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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개정증보판
인물과사상사 | 부모님 |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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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보물창고’와 같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恨)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분열은 우리의 운명, 연대는 나의 운명’(1990년대), ‘노무현 시대의 명암’(2000년대), ‘증오와 혐오의 시대’(2010년대) 등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진보’의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 ‘아픔’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준만은 한국 현대사가 ‘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 ‘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단행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출판사 리뷰

지난 10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그 모든 것은 어떻게 달려왔는가?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키다”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보물창고’와 같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恨)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분열은 우리의 운명, 연대는 나의 운명’(1990년대), ‘노무현 시대의 명암’(2000년대), ‘증오와 혐오의 시대’(2010년대) 등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진보’의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 ‘아픔’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준만은 한국 현대사가 ‘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 ‘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단행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1960년대편 개정증보판 출간!

기회주의는 조선 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삶을 지배해온 가장 강력한 행태적 이데올로기였다. 기회주의는 단물을 찾아 화려한 날개를 퍼덕이는 나비의 이데올로기다. 사람들은 화려한 날개에 주목하지만 날개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단물이다. 다른 건 제쳐 놓더라도,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거사했던 5·16 주체세력이 얼마 후 부패 세력으로 변질된 것은 바로 기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박정희와 그 일행의 그런 기회주의는 그들이 조선의 왕권보다 훨씬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부패의 국유화’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박정희의 제3공화국은 ‘기회주의 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을 성격의 것이었다.
그런데 경제 발전에 대한 박정희와 그 일행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면, 기회주의에 친화적인 ‘경제동물’의 탄생도 같이 지적되어야 공정할 것이다. 그 어떤 강력한 구심점을 따라 온 사회가 요동치는 소용돌이 현상도 오랜 세월을 두고 학습해온 나머지 이제는 한국인의 유전자에까지 각인된 특성이 되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도 어렵게 되고 말았다. 1960년대를 기회주의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는 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해줄 것이다. 여기서 기회주의는 꼭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는 개념은 아니다.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이 국가적 차원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요구해왔듯이, 국내적으로도 그런 역사가 존재했으며 그것이 오늘의 삶을 규정하기도 한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살펴보자는 것일 뿐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개정증보판은 모두 3권으로 구성되었다. 제1권은 1960~1961년, 제2권은 1961~1964년, 제3권은 1965~1969년의 역사를 담아냈다. 강준만은 한국처럼 현대사가 끊임없이 다시 쓰거나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큰 나라는 없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들의 비밀문서가 해제되고, 비극적인 과거에 대한 진상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배상과 보상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21년 전에 출간된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의 개정증보판을 펴낸다고 말한다.

중앙정보부는 ‘정부 위의 비밀 정부’

1961년 6월 10일 ‘혁명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중앙정보부법 공포와 함께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다. 중앙정보부의 초대 부장은 김종필이었는데, 그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을 지었다. 중앙정보부법은 “그 후의 이 나라 역사에 헌법만큼이나 중대한 의미를 갖는 법”으로서 병영국가 건설의 출발점이 되었다. 병영국가란 반공을 국시로 삼는다는가 하는 식으로 국가안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그 목표를 완수하기 위한 체제를 의미한다. 중앙정보부는 폭력의 기획에서부터 행사까지 모든 것을 전담하는, 정부 위에 존재하는 비밀 정부로 군림하게 되었다. 박정희와 김종필이 합의한 구상에 따라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부장 김종필을 비롯해 쿠데타 주체인 육사 8기생의 독무대였다. 이것이 나중에 중앙정보부 자체가 치열한 권력 투쟁의 무대로 변질되는 주요 이유가 되었다.
중앙정보부는 1964년에 이르면 4만여 명에 가까운 부원을 거느림으로써 “한국 속의 한국이기보다 한국 위의 한국”으로 군림하게 된다. 또 중앙정보부의 요원 수는 37만 명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중앙정보부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민들과 지역의 동태를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신분을 위장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했다. 중앙정보부의 최대 무기는 폭력 사용의 무한대 보장, 행정력 동원의 무한대 보장, 자금력 동원의 무한대 보장이었다. 그런 침투와 공작을 위해 중앙정보부의 각 지역 분실은 무역회사로 위장했다. 중앙정보부가 구축하고자 했던 병영국가가 적어도 초기에는 애국적 의지로 충만해 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5·16 주체들은 인간적으로는 서서히 타락해 갔겠지만, 중앙정보부는 군사정권을 성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부패를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부정부패에 뛰어들었다.

