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아침달 시집 53권.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 이후 다섯 번째 시집이다. 2016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이전 시집들에서 해체되고 미분된 몸, 흐르는 시간과 전류처럼 유동하는 감각, 일상과 죽음 사이의 긴장을 독특한 이미지로 포착해왔다.
이번 시집은 사랑과 존재, 언어와 일상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하며 ‘비어 있음’으로부터 그동안 누벼온 경로를 재검색하고 나아가 도래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우신은 ‘사랑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내면을 기계음과 생활어, 종교적 기호와 도시의 풍경이 교차하는 복합적 언어의 장으로 펼쳐 놓는다.
출판사 리뷰
언어의 균열에서 피어나는 리듬과 이미지
사랑 이후의 풍경을 새로 그리는 시인의 기하학
정우신의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이 53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 이후 다섯 번째 시집이다. 2016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이전 시집들에서 해체되고 미분된 몸, 흐르는 시간과 전류처럼 유동하는 감각, 일상과 죽음 사이의 긴장을 독특한 이미지로 포착해왔다. 이번 시집은 사랑과 존재, 언어와 일상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하며 ‘비어 있음’으로부터 그동안 누벼온 경로를 재검색하고 나아가 도래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우신은 ‘사랑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내면을 기계음과 생활어, 종교적 기호와 도시의 풍경이 교차하는 복합적 언어의 장으로 펼쳐 놓는다. 문학평론가 송현지는 해설에서 “시인은 시간을 좌표화하고 재배치하여 그 흐름을 다시 설계하는 기하학적 회로를 구성함으로써,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완전히 휩쓸리지 않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라고 이야기하며, 독자로 하여금 절망을 관조하고 새로운 흐름을 경험하게 하는 시적 실천을 제시한다.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은 일상과 상실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절망과 희망을 엮어 오늘의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통과하게 한다.
절망과 사랑의 전류가 교차하는 시의 회로
언어로 밝아져 오는 미장센의 순간
정제된 언어와 능동의 이미지를 통해 그간 사랑의 충돌과 이행을 엮어 온 시인 정우신의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이 아침달 53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총 47편의 시를 5부로 나누어 담아 죽음과 절망, 시간과 흐름, 사랑과 교육이라는 주제를 심층적으로 탐색한다.
1부에서 시인은 갈라지고 훼손된 몸과 사라져버린 존재의 감각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한다. 공장, 고물상, 일상의 공간에서 분화되고 미분된 몸들을 묘사하며 죽음과 삶의 간극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상실을 직시한다. “버들치는 렌즈를 닦는다/ 버들치는 십 분마다 뛰쳐나가고 두 시간씩 이동한다”(「버들치의 사랑」), 2부의 중심에는 「버들치의 사랑」이 있다. 존재는 끊임없이 흐르고 흔들린다. 물속을 유영하는 버들치는 시인의 시선 속에서 인간의 불안과 유동하는 감정을 대리하기도 한다. 흐르는 시간과 전류처럼 유동하는 감각,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삶과 기억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게 엮어내는데, 시인은 이를 통해 일상의 순간들이 어떻게 기억과 감정 속에서 서로 연결되고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3부의 기계음과 생활어, 도시의 풍경이 교차하는 언어의 장에서 시인은 사랑과 상실을 동시에 경험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리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계가 어떻게 미세하게 흔들리는지 보여준다. 4부에서는 죽음과 상실이 가까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며 절망을 관조하면서도 이를 견디는 일상의 수행을 보여준다. 화자는 반복되는 행동과 공간적 이동 속에서 슬픔과 불안을 견디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모색한다. 사랑과 교육,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시적 회로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5부에서 그는, 가족과 타인에게 닿는 전류처럼 사랑을 새로운 흐름으로 변환하는 방식을 시를 통해 구현한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송현지는 해설에서 “읽는 이에 따라 새로 생성되는 흐름은 시의 언어 속에서 저마다 새로운 전기장을 형성한다”라며 독자가 시를 따라가며 절망을 관조하고 새로운 흐름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시적 실천을 강조했다.
