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 땅 농민들의 삶이었고 지혜의 결정체이자 농경문화의 담지자”
겨리연장으로 우리 겨레의 농경생활문화 일체를 담은 파노라마
겨리연장으로 한반도의 농경생활 일체를 톺아본 대작이 나온다. 겨리연장이란 소 두 마리가 논밭을 갈 때 끄는 쟁기로서 중북부 전통농경 도구였으나 현재는 홍천 일대에 무형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다. 저자는 겨리연장의 밭갈애비가 되어 우리네 땀이 배어든 땅, 그 삶의 현장을 힘차게 일군다.
겨리연장이란
이 책의 연구대상은 농민들에게 가장 긴요한 농구, 아니 ‘한몸’과 같았던 겨리연장이다. 지금까지의 쟁기 연구는 논농사 중심의 호리쟁기가 위주였으나, 저자는 한반도 중북부 밭농사 중심 농경의 핵심인 겨리연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생태주의가 주요 화두로 대두되는 시점에서,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지 않았던 천지인세계관을 근저로 ‘쟁기 사회기술체계론’을 도입하여 겨리연장의 전모를 조명하는 것이다. 특히 농민, 논밭, 부림소 등 다양한 존재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성하는 존재양식으로서 겨리연장에 접근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한반도 농업 토착지식의 핵심인 겨리연장의 생태적 특성에 관한 총체적 연구이다.
그렇다면 왜 ‘쟁기’가 아니라 ‘연장’인가. 이 책은 강원도 쟁기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남부 논농사지역의 호리쟁기와 서로 짝을 이루는 명칭으로 겨리연장을 사용한다. 강원도 농민들은 소를 이용한 논․밭갈이 농기구를 쟁기가 아니라 연장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분단 이후 한반도 남부를 중심으로 한 벼농사 연구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잊혀지게 되었다. 그래서 ‘연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강원도 지역의 독자적 사회문화체계 의미도 획득하면서, 중북부 밭농사지대인 겨리농경문화를 되살리는 뜻도 담겨 있다.
쟁기 기원설: 전래인가, 자생인가
쟁기 기원에 대한 통설은 중국 유상리有床犁의 한반도 도입설이지만, 저자는 조심스럽게 자생설을 제기한다. 나무후치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 하기에는 재료나, 구조 면에서 중국의 눕쟁기와는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여러 유형의 따비가 분화․발전하였으므로 한국형 눕쟁기 출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저자는 요동리의 2우6인 조직체계와 겨리농경지역 소겨리의 연관성을 찾는다(1권 Ⅱ-3.) 물론 자생설이 정설이 되기 위해서는 나무후치의 연대 문제 등 관련된 의문점들이 풀려야 하겠지만, 몽촌토성 출토 목제쟁기에서 양손 손잡이와 탕개의 위치 등 한국형 특징이 많이 보이는 것에서 보듯 한반도의 농경은 중국 화북지역과는 다른 독자적 농경사회기술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고고학 발굴과 농구 연구가 진전된다면 자생설을 입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쟁기의 구조에서부터 민속문화까지
강원도에서 겨리연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밭이 비탈진 데다가 거칠고 깊고 넓은 갈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연장은 경작지, 경작방식, 동력원에 따라서 크게 갈이용과 중경·제초용으로 나뉘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특히 갈이용은 논, 밭, 산전에 따라 논연장, 밭연장, 산전연장으로 불렸다. 이 책에서는 기존 연구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논연장(논칼이)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며, 각각의 연장도 지역별, 심지어 농민마다 세세하게 차이가 나는 것까지 고찰한다. 10여 년에 걸쳐 3백여 명 농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도안과 사진, 도표 등을 활용하여 강원도의 지역별 자연환경과 경작양식, 겨리연장의 명칭, 연장 구조의 명칭 차이는 물론, 다양한 농구들 각각의 특성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정시경, 김광언 등 선학의 연구를 훑은 다음(제1장) 그들 연구를 바탕으로 쟁기의 구조와 명칭을 설명하고(제2장), 강원도의 자연환경(제3장)과 겨리연장의 구조와 목재를 고찰하며(제4장), 논밭 갈이 방식(제5장)과 밭갈애비와 ‘안소’·‘마라소’의 부림소가 ‘소모는 소리’를 통해 소통하는 관계(제6장)를 다룬다. 특히 제7장은 민속학·인류학적 접근법으로 소와 사람을 잇는 공동체로서 ‘소겨리’에 주목한다. 소겨리는 쟁기 소를 가진 두 집과 소가 없는 여러 집이 모인 공동조직을 말한다. 두레가 논농사지대 공동노동조직이라면, 소겨리는 밭농사지대 농우·생산공동체이자 일상공동체인데, 두레에 견주어 볼 때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 품앗이”인 두레와 달리, 소겨리는 “소와 사람 사이의 품 교환”이며, 봄에 밭을 처음으로 갈아보는 ‘보냄의례’를 시작으로 함께 노동하고 공동으로 식사하는 공동체로서 한반도북부 공동체문화의 기틀을 이룬다.
