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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창비 | 부모님 |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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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202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유나의 첫 소설집으로, 일곱 편의 작품에 보통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인생의 순간들을 담았다. 정교한 묘사와 감정의 축적, 절제된 유머를 통해 인물의 다층적인 내면과 현실적인 서사를 균형 있게 그려낸다. 장편소설 『내일의 엔딩』에서 보여준 서사 감각이 한층 깊어졌다.

작품 속 인물들은 사기와 배신, 침묵과 공모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며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속이려 한다. 작가는 해피엔드 대신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선 인물들을 통해,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덜 거짓된 삶을 향한 한 걸음의 의미를 짚는다. 가족, 사랑, 노동, 돈, 계급 등 구체적인 삶의 조건이 인물의 감정과 긴밀히 얽히며 현실의 밀도를 더한다.

  출판사 리뷰

“물속에서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하는 법,
무른 몸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법”

담백한 이야기의 감칠맛 속에 깃든 인생의 참맛
한국문학의 싱그러운 새바람, 김유나 첫 소설집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수록

“화자의 갈팡질팡하는 마음 곁에 나란히 서서 그 마음을 물끄러미 응시하게 되는 독특한 힘”(심사평)을 지닌 작가로 주목받으며 202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김유나의 첫번째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이 출간되었다. 정교한 묘사와 감정의 축적, 감칠맛 나는 유머가 버무려진 일곱편의 수록작에 제각각 깊이 익은 인생의 참맛을 담았다. 인물의 다층적인 내면과 핍진한 서사를 균형있게 다룬 첫 장편소설 『내일의 엔딩』에서 보여준 솜씨가 더욱 무르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가와 인물이 “서로 같이 고군분투하는”(추천사, 윤성희) 진심이 자상하게 다가와 말을 걸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고달픈 인생을 버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는다.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보통의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인생의 쓴맛을 맛깔나게 묘사하며 세계의 담백한 진리를 담았다. 작중 인물들은 시련을 맞이해 사기와 배신, 폭로와 도주, 침묵과 공모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며 세상을 속이고 자신도 속인다. 하지만 김유나는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속인다면 삶 역시 우리를 속이기 시작한다는 엄정한 사실을 또렷하게 직시한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해피엔드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더욱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은 뒤 독자들에게 묘한 개운함과 깊은 여운이 남는 이유는, 김유나가 ‘더 나은 삶’을 애써 꾸며내기보다 ‘덜 거짓된 삶’을 향한 한 걸음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기 때문이다. 진실 너머의 모호한 희망을 약속하는 대신, 나답게 살며 한 걸음이라도 내 호흡으로 걸어가는 것, 그 작고 더딘 움직임이 삶의 가장 단단한 본질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유나는 인물의 감정과 선택이 현실의 조건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치밀하게 설계한다. 가족, 사랑, 노동, 돈, 계급, 돌봄, 기후 같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인물의 심리와 분리되지 않은 채 촘촘히 얽힌다. 이야기를 술술 읽히게 만들면서, 독자들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의 소용돌이로 데려간다.

