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조는 우리 민족문학의 정수精髓로 천년 세월을 우리의 호흡 속에 살아 숨 쉬는 시가다. 고려말부터 불려왔으니 그동안 얼마나 다듬어져 왔겠습니까! 사람은 오고 가지만 당대의 삶을 음각해 낸 시조는 진실로 이 땅에 남긴 그들 혼의 필적이다.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의 발간을 계기로 時調가 우리 삶과 어떻게 긴밀함을 형성하며 노래되고 전승되어 왔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에서는 2024년 협회의 중대한 사업으로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 발간을 기획하였다. 이 책이야말로 광주와 전남의 시조문학사를 온새미로 저술한 책자다. 시조의 문학적 가치를 재고하고 시조시인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협회의 역할이기에 산적한 난제를 극복하며 진행하였다.
광주와 전남을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출향하여 활동하는 시조시인의 자료는 우리 지역 시조단은 물론 한국시조단의 귀중한 문학사료다. 그러므로 치밀하게 우리 지역 시조문학 실상을 찾아 기록하고 문학자산인 시조작품을 한데 모으는 것은 이 지역 시조의 위상을 정립함은 물론이고, 세계적 문학 자산을 남겨 두는 일이다. 또한 한국 현대시조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광주와 전남의 훌륭한 시인과 작품을 발굴하여 만천하에 드높이는 기록물이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시조는 우리 민족문학의 정수精髓로 천년 세월을 우리의 호흡 속에 살아 숨 쉬는 시가입니다. 고려말부터 불려왔으니 그동안 얼마나 다듬어져 왔겠습니까! 사람은 오고 가지만 당대의 삶을 음각해 낸 시조는 진실로 이 땅에 남긴 그들 혼의 필적입니다.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의 발간을 계기로 時調가 우리 삶과 어떻게 긴밀함을 형성하며 노래되고 전승되어 왔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에서는 2024년 협회의 중대한 사업으로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 발간을 기획하였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광주와 전남의 시조문학사를 온새미로 저술한 책자입니다. 시조의 문학적 가치를 재고하고 시조시인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협회의 역할이기에 산적한 난제를 극복하며 진행하였습니다. 광주와 전남을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출향하여 활동하는 시조시인의 자료는 우리 지역 시조단은 물론 한국시조단의 귀중한 문학사료입니다. 그러므로 치밀하게 우리 지역 시조문학 실상을 찾아 기록하고 문학자산인 시조작품을 한데 모으는 것은 이 지역 시조의 위상을 정립함은 물론이고, 세계적 문학 자산을 남겨 두는 일입니다. 또한 한국 현대시조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광주와 전남의 훌륭한 시인과 작품을 발굴하여 만천하에 드높이는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는 총3부로 구성하였습니다. 1부는 광주와 전남의 시조 발전 역사를 써 온 시조 단체 중심의 시조사와 광주에서 태동한 시조전문지의 역사를 약술했습니다. 시조 단체 중심 시조사 집필자는 윤삼현, 오종문, 서연정, 유춘홍, 유헌, 백학근 선생이며 《겨레시조》, 《한국동시조》, 《열린시조》 등 광주를 모태로 태동한 시조전문지에 대해서는 김종, 박현덕 선생께서 집필해 주셨습니다. 1부를 통해서 광주와 전남 시조단체의 줄기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2부에서는 광주와 전남의 시인과 작품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단락에서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3부는 『광주전남시조문학사』를 발간하는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의 연혁을 실었습니다.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는 2002년 창립하였으며 명실상부 광주와 전남 지역을 대표하는 단체입니다. 시조시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치열한 문학적 진정성으로 우리나라 시조단을 건강하게 견인하고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의 2부에 대하여 다시 말씀드리자면,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부터 2000년대를 망라하였습니다. 이 방대한 작업을 맡아 주신 노창수 선생은, 세밀한 자료 수집과 작가에 대한 애정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허언을 배척하고 철저히 눈과 손으로 집필하는 분입니다. 집필기간, 집필료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않는 조건임에도 시조를 아끼는 충정에서 집필을 수락하고 그 수락에 책임지기 위하여 어느 틈서리에 있는지 모르는 시인과 작품을 찾아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에서 전한 시인의 자료는 100여 명 정도였음에도 400명에 가까운 시인의 이름이 등장하고 작품과 작품평에 거론되는 시인 수가 213명에 이릅니다. 이처럼 방대한 작가와 작품 자료들을 피땀으로 기록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마다 맡은 분야에서 노력했습니다만, 기일의 촉박으로 체제가 치밀하지 못하거나 누락이 있을 수 있고 표현의 정확도가 떨어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질정이 있다면 차후 개정, 증보판을 대비하여 잘 정리하고 그것을 다음 집행부에 넘기겠습니다.
