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박수현 시집 『처녑』은 언어의 뿌리와 존재의 주름을 더듬는 내밀한 여정이다. 시인은 사라지는 한국어를 되살리고 언어의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사명감으로 시를 쓴다. 「시집」에서 새들이 가지를 물어다 쌓듯 영혼의 울음을 모아 만든 시집은 세상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존재로 남는다.
첫 시 「강릉」은 ‘사라지는 청춘의 휘파람소리’를 통해 상실과 기억의 정서를 드러낸다. 괭이갈매기의 울음과 파도에 닳은 발자국 같은 기억은 지나간 청춘의 흔적이며, 그 울음이 곧 시의 본질이다. 시인은 세상을 ‘주름’의 형상으로 보고, 「처녑」에서는 소의 세 번째 위장을 통해 생의 주름과 ‘울음의 겹’을 형이상학적으로 구현한다.
후반부에서는 상실과 병, 치유의 과정을 담아낸다. 「예후」의 고통, 「창문 잎사귀들」의 교감, 「지금」의 해동된 기억이 이어지며, 주름진 삶의 기억이 시로 되새김질된다. 『처녑』은 슬픔 속의 아름다움을 품은 언어로,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금 여기’에 되살려낸다.
출판사 리뷰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지만 슬픔을 준다. … 이 시집의 시편들은 슬픔과 아름다움의 중첩을 실현하고 있다. 메아리로 들려오는 사라지는 것들의 소리는 아름답게 울린다. 그것은 둘둘 말려 응축되어 숨어 있었던 기억을 펼치면서 울리는 소리다. 기억으로 응축된 삶을 펼쳤다 접는다는 건, 삶의 시간들이 주름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박수현 시인은 ‘세상’ 자체가 주름져 있다고 생각한다. 주름이 그가 지닌 형이상학의 핵심 이미지다. … 시인이 정육점에서 산 ‘서너 근’ 처녑에는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처녑」)이 담겨 있다. … 처녑은 ‘울음의 겹’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인은 이 ‘울음의 겹’이 우리 사람에게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처녑 같은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 그 ‘울음의 겹’은 시인이 살아왔던 주름진 시간들이다. 기억을 통해 펼쳐질 접혀 있는 과거의 시간들. 처녑을 “씹을수록 싱싱해지”듯이, 자신의 기억을 씹으면 생생하게 그 시간들이 펼쳐질 것이다. 울음소리를 내며, 아름답고 슬프게. 박수현 시인에게 시 쓰기란 그렇게 기억을 천천히 씹으면서 살아온 삶의 시간들을 펼치는 작업이지 않을까.
- 이성혁의 해설 「주름의 기억」 중에서
보통 사람은 시력詩歷이 늘어감에 따라 욕심도 커지기 마련이지만 박수현의 겸손과 중용의 의태意態는 늘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모범적이다. 굳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이 시집의 모든 글이 곧 그녀이고, 그녀의 生이 곧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삶의 ‘주름과 기억’을 시인이 어떻게 되새김하고 있는지는 이성혁 평론가의 멋진 해설을 탐독하면 될 터, 나는 단지 그 주름을 만들어낸 원천적 심상에 쓸쓸한 눈길이 간다. 시집 전체를, 혹은 그녀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상실’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잃어버리고 없는 것, 그리고 곧 잃어갈 것들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도난당한 나’라든가 ‘금이 간 유리’라든가, 낡아가는 ‘묵헌종택’ ‘돌아가신 어머니’나 ‘오탁번 선생’ 등. 그러니까 지금 그녀의 걸음에 동력이 되는 것은 실상 ‘상실’인 셈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읽는 이의 마음에도 가닿았으면 한다. 흔들림에 맞서 詩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는 시인께 경의를 표하며, 슬픔이 어떻게 주름이 되는지, 그리고 그 주름이 어떻게 기어코 다시 우리를 일으키는 힘이 되는지, ‘아코디언처럼 접혔다가 수평선처럼 쭈욱’ 펼쳐질 그녀와 우리의 미래를 지켜볼 참이다. 아, 첨언 한 마디, 시가 너무 길어지는 시절에 곳곳에 놓인 짧은 시들이 ‘납매臘梅 한 포기’처럼 눈길을 끈다. 요런 수작秀作들만 모여 있는 또 한 권의 시집을 기다려 본다.