왜 겨리연장인가
사계절이 뚜렷하고 논밭병행영농을 일구어 온 한반도의 농업환경은 농부에게 더욱 다양한 방식의 적응을 요구했다. 강원도에서는 논밭병행영농에 고랭지 농사를 더한 복합영농이 이루어졌기에 더욱 쉴 틈이 없었다. 저자는 우리 농업환경에 맞춘 논밭연장의 차별 구조와 발달을 고찰한 다음, 그 연장이 여러 갈이 방식을 낳았음에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그 갈이 방식이 작물 종류, 경작 시기, 파종 방식 등에 따라 달리 나타나게 되어 결과적으로 농경문화체계를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했다고 토로한다. 이 책은 바로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과 그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그 고된 길에서도 저자는 강원도와 한반도를 견주며 우리네 농업 전체에서 강원도 겨리연장의 위치를 가늠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강원도 농경사만이 아니라 한반도 농경사이며, 땅으로 읽는 농경문화기록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거름 내기, 논밭갈이에서부터 씨붙임, 중경, 수확까지 숨가쁘게 돌아가는 농부와 한 호흡으로 강원도 논밭갈이 양식을 추적해 나간다. 전통사회 토착지식의 핵이었던 쟁기에 관한 종합적 연구는 농경사회 전부를 담아내야 하는 거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이 도전은 일제에 의해 근대식민체제 이후 전통으로 낙인 찍혀온 우리 터전과 존재, 관계 양식에 대한 재발견이며, 분단 이후 식민사관에 의해 금기로 치부되어 왔던, 백두대간을 따라 태백산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겨리농경문화권의 일부를 복원하는 뜻깊은 일이다. 무엇보다 이 작업은 자연환경의 악조건에서도 연장의 도움으로 대자연과 조화, 협응을 이루어온 우리 농민들 영혼의 부름이자 따름이다.
강원도에서 뒷일을 보는 공간은 지역에 따라 변소, 뒷간, 잿간, 정낭(간) 등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 이름들 가운데 잿간과 정낭은 지역적 특징을 달리하였다. 춘천 사암리의 최봉규는 예전에는 화장실을 변소라고 했는데, 특히 잿간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 점은 횡성 상안리 최영환의 “과거 똥을 누는 잿간” 또는 원주 대안리 한만준의 “잿간에 이렇게 돌 두 개 놓고서”라는 말에서 확인된다. 춘천 사암리, 횡성 추동리·상안리, 원주 대안리 등의 사례에서 미뤄볼 수 있듯이 잿간이란 용어는 영서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쓰였다. 반면에 〈지도Ⅵ-5〉와 양양 갈천리 엄익환의 “대소변 보는 걸 요즘은 그런 데 뒷간이라 그러기도 하고 정낭간이라 그러기도 하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영동지역에서는 정낭(간)이 말이 주로 쓰였다. 요컨대 잿간과 정낭은 뒷간이나 변소보다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증보한국방언사전》과 《한국언어지도》에서는 ‘잿간’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잿간〔灰家〕은 말처럼 불을 때고 난 후 생긴 재를 갖다 모아두는 곳이었다. 대체로 뒷일을 보는 뒷간과 잿간은 엄연히 분리되는 공간이었다. 예컨대 양양 갈천리의 엄익환과 양양 상복리의 조광복의 말처럼 정낭(간)의 똥독과 잿간의 잿독은 엄연히 달랐다. 이는 꽤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인용한 유진의 《위빈명농기渭濱明農記》(1618년)에서도 “측간 옆에 연이어 가가假家 몇 칸을 지어서 잿간〔灰家〕으로 삼는다. 때때로 분糞을 모으고 오줌을 끄집어내어 재 위에 섞는 장소로 이용한다.” 또는 유중림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년)의 “잿간은 반드시 측간 옆 조금 가까운 곳이 좋다. 잿간의 3면에 담을 쌓고 서까래를 걸어 진흙으로 바르고 지붕을 인다. 매일 소변을 재 위에 뿌려 주면, 뜨거운 재에서 불이 나는 것도 방지한다(농촌진흥청, 2003:57).”고 하여 조선 중후기에도 잿간은 측간과는 다른 별도의 공간으로 재를 모아두거나 재거름을 만드는 곳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강원도에서는 잿간에서 뒷일을 보는 기능이 더해졌다. 한마디로 “옛날에는 뭐 화장실이 지금 같아요? 그냥 이 다리만 두 개 놓고 재에다가 또 끼얹었다고. 그래 잿간이지.”