경제개발, ‘자력갱생’에서 ‘수출’로

1960년대 초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험준한 ‘보릿고개’를 겪고 있었다. 그토록 가난한 나라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군사정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너무도 자명했다. 그것은 바로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군사정권이 경제개발을 위해 발족시킨 경제기획원은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2월 3일 울산공업단지 기공식이 열렸다. 그런데 군사정권의 방식은 군사작전식이었다. 이는 경제기획원의 탄생 단계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부흥부가 건설부로 이름을 바꾸고 이것이 확대·개편된 것이 경제기획원이었는데, 이 과정도 군사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무지막지’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경제와 사회를 군사작전의 대상으로 삼는 군사문화에는 명암이 있었다. 군사문화는 ‘명령의 효율성에 대한 과신’과 ‘정치의 전쟁화’를 꾀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군사정권에서 군사문화의 특성이 잘 드러난 것 가운데 하나가 통화개혁이었다. 군사정권은 1962년 6월 9일 밤 0시를 기해 긴급통화조치법을 의결, 10일 0시를 기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9년여 동안 사용되던 ‘환화’는 ‘원화’로 바뀌었다. 그런데 한국은행 총재마저도 화폐개혁을 전혀 몰랐고, 미국에도 통화개혁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미국은 예금 동결을 용납할 수 없었다. 미국은 기한 1년 미만짜리 예금의 일부를 동결한 것은 부당하다며 해제를 요구했고, 이어 원조 중단을 무기로 삼아 모든 봉쇄 계정의 해제를 요구했다. 군사정권은 미국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7월 13일 봉쇄 예금이 전면 해제되었다. 박정희는 1962년 12월 17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화폐개혁은 확실히 실패했습니다.……내자 동원을 위해 화폐개혁을 하긴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이후 군사정권의 경제정책은 외자 도입, 보세 가공무역, 수출 입국 같은 대외 개방 노선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민주공화당 창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김종필은 1963년 1월 10일부터 창당 작업을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발기인을 선정했다. 처음 당명은 ‘재건당’이었지만, 김종필의 제안에 따라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이름을 모두 다 따다 쓴 ‘민주공화당’으로 결정되었다. 당의 상징은 미국 민주당의 당나귀와 공화당의 코끼리를 흉내내 소로 정했다. 소처럼 헌신적으로 일해서 국가와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정당이 되자는 뜻이었다. 김종필을 비롯한 육사 8기가 장악한 중앙정보부는 1962년 5월 민주공화당의 사전조직인 재건동지회를 중앙과 지방에 결성했다. 민주공화당의 모태는 중앙정보부였다.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민주공화당은 중앙정보부가 잉태하고 산파역을 맡은 ‘지하 공화당’으로 존재했다. 중앙정보부는 정치인 스카우트 작전을 전개했다. 중앙정보부는 스카우트를 용이하게 하고 ‘개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혁신계에도 손을 뻗었다. 중앙정보부의 스카우트 작전이 심혈을 기울인 대상은 ‘새 얼굴’과 ‘젊음’이었다.
민주공화당의 포섭은 점 조직으로 한 명씩 추천해나가는 방식이었다. 민주공화당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정당, 또는 군사조직 같은 정당이라는 점에서도 과거와는 달랐다. 군사정권의 정당인 민주공화당은 이미 1년 전부터 부정부패로 끌어모은 엄청난 정치자금으로 조직화에 착수했으니 이것은 원초적으로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또한 군사정권은 정당 등록 요건 강화, 무소속 출마 금지, 정당 공천 필수 등을 내세웠다. 말로는 양당제 구현을 내걸었지만 구정치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국 비례대표제도 지역 기반이 약한 군부 출신 정치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2월 26일 민주공화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총재에는 재야 법조계의 원로인 정구영이 선출되었고, 당의장에는 김정열이 지명되었다. 민주공화당에는 쿠데타 주체세력뿐만 아니라 구여권 인사와 학계 인사들까지 다수 참여했다.

박정희 정권의 ‘4‧19 마케팅’

