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홍성암의 소설집 《불면증》은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허무는 장르 실험의 결과물이다. 1부는 수필과 꽁트 형식의 작품들로, 작가의 실제 경험과 내면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소설’을 선보이고, 2부는 심리소설과 전기소설을 통해 개인의 의식과 삶의 궤적을 그려낸다. 자전적인 체험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내면의 흐름을 중시하는 구성은 일본 사소설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고향의 기억, 학교와 문단에서의 경험, 우리 시대 사람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삶을 통해 시대를 비춘다. 에세이의 사실성과 소설의 상상력을 결합한 이 작품집은 장르 고정 관념에 질문을 던지며, 소설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불면증》은 자전적 서사를 통해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장르 경계 허물기와 에세이소설
- 홍성암 작가의 또다른 작품세계
김봉진 (문학평론가)
이번에 펴내는 홍성암 작가의 소설집 《불면증》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수필, 꽁트 형태를 띤 소설작품들로 이루어져 있고, 2부는 심리소설과 전기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1부에 실려있는 작품들은 작가와 관련 맺은 사람들이나 사건들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작가 개인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아 그린 작품들을 작가는 ‘에세이소설’로 이름 짓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색다른 형식의 소설양식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의 ‘사소설’ 형식을 띤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일본에서 서양소설의 영향을 받아 쓰여지기 시작된 ‘사소설(私小)’은 1920년 무렵에 서양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이 일본에 들어왔을 때 일본의 일부 작가가 자연주의 문학의 연장선에서 자기 내면의 체험을 자연주의 소설 형식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그 뒤 유행처럼 수많은 일본 소설가들이 그런 형식의 작품을 소설로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독특한 문학형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처럼 ‘사소설’은 작가 자신의 체험과 내면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자신의 실제 경험과 감정, 인간관계, 심리적 고뇌 등을 작가가 거의 그대로 작품화하고 있다. 즉, 이들 작품들은 허구보다는 사실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주로 작가 자신의 고백과 반성, 자기 폭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사소설이 지닌 특징으로는 작가 자신이 실제로 겪은 연애사나 개인의 가난이나 병력을 비롯하여 가족 관계와 친구 관계를 거의 그대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들 작품들은 작가가 겪고 있는 현실 상황을 더 중시하면서 내면고백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죄의식이나 삶의 무력감, 그리고 성적 욕망 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들 작품들은 외적인 사건보다 내면의 심리 변화를 중시한다. 또 일반적인 소설형태인 기승전결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작가 내면에 흐르는 의식의 변화를 중요시하면서 내밀하고 솔직하게 작가의 내면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로는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신생(新生)》과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의 《암야행로(暗夜行路)》,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인간실격(人間失格)》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가 개인의 내밀한 삶의 모습을 그린 소설작품들이 1980년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평론가 김윤식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약간의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은 채 지나갔다. 1980년대 김윤식은 황순원에 쓴 일부 소설작품에 대해 ‘합리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세계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소설 형식’이라고 비판하였고, 황순원은 이에 대해 ‘합리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을 다루는 것이 소설’이라며 김윤식의 논리를 반박하기도 했다. 김윤식이 ‘합리적인 논리’의 틀로 소설을 보는 것에 대해 황순원은 ‘소설이 보여주는 비합리적인 세계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비판한 것이다.
1990년대에 최인훈은 기행문이나 일기를 소설형식으로 발표하는 등 소설형식에 대한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시도하였다. 이에 대해서도 김윤식은 전통적인 소설장르의 틀에서 벗어나 소설형식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1990년대에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작품 《화두》에 대해 김윤식은 소설가소설로 불리고 있던 작가 자신을 소재로 한 이같은 자전적인 소설을 ‘소설이 아니다’라고까지 비판하였다.
