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2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첫선을 보인 〈SF 보다〉 시리즈가 ‘대피소’를 테마로 다섯번째 출간을 맞았다. 한국 SF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는 이 시리즈를 통해 신작 SF 단편을 만나는 즐거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생동감 넘치는 문학적 교류의 현장으로서 한국문학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혀나가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하나의 테마가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눈부신 상상력과 만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시리즈는 테마와 다각도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신작 단편소설’, 테마를 관통하여 장르 전반의 흐름을 담아낸 ‘크리티크’로 구성되어 있다. SF 스토리텔링의 선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 문지혁, SF를 향한 애정으로 국내외 작품들을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고 쓰는 SF 평론가 심완선이 기획위원으로 함께하며 ‘하이퍼-링크’와 ‘크리티크’에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우리를 지키기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구원 혹은 구속의 공간, 환대 또는 대립의 시간
점멸하는 불빛 너머, 대피소 문을 열고 들어가
S-F의 끝을 보다!
독자들에게 무한한 자극과 지적 상상력을 제공할 ‘S(story)’를 담은 다채로운 ‘F(frame)’가 되고자 202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첫선을 보인 〈SF 보다〉 시리즈가 ‘대피소’를 테마로 다섯번째 출간을 맞았다. 한국 SF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는 이 시리즈를 통해 신작 SF 단편을 만나는 즐거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생동감 넘치는 문학적 교류의 현장으로서 한국문학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혀나가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하나의 테마가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눈부신 상상력과 만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시리즈는 테마와 다각도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신작 단편소설’, 테마를 관통하여 장르 전반의 흐름을 담아낸 ‘크리티크’로 구성되어 있다. SF 스토리텔링의 선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 문지혁, SF를 향한 애정으로 국내외 작품들을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고 쓰는 SF 평론가 심완선이 기획위원으로 함께하며 ‘하이퍼-링크’와 ‘크리티크’에 참여하고 있다.
전쟁과 기후 위기, 각종 재난과 기근이 잇따르는 시대에 생존 배낭을 장바구니에 넣고, 대피소 위치를 사전에 알아두는 일은 이제 더는 우리에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SF 보다 Vol. 5 대피소』에 수록된 김달리의 「수옥폭포 순례길」, 조시현의 「셔터」, 김성중의 「트리허거」, 이경희의 「등각 순환 하는 시공간 원점의 위험성에 대하여」, 김성일의 「인류의 유산」. 다섯 편의 작품은 최후의 보루이자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공간으로서의 대피소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제 거기 들어가볼 차례다. 의자를 올리고, 몸을 웅크려서.”
─견고하고 물리적인, 그러나 결코 집이 될 수 없는 세계
어쩌면 최후의 대피소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인간을 둘러싼 불가해한 세계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질서와 의미. 이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대피소의 이름은 바로 서사이며,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우리는 모두 이곳으로 대피 중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언제나 동화책을 찾는 아이처럼, 무작위로 흩어진 밤하늘의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어낸 고대인처럼, 혹은 불안한 밤마다 작게 빛나는 화면을 스크롤하며 타인의 이야기를 엿보는 우리처럼.
―문지혁, 「하이퍼-링크: 우리가 숨는 곳」에서
1866년 헤겔이 처음 사용한 용어 ‘생태학Ecology’의 접두어 ‘Eco-’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집Oikos’에서 기인한다. “가장 선한 것의 타락이 가장 비극적인 것”(『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듯 집과 자연의 상실은 곧 세계의 상실이다. 『SF 보다 Vol. 5 대피소』에는 생태 시스템이 붕괴한 후 절단과 단절만 남은 다섯 세계가 묘사된다. 점멸하는 불빛 너머, 대피소 문을 열고 SF의 끝으로 들어가보자.
굉음이 울렸고 대지가 진동하며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페이지가 뭉텅이로 사라진 책을 덮는 것처럼 기억은 언제나 거기에서 멈췄다. 볼 거라고는 수옥폭포뿐인 작은 산촌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236명 중 단 한 명, 수옥뿐이었다.