- 천서봉(시인·이마건축사무소 대표)
주름의 기억
이성혁(문학평론가)
박수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처녑』 원고를 정독하고서 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어떻게 공들여 선택하는지, 그렇게 선택한 단어들을 엮어 문장 하나하나를 어떻게 정밀하게 만들어내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나와서 놀라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어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는가. 박수현 시인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시를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가는 한국어를 되살리고자 하는 열정, 시의 본령을 지키고자 하는 뚝심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시인. 그런데 시인 자신이 바로 「시집」이라는 시에서 자신의 시집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밝히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 산문시 내용은 이렇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더니 그의 세 번째 시집 샌드 페인팅을 발견했다는 것. 그 시집 앞에 “이름이 서명된 페이지는 찢겨 나갔다”고. 즉 시인이 직접 보내준 시집을 누군가 중고서점에 판 것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 실린 육십여 편 시 중에서 “눈 맞출 만한 시는 한 편도 없던 터였겠다”며 씁쓸해하면서 이 시집을 사들고 집에 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집의 ‘집(集)’자는 나무 위에 새가 앉은 형상이라는데 그는 종종거리며 슬프고 안타까운 새의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한 것이리라 새들이 애면글면 날아가 나뭇가지 하나 물어오고 다시 또 물어오며 알뜰히 쌓아 올렸을 집 한 채, 나는 새 한 마리 깃들지 않은 나의 폐갱廢坑 같은 새집에게 미안해졌다 그날 오후, 그해 내 몸과 영혼의 구석진 곳 샅샅이 아침에도 울고 저녁에도 울었을 새들을 생각하며, 내 가여운 새집을 오래된 아궁이 불씨 뒤적이듯 뒤적거릴 따름이었다
- 「시집詩集」 후반부
박수현 시인은 한자 ‘集’자가 “나무 위에 새가 앉은 형상”이라는 데서 착안하여 시집을 새집으로 비유한다. 새들이 “나뭇가지 하나 물어”와서 “알뜰히 쌓아 올”린 것이 시집, 자신의 시집도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집 안에는 새들이 살고 있다. 「샌드 페인팅」을 판 사람은 이 “슬프고 안타까운 새의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것, 그 시집은 “내 몸과 영혼의 구석진 곳 샅샅이” 아침저녁으로 울고 있는 새들을 찾아내 집에 데려와 만든 것이지만, 누군가에겐 ‘폐갱’ 같이 되어버린 시집이 된 것이다. 필자에게는 이 시가 인상적으로 읽혔다. 박수현 시인이 시를 어떻게 쓰고 시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하여 옷 한 벌을 지어내듯이(시집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시인의 어머니도 옷을 만들어 팔아 식구를 먹어 살렸던 것 같다) 시를 쓰는 사람이며, 그 시 쓰기는 단순히 아름다운 언어를 찾아내 엮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깊고 구석진 곳에 있는 울음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읽은 이 시집에는 어떤 울음이 담겨 있는가. 시집 첫머리는 보통 그 시집의 시세계를 대표해주는 시가 실리곤 한다. 이 시집의 첫머리에 실린 시는 「강릉」이다. “일 년 만에 당도”한 편지의 내용을 말해주는 시다. 그 편지 속엔 무엇이 있었나. 