송선영, 전원범, 김종, 노창수, 이한성, 문주환, 백학근, 윤삼현, 유춘홍, 유헌, 김강호, 박정호, 박현덕 선생의 자문과 협조, 정경화 본회 이사의 정리, 임성규 사무국장의 봉사 등 부족한 회장을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 발간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지역 시조의 실상을 밝히고 위상을 높이려는 치열한 책임감으로 유난히도 무더운 올여름을 더욱 뜨겁게 보내신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이 책자가 남아 있는 한, 아니 그 이후에라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기억할 것입니다. 발간의 발판을 지원해준 광주광역시, 기꺼이 자료를 보내주신 김연동 선생, 번거로운 과정을 싫은 내색 없이 도와주신 시와사람사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가 한국 현대시조문학사에서 광주와 전남 시조문학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이바지하고 우리나라 시조문학 연구에 유용한 기록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저자 소개 : 윤삼현 오종문 서연정 유춘홍 유헌 백학근 김종 박현덕 노창수 전원범 임성규 정경화
김종 金 鍾 1948년 전남 나주 출생. 1971년 《월간문학》 등단. 18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민족시가대상, 광주시민대상(문화예술부문), 영랑문학대상 외 수상, 시조집 『배중손 생각』 외. 시집 『장미원』 외, 가사시집 『간절한 대륙』 외.
노창수 魯昌洙 1948년 전남 함평 출생. 1990년 《시조문학》 등단. 한국문협작가상, 이산문학상 수상. 시조집 『슬픈시를 읽는 밤』 『조반권법(朝飯拳法)』. 시조선집 『탄피와 탱자』.
박현덕 朴玹德 1967년 전남 완도 출생. 1987년 《시조문학》 등단. 1987년 《월간문학》 등단. 199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중앙시조대상, 백수문학상, 오늘의시조문학상 등 수상. 시조집 『와온에서 너를 만나다』 『스쿠터 언니』 『와온에 와 너를 만난다』.
백학근 白學根 1947년 전남 장흥 출생. 2021년 《문학춘추》 등단. 전남예술인상, 무등시조문학상, 전남문학상 수상. 시조집 『너도 섬 하나』 『두루뭉수리』 『가을 그리고 겨울』.
서연정 徐演禎 1959년 광주 출생. 1997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가람시조문학상, 광주시 문화예술상(정소파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본상 외 수상. 시조집 『먼 길』 『인생』 『포도알 포도송이 포도주』 외.
오종문 吳鍾文 1960년 광주 출생. 1986년 시화집 『지금 그리고 여기』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등 수상. 시조집 『오월은 섹스를 한다』 『지상의 한 집에 들다』 『아버지의 자전거』.
유춘홍 劉春弘 1958년 전남 해남 출생. 1990년 《시조문학》 등단.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해남문인협회 활동. 남촌문학상, 무등시조문학상 수상.
유헌 劉憲 1957년 전남 장흥 출생.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월간문학》 등단. 시조집 『온금동의 달』 『노을치마』 『받침 없는 편지』. 수필집 『문득 새떼가 되어』.
윤삼현 尹三鉉 1953년 전남 해남 출생. 198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88년 《시조문학》 등단. 송순문학상, 무등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뻐꾹소리를 따라가다』.