―김달리, 「수옥폭포 순례길」(p. 28)
세상은 수천 년 동안 지하에 갇혀 있던 고농도 황화수소의 분출로 순식간에 오염된다. 값비싼 특수 방독면을 살 수 없는 이들은 다층 에어로크 시스템을 갖춘 대피소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작은 산촌의 유일한 생존자인 수옥은 인공 폐를 단 트랜스 휴먼이 되어 대피소를 관리하며, 그곳에서 나고 자란 경선과 주희에게 마음을 쏟는다. 한편 대피소 폐쇄 명령으로 물자 지원이 끊기자 사람들이 시신을 먹고, 병든 노인을 내쫓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소설은 극한의 상황에서 충돌하는 인간 본성과 도덕적 윤리의 잣대를 묻는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났다. 남은 사람이 남기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편이 옳았다. 그리고 너는 목격자. 너는 너의 역할을 목격자로 둔다. 그러면 남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버려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조시현, 「셔터」(p. 48~49)
42일째 해가 뜨지 않은 세상에서 지구를 떠날 수 있는 이들은 사전에 큰돈을 들여 우주로 향한다. ‘나’는 무너진 시멘트 더미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넨 난나와 함께 버려진 집에 들어가 산다. 하릴없이 잔해를 치우고, 인스타그램을 새로 고침 하며 생존을 확인받는 나날, 나는 난나의 아기 사진을 몰래 훔친 적이 있다. 길에서 만난 폴락, 잔해 사이로 미끄러지는 발레리나의 망령을 나는 카메라 렌즈에 담아보지만 셔터가 고장 나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한편 난나의 아기 사진은 나의 선함과 신원을 타인에게 증명하는 빌미로 쓰인다. 소설은 시적 언어로 무채색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동시에 멸망한 세계에서 재정의하는 정체성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펑펑 우는 가운데 발작처럼 웃고 싶기도, 소나기를 맞으며 천둥소리를 듣고 싶기도 했어. 그 좁은 대피소에서, 최소한의 중력과 산소만 있는 곳에서, 바닥을 구르며 치우와 한 덩어리가 되어 울고 또 웃으며 짐승이 되어 원초적인 해방감을 느꼈어.
―김성중, 「트리허거」(p. 109~110)
우주 제국을 통치하는 황제는 태양마저 자원화하려는 야망을 품고 다이슨 구체를 건설한다. 황제의 딸이자 가뭄의 여신인 한발은 아버지가 설계한 생체 병기로, 반란군 수장 치우를 감시하라는 명을 받아 트리허거 행성으로 파견된다. 한편 태양광 패널 전송 회로의 폭발 사고로 잔해에 깔린 한발을 치우가 구해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치우의 머리에 타투를 새긴 황제는 고통으로 그를 다스리려 하지만, 치우와 함께 대피소에 들어간 한발은 81일간 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탁록 전투’ 설화에 신화적 상상력을 더한 작품, 「트리허거」에서 대피소는 타자를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과거는 아니야. 과거는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어. 당신의 선택과 행동은 똑같이 반복되겠지만, 선택의 이유는 매번 새롭게 정할 수 있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의미를 찾을 때까지.”
―이경희, 「등각 순환 하는 시공간 원점의 위험성에 대하여」(p. 163)
「등각 순환 하는 시공간 원점의 위험성에 대하여」는 현재 시점 ‘0’을 기준으로, 과거 사건인 ‘-1’부터 ‘-10’까지, 또 미래 시점인 ‘+1’부터 ‘+10’까지를 오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전개된다. 욕망구현장치가 보급된 미래 도시에서 스스로 욕망할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장치에 의존해 삶을 이어간다. 주인공 한은 부모를 잃고 스스로 욕망할 능력마저 상실한다. 그런 한을 돌보는 양육 보조 로봇 로잘린은 그에게 새로운 욕망을 부여하고자 그가 욕망구현장치에 손을 대도록 유도한다. 한편 감찰국 요원들의 등장으로 폭발이 일어나자 시간이 등각 순환 하는 루프가 발생하고 한과 로잘린은 끝없이 변형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소설은 현실의 재구성과 반복, 인공지능의 돌봄이라는 테마를 독창적인 시간 구조 안에 배치하며 인간 욕망의 본질을 되묻는다.