5·16 주체세력은 쿠데타 이후 자신들이 4·19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4·19의 좋은 이미지만을 차용해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래서 4·19를 ‘4·19 의거’로 격하시키면서 그 수준으로만 묶어두려고 했다. 그들의 4·19 이용은 ‘4·19 마케팅’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상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의 특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4·19 찬양 수사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했지만, 그것은 반드시 5·16의 ‘판매’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1962년 4·19 2주년을 맞아 박정희는 “5·16 혁명은 4·19 의거의 연장이며 조국을 위기에서 구출하고 멸공과 민주수호로서 국가를 재생하기 위한 긴급한 비상조치”였다고 말했다. 군사정권은 ‘4·19 혁명 정신의 계승’을 계속 판매하기 위한 차원에서 1963년 4·19 3주년에는 355명의 상이자와 140명의 ‘4·19 지도자’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4·19 학생 혁명은 표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타도하였지만 5·16 혁명은 민주당 정권이란 가면을 쓰고 망동하려는 내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1964년 4·19 4주년을 맞아 4·19를 재평가하는 차원에서 ‘4·19의 행방’ 특집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 시리즈의 1회분은 4월 13일자에 실린 「정치 풍조」였다. 이 기사를 쓴 윤상철은 내란선동죄로 6월 16일에 구속되어 7월 7일에 기소되었다. 그는 8월 8일 구속적부심에서 보석금 3만 원을 내고 풀려난 뒤 선고공판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은 6·3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그 이전 것을 소급해 보복하기도 했는데, 그 이전에 『경향신문』 사장 이준구와 기자 손충무의 구속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다시 말해 박정희가 제시한 4·19에 대한 모범답안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의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그동안 쓴 책으로는 『법조공화국』, 『MBC의 흑역사』, 『공감의 비극』, 『정치 무당 김어준』, 『퇴마 정치』, 『정치적 올바름』, 『좀비 정치』, 『발칙한 이준석』, 『단독자 김종인의 명암』, 『부족국가 대한민국』, 『싸가지 없는 정치』,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부동산 약탈 국가』,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남 좌파 2』, 『바벨탑 공화국』,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28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등 300권이 넘는다.

  목차

제1부 1961년 ②: 병영국가의 건설

제1장 군사정권의 포퓰리즘과 인간 개조 운동
깡패들의 거리 행진 · 19 사이비 언론·댄스홀·부정축재 응징 · 22 청교도적 접근 방법 · 23 남북한의 인간 개조 운동 · 25 국민복·교복·삭발·폐지 수집·커피 · 27 술집 출입금지령 · 29

역사 산책 1 희한한 커피 단속 풍경 · 32

제2장 5·16과 신문: 기회주의의 향연
민주당 대변지들의 변절 · 35 『한국일보』의 갈팡질팡 · 36 장면 정부의 굴복을 요구한 『동아일보』 · 38 『경향신문』, “올 것이 왔다” · 39 『조선일보』, 쿠데타는 ‘구국 운동’ · 40 박정희의 ‘이미지 메이킹’에 나선 신문들 · 42 조세형·이만섭 필화 사건 · 43 박정희의 공개적인 신문 조롱 · 45

제3장 5·16과 지식인: 소외된 그룹들의 만남
65세 정년을 60세로 인하하다 · 48 ‘군인의 정치’와 ‘대학교수의 정치’ · 49 지식인의 ‘선건설 후민주론’ 동조 · 51 “지식인은 기회주의자” · 53 박정희의 강한 연고 의식 · 54

제4장 장준하는 왜 5·16 군사쿠데타에 협조했는가?
장준하는 김구의 판박이 · 58 장준하의 기회주의인가? · 60 장준하의 대미 로비 · 61 박정희 정권의 『사상계』 탄압 · 63

제5장 중앙정보부는 정부 위의 비밀 정부
정치를 낭비로 간주한 ‘지방의회 해산’ · 65 기존의 정치를 대체한 중앙정보부 창설 · 66 중앙정보부는 ‘한국 위의 한국’ · 68 중앙정보부는 부정부패의 총본산 · 70 “우리는 음지에서 꾸미고 양지를 장악한다” · 72

제6장 논공행상과 토사구팽
장도영을 무력화하기 위한 비상조치법 · 74 허수아비로 전락한 장도영 · 76 5·16 주체세력의 파벌과 ‘진급 잔치’ · 77 ‘육사 8기’ 대 ‘육사 5기’의 갈등 · 80 “장도영 일파 반혁명 사건” · 82 장도영, “박정희가 나를 배신했다” · 84 권력 중독의 길로 나선 박정희 · 86

제7장 ‘부정축재 처벌’에서 ‘부정축재 이용’으로
이병철의 일본 출장 또는 도피 · 90 박정희와 이병철의 회동 · 92 한국경제인협회의 탄생 · 94 경제기획원 발족, 어용노조 조직 · 96

제8장 박정희의 미국 방문
“박정희 의장 대장 진급식” · 99 미국의 박정희 ‘기 죽이기’ · 100 다카키 마사오로 돌아간 박정희 · 101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 제의 · 103

