 이번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작품을 세상에 내보낸다.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길
달과 달팽이·12
굽은 나무·14
거울 부자·16
찰칵,·18
자기 울음을 품은 새·20
상처·22
하늘의 정면·23
너머의 너머·26
사다리의 충고·28
겹·30
이 하늘, 낙화유수·32
어떤 용기를 변명함·34
그림자·36
교차로 사막·38
하늘바다 1·40
하늘바다 2·41
빈집의 기억·42
어두운 중심·44
2부 겨울 숲에는 그리움이 있다
맨발·46
바깥의 깊이·48
발자국 암자·50
한눈팔기·52
나침반·54
처음과 하루·55
한 사람·56
바·라·보·네·58
처음의 끝·60
하늘 광부·62
하나의 한 번·64
불편한 신비·66
등대·68
노을은 부른다·70
초혼·72
발바닥·74
연꽃 미로·76
주인 찾기·78
3부 집
최초의 거울·80
공명·82
세상의 생일·84
꽃다발·86
봄눈·87
눈사람 성자·88
놀라운 일·90
배꼽·92
베껴야 산다·94
눈맞춤·97
주저흔·98
역사(力士)·100
빗방울 망원경·102
민들레 대합실·104
걸음마·106
풍선 인간·108
메아리·110
마른 물소리 맛·112
추파·114
비 갠 후·115
해설
아침마다 눈뜨면 우렁우렁 도착하는 ‘저기’(황규관)·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