라는 횡성 추동리 김철수의 부인 말처럼, 뒷간과 잿간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요컨대 잿간이 뒷일을 보는 공간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뒷간의 또 다른 이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잿간의 뒷일을 보는 구조물은 땅속에 큰 항아리나 소 구유처럼 나무를 깎아 만든 똥독, 이른바 망우통 또는 액비통을 땅속에 묻고 그 위에 발판을 놓아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두 개의 부ㅤㅊㅜㄷ돌을 놓아서 만들었다. 대체로 잿간이라고 하면 두 개의 부ㅤㅊㅜㄷ돌을 놓아 만든 것을 일컬었다. 잿간에서 뒷일을 본 뒤에 그 위에 재를 덮고 그 재를 ‘재가래’로 쳐내서 한 곳에 쌓아두면, 자연스럽게 ‘인분재’, 곧 재거름이 만들어졌다. 재거름을 만드는 공간으로써의 기능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사람들이 변소를 잿간이라고 많이 부른 것은 잿간을 거름을 생산하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도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는 듯하다. 무릇 강원도에서 잿간은 거름, 이른바 ‘재거름’ 또는 ‘똥재’를 만드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훨씬 강했다.
잿간은 강원도만의 변소 형태가 아니었다. 필자가 이 책을 쓰던 초기부터 오랫동안 잿간을 강원도 산골지역의 독특한 뒷간 문화로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동범(2010)의 《자연을 꿈꾸는 뒷간》을 읽다가 다음 글을 접하면서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1997년 여름, 필자는 남해안의 청산도에 간 적이 있다. 청산도의 어느 해안마을 농가에서 부ㅤㅊㅜㄷ돌 잿간을 며칠 동안 사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으나 쓸수록 편하고 위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집주인의 말씀을 빌리자면 청산도 같은 작은 섬에서는 잿간처럼 깨끗하고 실용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수세식의 경우 조그마한 섬에서는 정화조를 거친 분뇨 희석수를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고, 수거식의 경우 자칫 지하수에 스며들어 수자원을 오염시킬 염려도 있으며, 청산도 같은 섬 지역은 비료를 운송하기 어렵고 비용 부담도 높아 분뇨를 자가 비료로 활용하는 잿간이 제일 적절하다고 한다. 잿간 변소는 위생적이면서도 천연퇴비를 많이 생산할 수 있어 매우 쓸모 있는 뒷간 형태이지만 오늘날에는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난방체계가 장작불에서 기름보일러로 변화되어 재를 마련하기 어렵고, 편리한 수세식의 보급과 손이 많이 가는 분뇨퇴비보다는 화학 비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고향 청산도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내 집뿐만 아니라 자주 드나들었던 외갓집 등의 변소는 한결같이 수거식, 일명 ‘푸세식’이었다. 청산도의 변소는 수거식 구조가 기본형이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윗글을 읽고 나서 즉시 필자의 어머니(임문자, 1941년생,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2019.3.15.)에게 전화로 이에 관해 물었다. 옛날 외갓집 변소도 수거식으로 바꾸기 전에 잿간 구조였는데, 잿간이라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고, 보통 ‘통시’로 불렀다고 했다. 통시라고 불렀지만, 제주도와 달리 돼지를 키우지는 않았다고 했다. 수거식의 똥오줌은 채소밭에 조금씩 주기도 했지만, 가을철 보리 파종할 때 똥 장고로 져 옮겨서 보리 고랑에 뿌렸다. 온 가족의 똥오줌뿐만 아니라 부엌 등에서 나오는 허드렛물까지 빠짐없이 모았지만, 늘 부족해서 똥오줌을 쳐내기 전에 통에 물을 섞어서 양을 늘리기도 하고, 보리 고랑에 바다 해조海藻 가운데 하나인 몰(모자반을 깔기도 했다. 어머니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경상도 지역의 변소는 어떠했는가를 알아보고자 경남 함양이 고향인 대학 선배(박동성, 1963년생)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그의 고향에서는 보통 변소를 잿간, 통시라고 불렀다고 했다. 《한국언어지도》에서 함양은 통시 언어권으로 분류되었다. 본인이 어렸을 때 잿간이 있었고, 중간에 돼지 마구 위에서 일을 보는 통시를 만들었다가 다시 구덩이를 파서 변소를 만들었다고 했다. 변소에서 똥을 풀 때는 ‘수앙 푼다.’라고 했는데, 푸기 전에 물을 많이 붓고 잘 저어서 똥장군에 퍼 담아서 밭으로 날랐다고 했다.