임성규 任晟圭 1968년 전남 해남 출생. 1999년 금호문화 시조상.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활동. 오늘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배접』 『나무를 쓰다』 『바늘이 쏟아진다』.
전원범 全元範 1944년 전북 고창 출생. 1978년 《시조문학》 시조 천료, 198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집 『걸어가는 나무』 『이 걸음으로 언제까지나』 『맨몸으로 서는 나무』 『허공의 길을 걸어서 그대에게 간다』 『전원범문학전집』.
정경화 鄭耿和 1963년 전남 담양 출생. 2022년 매일신문,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 광주와 전남의 시조사 약술: 단체를 중심으로
(1) 시조예술동인회와 《영산강》
윤삼현(시조시인, 문학평론가)
1970년 7월 시조문학의 부흥과 향토문학의 재건을 내걸고 출발한 ‘시조예술 동인회’는 70년대 이 지역의 전반적인 문학예술을 선도하는 출발점 역할을 했다. 이 고장 문인들에게 생기있는 문학혼을 불어넣었고, 창작의 불꽃을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시조예술 동인회’는 당시 시조시단의 중진인 정소파, ‘원탁동인’으로 활동하던 허 연, 문도채, 송선영 등이 주도하여 창립되었다. 여기에 《한국시단》 출신의 정덕채, 《시조문학》 등을 천료한 이준구, 양동기, 장 청,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자인 문삼석, 전남매일 신춘문예 당선자 최일환 등이 합세하였다. 그리하여 광주문화방송국실에서 회동하여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시조예술 동인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회장에는 허 연 광주 문화방숙국 국장이 추대되었고, 실무는 문도채가 맡아 월례회를 가지면서 회지인 『영산강』 발간작업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작품집 《영산강》은 자칫 ‘영산강문학회’의 《영산강문학》과 비슷한 명칭으로 인해 혼동할 수도 있어 노파심에 그 구별을 밝혀둔다. 《영산강》은 1970년 이 지역에서 창립된 시조예술 동인회의 작품집 명이다. 반면에 《영산강문학》은 1991년 3월 목포를 지역으로 목포지역 문학청년인 대학생들이 창립한 단체인 영산강문학회의 동인지다. 90년대 초 젊은 시인들이 활동한 단체란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시조예술 동인회는 광주·전남 지역 시조시인들이 이 지역 시조 장르에서 최초로 결성을 했고, 또 시조 동인 작품집을 최초 발간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일이다. 창립 회원으로 고정흠, 문도채, 문삼석, 김영자, 양동기, 송선영, 장 청, 정소파, 이준구, 허 연, 최일환, 정덕채 등 12명이 참여하였다. 시조를 전공하지 않은 문인 몇 분이 참여하고 있는 점도 자못 이색적인 장면이라 하겠다.
현대시조의 정착과 시조단 형성을 바탕으로 시조시기 구분과 관련하여 박을수는 부흥기(1895~1919), 제1기(1920~1930), 제2기 (1931~1940), 제3기(1941~1950), 제4기(1951~1960), 제5기(1961~1970), 그리고 70년대 이후를 제6기로 나눈 바 있다. 필자는 그 이후를 다시 밀레니엄을 맞은 제7기(1971~2000)로, 제8기를 디지털 발달과 4차 산업화를 맞은 2000년대 시기(2001~2018), 그리고 다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시기를 겪은 제9기(2019~ 현재)로 나눌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시조 동인회 ‘영산강’은 시조사적 시대구분에서 볼 때 제7기에 해당하는 동인회다. 70년대는 ‘조국 근대화’ 시책에 따른 경제발전과 궤를 같이 하여 문화도 속도감있게 발전되었던 시기다. 이른바 통키타, 청바지, 장발족으로 대변되던 청년문화가 급속히 퍼져갔고, 다방문화가 확산되어 휴식을 취하며 음악다실에서 팝송이나 포크송을 감상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삶의 질적 향상이 뒷따랐고 사회구조도 큰 변혁을 맞았다. 일자리를 찾아 농어촌 인구가 급격히 도시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문화가 빠르게 성장하여 한류열풍을 일으켰다. 이런 변화는 한국의 현대화를 가속화 시켰고, 가파른 경제발전과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시기다. 경제발전은 개개인의 일상과 삶을 진보시켰으며 사람들에게 긍정적 희망과 이상을 품어 나가도록 이끌었다. 특히 경제성장과 모더니제이션의 도약이 문화의 선진화를 이끄는 동력원이 되었다.