거짓으로 점철된 삶의 진창을 건너
가장 솔직한 나에게로 내딛는 걸음


열심히 살아도 누추해지는 게 인생일까. 김유나의 소설 속 인물들은 이 질문 앞에서 늘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속고 속이며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그러나 거짓의 안전한 껍질 안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꾸며낸 말과 선택들이 오히려 진실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각한다. 표제작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은 도박에 빠진 엄마와 단둘이 시골 산자락의 외딴집에 이사 온 열살 아이의 이야기다. 소설은 배신과 기만, 탐욕과 무절제로 가득한 어른의 세계를 아이의 시선으로 밀도있게 포착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사랑스러운 한편 그와 대비되는 어른들의 추한 비밀이 넘실거리고, 마침내 아이가 ‘배신’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아이가 필사적인 몸짓으로써 폭로를 감행할 때 내뱉는 말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에는 숨기려 해도 결국 드러나는 욕망과 진실, 그리고 그것을 각자의 조건만큼 감당해야 하는 삶의 한계와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다.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이름 없는 마음」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오래, 가장 깊게 서로를 버텨온 남매의 이야기다. 세살 터울의 동생 현권은 누나인 ‘나’에게 항상 짐이었다. 심한 약시와 학습 부진, 틱과 사회성 결여까지, 약점투성이인 동생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가 보살펴야 했다. 결혼 이후 동생을 떼어내려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며 ‘남편’으로 상징되는 외부세계의 압력을 감당하는 ‘나’의 분투는, 결국 남매 모두 ‘미안함’과 ‘지겨움’ 사이를 오가며 “알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폭발하는 갈등 끝에 화해도 재회도 남지 않는 결말부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진심은 도저히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서글픈 세계를 애틋하게 그려낸다.
「랫풀다운」과 「물이 가는 곳」은 비슷한 위기에 처했지만 각각 “물렁한” 사람과 독한 사람이 된 두 인물의 모습을 그린다. 「랫풀다운」의 석용은 역도 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으로 은퇴한 후 헬스 트레이너가 되었다.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듯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온 석용은 친한 형이자 헬스장 대표인 승우형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투자 명목으로 석용이 빌려준 돈과 헬스장 고객들 선납금까지 들고 잠적해버린 승우형을 찾기 위해 그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추적에 나선다. 마침내 승우형의 본가인 제주도까지 찾아가지만, 석용은 홀로 초라하게 지내는 승우형의 노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되레 친절을 베풀어주고 뒤돌아선다. 끝내 모질지 못한 자신의 물렁함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삶의 다른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한편 「물이 가는 곳」의 주인공 김기왕은 지독한 보험왕이다. 법인 보험을 팔기 위해 기업 대표들을 상대하는 그에게 특별한 필승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탐정사무소와 연계해 불륜을 저지르는 대표를 알아내고, 그들에게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보험을 판매하는 방법이다. 김기왕은 한때 잘못된 투자로 막대한 빚을 졌고, 운영하던 유도장을 비롯한 전재산을 날려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과도 떨어져 산다. 아이들 앞에서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재기를 꿈꾸며 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난입해 없다시피 하던 김기왕의 양심을 찌른다. 기상이변 탓에 녹아내리는 빙하와 기이할 정도로 땀을 흘려대는 김기왕의 모습이 복선처럼 포개지며 작품은 시종 위태롭게 출렁인다. 숱한 위기와 경고에도 어긋난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더욱 강한 자기확신으로 밀고 나가는 김기왕이 져야 할 책임은, 최악의 방향으로 튀어 딸 하윤이의 탈선으로 불붙는다.
고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냉혹한 진심 앞에서 곤두박질하는 인물들이 선뜩한 실감을 주는 작품도 있다. 「너 하는 그 일」의 태은은 회계사 시험 2년, 세무사 시험 5년, 도합 7년이 넘도록 수험생활 중이다. 엄마의 용돈과 고된 물류센터 알바로 생활하며 악착같이 공부했으나 아슬아슬한 가채점 결과에 머리만 쥐어뜯던 중 새아버지와 싸우고 쫓겨난 엄마가 찾아와 갑작스런 동거생활이 이어진다. 아빠에게 평생 매 맞고 살더니 또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와 재혼한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엄마와의 따뜻한 일상이 태은은 내심 좋다. 어느 날 엄마가 “너 하는 그 일” 해보겠다며 물류창고 알바에 동행하는데 둘은 하필 지옥 같은 중량품 층으로 배정되고, 아등바등하다 결국 개구멍으로 도망치기에 이른다. 작품은 꿈과 현실, 가족과 폭력, 모녀 관계가 얽힌 복잡한 양상을 물류센터의 압도적인 풍경 속에 촘촘하게 새기며 상승 욕구과 추락하는 현실 사이에서 반복되는 삶의 궤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탈출이 곧바로 또 다른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망은 도망일 뿐이란 것을 알면서도, 인물들은 다시 도망치듯 움직일 수밖에 없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변주되고 왜곡된 끝에 숨겨둔 진실을 비추는 작품들도 흥미롭다. 「으름 씨 뱉기」에서 채림과 현우 부부는 영재인 딸 지수를 위해 투자이민을 결심한다. 자금 확보를 위해 채림의 엄마에게 돈을 빌리러 찾아가고, 채림의 외조부모 성묘를 다녀오라는 특명이 떨어진다. 7억 3천짜리 벌초에 나선 셋은 심경이 복잡해진다. 조상님 돈으로 지수를 방주에 태워 미래 없는 한국 땅을 떠나려는 채림과 현우에게 지수는 돌직구를 던진다. 과연 방주에 탈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이 가족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일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자 은행털이를 시도하는 학원원장 구영수와 요양보호사 오진희 커플 이야기인 「부부생활」은 그 누구보다 딴판인 두 인물이 한마음 한뜻이 되기까지, 알쏭달쏭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김유나는 이 충동적인 서사 속에서 누구도 도덕적 우위에 서지 못하도록 만든다. 질문은 남는다. 강도행각에 앞서 출사표처럼 내민 혼인신고서와 가짜 칼을 든 그들의 복수의 끝엔 뭐가 있을지,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지, 애초에 지키려 했던 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변명인지.