어떤 소리만, “해식애海蝕崖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와서 괭이갈매기 무수한 울음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내 청춘의 휘파람소리”만 실려 있었다고 한다. 이 시집의 주된 주제가 바로 이 사라지는 청춘의 휘파람소리 아닐까. 그 소리는 새-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의 이면에 스며들어 있다. 다시 말해 시가 내는 울음소리 뒤에는 사라져가는 청춘의 기억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휘파람소리를 박수현 시인은 “파도에 닳아 조금씩 없어지는 모래펄의 낯선 발자국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낯설게 보이는, 게다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는, 이제 “황폐한 별자리처럼 자꾸 어두워지는” 청춘의 기억들이 이 시집의 새 울음 같은 시편들에는 스며들어 있는 것 아닐까. 하나 그렇게 사라져가는 기억들이지만 그것들은 “내 청춘의 불온하고 아름다운 파일들”이라는 것임을 시인은 느낀다. 지금 붙잡으려고 해도 붙잡을 수 없는 기억들이지만, 그것들은 아름다움을 진하게 남기며 사라지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지만 슬픔을 준다.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로 시가 표현되는 것은 시인이 슬프기 때문이다. 하여 이 시집의 시편들은 슬픔과 아름다움의 중첩을 실현하고 있다. 메아리로 들려오는 사라지는 것들의 소리는 아름답게 울린다. 그것은 둘둘 말려 응축되어 숨어 있었던 기억을 펼치면서 울리는 소리다. 다시 말해 기억 저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었던 기억들이 펼쳐지며 사라지는 소리가 ‘새-시’가 내는 아름답고 슬픈 울음인 것이다. 「우산」에서 박수현 시인은 “접었다 다시 펼치는/추억 같은 것”으로 우산을 정의하고 있는 바, 접혀져 있던 주름진 기억들이 팽팽하게 펼쳐지는 것이 추억이며 이 추억의 메아리가 그의 시인 것이다. “젊은 그때를 펼쳤다/다시 접는” 시는 “망가진 살대 밑에” 있는 “살짝 은밀”하거나 “살짝 부끄러운” 비밀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러한 펼치고 접는 행위는 “사소한 슬픔”을 불러낸다. 추억을 펼치고 접을 수 있는 ‘우산’은 시와 같다. 시는 추억을 아름답게 펼치지만 그 추억은 사라질-접힐 운명이다. 그리고 그 운명은 시를 슬픔으로 젖어들게 한다.
기억으로 응축된 삶을 펼쳤다 접는다는 건, 삶의 시간들이 주름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박수현 시인은 ‘세상’ 자체가 주름져 있다고 생각한다. 주름이 그가 지닌 형이상학의 핵심 이미지다. 「주름들」에서 그 형이상학이 펼쳐진다. 시인은 동사무소에 인감 떼러 갔는데 “피부주름인 지문”이 지워져 지문인식기가 “나를 읽어내지 못했다” 면서 시적 사유를 전개한다. 세상은 주름으로 이루어졌다고 그는 생각한다. “세상은 차라리 주름의 촘촘하고 슬픈 서사”이며 “산맥의 능선이나 계곡은 땅의 주름”, “사막의 사구는 바람의 주름”이고, “해안의 파도는 물의 주름”이라는 것이다. 자연뿐만이 아니다. “아코디언, 오르간 같은 악기”도 주름을 원리로 음을 발한다. 시인은 “하늬바람이나 빛 광자 광풍光風은 어여쁘게 주름진 바람의 맑은 아미”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도 생각해낸다. 그리고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삶의 행려行旅’ 역시 “고사목 껍질처럼 딴딴한 주름을 등고선처럼 가슴에 새기며 어느 해변 기슭에서 쓸쓸히 좌초되기 마련”이라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죽음은 이 “다랭이논처럼 이어지며 흐르는 주름 사이로/물새 떼가 날아”갈 때, “빛과 어둠이 서로의 주름을 바꾸며 나부”낄 때 현현한다. 이 주름의 세상을 살아가는 주름 진 삶을, 그야말로 육신 자체로 드러내는 것이 소의 ‘처녑’이다. 「처녑」은 “천 장의 잎새라는 뜻”의 ‘처녑’-소의 세 번째 위장-에 대한 시인의 ‘이미지-사유’가 깊이 있게 펼쳐지는 시다.