이 시기는 문화산업과 관련하여 특히 문학, 음악, 영화들에서 창의적인 작품들이 속속 탄생하여 문화적 성숙기를 맞게 된 시기였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함께 자본의 축적과 이윤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소외와 빈곤의 사회문제를 낳기도 했다. 개발이 가져온 빛과 그늘, 이 문제를 시조단이 순발력 있게 다루었던 시기이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속도를 내자 전통적 공동체 의식이 붕괴되어 개인주의가 만연하였고, 대가족사회가 붕괴되어 핵가족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변혁의 물결 속에서 시조인들이 종전의 회고적 정감에서 탈피하여 생생한 이미지와 현실을 다룬 시조와 역사의식을 통해 인간의 참된 가치를 추구한 작품을 속속 낳기 시작하였다. 그 시대적 역할과 책무를 영산강 동인들이 관심을 갖고 시조 장르를 통해 천착해 나갔던 것이다. 《영산강》 창간호는 1970년 8월 25일 74쪽 분량으로 발간되었다. 허 연 회장이 출판비를 전액 부담하였고 문도채 동인이 원고 수합에서 출판에 이르기까지 실무를 맡았다. 창간사를 살펴보면 본 회의 탄생 배경과 설립 취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고장 시조예술 동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마치 객지로만 돌아다니던 옛 친구들이 참으로 오랜 만에 마을 앞 느티나무 그늘 아래 모인 기분이다.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었지만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우리의 가락을 한데 어울러 보자는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이 열매를 거두어 《영산강》이란 이름으로 동인지까지 펴내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 동인들은 삼장시형三章詩形 전통을 새로이 계승하여 정형시로서의 비약적인 발전을 꾀함으로써 시조를 생활화하자는 데 뜻을 굳게 다짐했다.
창간사를 들여다보면 참여 회원들의 시조예술에의 공동체적 동참의식이나 동인으로서의 자긍심, 패기와 의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영산강’ 2집은 1970년 12월에, 3집은 1971년 3월에, 4집은 6월에 각각 발간되었다. 2집부터 최남구와 김성곤 회원이 합류하여 힘을 보탰다. 동인지 제자는 고정흠 회원이 썼고, 컷은 노의웅 화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2집의 목차에서 인상적인 대목으로는 ‘영산강’을 주제로 각 회원이 쓴 시조작품을 ‘우리들의 합창’이란 꼭지에 담고 있다는 점이다. 편집후기에는 ‘영산강’의 창간을 축하하는 각계의 반응과 조종현과 정완영의 축시가 수록되어 무게를 더하고 있다. ‘영산강 물소리가 귀에 젖어드는구나/ 무등산 옛 모습도 가을 하늘에 보이는 듯/ 천리 밖 산이요 물이 맑고도 향기롭다.’는 조종현의 축하 시조는 ‘영산강, ’무등산‘ 같은 항토애를 상징하면서 맑고 향기높은 동인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염원을 반영하여 녹여내고 있다. 2집에는 특히 아동문학가 문삼석이 6편의 동시조를 발표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3집 서두에서는 임 제의 고시조를 소개하고 있다. ‘방초 우거진 골에/ 시내는 울어 엔다/ 歌臺 舞殿이/ 어디어디 어디메오/ 석양에 물차는 제비야/ 네 다 알까 하노라,’ 이 시조에서 산천을 무대로 호기있게 떠돌아다니며 자유분방한 방랑객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풍류시조이다. 3집은 회원의 작품과 함께 「時調唱法 小考」 라는 최남구의 연재 논고를 싣고 있어 시선을 끈다. 특히 신시운동 6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공원에 ‘시인동산’을 마련할 목적으로 동인회에서 영랑과 용아의 시비를 건립한다는 일련의 행사 경위를 밝히고 있어 이채를 띤다. ‘회원동정’에서 좀더 자세한 경위를 읽을 수 있고, 그들의 열정을 짐작해볼 수 있게 된다.