이름 붙여주고 싶은 무수한 다정과 웃음의 이야기

“개인에게 패배를 강요하는 세계를 힘겹게 버티는 주체의 운명을 유머로 감싸”(해설, 한영인)는 김유나의 이야기는 두말할 것 없이 재밌다. 그것도 건강하게 재밌다. 자극적인 소재나 빼어난 인물 같은 첨가제 없이 다채로운 웃음을 선사한다. 만담하듯 주고받는 인물들의 대화는 생동감 넘치게 웃기고, 심각한 상황에서 허를 찌르듯 태평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고, 인물의 과장된 자의식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며, 아이의 시야로 천박한 어른의 세계를 엿보며 씁쓸한 미소까지 새어나온다. 온갖 종류의 웃음을 선사할 뿐 아니라 김유나는 이 웃음을 쉽게 휘발시키지 않는다. 장면과 장면을 거쳐 웃음은 폭소가 되고 분노나 슬픔으로 변주되며 더 서글퍼지기도, 스릴과 반전으로 몰아치며 충격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김유나는 ‘재미’라는 소설의 본원에서 출발해 ‘감동’이라는 본명으로 그 누구보다 매끄럽게 독자를 모시는 뱃사공이라고 해야 할까. 인생이 내게 늘 웃어주지만은 않는다는 자명한 진실. 소설 속 인물의 얼굴에 인생의 다양한 표정을 꾹꾹 눌러 담아 보여주는 이 다정한 작가에게 독자들은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책 한권을 맛있게 읽고 난 뒤에 떠오른 만족스러운 웃음을.

현권이는 비를 맞으며 집에 갔다가 우산을 들고 나와 3교시 무렵부터 나를 기다렸을까. 그러다 갑자기 불어난 아이들과,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나를 찾지 못할까봐 겁이 났을까. 생일파티에 가기를 포기하고 현권이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단단히 일렀다. 누나는 우산 없어도 되니까 다시는 기다리지 말라고. 나 안 챙겨도 되니까, 너나 잘하라고.
―「이름 없는 마음」

“석용쌤, 다름 아니라 제가 대박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정보요?”
“함대표 어머니가 제주도에 산다는데, 주소만 알아내면 됩니다. 모르는 일이라고 내빼면 용달 불러서 냉장고라도 가져오게요. 그래야 우리가 분이라도 풀리지 않겠습니까?”
석용은 뻥 뚫린 해안도로 위, 자신을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제가 방금 다녀오는 길인데요,”
도로를 등진 석용 앞으로 탁 트인 바다가 무심히 펼쳐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다 버리고 도망갔더라고요.”
―「랫풀다운」

“은아. 우리 둘이 이렇게 사는 것도 재밌겠다, 그치?”
엄마는 그렇게 묻곤 자문자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쑥 건너온 그 말에 태은은 고개를 돌린 채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수험 생활 내내 매달 5일 칼같이 입금해준 생활비나, 시험 결과에 대한 무관심으로 부담을 덜어준 것이 고맙고 미안했다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태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 편히, 우리 둘이 재밌는 거. 태은이 골백번을 넘게 상상하다 끝내 경계하고 도리질 쳤던 거.
―「너 하는 그 일」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유나
2020년 「이름 없는 마음」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내일의 엔딩』 등이 있다.

  목차

이름 없는 마음
랫풀다운
너 하는 그 일
으름 씨 뱉기
부부생활
물이 가는 곳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

해설 | 한영인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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