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이자 불멸의 지성으로 사랑받는 정약용의 『정선 목민심서』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와 함께 ‘다산의 지혜’ 에디션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찾아간다. 법, 문학, 지리, 의학, 생물학 등 수많은 분야를 섭렵하며 방대한 저술을 남긴 까닭에 그의 업적은 다산학이라는 학문으로 따로 분류될 정도이다. 이번 다산의 지혜 에디션은 그중 역작으로 손꼽을 수 있는 저서와 가장 사적인 기록을 함께 묶고 새 옷을 입혀, 안팎으로 나를 다스리는 법에 관한 다산의 가르침을 담았다. 『목민심서』가 지방 수령인 목민관이 따라야 할 지침을 담아 정치·사회·행정적으로 역할하는 공인의 자세를 고민케 한다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지식인이자 아버지로서 후대에게 긴히 남기는 말들이 담겨 있다. 오랜 시간 다산에 천착해 실학·다산학을 정립한 다산연구회와 다산 연구의 권위자인 박석무 단국대 석좌교수가 각각 편역한 두 책은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우리를 일깨우는 잠언으로 가득하다. 특히 어느 때보다 혼란한 시대를 리더로서, 한 인간으로서 현명하게 헤쳐나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곁에 두고 오래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생활고전으로 손색없다.『목민심서』는 강진의 유배지에서 집필한 다산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지방 수령이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원칙 및 지침과 세부 사항을 담은 책이다. 다산은 이 책에서 대단히 풍부한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당시의 실상과 관행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병폐의 원인을 찾고 치유책을 고안하는 실학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선 목민심서』에는 원서의 내용 중에서 시대를 바라보는 다산의 고심과 탁견이 담긴 대목을 가려 뽑았다.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하는 데 있어서 제일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워할 외(畏)’ 한 글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되지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의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약용
조선 말기의 실학자. 정조 때의 문신이며, 정치가이자 철학자, 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이며, 천주교 교명은 요안, 시호는 문도(文度)이다.1776년 정조 즉위 호조좌랑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 보고 그 학문에 감동받았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가 되었고,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를 거쳐 검열이 되었으나, 가톨릭 교인이라 하여 탄핵을 받고 해미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고, 1799년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 신유교난 때 장기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저서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정다산전서』 『아방강역고』 『마과회통』 『자찬묘지명』 『맹자요의』 『논어고금주』 『춘추고징』 『역학제언』 『상서지원록』 『주역심전』 『사례가식』 『상례사전』 『악서고존』 『상서고훈』 『매씨서평』 『모시강의』 『삼미자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