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사진을 찍는 일은 결국
내가 견디는 방식에 대한 고백이다”
사진에 담은 가족의 역사,
연대, 버티고 매달린 순간들사진가 이예은은 경기도 이천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천은 3세대 일곱 식구가 뿌리를 내린 곳이며, 대규모 공장 단지와 크고 작은 물류창고는 생계의 근거지였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비롯한 학교 친구들과 가족 구성원들에게 ‘단순 업무 초보 가능’ 노동은 일상적 활동이었으며, 현장에서 세대를 넘어 관계를 맺은 이들과는 삶의 태도와 방식, 기억을 공유했다. 무엇보다 평생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부모님에게 가난을 물려받았을지언정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자신의 유산으로 삼았고, 공장의 이모, 언니, 삼촌에게 몸을 쓰는 법, 몸을 보호하는 법, 서로의 작업 방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즉 이천에서 이루어진 크고 작은 관계와 사건 들은 저자가 수많은 풍경 가운데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어디에 서서 바라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주로 컨테이너 지붕, 공장 뒤편, 마을의 교량 위에 서고, 이는 사진 작품 속 배경이 된다. 이곳에서 뛰어내리고, 건물 외벽을 껴안고, 교량에 매달려 손을 놓치고 추락하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머리에 불을 붙이고 흙 속에 몸을 묻는 등 ‘실제적인 행위’를 통해 사진을 완성한다. 이 배경들 속에는 오직 이예은 본인만 등장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을 빌려 윗세대의 흐릿한 기억, 사소한 감정,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이어가려는 시도이다.
저자가 이토록 삶을 견디는 태도에 집중하는 이유는 사라지려는 목소리를 붙잡아 살아 있음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냉동창고에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크림치즈의 맛을 묻는 엉뚱한 질문으로 시스템을 멈춰 세우거나, 실내 온도를 높이겠다며 차가운 건물 외벽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불가능한 행위를 통해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곧 “자신이 견디는 방식에 대한 고백”이다. 저자는 비극을 전시하는 대신 스스로 추락의 직전에 매달려 있기를 택하며,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는 이름 없는 이들에게 끈질긴 연대의 안부를 건넨다.
공중에 뜬 달걀, 반쯤 녹은 얼음,
교량에 매달린 몸…
“자꾸만 사진 이후를 상상하게 된다”민들레로 피아노 연주하기, 티백으로 바다 우리기, 건물을 껴안아 실내 온도 높이기, 새의 도움을 받아 비행하기…. 이예은의 사진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또렷하게 상으로 남아 있다. 사진가 이예은은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지만, 그가 바라본 삶은 꽤나 진실하다. 저자가 포착한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선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울과 비수도권, 혹은 노동과 예술, 생계와 생활. 어디에든 선을 그을 수 있으며, 누구나 선을 그을 수 있는 사회이다. 그러면서도 사회는 이 선을 넘는 자들을 경계한다. 저자는 그 많은 선과 불가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가능의 주체자로서 그 선 앞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살아 있음 그 자체로 삶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이예은의 생각에 뿌리를 깊게 내렸고, 이는 그의 사진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예은의 사진 세계에서 ‘안착’은 중력을 이기고 허공에 머무는 기적 같은 순간을 의미한다. 프레임 속 달걀은 깨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으며, 이는 추락이 아닌 고요한 기다림과 가능성을 상징한다. 저자에게 사진은 다음 순간이면 사라질 존재들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붙잡아 세우는 일이다. 빛의 한가운데가 아닌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응시하는 저자의 시선은 한없이 다정하다.
