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깊은 샘을 깨우는 마중물처럼 농부의 삶을 일으키는 의지와 묘미를 포착한 시집으로, 도시를 떠나 귀농한 경험과 농경의 고통·기적을 서정적 리얼리즘으로 담아냈다.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도 자연의 순환에 기대어 다시 일어서는 농부의 마음이 권농가처럼 흐르며 삶을 북돋는 ‘마중돌’의 의미를 일관되게 드러낸다.
후반부로 갈수록 자연과 마음이 하나 되는 존재 사유가 깊어지고, 번뇌에 흔들리면서도 본래의 고요를 잃지 않는 인간 내면을 은유적으로 성찰한다. 김규성 시인이 “농사를 천직으로 생활화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진수”라 평한 이번 시집은 농촌 일상의 언어로 시대 감각을 정화하는 의미 있는 성취다.
1962년 해남 출생의 오형록 시인은 2014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으며 다수의 시집과 문학상을 통해 지역 문학을 이끌어 왔다. 해남문학회장, 시아문학회장으로 활동하며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출판사 리뷰
우리 시대 농부 시인의 ‘농사 시’
오형록 시집 『마중돌』
해남에서 해남문학회장, 시아문학회장으로 활동해온 오형록 시인이 시집 『마중돌』(문학들)을 펴냈다. 마중물은 작두샘에서 지하에 담긴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 위에 붓는 물을 말한다. 깊은 샘물을 마중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물이다. 마중물은 처음 한 번만 수고를 빌리면 종일토록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마술을 부린다.
시인은 그 마중물에 빗대어“마중돌”을 권두시로 썼다. 눈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화물차에 돌을 실은 체험을 시로 쓴 것이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은/큼지막한 돌 몇 개 트럭 짐칸에 싣는다//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오이 접목을 해야 한다//지긋이 가속을 붙여 빙판길을 지날 때/위험을 마중하며 또 하루를 열어가는/바윗돌//아직 아무도 지나지 않은 신비로운 하얀 길에/선명한 바퀴 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가는//마중돌(「마중돌」 전문)
살다 보면 때로 일련의 고통이나 과제가 삶의 의지와 묘미를 북돋아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집에 내려와 흙과 땀으로 점철된 농부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권농가인 이번 시집은 요소요소에서 실천궁행하는 마중돌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그는 서울에서 표구 기술자로 일하다가 결혼한 뒤 얼마 안 되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귀농했다. 1990년 2월이었다. “비지땀을 쏟으며 부농의 꿈에 젖어/함빡 웃어도 보며”(「고향으로 돌아오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숱한 시행착오와 난관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7만 원 하던 토끼털 값이/폭락하더니/사료 값 이하로 내려가버린 날/하늘이 무너져도/그보다 아프지는 않았으리”(「앙고라토끼」)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지만/입술을 깨물며/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존재에 대하여」)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실의에 매몰된다면 그의 시는 한낱 농사에 실패해 자격을 상실한 농부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화자는 “다시는 참외 재배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 또 다짐”해 놓고도, 이내 “참외들이 눈에 뜨이게 성장”(「농사의 맛」)한 자연의 기적에 취해 온몸이 파스 투성이인 아내와 “마주 보고 웃는”다. 혼곤한 피로와 실의 속에서도 스프링처럼 털고 일어나 목마른 밭에 “스프링클러의 세례(「시집가던 날」)”를 주는 것이다. 그것이 고진감래를 몸소 실현하는 참다운“농사의 맛”이기 때문이다.
참외 인공수분 12일째./참외들이 눈에 뜨이게 성장했다./여기저기 달걀만 하다./마주 보고 웃는다 아내와 나./하우스 옆 수풀에서 새들도 지저귄다./빈 밭에서는 까투리의 속삭임이 들려온다./구구구구 애들아! 이리 오렴!/꿩 꿩! 장끼가 놀랐는지 푸드덕푸드덕 날아오른다.(「농사의 맛」)
오형록 시인의 시는 고통을 사유의 통로로 삼아 자연친화적 존재의 의미를 도출해 내고 이를 생활화하는 견자적 리얼리티가 요체를 이룬다. 요컨대, 자연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시공의 변화무쌍에 담담하게 적응하며 그 웅숭깊은 묘미를 음미하고자 하는 화자의 내면세계가 후반부에 갈수록 돋보인다.
