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탈북민 장춘실의 삶을 따라 북에서의 낙인과 남한에서의 법적 인정 사이의 긴 여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반복 발급받는 장면에서 오십여 년의 결핍과 갈망이 드러나고, 친자확인소송 후에도 다시 만날 수 없는 현실은 탈북 이후의 삶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님을 보여준다.
수백억 자산가 아버지의 새 가족, 작은딸과 동생까지 돈 앞에서 달라지는 모습 속에서 ‘피붙이’보다 앞서는 체면과 경제적 조건의 단면이 나타난다. 폐지 손수레를 끄는 노동의 일상과 ‘먹고살다’라는 건조한 언어는 따뜻한 밥상을 함께하고 싶다는 춘실의 소망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출판사 리뷰
‘장춘실’의 발걸음을 따라 그려지는 탈북민의 과거와 현재
“팔십에 턱걸이하는 중”인 79세 탈북민 장춘실은 매주 한 번씩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다. ‘행복주민센터’ 직원들에게도 낯이 익을 정도다. 장춘실은 어떤 이유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일까. 탈북 이후 그녀의 삶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춘실이 2006년에 남한에 왔는데, 자기들 말대로 코로나가 한창때 돌아가셨다고 해도 십오 년이나 시간이 있었다. 그 십오 년 동안 아버지를 만난 일은 단 세 번뿐이고, 밥 한 끼도 같이 먹은 일이 없다. 그 세 번의 만남 가운데 한 번은 법정에서 눈으로만 만났다. 이런 기가 막힌 팔자가 있을까.(190쪽)
장춘실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다. “본인 장춘실, 부 장동훈”이라고 적힌 글자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북에서 반동분자의 자식으로 지내온 오십여 년의 삶이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탈북한 작은딸의 손에 이끌려 오십여 년 만에 처음 아버지를 만났을 때 “우리 담내가 이렇게 늙었구나, 안 죽고 용케 살아 있었구나” 하며 아버지는 춘실의 어릴 적 이름을 기억하며 다정스럽게 말한다. 아버지의 말은 정다운 듯 미묘했다. 실상 그녀가 남한에 오도록 이끈 아버지는 그 사실을 부인한다. 심지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두려워한다. 아버지가 가족 몰래 돈을 좀 주었을 뿐, 두 사람은 밥 한 끼 함께 먹지 못한다. 아버지의 새 가족들은 춘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친자확인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판사는 아버지보다 늙어 뵈는 춘실에게 장동훈 씨의 딸이 맞냐고 묻는다. 유전자 검사까지 하게 된 춘실은 친자식인데도 이렇게 확인받아야 하는 상황에 가슴이 아프다. 터진 둑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진다.
탈북 후 법적 소송을 거쳐 장동훈의 친딸로 호적에 오르지만, 그 대가는 아버지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 아버지의 새 가족들이 수백억 자산가인 아버지와 춘실 사이를 가로막는다. 가장 큰 돈의 단위가 만 원인 춘실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굴이나 한번 보고 죽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고, 남한에 와서는 아버지를 만나서 그동안 가슴에 담았던 말을 나눌 수 있다면 족할 것 같았다. 아버지와 따뜻한 밥상을 마주 대하고 그동안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로받고 싶었다.
“당 간부는 당당하게 먹고, 대대장은 대놓고 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먹고, 소대장은 소리 없이 먹는다”는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 땅에 왔지만, 남한도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폐지 실은 손수레를 끌다 보면 일복 하나는 제대로 타고났구나, 체념이 되었다.
피붙이인 작은딸도, 북에 있는 남동생도, 아버지의 새 가족도 돈 앞에 무력한 모습이었다. 애면글면 키운 딸이고 업어 키우다시피 한 동생인데, 그들은 언제나 돈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춘실을 냉대하고 외면하는 아버지 가족의 태도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피보다 진한 것들이 많다. 체면도, 돈도, 외모도 피보다 값이 더 나갔다.
이 작품에는 ‘먹고살다’라는 말이 무척 많이 나온다. ‘생계를 유지하다’라는 뜻인데, 띄어 써서 ‘먹고 살다’로도 쓸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세세하게 그려진 반면 밥을 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삶이 더 팍팍하고 더 건조하고, 한편으로 슬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버지와 따뜻한 밥상을 마주 대하고’ 싶은 춘실의 마음이 더욱 간절해 보인다. 제목에 적힌 느낌표처럼.
이것 드셔보세요, 하며 춘실이 권하고 그래, 맛있구나, 하며 먹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다. 작은 행복, 작은 위로, 누릴 수 없는 것……
작가 소개
지은이 : 민혜숙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대원여고와 외고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광주로 이주 후 『문학사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서울대 시지푸스』 『황강 가는 길』 『사막의 강』 『목욕하는 남자』, 장편소설로 『세브란스 병원 이야기』 『돌아온 배』 『코리아 판타지』 『몽유도원』, 저서로 『한국문학 속에 내재된 서사의 불안』 『중심의 회복을 위하여』, 역서로 『프로이트 읽기』 『융 분석사전』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도덕 교육』 등이 있다. 호남신학대학 조교수를 거쳐 광주새길교회를 개척하여 작은 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7
1장 가족관계증명서 11
2장 유전자 검사 21
3장 이산가족, 분단가족 39
4장 암울한 인생, 단 하나의 삽화 61
5장 창살 없는 감옥 85
6장 너는 쌀밥 팔자! 107
7장 마침내, 강을 건너다 139
8장 누가 오라고 했나? 171
9장 피보다 진한 것 191
에필로그 201
발문 인간을 향한, 인간에 대한 시선 | 김주현 203
작가의 말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