■許 演님: 영랑 용아 시비건립 위원장으로서 물심양면의 희생을 무릅쓰고 백만원의 공사비를 들여 광주공원 ‘시인동산’에 시비를 건립, 1970년 12월 방송국장으로서 《남도문화》를 발간하시면서 많은 글을 쓰고 계시다.
■71년도 한국문협 전남지부 임원으로 본 ‘영산강’ 회원 중 허 연(지부장), 정소파(고문), 문도채(시조분과위원장), 문삼석(아동문학분과위원장) 제씨가 피선 됨.
■70 고령이심에도 노익장이신 고정흠님과 최남구님은 거의 날마다 상면하여 詩話, 서예로 세월을 즐기고 계시며, 계림교에 근무 중인 양동기, 문삼석, 김영자님께서도 학년초를 맞아 일에 쫓기긴 하나 모두들 詩作에 몰두, 그리고 호남 삼육고의 장 청 님과 담양 삼산교의 송선영님은 젊은 패기를 오직 창작생활에 발산하고 계신다니 우리 ‘영산강’의 앞날이 더욱 촉망될 뿐이다.
회원 동정란을 들여다보면 동인회의 활동 내력을 금방 짐작해볼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으로는 ‘작품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노력할 것을 서로 다짐하면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함을 애석하게 생각하면서 보다 분발할 것을 약속할 따름이다.’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치열하게 질적 수준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2호 발간 후에 경향의 각 지상에 발표된 회원들의 작품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지면 관계상 약하기로 한다.’에서 드러나듯이 동인의 성과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들여다 보게 된다. 동인 동정에서 나타나 있듯이 여기서 ‘영산강’은 시조예술 동인회와 동격의 비유체로서 상징화된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시조예술 동인회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고유명사로서 지역에서 동인회를 칭하는 붙박이말이 된 것을 목격하게 된다. 호남을 상징하는 영산강,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은 담양에서 발원하여 굽이굽이 돌고 돌아 흐르다 광주의 품에서 가쁜 숨 고르며 쉬어가듯 다시 나주평야를 적시고 유유히 흐른다. 황룡강과 지석강을 더하여 더 큰 품사위를 펼치어 크고 작은 산기슭 굽이돌아 무안을 지나 목포 앞바다로 나아간다. 이 지역 뭇 생명을 기르며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어머니 품속 같은 영산강을 시조 동인지 제호로 삼았다는 데에서 ‘영산강’ 동인회의 그 취지와 의미가 자뭇 깊게 다가온다.
4집은 특히 어려움이 뒷따랐다. 서울의 《시조문학》으로부터 영산강 동인들이 경비를 전담하여 출간해달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동인들은 숙의과정을 통해 이를 수락하고 《시조문학》 원고와 《영산강》 원고를 한데 모아 광주인쇄소에서 출간하였다. ‘영산강동인 특집호’란 부제가 붙여졌다. 사실상 두 문예지의 합병호인 셈이었다. 여기에는 동인 15인의 시조작품 32 편이 수록되었다.