“나는 인류가 멸망을 피하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대피소라기보다는……”
자무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망설이는데, 미르치가 중얼거렸다.
“방주.”
―김성일, 「인류의 유산」(p. 189~190)
한때 인간에게 지성을 부여받은 범고래들은 해군 첨병으로서 침략 전쟁에 이용되었다. 인류의 멸망 이후 남겨진 범고래의 후예 자무는 체중이 3톤에 달하고, 밀폐 슈트 안에서 액체로 호흡하는 문명종이다. 멸망을 자초한 인류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여러 종족이 평화와 비폭력을 약속한 사회이건만, 어느 순간 그들은 인류가 대피소에 남긴 유산과 고대 과학기술을 차지하고자 무력을 동원한 다툼을 벌인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모두가 감염된 사실을 깨달은 자무는 인류가 남긴 유산의 정체를 확인한다. 소설은 인류세의 책임과 위험을 조명하며 우주적 폭력과 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SF 쓰기가 인간과 물질과 시공간을 둘러싼 미지의 잠재성을 실현시키는 일이라면, SF 읽기는 그 세계의 예측 불가능성을 경험하는 일이다. Science, Space, Speculative, Society 등의 수많은 ‘S(story)’와 Fiction, Fantasy, Fabulation, Future 등의 다채로운 ‘F(frame)’가 열어 보이는 〈SF 보다〉의 독서 공간에서, 대피소의 불을 켜고 책 속의 세계를 펼쳐보길 권유한다.
죽는 법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능했다. 바깥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 들끓는 오염 물질로 가득한 대기가 살아 있는 것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칼을 든 폭군처럼 다가와 단번에 목숨을 끊어버린다. ―김달리, 「수옥폭포 순례길」
이제 도시에 남은 색은 검은색, 회색, 붉은색. 가장 오래전부터 색으로 여겨져왔다는 색깔들만 남았다. 그런 점에서 멸망과 기원은 연결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시현, 「셔터」
향이 나는 식물의 즙을 나는 정신없이 빨아 마셨어. 그러자 입술에 닿았던 그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이 느껴지더군. 갈증을 해소해주는 한 모금의 물. 그건 우리의 입맞춤이었어. ―김성중, 「트리허거」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성중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개그맨』 『국경시장』 『에디 혹은 애슐리』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단편소설 『두더지 인간』, 중편소설 『이슬라』, 장편소설 『화성의 아이』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김용익문학상을 받았다.
지은이 : 김성일
2016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별들의 노래』 『늑대 사냥』, 청소년 소설 『널 만나러 지구로 갈게』 등이 있다. 2018년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과 2024년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았다.
지은이 : 이경희
2019년 제4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단편소설 『매듭 정리』, 장편소설 『그날, 그곳에서』 『모래도시 속 인형들』 『모두를 파괴할 힘』 『테세우스 패러독스』 등이 있다. 2019년 제6회 황금가지 작가 프로젝트 공모전,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에 선정되었다. 2020년과 2023년에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았다.
지은이 : 김달리
소설가 겸 영화감독. 2019년 제1회 K스릴러 작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머큐리 테일』, 중편소설 『밀림의 연인들』, 장편소설 『이레』 『렉카 김재희』 『플라스틱 세대』 등이 있다.
지은이 : 조시현
2018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동양식 정원」이, 이듬해 현대시 신인상에 시 「섬」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아이들 타임』, 소설집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등이 있다.
목차
문지혁 하이퍼–링크hyper-link
—우리가 숨는 곳
김달리 수옥폭포 순례길
조시현 셔터
김성중 트리허거
이경희 등각 순환 하는 시공간 원점의 위험성에 대하여
김성일 인류의 유산
심완선 크리티크critique
—일어나지 않은 미래라는 공백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