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주현의 소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평범한 소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김주현의 소설에서는 대개 주인공 한 인물의 관점과 입장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모든 사건과 인물이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맡은 바 제 역할에 충실하다. 소설의 서술은 주인공의 생각을 풀어놓는 데 집중한다. 창작하는 작가의 집필실을 상상해볼 때, 철저한 집필 계획과 꽉 짜인 개요에 따르기보다는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과 그 파동을 따라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글 한 바닥이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 작가는 소설 속에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창작 방법론의 일부를 슬쩍 흘리고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기. 이러한 글쓰기는 솔직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방편의 하나다. 오직 순수한 글쓰기의 시간만 남기고 다른 불순한 것은 일절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엿보인다. 이에 김주현의 소설은 자서전의 형태에 가까운 것임이 짐작된다. 여기서는 순수한 솔직함만이 요구되며 일말의 거짓 또는 감춤이 있다면 글을 쓰는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고 만다. 무릇 모든 소설이 근본적으로는 소설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김주현의 소설에는 그러한 자기성찰적 요소가 유난히 강하다는 말이다.
출판사 리뷰
김주현의 소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평범한 소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김주현의 소설에서는 대개 주인공 한 인물의 관점과 입장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모든 사건과 인물이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맡은 바 제 역할에 충실하다. 소설의 서술은 주인공의 생각을 풀어놓는 데 집중한다. 창작하는 작가의 집필실을 상상해볼 때, 철저한 집필 계획과 꽉 짜인 개요에 따르기보다는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과 그 파동을 따라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글 한 바닥이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 작가는 소설 속에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창작 방법론의 일부를 슬쩍 흘리고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기. 이러한 글쓰기는 솔직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방편의 하나다. 오직 순수한 글쓰기의 시간만 남기고 다른 불순한 것은 일절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엿보인다. 이에 김주현의 소설은 자서전의 형태에 가까운 것임이 짐작된다. 여기서는 순수한 솔직함만이 요구되며 일말의 거짓 또는 감춤이 있다면 글을 쓰는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고 만다. 무릇 모든 소설이 근본적으로는 소설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김주현의 소설에는 그러한 자기성찰적 요소가 유난히 강하다는 말이다.
「눈 속의 터미널」, 「완두콩 한 숟가락」, 「고래밥」은 연애 이야기의 구도를 가져온 작품에 해당한다. 삼각관계, 과거의 연인, 헤어짐 따위 연애 서사의 문법이 이들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표면적으로는 전형적인 연애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김주현 소설의 특징으로 꼽은 자기성찰적 특성이 이들 작품에도 강하게 깔려 있는바, 연애 이야기의 이면에는 결국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가 자리한다.
「완두콩 한 숟가락」은 과거의 두 연인이 연극 공연을 계기로 다시 만난다. 여자는 연극 배우로, 남자는 연극 연출자로 마주하게 된 두 사람 사이에는 H라는 또 다른 과거의 남자가 있어 다시 만난 두 남녀 사이에 갈등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겉으로는 삼각관계가 얽힌 사랑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연애 이야기로 보이는 외관의 이면에는 주인공이 자기 삶의 의미에 관해 생각하는 내용이 펼쳐지고 이것이 사실상 작품의 주제와 직결된다. 이것은 작품의 결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결말에서는 앞으로 두 사람의 연애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관심보다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물음에서 확인되듯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구도는 「눈 속의 터미널」과 「고래밥」에서도 동일하게 펼쳐진다. 남녀의 이별을 다룬 서사적 외관을 볼 때 두 작품 역시 전형적인 연애 이야기다. 그러나 서서히 저물어가는 사랑과 지지부진하고 답답하기만 한 ‘나’의 삶이 나란히 놓여 있다. 「눈 속의 터미널」에서 ‘나’는 이런 상황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누군가와 관계할 줄은 알았지 누군가와 사랑할 줄은 몰랐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체호프의 연극 「세 자매」에 등장하는 세 자매가 모스크바에 가기를 갈망하지만 모스크바로 가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모습이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여 있는 것만 같은 ‘나’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이런 답답한 심정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며 말하는 「고래밥」의 결말에서도 다르지 않다. 연애를 다루되 연애가 시작될 때의 설렘이 아니라 오랜 연애의 종식을 다룬 것 자체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예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또 하나의 계열을 형성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먼 휴양지로 떠나는 공상에 관한 「대명빌리지 옆」, 일상을 떠나 수련원에서 머무는 동안 있었던 일을 다루는 「당신의 얼굴」, 멀리 떨어진 도시에 다녀오는 내용의 「영길의 축제」가 여기에 속한다. 연애 이야기가 주로 과거의 연애 관계를 돌아보고 회상하고 연애를 종결하여 과거형으로 남기는 ‘과거’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여행 이야기는 대개 현재의 일상과 그로 인해 타성에 빠진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현재’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대명빌리지 옆」에서는 아파트 이름에 들어간 ‘빌리지’라는 단어에 관한 뜬금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슨 빌리지’라는 식의 이름은 흔하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름에서 먼 휴양지를 떠올리면서 근사한 휴가를 즐기는 공상에 빠져들기란 그리 흔하지는 않을 듯하다. 휴양지에 관한 상상은 대명빌리지 근처에 있는 작은 옷 가게에 걸린 ‘선드레스’로 이어진다. 올여름 선드레스를 입고 휴양지를 거니는 상상에 빠져든다. 그런데 일상에서 벗어나 휴양지에서 여유를 부리는 상상은 반대편에 있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전제로 한다. 물론 주인공 ‘나’의 일상이 부정적이기만 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늘 즐겁고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는 법, 거기에는 행복이나 불행과는 약간 다른 측면에서 언젠가는 깨트리고 싶은 삶의 상투성이 숨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가 일상의 탈출을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길의 축제」에 나오는 여행도 자기성찰과 연결된다. 지역신문사의 객원 기자인 영길은 취재차 “네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내려온 길”이다. 업무상 출장으로 시작된 여행이지만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는 개인적 일도 섞여 있다. 여행은 집을 떠나 다른 공간과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이기에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된다. 영길의 여행은 지친 인생에서 용기를 얻기 위한 재생의 과정이다.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형 서사를 따르지만 여행의 과정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은 새로운 정신적 단계를 지향하는 성숙의 의지로 수렴된다. 애초에 “영길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어쩐지 부정적이었다”. 또 “영길의 시간은 늘 다른 사람보다 느리게 흘러갔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영길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기만 했다. 그런 영길에게 육효점 점괘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서 멀어져라. 작은 것에 열쇠가 있다.” 영길은 그것을 여행에서 얻은 ‘선물’이라 여긴다. 과거에서 멀어져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가는 것, 업무상 시작된 여행은 원점으로 돌아오지만 영길의 정신적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는 구조다.
