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제4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 제9회 비룡소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곽유진 작가가 처음으로 경장편 SF 환상소설을 선보인다. 소설은 현대적 분위기의 병원, 인류 대부분이 멸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사회, 영화 〈아바타〉를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외계 행성 등 다양한 배경을 넘나들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메타적 연출을 선보인다.
겹겹이 중첩되는 이야기들 끝에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잔혹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좌절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멈춰버릴 것인가. 만약 이 세계의 본질이 절망이라면, 그 안에 갇힌 우리에게 이 모든 이야기가 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초현실적인 공간 배경과 인물들의 의식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가히 SF를 넘어 판타지/환상문학의 면모 또한 가졌다 할 만하다. 디스토피아를 다루면서도 동화처럼 아름다운 묘사와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따뜻한 감정 교류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출판사 리뷰
세상의 끝에 단둘이 남겨진 소녀와 노인
이 세계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의 모험
고블씬북 열네 번째 책
제4회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
2020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가
곽유진의 SF 환상소설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아무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회색 세계에서, 소녀는 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가. 제4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 제9회 비룡소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곽유진 작가가 처음으로 경장편 SF 환상소설을 선보인다. 소설은 현대적 분위기의 병원, 인류 대부분이 멸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사회, 영화 〈아바타〉를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외계 행성 등 다양한 배경을 넘나들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메타적 연출을 선보인다. 겹겹이 중첩되는 이야기들 끝에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잔혹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좌절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멈춰버릴 것인가. 만약 이 세계의 본질이 절망이라면, 그 안에 갇힌 우리에게 이 모든 이야기가 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초현실적인 공간 배경과 인물들의 의식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가히 SF를 넘어 판타지/환상문학의 면모 또한 가졌다 할 만하다. 디스토피아를 다루면서도 동화처럼 아름다운 묘사와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따뜻한 감정 교류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것은,
회색 눈이 쉼 없이 내리는 세계 위로
썰매를 끌고 가는 소녀의 이야기,
그 썰매에 탄 노인이 들려주는
먼 외계에 사는 또 한 명의 소녀 모투나의 이야기
이들이 속한 세계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 모든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이제 병원의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이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이야기한다. “나 같은 노인을 보살피던 한 소녀가 있었다. (…) 소녀가 살던 시대는 세상이 한 번 무너진 시대였다.” 모종의 이유로 멸망한 세상. 모든 시계와 기계가 멈추었고, 끊임없이 내리는 회색 눈에 찬란했던 문명은 폐허가 되었다. 이제 간신히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이들은 지하철 역사 밑에 숨어 근근이 삶을 이어 간다.
어느 날, 소녀는 노인을 다른 지역에 있는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는 임무를 띠고 그와 함께 회색 세상을 횡단하게 된다. 소녀는 행동이 굼뜨고 답답한 노인이 성가시고, 무엇보다 그가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 망쳐버린 구세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증오스럽다. 그런 소녀에게 노인은 세상이 망가지기 전에 자신이 보았던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외계 행성의 헤르보렛사라 이름하는 깊은 산꼭대기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부족이 있다. 소녀 모투나는 부족을 대표하여 산아래 마을과 교역하고 적들을 물리치는 ‘순찰자’의 임무를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투나의 부족은 커다란 위기에 처하고, 모투나는 마침내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가 깊어가는 동안 서로 적대하던 노인과 소녀는 점점 가까워지고 저마다 상대방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러나 쉼 없이 내리는 회색 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목적지가 가까워 옴에 따라 노인과 소녀의 이야기는 곧 끝이 날 참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결말에 도달할 것인가.
이야기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야기하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이 세상에서 잊혀 가는 모든 이야기에 바치는 헌사
작품 속에서 노인의 이야기는 어느 백화점에서 시작한다. 회색 눈보라와 어둠을 피해 찾아 들어간 한 폐허. 과거에는 백화점이라 불렸던 곳이다. 이곳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파는 곳이었노라고, 노인은 소녀에게 알려준다. 그곳에서 발견한 빛바래고 반쯤 찢겨 나간 광고 사진 한 장을 어루만지며 노인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사진 속 아이가 딱 한 번 주인공 ‘모투나’ 역으로 출연하였다는 영화에 대하여.