역사 산책 2 박정희와 선글라스 · 106

제2부 1962년: 구악을 뺨친 신악

제1장 정치활동정화법: 윤보선 사임, 장면 구속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윤보선 · 111 5·16 주체의 청와대 점령 자축식 · 113 “구민주당 반혁명음모사건” 조작과 제5차 헌법 개정 · 115 박정희와 김종필: 야심의 충돌 · 117 미국의 ‘박정희 길들이기’ · 118 김종필의 미국 방문 · 119

역사 산책 3 미군의 파주 나무꾼 사살 사건 · 121

제2장 경제개발: ‘자력갱생’에서 ‘수출’로
‘보릿고개’와 ‘잘 살아보세’ · 124 박정희의 일본 공부 · 125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 126 한국은행 총재도 모른 화폐개혁 · 129 실패로 돌아간 화폐개혁 · 132 ‘내자 동원’에서 ‘외자 도입’으로 · 134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 135

제3장 대학망국론: 우골탑을 분쇄하라!
병역 기피와 국토건설단 · 138 대학은 병역 기피자의 소굴 · 140 대학들의 생존 로비 · 141 신임 문교부 장관 김상협의 급선회 · 143 대학과 농어촌 고리채 · 144 마포아파트와 주거혁명의 시작 · 146

역사 산책 4 ‘검은 사신’으로 불린 연탄가스의 공포 · 150

제4장 언론: 안하무인의 역전
『한국일보』 ‘쫓겨난 관광’ 필화 사건 · 153 부패 언론인 단속과 단간제 실시 · 155 6·28 언론정책에 대한 평가 · 157 ‘국민투표’·‘사회노동당’ 필화 사건 · 158 군사정권의 ‘『사상계』 죽이기’ · 161

제5장 4대 의혹: 증권·워커힐·새나라·파친코
1963년 대선을 겨냥한 4대 의혹 사건 · 163 증권 파동, 즉 주가조작 사건 · 164 워커힐 공사 자금 횡령 사건 · 166 새나라자동차와 파친코 사건 · 168 ‘구악을 뺨칠 신악’ · 170

제6장 KBS-TV의 탄생: “TV는 가정불화의 유행병”
‘근대화 상징’으로서의 TV · 171 TV 수상기를 갖기 위한 경쟁 · 173 ‘가정불화의 유행병 TV’ · 175 ‘무분별한 광란의 붐’ · 177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 · 178 군사정권의 문화방송 강탈 · 180 “박정희는 언론사를 원했다” · 182 김지미와 최은희의 대결 · 184

역사 산책 5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 188

제3부 1963년: ‘권력 투쟁’과 ‘색깔 전쟁’

제1장 민주공화당 창당
2배로 커진 서울, ‘정치정화법’ 해제 · 193 중앙정보부의 정치인 스카우트 작전 · 194 민주공화당은 군사조직 같은 정당 · 196 5·16 주체세력의 반발 · 198 송요찬·유원식·김동하의 비판 · 200 박정희의 민정 불참 선언, 김종필의 외유 · 201

제2장 번의 정치: “변덕스러운 박씨”
박정희의 2·27 대통령 불출마 선언 · 204 함경도파를 제거한 ‘알래스카 토벌작전’ · 205 박정희의 ‘군정 4년 연장’ 선언 · 207 ‘민주구국선언대회’ 대 ‘스타들의 대행진’ · 209 2·18, 2·27, 3·16, 4·8 성명 · 211

역사 산책 6 리영희와 그레고리 헨더슨 · 213

제3장 5·16 주체세력의 이전투구
민주공화당 대 자유민주당 · 217 육사 11기생 친위 쿠데타 음모 사건 · 218 송요찬의 폭탄선언, 김재춘의 외유 · 220 ‘구악’에서 ‘구악’으로 · 223 박정희의 ‘바람둥이 수법’ · 225

역사 산책 7 박정희의 ‘정치 군인’ 육성 · 226

제4장 ‘국가와 혁명과 나’
민주주의를 비판한 ‘행정적 민주주의’ · 230 민족성 개조를 위한 인간혁명 · 232 “악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 · 234 “고운 손은 우리의 적” · 236 끈처럼 얽힌 ‘끈’의 사회 · 238

제5장 황태성 사건: 왜 ‘밀사’를 ‘간첩’으로 조작했는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북한 · 240 ‘간첩’ 누명을 쓴 황태성 · 242 케네디 면접시험을 앞둔 박정희 · 244