“고요한 호수에/눈먼 바람이 인다//어디서 와/어디로 가는 걸까//(중략)//길을 알아서/눈이 내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눈이 내리고//내가 가고/우리가 걸어온 길이 묻힌다//호수는 고요하고/다시 눈먼 바람이 인다(「눈」)
“고요한 호수”는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 그 본성에 번뇌와 탐욕의 상징인 “눈먼 바람”이 이는 것이 인간의 일상이다. 그 불청객이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호수는 원래 고요하다”는, 다시 말해 본래의 자아는 한결같다는 사실에 이 시의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김규성 시인은 이번 시집을 해설에서 오형록의 시를 “농사를 천직으로 생활화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진수”라고 평했다.
일상과 초현실세계는 시적 배경과 주제의 두 축이다. 다양한 인간이 다양한 언어를 매개로 다채로운 삶을 영위하는 인간사회에서, 일상은 인간을 비롯한 주변 사물과의 관계에 따라 수시로 발생하는 무수의 문제점과 과제를 안겨준다. 이는 시인에게도 불가피한 시적 과제로 주어진다. 그 해결을 위해 시인들은 일상을 벗어나 이상적 초현실세계를 지향하는데 이에는 비범한 상상력과 창조적 에너지가 요구된다. 반면 일상의 구조 속에서 실존과 본질을 추구하며, 사회적 모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전자는 일상의 희로애락을 시적 메시지로 담아내며, 자연과 이웃에 대한 정감을 노래한다. 또 일상의 소소한 사건이나 변화에 주시하며 그 속에서 삶의 지혜와 가치를 구한다. 후자는 일상 속의 사회 개혁을 화두로 비판적 민주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실천적 리얼리즘 시나 참여시 형태의 장르적 특성을 취한다. 전자의 성향을 대표하는 오형록의 시는 대자연 속 농촌을 무대 삼아 농사를 천직으로 생활화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진수다. 도시 중심의 언어와 감각이 지배하는 시류 속에서도 지구의 허파 노릇을 하는 아마존 숲처럼 이런 시인이 버티고 있기에 서정시의 물길은 도도히 흘러 바다가 썩지 않게 정화할 것이다.(김규성 시인)
오형록 시인은 1962년 해남에서 태어나 2014년 계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붉은 심장의 옹아리』, 『오늘밤엔달도 없습니다』, 『꼭지 따던 날』, 『희아리를 도려내듯이』, 『빛 하나가 내게로 왔다』 등을 펴냈다. 한국문인협회, 전남문학회, 해남문학회, 목포문인협회 회원이며 2013년 『시아문학』을 발간하며 비영리법인 ‘시아문학’ 회장을 역임했다. 평화주제문학작품상, 시사문단문학상(본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창작지원금 수혜 대상자로 선정됐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오형록
1962년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고담리에서 태어나 2014년 계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붉은 심장의 옹아리』, 『오늘밤엔 달도 없습니다』, 『꼭지 따던 날』, 『희아리를 도려내듯이』, 『빛 하나가 내게로 왔다』 등을 펴냈다. 한국문인협회, 전남문학회, 해남문학회, 목포문인협회 회원이며 2013년 『시아문학』을 발간하며 비영리법인 ‘시아문학’ 회장을 역임했다. 평화 주제 문학 작품상, 시사문단 문학상(본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5년 전남문화재단창작지원금 수혜 대상자로 선정됐다.
목차
5 시인의 말
제1부
13 마중돌
14 고향으로 돌아오다
16 앙고라토끼
18 장맛비
20 지울수록 떠오르는 것들
21 월동밭을 갈아엎으며
22 농사의 맛
24 우리는 밀밭에 앉았지
26 콤바인이 지나간다
28 존재에 대하여
제2부
33 태풍 매미
34 하우스에 새 옷을 입히며
36 농심
38 시집가던 날
39 고양이 소전 1
40 고양이 소전 2
41 도사리
42 하우스로 향하네
44 농사꾼의 하루
45 바라기
제3부
49 미황사 괴불
50 황소의 눈물
51 파랑새의 노래
52 우항리 퇴적암
53 목포항
54 울돌목
55 해남 월동배추
56 해남의 특산품 - 고추를 수확하며
57 상상의 재료 - 고추밭에서
58 해남의 특산품 - 친환경 밀밭
60 황소와 나
제4부
65 발자국
66 혓바늘
67 날개
68 눈
70 마음의 촛불
71 세월
72 세월이 그린 명화
74 복숭아
75 호반산장 - 들풀작가회 즉흥시
76 보조개 꽃 - 시아문학 문학기행
77 홍시
78 벌을 받았다
80 어미의 마음
82 어떤 설
84 항문 없는 그릇
해설 낭만적 리얼리스트가 고향에서 부르는 21세기의 농요農謠 _ 김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