저자 곽유진은 「작가의 말」에 쓴다. “소설은 분명 작가가 쓴 허구의 문장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때때로, 아니 대부분 다른 무언가가 되어 제멋대로 살아 움직인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어느 작가는 소설을 아이라 칭한다.” 소녀와 노인의 우정과 모험 서사에 집중하는 외에도 우리는 이 소설을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희박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서로 닮은 이야기들이 우리 곁을 빠른 속도로 스쳐 간다. 그중 많은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얻지 못하는 이야기들은 쉽게 잊힌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사라져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의 이야기가 창조자의 손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순간, 이야기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순간을 꿈꾸며.
우리 곁에 머물렀다 사라져 가는 이야기와 이야기꾼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가득 담긴 소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을 ‘이야기의, 이야기에 의한, 이야기를 위한’ 소설이라 하더라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간호사를 보았다. 공원에 내리는 나른한 햇살 아래에서 간호사는 낡은 책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를 입술을 움직이며 읽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살짝 찡그릴 뿐, 꾸며낸 세계에 빠져 이곳의 풍경이나 소음 따윈 잊은 듯 보였다. 간호사는 이내 나를 발견하고 미소 지었지만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소설이라니. 소설 따위라니.
이제 열일곱 살이라는 간호사는 내 성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저는 소설을 좋아해요. 꾸며낸 이야기 따윈 시시한 세상이죠? 그래도 소설이 좋아요.”
나 같은 노인을 보살피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시절 여느 소녀처럼 당찼으며 동시에 차가웠고, 모두를 사랑했으며 모두를 미워했다. 이제 돌이켜보니 그 역시 그 소녀가 익힌 살아남는 법. 소녀가 살던 시대는 세상이 한 번 무너진 시대였다. 그 시대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소녀와 내가 겪은 일을 떠올리고 이야기하기에도 내 몸과 마음은 너무나 지쳤으니까. 그저 어느 날 세상 모든 시계와 기계, 전선에 흐르던 전기가 멈춘 때, 인간들이 사랑하던 도시와 문명이 무너졌던 시대, 회색 눈이 끊임없이 내리던 시절이라는 사실만 이야기하겠다.
먼 곳에서 들려 오는 소음에 소녀는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소녀의 갈색 눈이 반짝였다. 소녀는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으면서 조용한 걸음으로 창문에 다가갔다. 그 걸음은 너무나 차분하여서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오랫동안 도시를 횡단하면서 생긴 버릇이고 생존법이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익힌 몸짓. 소녀는 제 목에 목걸이처럼 걸고 있던 쌍안경으로 먼 곳을 관찰했다. 쌍안경이라고는 하지만 한쪽 렌즈는 이미 오래전에 깨졌고 한쪽만이 겨우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소음의 정체는 언제나 그랬듯, 낡은 건물에 쌓인 눈덩이들이 아래로 쏟아지는 소리였다. 하지만 소녀는 혹시나 모를 위협을 생각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도시를 서른두 번이나 횡단하면서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만난 적은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걸리적거리는 짐이 하나 있지 않은가.
지금은 회색 눈보라에 파묻힌 이곳이 사람이 사는 진짜 도시일 때의 모습을 소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 뒤를 따르는 노인이나 진짜 도시의 모습을 기억할까.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고, 그 누구도 들려준 적이 없었다. 도시가 도시이던 시절의 이야기를.
— 다른 층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겠어. 백화점은 창문이 없거든. 어두울 거야.
— 왜지? 창문이 있어야 물건들을 자랑할 수 있는 거 아니야?
— 아니야. 창문이 없어야 사람들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물건을 사지.
— 흥. 역겨워.
소녀는 역겨워, 라는 세 음절에 힘을 줘서 말했다. 그 끝에는 당신 같은 노인네들이 편하게 살았던 시절도 포함해서, 라고 덧붙일 생각이었다.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 맞아. 역겨웠지.
노인의 말에 소녀는 말문이 막혔다.