제6장 10·15 대선: ‘진보 여당’ 대 ‘보수 야당’?
야당의 분열·모략·권모술수 · 246 윤보선의 색깔 공세 · 248 자민당과 ‘국민의당’의 색깔 공세 · 250 ‘진보 여당’을 옹호한 극우세력 · 252 박정희의 영남 지역주의 전략 · 253 허정과 송요찬의 후보 사퇴 · 255 역효과를 낸 윤보선 진영의 색깔 공세 · 257 정책 경쟁에서 밀린 윤보선 · 259 박정희 46.6%, 윤보선 45.1% · 260 색깔+지역주의 · 262 혁신계의 박정희 지지 · 264 박정희의 ‘『동아일보』 길들이기’ · 265

역사 산책 8 박정희와 방일영의 기생 파티 · 267

제7장 11·26 총선: 민주공화당 110, 민정당 41, 민주당 13
김종필과 장준하의 대결 · 271 175석 중 110석을 얻은 민주공화당의 압승 · 274 31개월간 13번의 역(逆)쿠데타 시도 · 275 황태성의 사형 집행 · 277

제8장 광부·간호사의 서독 파견
수출제일주의 정책 · 280 ‘노동절’을 대체한 ‘근로자의 날’ · 281 차관을 얻기 위한 인력 파견 · 282 라면의 탄생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 · 285 혼분식 장려가 키운 라면의 인기 · 287

제9장 “주여! 상업방송을 금지시켜 주시옵소서”
쉽지 않았던 KBS 시청료 징수 · 289 장터 약장수의 약 선전처럼 여긴 CM · 291 기독교방송의 상업방송 허용 · 292 <돌아오지 않는 해병>, 반공영화 붐 · 294 <쌀>과 <또순이>, ‘잘 살아보세’라는 시대정신 · 296 영화배우를 업신여기던 편견 · 298

제4부 1964년: ‘민족 신앙’에서 ‘수출 신앙’으로

제1장 가난·기복신앙·수출제일주의·부정부패
미군의 잦은 ‘총질 사태’ · 303 ‘유혈적 테일러리즘’과 ‘기복신앙’ · 305 “수출제일주의는 일종의 신앙” · 308 정치자금이 끼어든 ‘3분 폭리 사건’ · 309 박정희는 ‘밀가루 대통령’ · 310

제2장 박정희 정권의 ‘4·19 마케팅’
5·16 찬양을 전제로 한 4·19 긍정 · 312 ‘지도자’ 위치에 집착한 4·19 주체의 변절 · 313 “5월 혁명의 자랑은 4월 혁명의 모독” · 315

제3장 6·3 사태: ‘굴욕’에 대한 감수성 갈등
미국의 집요한 한일회담 압력 · 318 ‘3월 타결, 4월 조인, 5월 비준’ 방침 · 320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공개 · 322 학생 시위를 막으려는 방해 공작 · 323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 325 군인들의 법원 난입, 송철원 린치 사건 · 327 윤보선 일행의 ‘김칫국 마시기’ · 329 6·3 비상계엄령 선포 · 331

역사 산책 9 박정희의 대통령 사임설 · 334
역사 산책 10 ‘불꽃회’ 사건 · 327
역사 산책 11 한일회담과 ‘김대중 사쿠라’론 · 339

제4장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과 ‘진산 파동’
‘굶주림 사태 보도 사건’과 ‘앵무새 사건’ · 341 언론윤리위원회법 반대투쟁 · 344 4대 신문에 대한 보복 · 345 박정희와 신문들의 ‘유성 타협’ · 347 윤보선과 유진산, 66일간의 극한 대결 · 349 윤보선과 유진산의 공동 자해 · 351

역사 산책 12 김형욱이 조작한 인혁당 사건 · 353

제5장 통일 논쟁: 황용주·리영희 필화 사건
신금단 부녀 상봉과 박정희의 춘천 발언 · 355 ‘남북가족 면회소 설치 결의안’ 사건 · 357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주장한 필화 사건 · 358 이승만식 통일방안의 재확인 · 360 박정희, “나도 빨갱이로 몰리는 판에” · 361 『조선일보』 기자 리영희 필화 사건 · 364

제6장 수출·『시장과 전장』·<회전의자>
수출 1억 달러 돌파 · 367 박정희의 서독 방문과 아우토반 · 370 눈물바다가 된 광부·간호사들과의 만남 · 371 시장과 전장 · 373 불신 사회의 이중 구조 · 374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김용만의 <회전의자> · 376

제7장 『주간한국』·TBC-TV·<맨발의 청춘>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한 『한국일보』 · 378 『주간한국』의 대성공 · 379 ‘정치’에서 ‘생활’로의 이동 · 381 부산의 일본 TV 시청 · 383 신성일·엄앵란·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 386 주연배우와 주제가 부른 가수의 합동순회공연 · 388

주 ·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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