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오래된 앨범에 남아있는 아버지 스냅사진 생각이 났다. 1950년대 길거리 사진사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몰래 촬영한 후, 그 사진을 강매하기도 했다. 내 부모님 사진첩에는 그런 스냅사진이 몇 장 있는데,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생동감 있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명동거리를 걷는 사진이나, 어린 나를 안고 고궁을 걷는 사진은 지금 보아도 멋있다. 호리호리한 몸매, 멋진 하이칼라 머리, 통 넓은 새빌로우 양복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멋쟁이 신사다.
함경도 회령 출신 아버지는 49년 무렵 밤에 한탄강을 넘어 월남했다. 전쟁 때 피난 갔다 돌아와 지금 신세계 자리에 있던 미군 PX에서 시계포를 하셨다. 어머니 말씀은 매일 상자에 한가득 돈을 담아오셨다고 한다. 아직 휴전도 안 된 혼란기였지만 어느 분야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중구 삼각동, 지금 신한은행 광교 영업부 근처에 있던 집도 그때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 절정기를 지나 아버지 장사는 차츰 안되기 시작했다. PX를 그만둔 후 점포는 종로로 신당동으로 급기야는 왕십리로 밀리면서 규모도 작아졌다. 아버지 장사 운은 거기까지였다.
가세가 기울면서 집도 삼각동에서 사대문 밖인 신당동으로, 또 안암동으로 점차 시내에서 멀어졌다. 결국 돈암동에서 왕십리까지 셋집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병약하며 신경이 날카로웠던 어머니는 살림이 기울자 아버지에게 바가지를 자주 긁었다. 장남인 나에게도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오는 짜증을 내곤 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애틋하기는 하지만, 남들처럼 순애보 적인 모성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어찌 보면 불행한 불효자다.
-<닮고 싶은 아버지> 중에서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다시 보았다. 1964년 프랑스에서 제작되었고 한국에는 1965년 개봉되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더 어렸을 때 대한극장에서 〈벤허〉를 단체 관람으로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는 기억이 없다. 찾아보니 중앙극장에서 개봉했는데, 한국에서 첫 흥행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슷한 때 멜리나 메르쿠리가 주연한, 의붓어머니와의 격정적 사랑을 그린 〈페드라,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잔잔한〈쉘부르의 우산〉은 유럽 문화를 동경하던 젊은 청년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지식인 계층에서는 꽤 유명했다고 한다.
1950년대생인 우리 세대는 종로와 명동에 있던 음악감상실 〈셸부르〉가 영화보다 더 유명했다. 이종환 DJ가 운영하던 그곳에서 늦가을엔 이브 몽탕의 〈고엽〉을, 눈 오는 날엔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를 신청해서 들었다. 이 영화는 TV를 통해 처음 접했을 텐데 막연히 아름다운 영화였다는 기억만 있었다. 노르망디 해안 항구 쉘부르, 당대 미인 배우 카트리느 드뇌브 정도만 기억나는데, 다시 영화를 보니 모든 대사가 노래로 된 오페라 같은 영화였다. 요란스런 합창과 군무로 이루어진 미국 스타일 뮤지컬과는 격이 다르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시네 오페라’라고 부른단다.
-<노르망디에서는 우산을> 중에서
어린 시절 만약 여자로 태어난다면 살로메가 되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쟁반에 담긴 요한의 기괴한 얼굴과 키스 하는 살로메의 요염함에 빠져들 때였다. 그러나 현실을 알고부터 그런 꿈은 꾸지 않았다. 인생은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것보다 주어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내가 선택 가능했던 건 전공이나 직업 혹은 배우자 정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 배우자는 인연이 있어야 하고 대부분 남편은 다음 생에서도 지금의 부인을 원한다니까 그 대부분에 속하는 나도 새로운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결국 전공이나 직업을 다른 것으로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만 남는 셈이다.
우리 때에는 대학입시에서 자신이 원하는 전공보다는 성적이나 시류에 맞추어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을 선택할 때 취업이 쉽다는 상대 무역학과를 선택했다. 종합무역 상사가 한창 뜰 시기라 무역학과도 제법 인기가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무역학이란 것이 학문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깊이가 있는 학과가 아니었다. 그건 경영학 과목도 마찬가지여서 무역이나 기업경영을 하는데 필요한 실용 과목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이론이 있어 보이는 경제학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수강하거나 혹은 문과대 과목을 도강하곤 했다. 대학 4년 동안 내 전공인 무역학 과목은 필수과목만 간신히 채우고 나머지는 엉뚱한 과목으로 채운 형편이 되었다. 어쨌거나 상과대 졸업 학력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현실적인 선택이 어느 정도 주효한 셈이다.
고등학교 때 겨울 인왕산 고갯마루 소나무 한 그루를 보며 ‘동령수고송(冬嶺秀古松)’이라는 싯귀에 감탄하던 나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고전문학이었다. 가사 문학과 규방가사나 시조 같은 쪽에 관심이 많았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국문학사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부모님께 내가 비치니 펄쩍 뛰시는 바람에 접고 말았다. 큰아들이 고시 패스해서 출세하길 기다렸던 부모님 처지에서는 취직이나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전공이었다. 물론 공부를 좀 더 계속한다면 대학교수가 될 수는 있었겠지만, 대학도 겨우 갈 형편에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한다는 건 꿈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내 전공의 꿈은 도전도 못 하고 끝이 났다.
-<가슴은 그때처럼 설렌다>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허광호
1952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경복중・고등학교와 건국대 무역학과를 나왔다38년 동안 LG와 LIG계열사에서 일했다CEO로 은퇴하며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전원생활을 꿈꾸며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를 나오고, 은퇴 후에 성균관대에서철학박사(유교철학) 학위를 받았다.2018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수필가로 등단하였고, 현재 한국문인협회 등문학단체에 참여하고 있다.논문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사상 연구》와공저 《7인의 수다, 맛깔나는 술 이야기》가 있다.
목차
출간의 변 5
들어가며 |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13
작품해설 | 권남희 256
1부
닮고 싶은 아버지 26
나를 사랑했던 어른들은 떠나고 34
냉면 그릇과 어머니 41
뚝섬 1961 49
여름, 아리랑고개를 오르다 56
2부
코트 자락 사이로 오는 봄 66
초겨울, 찬비를 맞으며 71
노르망디에서는 우산을 76
그해 사월은 참 잔인했다 82
산사山寺의 종소리처럼 88
3부
팬티만 입고 튀어 98
지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108
내 인생의 훼방꾼 114
응 그래…, 그렇구나… 121
밑줄 긋는 스무 살 청년 131
4부
마지막 선택 140
회색빛 거리를 걷다 146
지금도 3번 국도를 걷는다 153
가슴은 그때처럼 설렌다 161
다 식은 연탄재 166
5부
풍각 다방의 추억 176
나를 키워준 곳 지금은 멀어진 곳 183
남아있는 나의 꿈자락 188
잃어버린 내 삶을 찾아 194
불안으로부터의 보상 200
6부
우리 다시 올 수 있을까? 208
춘향春香은 내 곁에 있었네 215
시칠리아, 영화의 추억과 함께 222
새벽에 깨어나는 싱가포르를 걷다 230
가카라시마에서 보는 현해탄 파도 237
나오며 | 회령, 언제나 갈 수 있을까?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