여름나기로 단골정육점에서 처녑을 샀다
소의 세 번째 위장인 처녑은
천 장의 잎새라는 뜻이랬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채 서너 근으로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
밀가루를 묻혀 아코디언 같은 주름을 치댄다
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
첩첩산중 만경창파를 이고 넘는 것 같다는데
어쩌자고 이 초식성 짐승은
깊고 어둔 위장을 네 개나 붙잡고 있는 걸까
쇠뜨기, 둑새풀의 독하고 푸른 숨결과
매미의 울창한 울음과
마지기마 지기 쏟는 작달비를 오래 되새김질 했겠다
질기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견뎌내느라
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처녑 한 젓가락을 기름장에 찍는
적막한 허기의 저녁,
씹을수록 싱싱해지는 천 장의 이파리가
가망 없이 몸을 뒤집는다
- 「처녑」 전문
시인이 정육점에서 산 ‘서너 근’ 처녑에는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이 담겨 있다. 소가 살았을 그 고난의 삶의 시간들이 “천 장의 잎새”로 차곡차곡 몸에 새겨져 “아코디언 같은 주름”이 만들어진 위장이 그것이기에. 그 처녑의 주름은 소가 몸으로 받아들였을 “쇠뜨기, 둑새풀의 독하고 푸른 숨결과/매미의 울창한 울음과/마지기 마지기 쏟는 작달비를 오래 되새김질” 한 시간들이 중첩되고 중첩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울음의 겹’이다. 이 “크고 순한 짐승”인 소는 자신의 슬픈 운명을 알고 삶을 살았을 터, 그래서 더욱 모든 존재자들을 허투루 대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이며 오래 되새김질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새김질할수록 슬픔은 더욱 짙게 처녑에 고이게 되었을 터, 하여 처녑은 ‘울음의 겹’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인은 이 ‘울음의 겹’이 우리 사람에게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처녑 같은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자신 안의 ‘울음의 겹’일 것이다. 타인의 ‘울음의 겹’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자신 안의 ‘울음의 겹’은 직접적으로 대할 수 있고 그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울음의 겹’은 시인이 살아왔던 주름진 시간들이다. 기억을 통해 펼쳐질 접혀있는 과거의 시간들. 처녑을 “씹을수록 싱싱해지”듯이, 자신의 기억을 씹으면 생생하게 그 시간들이 펼쳐질 것이다. 울음소리를 내며, 아름답고 슬프게. 박수현 시인에게 시 쓰기란 그렇게 기억을 천천히 씹으면서 살아온 삶의 시간들을 펼치는 작업이지 않을까.
박수현 시집 『처녑』은 언어의 뿌리와 존재의 주름을 더듬는 시인의 내밀한 여정이다. 시인은 사라지는 한국어를 되살리고, 언어의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사명감으로 시를 쓴다.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시집을 ‘나무 위 새의 집’으로 비유한다. 새들이 가지를 물어다 쌓듯, 시인도 영혼의 울음을 모아 시집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중고서점에 팔린 이야기를 통해, 시인의 시가 세상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시집의 첫 시 「강릉」은 ‘사라지는 청춘의 휘파람소리’를 통해 상실과 기억의 정서를 제시한다. 괭이갈매기의 울음, 파도에 닳은 발자국 같은 기억은 모두 지나간 청춘의 흔적이다. 이 휘파람은 시인의 내면에서 되살아나는 울음이며, 그 울음이 곧 시의 본질이다.
시인은 세상을 ‘주름’의 형상으로 본다. 「주름들」에서 그는 세상과 인간, 자연을 모두 주름으로 구성된 존재로 인식한다. 땅의 능선, 사구, 파도, 그리고 악기의 주름이 모두 생명의 흔적이 된다. 대표작 「처녑」에서는 소의 세 번째 위장을 통해 이러한 주름의 형이상학을 구현한다. ‘천 장의 잎새’ 같은 위장은 생의 기억과 울음이 중첩된 공간이다. 시인은 이 ‘울음의 겹’ 속으로 들어가 인간 존재의 깊은 정서를 응시한다.