한편 이번 시집의 시들은 하나의 정교한 회로와 같다. 흐르는 시간과 감각, 살아 있는 몸과 사라진 몸, 사랑과 상실의 흔적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촘촘히 배치하며, 각 시편이 서로 다른 전류처럼 맞물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의 언어는 결코 단정하거나 설명적이지 않다. 대신 절망과 죽음, 일상의 순간들이 겹치는 복합적 풍경을 세심하게 포착하며 독자에게 시간을 재배치하고 흐름을 새롭게 설계할 여지를 남긴다. 시인의 언어는 독자가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흐름과 질서를 발견하도록 안내한다. 가까이 읽으면 죽음과 상실,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별적인 순간일 뿐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은 살아 있는 감각과 사랑, 일상의 틈새를 연결하는 촘촘한 전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에게 사랑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감각’과도 같은 것이다. 덧없고 찰나적인 그 움직임 속에서 ‘사랑의 장면들’을 포착하고, 그 감촉과 빛으로 다시 세계를 엮어낸다. 이렇듯 정우신의 시는 독자를 현실 속 고단함과 불안을 관조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삶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만들며 재발견의 순간을 펼쳐 보인다.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을 통해 독자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시간과 흐름을 다시 관조해 볼 수 있다. 시 속에서 포착되는 미세하게 갈라진 몸과 흐르는 시간, 일상의 틈새 속 감정들은 우리 각자의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 고단함과 불안을 반영한다. 누군가는 삶이, 시간과 관계가 어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낄 것이다. 그럴 때 정우신의 시를 건네고 싶어진다. 그의 시는 단어 자체보다, 단어가 만들어 내는 흐름과 감각으로 독자를 감싸는 힘이 있다. 더불어 그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을 단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열된 자신의 시간을 시적으로 재구성하여, 독자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시간으로 건넨다. 읽는 이는 자신이 지나쳐 온 순간, 놓쳤던 관계, 그리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감정들을 떠올리며 일상에서 자신만의 ‘미장 또는 미장센’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시집이 그리는 ‘미래’는 그동안 시간의 차원에서 꿈꾸기만 했던 어떤 단순한 가능성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과 관심의 전류를 뿜어내며 작은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실천하는 순간 속에서 도래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시집이 전하는 마찰력을 통해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이끌림을 ‘미래’의 차원으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시집은 미래라는 불확실한 시간을 화려하게 ‘채색(미장)’하거나, 장면을 연출하듯 섬세하게 ‘배치(미장센)’하는 시적 상상력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삶과 감각을 새롭게 구성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골목에는 불이 켜지고 네가 들어오고
내가 나가고 불이 희미해지고
내가 소켓으로 전기를 흘릴 때
너는 담요에서 고양이로 부드럽게 넘어가고
텅 빈 골목을 지나고
―「밤은 깜박이는데」 중에서
당신의 눈동자 속에도
꿈속에도 키위가 놓여 있어서
그것이 심장처럼
나를 작동시키는 것 같아서
―「키위」 중에서
허공의 시간을 재보는 침엽수를 생각할 뿐이었지. 빈방에 남은 오렌지를 생각할 뿐이었어. 그냥 새인 줄만 알았지. 새소리를 들어서 네가 잘 있는 줄 알았지.
―「뻐꾸기가 놓인 방」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우신
2016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 등이 있다. 제8회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목차
1부
우리는 살아간다고 믿고
청계천
소등
밤은 깜박이는데
제제와 혹등고래
키위
나는 파충류입니다
새벽 두 시, 맥주 두 캔
삼진 정밀
잠자리
비닐 연습
Shape of Water
2부
비도 사람도 아닌 것이
버들치의 사랑
뻐꾸기가 놓인 방
펭귄
수속
앵두의 맛
종려나무 아래서
우리는 모나드
겨울 산장
블루문
미생물의 방
샐리
관측소
3부
사랑을 놓아둘 곳이 없어서
진
오래된 기차역이 있는 골목
선데이 로스트
패딩턴
당골
건강원
햇살의 사춘기
내일의 천사
진과 우산
파동 일기
포장육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4부
가까운 사람부터 낯설어지는
기일
삼두구미
폭우
Tag
덫
팔마도
대설주의보
석촌호수를 걷다가
서커스처럼
나는 편리합니다
바다의 위치
도깨비불
5부
텅 빈 사랑으로 사랑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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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절망을 건너는 기하학 – 송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