모투나는 허리춤에 달려 있던 손도끼를 천천히 움켜쥐었어. 두 손으로 도낏자루를 쥐고 비틀듯이 힘을 주기 시작했어. 그래야 힘이 완벽하게 전달되거든. 머릿속에선 족장이 모투나를 훈련시킬 때 했던 말이 떠올랐어. ‘새의 아이야, 적에겐 내 발걸음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크게 들리는 법이란다. 적이 듣는 첫 소음은 그의 비명 소리여야 한단다.’
하지만 소녀는 한 번도 움직이는 시계를 본 적이 없다. 소녀가 태어나던 해에 세상 모든 시계는 멈췄으니까. 시계도 시간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떠올릴 수 있었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숲속을 순찰하는 순찰자. 손에는 작은 도끼가 들려 있다. 그 도끼는 비록 작지만 순찰자에겐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무기였다. 이 무기를 손에 꼭 쥐고 있다면 어디든 다녀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손에 닿는 도낏자루의 감촉을 상상하니 쓸쓸함이 조금 가셨다. 숲에는 종종 이름 모를 동물이 뛰어다녔고 순찰자는 가끔 그 풍경을 혼자 감상했다. 순찰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곳이라고 따뜻한 모닥불과 아늑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녀가 속삭였다.
— 내가 모투나였다면 떠났을 거야. 바다 멀리, 크고 크신 새가 고래를 찾아갔다던 그 바다로.
마침 눈보라가 백화점을 흔들고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그 진동을 느끼며 소녀는 잠이 들었다.
— 그건 나도 몰라. 그 후엔 누구도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도 찾지 않는 이야기는 그렇게 사라지는 거야. 아무도 보지 않은 채 끝난 영화처럼 말이야.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는 잠깐 궁금해했을 수도 있겠지. ‘아 그런 영화가 있었지’ ‘아 그런 영화에 그런 배우가 나왔었지. 맞아. 그게 첫 주연작이었어. 그런데 연기를 참 못했어. 영화도 형편없는 삼류였고. 그런데 그 아이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그땐 인기가 그렇게 많았는데.’
소녀는 노인이 준 초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지하 계단을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이 향하는 지하에는 너무나 검고 깊은 어둠이 차 있었지만, 소녀는 심호흡을 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뱉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지상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점점 옅어졌다. 이 어둠 속에서 연약한 불빛 하나에만 의지해야 한다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모험을 떠나는 듯한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괜찮다. 나쁘지 않다. 두려움에도 소녀는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 낯선 존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에겐 지하에 들어온 내 발걸음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크게 들리니까.
우리는 죽을 때마다 모든 이야기를 잊어버리지. 우리가 누구였는지, 무엇이 되고 싶어 했는지. 하지만 난 별종, 회색 늑대 같은 돌연변이일까? 끝없는 두 갈래 길이 있어. 한쪽은 사라지는 이야기가 가는 길, 한쪽은 새로 태어나는 이야기가 가는 길. 그 갈림길 가운데에 이 돌연변이가 서 있지. 그게 내 이야기야. 이제 이 이야기가 내게 오고 만 의미를 알 수 있어.
또 하나의 아이가 나왔다. 나는 또 아이를 쓰겠지. 그리고 독자들도 여전히 아이를 읽겠지.
수많은 오락이 넘치는 시대에 굳이 아이를 찾은 독자.
수많은 소음이 넘치는 순간에 굳이 홀로 고요한 아이를 읽어내는 독자.
이 아이의 해답을 찾기 위해 작가의 말을 펼친 독자.
모두에게 작은 구원이 있기를 바란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곽유진
통영에서 태어나 바다의 아름다움과 조선소의 웅장함을 동시에 보고 자랐다.「어머니들의 아이」로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꽝 없는 뽑기 기계』로 2019년 제9회 비룡소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SF 앤솔로지 『당첨되셨습니다』(비룡소, 2021)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현대문학, 2022), 동화 앤솔로지 『나는 빛나는 3학년이야』 (위즈덤하우스, 2025)에 참여했다.
목차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작가의 말: 내가 아이를 쓴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