이같은 논쟁이 일부 있긴 했어도, 소설장르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여러 소설가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져 왔고, 특히 자전적인 내용을 소설형식으로 발표하는 경향은 계속되어 왔다. 2024년에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도 2018년에 ‘하얗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자전적인 경험과 추억을 수필 형태로 써서 묶은 《흰》을 소설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문학계에서는 자전적이거나 수필 형태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소설로 발표하는 일이 있어 왔는데, 이번에 발표된 홍성암의 에세이소설집 《불면증》도 그러한 경향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에세이소설집 《불면증》 1부에 실린 작품들은 작가가 살아온 과정에서 겪었던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 작품 중에서 <강릉 남대천의 은어떼> <어머니의 꿈> <숨어서 피는 작은 꽃들> 등은 고향에서 겪은 경험을 다룬 작품들이고, <대학교의 혼란과 총장직무대행> <어느 화가의 죽음> <달리던 기차도 멈추게 한 송별연> <은사님의 뒷모습> 등은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학교사회의 경험을, <문단 데뷔와 창작 동인> <강릉사범학교 그리고 강릉 문인들> 등은 동료 작가들인 벗과의 경험을, <고향의 꿈> <다리가 없는 통닭> <바보식당> <파리들의 웃음소리> <미루나무와 까치집> 등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개인의 심리와 가족사를 소재로 하여 개인의 내면에 작용하는 심리를 사람간의 관계와 의식의 흐름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 <불면증> <환상과 환청> <완행버스/강원도①> 같은 작품들이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다루고 있다면, <붕새의 출현과 그 울음소리> <아버지의 땅>은 인물들의 전기적 삶을 그려보이고 있다. 이처럼 작가자신의 다양한 경험세계나 상상적 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낸 이번 작품집은 작가의 자서전적인 소설집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홍성암 소설가는 이번에 자서전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모아 묶어 펴내면서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시켜 ‘에세이소설’이라는 표현으로 또하나의 장르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에세이와 소설을 구별짓는 요소인 상상력과 허구성을 어느 한도까지 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상상력과 허구성을 요구하는 장르인 반면에 에세이는 자기내면의 경험과 사실성을 요구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평론가 김윤식이 소설가 개인의 체험이나 고백을 표현한 소설인 소설가소설 또는 자기고백소설을 두고 소설로서의 자격을 문제 삼았을 때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인데, 이것을 장르확산이나 장르융합으로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시킨 이러한 ‘에세이소설’이 우리 소설의 폭을 넓히는 길이 될 것인지 아님 하나의 흐름으로 지속되다가 끝나게 될 것인지는 작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독자들의 호응여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쓰여진 많은 글들이 시대상황과 독자들의 반응 여부에 따라 생성과 소멸이 되면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처럼, 결국 독자들의 반응 여부에 따라 장르의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홍성암
* 1942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 근대역사소설 연구>(1988)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1980년에 <겁화경(劫火經)>으로 월간문학지 신인상을 받았고, 1981년에 <조기(弔旗)>가 현대문학지에 추천완료되어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했다.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최고위원, 한민족문화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동덕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총장직무대행을 역임했음.* 단편집으로 <아직도 출렁이는 어둠을> (1981) <큰물로 가는 큰고기>(1988) <어떤 귀향>(1997) <모깃불>(2001) <영진리 마을의 개> (2008) <영진리 블루>(2018) 가 있고 꽁트집으로 <다리가 없는 통닭> (2008), 중편집으로 <가족>(1999), 대하역사소설로 <남한산성>(전9권)(1992)이 있다. 그 외의 장편소설로 <세발 까마귀의 고독> (2003) <한송사의 숲>(2018), <피안으로 가는 길>(2020)이 있다. * 한국소설문학상(1997), 한국비평문학상(2003) 둔촌 이곡문학상(2017), 녹색문학상(2018) 등을 받았다.
목차
서문: 에세이소설의 장르적 의미 / 5
1부
강릉 남대천의 은어떼 / 10
어머니의 꿈 / 16
숨어서 피는 작은 꽃들 / 22
언덕 위의 작은 땅 / 27
평범한 작은 생활 / 31
새로운 가족 / 38
작은 고추 / 48
황 교장과 깡패 두목 / 54
한 점 바둑돌의 사색 / 61
한글의 우수성 / 67
대학 진학의 열망과 대학교수 / 71
대학교의 혼란과 총장 직무대행 / 81
어느 화가의 죽음 / 86
달리던 기차도 멈추게 한 송별연 / 90
은사님의 뒷모습 / 100
혜산 박두진 선생님 / 109
문단 데뷔와 창작 동인 / 116
유금호의 <속눈썹 한 개 뽑고나서> / 121
종교문인회와 장백일 교수 / 125
강릉사범학교 그리고 강릉 문인들 / 127
한민족문화학회의 창설과 기대 / 132
성년식 파티 / 135
고향의 꿈 / 140
아파트 / 147
다리가 없는 통닭 / 153
바보식당 / 160
검은 나비 / 166
사랑의 통과의례 / 172
파리들의 웃음소리 / 178
미루나무와 까치집 / 184
귀성(歸省) 버-스 / 189
건망증 / 195
모기 한 마리 / 201
법과 인정 / 209
황소의 반란 / 213
전쟁 이야기 / 220
행운의 겨울등산 / 227
2부
한 줄기 햇살이 되어 / 234
빗줄기 속에서 / 243
지리산 물기둥 / 256
불면증 / 264
생명서설(生命序說) / 278
환상과 환청 / 302
저승 언저리 / 315
의식(意識)의 저쪽 / 339
그대의 콧구멍 / 369
완행버스/ 강원도①(1960년대) / 392
움직이는 산, 또는 제 물길 찾기 / 417
붕새의 출현과 그 울음소리 / 434
아버지의 땅 / 459
* 장르 경계 허물기와 에세이소설 / 김봉진/ 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