시의 세계는 개인적 기억으로 확장된다. 「납매」에서는 함박눈 속에서 잃었던 어린 시절과 첫사랑이 되살아난다. 납매는 겨울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의 상징이며, 시인은 무의지적 기억의 방식으로 과거의 삶을 불러낸다. 이러한 기억은 ‘주름진 시간’으로 존재하며, 「김치밥국 끓이는 아침」에서는 가난한 시절 어머니의 밥국 냄새로 되살아난다. 가난과 모성의 기억은 따뜻하면서도 서글픈 정조로 남는다.
후반부의 시들은 상실과 병, 그리고 치유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예후」에서 시인은 병든 몸의 고통 속에서 봉합되지 않는 상처와 기억의 파도를 마주한다. 그러나 「창문 잎사귀들」에서는 구멍난 몬스테라 잎을 통해 빛을 나누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기억의 상처가 상상과 교감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마지막 시 「지금」에서 시인은 얼어붙은 과거를 ‘찌개 냄비에 붓고 끓이는’ 행위로 표현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지금’의 시간 속에서 시인은 새로운 삶의 리듬을 찾아낸다. 냉동된 기억이 해동되어 일상의 순간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결국 『처녑』은 주름진 삶의 기억을 시로 되새김질하는 여정이다. 그 주름 속엔 슬픔이, 그러나 동시에 존재의 깊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박수현의 시는 기억의 울음을 품은 언어이며,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지금 여기’에 되살려낸다.
1부
강릉
편지는 일 년 만에 당도했다 작년 여름 바닷가에서 부친 편지였다 흰 봉투를 나이프로 뜯자 파도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모래펄에 팬 낯선 발자국들이 동봉되어 있었다 내가 송부한 것은 눈부신 수평선과 수평선 끝에 눈썹처럼 걸린 흰 돛과 그보다 더 흰 팔월의 뭉게구름과 그 곁의 연필 밑그림 같은 낮달이었다 그런데 내가 평생 바다만 바라보는 해변의 낡은 우체통처럼 서서 받아 든 것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신새벽 꿈 같은, 해식애海蝕崖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와서 괭이갈매기 무수한 울음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내 청춘의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파도에 닳아 조금씩 없어지는 모래펄의 낯선 발자국 같은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이의 뒷모습이 어느 황폐한 별자리처럼 자꾸 어두워지는 그해 여름 강릉 앞바다, 또는 내 청춘의 불온하고 아름다운 파일들
칠월
슴베 빠지듯 슴베 빠지듯
어린 마음 쑥! 빠져
늬가 영영 돌아나간 고샅길 어귀 저수지
어리연 부레옥잠 물그늘 따라
차라리 눈부셔라
은피라미 몇 오라기
회창회창 햇살에 제 몸을 헹구는
처녑
여름나기로 단골정육점에서 처녑을 샀다
소의 세 번째 위장인 처녑은
천 장의 잎새라는 뜻이랬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채 서너 근으로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
밀가루를 묻혀 아코디언 같은 주름을 치댄다
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
첩첩산중 만경창파를 이고 넘는 것 같다는데
어쩌자고 이 초식성 짐승은
깊고 어둔 위장을 네 개나 붙잡고 있는 걸까
쇠뜨기, 둑새풀의 독하고 푸른 숨결과
매미의 울창한 울음과
마지기 마지기 쏟는 작달비를 오래 되새김질했겠다
질기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견뎌내느라
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처녑 한 젓가락을 기름장에 찍는
적막한 허기의 저녁,
씹을수록 싱싱해지는 천 장의 이파리가
가망 없이 몸을 뒤집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수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2003년 계간시지 『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샌드 페인팅』과『티베트의 초승달』 등 3권의 연합기행시집이 있음.제4회 「동천 문학상」 수상.2011년 서울문화재단 작가창작 활동지원금 수혜.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2025년 서울문화재단 원로예술인창작기금 수혜. 현 시인협회 중앙위원 및 한국디카시 서울양천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