이렇듯 잿간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변소 형태였다. 장보웅(1995:261 참조)에 따르면, 잿간은 “한반도 서남부의 평야부에 넓게 분포하였다.” 재와 혼합해서 인분의 습기를 어느 정도 제거하는 건식乾式 처리방식의 잿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분을 저류貯溜하는 습식濕式 처리방식의 수거식으로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세건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친 뒤, 국립멕시코자치대학교에서 멕시코 농촌의 근대화와 생태 체계의 변화에 관한 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 재직 중이다. 강원도와 멕시코 지역의 전통 농법을 연구하며 공생태적 삶의 지혜를 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팅하는 한국 사회: 강원랜드에 비낀 도박공화국의 그늘》, 《우리는 빠창게로!: 멕시코 사람들의 축제와 의례》, 《밭갈애비의 삶: 강원도 겨리연장과 밭갈애비》 등이 있다.
목차
VI. 소 길들이고 소통하기: 부림소 되기와 구실 7
2. 소와 함께하기 ? 소를(는) 생각한다 9
1) 소 사육과 소 위상의 변화 9
(1) 한우의 역사와 특징 9
(2) 부림소 시대에서 고기소 시대로 33
2) 소 마련하는 다양한 제도 67
(1) ‘도지소’ 또는 삯소 75
(2) 그리소와 맞멕이 85
(3) 소 매매와 우시장 122
3) 소 기르기? 전통농업의 생태적 고리 168
(1) 소의 일생 168
(2) 소 먹이의 종류와 특징 212
(3) 마구간/외양간 278
4) 소: 일꾼, 친구에서 신이 된 동물 387
VII. 겨리공동체: 소와 소를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다 435
1. 소겨리 구성과 특징 438
1) 소겨리의 여러 이름 451
2) 구성 시기와 조건 465
(1) 구성 시기와 지속 기간 465
(2) 소짝 구성 고려 조건과 대상 478
3) 소겨리의 구성 방식 494
(1) 독겨리 495
(2) 맞겨리와 소겨리 510
4) 소겨리의 운영방식: 품 계산 552
(1) 소겨리의 등가적 교환 기제 552
(2) 품 계산 방식 571
2. 소겨리: 생산공동체를 넘어 일상공동체로 595
1) 보냄 의례 596
(1) 보냄의 의미와 여러 이름 596
(2) 시기와 날 잡기 606
(3) 장소와 갈이 방법 617
2) 농우공동체: 공동노동과 공동식사 633
3) 일상공동체: 겨리사촌 그리고 겨리공동체 646
3. 겨리 생산공동체의 특징: 두레와 비교를 중심으로 654
1) 논농사와 밭농사지역의 공동노동조직의 특성 662
2) 공동노동조직의 발생과 변화 672
(1) 품앗이: 공동노동의 기초 673
(2) 소겨리: 축력 공동노동조직 698
(3) 두레: ‘조직적’ 공동노동조직 708
(4) 강원도 노동조직의 특성: 두레와 소겨리의 관계 731
3) 조직의 내적 차이와 공동체성 764
(1) 두레의 구성 시기와 규모 764
(2) 소겨리의 구성과 구성원리 804
4) 조직 구성원리와 내적 차이 817
(1) 두레와 소겨리의 계층성 827
(2) 마을 공동체성과 ‘개인-공동체성’ 847
4. 연장사회기술체계에서 농기계사회기술체계로의 변화 866
1) 농업기계화와 소짝의 해체 866
(1) 농기계의 보급 현황 867
(2) 농기계화와 생산조직의 변화 874
2) 농축산복합체제와 농기계과학기술체계의 역설 905
(1) 연장사회기술체계: 나무와 흙의 시대 912
(2) 농기계사회기술체계: 쇠붙이 시대 920
VIII. 나가며: 겨리공동체를 꿈꾸며 939
1. 농민 ?닮고 싶지 않은 이름! 941
2. 다시 농農을 생각한다 967
1) 농의 의미와 존재 양식 967
2) 농민 농업과 자연 984
3. 분단과 식민성을 넘어 997
1) 잃어버린 땅: 역사의 빈곤 997
2) 전통의 자기부정과 지식의 식민성을 넘어 1008
국문요약문 1032
Abstract 1038
참고문헌 1045
찾아보기 1085
부록: 이 책을 만드신 분들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