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로비에서 만난 J가 급히 옷자락을 잡고 끌어당기더니 단둘이 되자 말했다. 최 선생님, 정말 노조 만드실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J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한다. 선생님, 희생하지 마세요, 이곳 사람들은 최 선생님이 희생하실 만큼 가치 있지 않습니다, 최 선생님은 귀하시고요.
저, 희생하는 거 아닙니다.
J는 우리 어학당에서 부조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나선 적이 있고, 그때 동료들에게 외면을 당해 외톨이가 된 적이 있다. 믿음을 버리신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를 진심으로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믿지만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지부장 임기 후에 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슬프다.
─ 「2019년 5월 9일」
뭐라고 말해야 어머니께서 안심하실지를 고심했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고,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린다. 노동조합이 6월에 설립되는데요, 그때 지부장 선거를 합니다. 지부장은 어학당 노조의 대표자인데, 아마 제가 될 것 같아요. 어머니의 안색을 살피면서 재빨리 말을 이었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런 해꼬지도 없을 거예요, 지부장은 가장 전면에 나서는 사람이니 학교 측도 오히려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자칫하면 민주노총 전체와 대거리를 할 테니까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그날 가만히 듣기만 하시던 어머니께서 연락을 한다. 얘, 어쩜 내 뱃속에서 너처럼 간 큰 애가 나왔다니. 니가 괜찮다고 하니까, 그래, 그럼 괜찮으려니, 한단다. 하지만 난 어머니도 지난해 요양센터에서 급여가 잘못 나왔을 때 강하게 항의하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 「2019년 5월 30일」
원장이 다시 말을 잇는다. 한국어학당 중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데가 또 있나요. 나는 대답한다. 서울대와 경희대 그리고 강원대 어학당에도 조합원들이 계시지요. 하지만 정식으로 민주노총 소속의 지부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단체교섭까지 할 수 있는 곳은 우리 어학당뿐입니다. 그렇군요, 최 선생님이 여러모로 큰일 하셨네요. 나는 그의 말에 비아냥이 섞여 있다고 느낀다.
원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최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최 지부장님이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그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풀린다.
─ 「2019년 6월 17일」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수근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언어연구교육원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