「당신의 얼굴」은 몇 주간 수련원에 머문 일을 다룬 작품이다. 수련원이라는 공간은 일상으로부터 분리의 기회를 제공하며, 집을 떠나 수련원에서 지낸다는 것은 모색의 계기를 제공한다. 수련원의 일과표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은 대개 반성과 사색에 관련된 것들이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제목과 연결되는 ‘라이브 마스크’ 만들기다. 「당신의 얼굴」에서 화자는 ‘나’이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러 그 화자의 목소리가 향하는 대상이 ‘당신’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당신’은 ‘내 얼굴’을 닮은 존재, “날 때부터 함께인 얼굴”을 지닌 존재, 곧 자기 자신이라는 암시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영길의 축제」의 결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확인되는데 “내가 누구냐고 물을 사람이 혹 있다면 나는 누구보다도 영길과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라는 문장에서 ‘나’와 영길이 동일 인물처럼 암시된다. 그렇다면 여행의 이야기를 다룬 서술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되는 것이다. 여행이란 자아 외부에 있는 세계와의 접촉이지만 계속해서 자아의 내부를 향한 탐색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볼 때, 김주현 소설의 자기성찰성은 자서전이나 고백록 같은 글보다 한층 더 강렬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세번째 계열은 ‘타인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공원 풍경」과 표제작인 「새는 날고」가 여기에 속한다. 작품 속 만남은 단순한 대면이나 접촉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가 자아의 내부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는 성질의 것이다. 이때의 영향이란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한 삶의 방향성 문제와 관련된 것임은 물론이다. 타인과의 만남을 다룬 「어떤 공원 풍경」이 코로나19의 일상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타인과의 만남을 제한하였다. 그런데 작품 속 ‘나’가 만난 여러 인물은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시민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업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곧 만남이 금지되는 상황이 만남을 가능하게 한 역설적인 상황에 관한 작품이다.
표제작인 「새는 날고」는 타인과의 만남이 시작되고 끝나는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 브라질 요리 슈하스코 전문 음식점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게 된 ‘나’는 페루인 셰프와 만난다. ‘나’와 셰프가 천천히 가까워지는 과정은 흥미진진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가끔 한두 마디 말이 오갈 때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은근한 호기심이 유발되기도 한다. 셰프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는 “힘들어요?”였다. ‘나’는 “힘들죠, 당연히”라는 평범한 대답을 했다. “힘들어요?”라는 짧은 한마디 질문이 함축한 의미는 상당히 무겁다. 설거지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고, 다른 일이 아니라 주방 보조를 하는 상황이 힘들 수도 있고, 또는 돈이나 건강 등의 문제로 힘들 수도 있다. 셰프가 건넨 한마디 말은 중의적 맥락 속에서 여러 다양한 질문을 걸어오는 것이다. 화장이 뭉개진 얼굴을 보고 한 질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기는 하지만 “힘들어요?”라는 질문은 서로 낯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아득한 거리를 순식간에 초월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나’는 ‘힘들어요?’라고 말해준 셰프를 가끔 생각한다. 셰프와의 만남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잔향을 남기는 향수처럼 ‘나’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타인과의 만남으로 인해 인생의 흐름을 바뀌거나 기존의 세계관이 뒤흔들리는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와 나눈 어설픈 대화와 공감의 교류는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것이 분명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주현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여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21세기문학』에 단편소설 「오래된 세월을 걷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모음집 『인생은 오렌지』, 소설집 『조금 늦게 달이 보인다』를 출간했다.
목차
눈 속의 터미널
새는 날고
완두콩 한 숟가락
대명빌리지 옆
영길의 축제
어떤 공원 풍경
고래밥
당신의 얼굴
해설 새로운 여정을 향한 발걸음 | 장두영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