그래서 저자에게 카메라는 ‘노동의 연장’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저자의 사진은 사회가 그어놓은 선을 지우지 않는다. 대신, 그 선을 딛고 서서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을 고정시킨다. 추락할 것만 같았던 달걀이 공중에 안착하듯, 그의 작업은 불가능 속에 잠든 가능성의 순간을 포착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 개인이 어떻게 고된 현실을 예술적 행위로 전환하며, 어떻게 억압의 공간을 저항과 아름다움의 장으로 재창조하는지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 결국 이예은이 보여주는 것은 예술의 형식이 아닌,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주체자의 용기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현장은 어디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호명되지 않은 이름들에 대한
다음 세대의 부채감, 그리고 의지 냉동창고에서 수천 개의 크림치즈를 검수하고 라벨을 붙이면서도 정작 그 맛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소외를 겪으며, 이예은은 시스템이 가리는 노동의 진실에 질문을 던진다. 햄 선물 세트를 만드는 공장에서 기계처럼 반복되는 움직임과 “앉아서 작업하면 일이 느려진다”는 강요와 침묵 속에서도, 호명되지 않는 이름들의 실체를 포착한다. 백반집에서 2년 남짓 일하며 손목에 보호대를 감고 묵묵히 하루를 버티던 이모들의 모습은 그녀에게 노동의 감각이 신체에 어떻게 기억으로 각인되는지를 보여 주었다.
사진 작품 〈모-시다: 지용의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아버지 ‘지용’은 가난으로 인해 어린 나이부터 삶의 최전선에 내몰렸다. 그는 용산역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자며 구두를 닦았고, 가리봉동의 간판 가게에서는 밤낮 없이 일하며 공업용 재봉틀 작업대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머리 위로 천막을 꿰매는 재봉틀의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지만, 그는 서울 한복판에 몸 누일 자리가 있다는 안도감에 그 소리가 자장가 같았다고 회상한다.
〈모-시다: 희의 이야기〉의 주인공 희는 완도에서 태어나 태풍으로 가세가 기울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양말 공장으로 향해야 했다. 그녀는 12시간씩 이어지는 고된 노동 이외 시간에는 영어 학원으로 향했고, 팝송을 흥얼거리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꾸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공순이’라는 납작한 호칭으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단단한 저항이었다. 저자는 희의 웃음 뒤에 숨겨진 끈질긴 생명력을 포착하며, 타인의 연민 섞인 시선이 아닌 그녀가 스스로 일궈낸 빛나는 삶의 태도를 자신이 그대로 잇고자 한다.
이예은에게 ‘모-시다’는 ‘박 모 씨’처럼 익명성 뒤로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 호명하고,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정성껏 떠받드는 행위이다. 지용과 희의 사례처럼,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서로를 지탱하는 삶들을 기록한다. 이러한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나 일터에서 만난 이모, 언니 들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딸인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사라진다”는 부채감과 미약하나마 사명감을 안고, 이름 없이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모시다’라는 태도로 정성껏 기록한다. 그에게 사진은 단순히 장면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다음 순간이면 잊힐 존재들을 선명하게 불러내는 일”이다.

나는 다른 물류창고보다 냉동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추위를 잘 견디는 체질은 아니었다. 손끝은 금세 굳고 옷을 몇 겹씩 껴입어도 허리 끝부터 스며드는 냉기가 등을 타고 올라오곤 했다. 그래도 그곳이 좋았다. 좋아한다기보다 견딜 만했다. 내복, 두꺼운 옷, 그 위에 다시 작업복. 몸을 겹겹이 감싸는 일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손에는 장갑을 세 겹씩 겹쳐 낀다. 그렇게나 무겁고 무감각한 차림인데도 이상하게 그 둔함이 안도감을 준다. 몸이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덜 조급해진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빠른 손놀림을 기대하지 않는다. 〈크림치즈의 맛〉
프레임 속의 달걀은 아직 깨지지 않았고 공중에 떠 있다. 이후에 달걀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아래는 단단한 바닥이 있었을까 아니면 부드러운 이불 같은 흙이 있었을까. 혹은 애초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무중력의 공간일까. 혹은 삶은 달걀이어서 깨져서도 데구루루 굴렀을까. 달걀이 아직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무수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된다. 멈춘 그 순간이 파괴가 아니라 수용이라서 그렇게 상상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허공에 안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