지역 시조인에게 신선한 바람으로, 지역민에게 활력있는 언어의 향기로 다가와 반향을 일으켰던 ‘영산강’의 시조예술 동인회, 그러나 수명은 여기까지였다. 2년에 걸친 시조예술 동인회의 열정과 창작활동과 동인지 발간은 《영산강》 4집 발행을 끝으로 아쉬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⑵ 호남시조시인협회와 《시조문예》
윤삼현(시조시인, 문학평론가)
호남을 연고로 뿌리내린 호남시조문학회는 1971년부터 2024년까지 53년의 긴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장수 문학회다. ‘한국시조작가협회 전남지부’에서 ‘호남시조문학회’로 회명을 바꾼 1981년을 기점으로 놓고 보면 43년의 역사가 될 것이다. 호남시조문학회와 한 뿌리인 한국시조작가협회 전남지부는 이 지역의 시조예술을 선도해온 ‘시조예술 동인회’가 단명한 채 역사의 지평으로 넘어가자 곧바로 발족되었다. 그만큼 겨레시로서의 시조에 대한 애착이 강했으며 역사적인 분수령을 넘어오면서 시대 속에서 시조를 지키고자 하는 문학인의 소명을 절감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지역 시조예술의 맥을 이어받은 한국시조작가협회 전남지부는 1974년 4월 20일 회지 《녹명》을 발간하였다. 이 협회지는 4집까지 간행되었다. 창간 당시 참여 회원은 최동일, 이준구, 정덕채, 차의섭, 최일환, 이백순, 박노경, 유정운, 배봉수, 박양구, 정소파, 고정흠, 장재철, 최남왕 등 14명이다. 4집 때에는 경 철, 박광일, 정지채 등이 합류하였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발간되어오던 동인지 《녹명》은 제6집부터 《시조문예》로 제호를 바꿔 발행했다. 동시에 단체명도 ‘호남시조문학회’로 변경하였다. 《시조문예》는 면면이 이어져 해마다 발간되어 나왔고 그동안 참여했던 시인도 줄잡아 170여 명에 이른다. 그 면면은 다음과 같다.
강대규, 강대선, 강성남, 강원구, 강진형, 곽현지, 경 철, 고정백, 고정흠, 공란숙, 김광욱, 김경선, 김경숙, 김면수, 김분순, 김계룡, 김능자, 김두원, 김병효, 김산중, 김석문, 김성구, 김승규, 김양용, 김연태, 김영님, 김영태, 김영욱, 김영석, 김용하, 김옥중, 김정희, 김 종, 김종용, 김재현, 김지상, 김진문, 김진혁, 김창진, 김창현, 김철학, 김치중, 김행채, 김형기, 권현영, 김홍식, 김 희, 노창수, 류중영, 리인성, 마명복, 문화자, 박광일, 박금희, 박노경, 박달재, 박동준, 박래흥, 박녹담, 박상하, 박순주, 박영애, 박영학, 박태일, 박장환, 박재곤, 박정인, 박청길, 박형철, 박호석, 배봉수, 서해식, 석가정, 소재순, 신금열, 신용기, 신현영, 양인용, 오석일, 오재열, 오화자, 여동구, 여지량, 염광옥, 오기일, 용진호, 유정운, 유준섭, 유춘홍, 윤삼현, 윤석주, 윤수자, 윤영훈, 이경로, 이광현, 이국헌, 이남수, 이명희, 이민규, 이보영, 이병휘, 이백순, 이성균, 이옥심, 이윤수, 이인우, 이전안, 이정룡, 이재창, 이제택, 이준구, 이준관, 이창식, 이한성, 이한창, 이해완, 이형순, 이희란, 임권신, 임문자, 임하빈, 장경례, 장민하, 장용원, 장정현, 전순명, 전원범, 전태봉, 정덕채, 정병표, 정봉래, 정선수, 정소파, 정연우, 정인태, 정지채, 정 철, 정춘자, 정필온, 정형래, 조계철, 조도현, 조선희, 조연탁, 조용석, 조주성, 지성평, 진병재, 진병로, 진삼전, 차경섭, 차의섭, 차상환, 차정미, 채홍련, 천병태, 최경자, 최동일, 최동훈, 최연기, 최일환, 최정숙, 최정웅, 최지형, 최한섭, 한연섭, 함태선, 황동식, 황의순, 황하택, 허승자, 허형만, 홍점숙
호남시조문학회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인 겨레시를 지키고 가꾸어가리라는 분명한 다짐과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였다. 그만한 포부를 품고 출발하였기에 회원들의 자긍심도 뜨겁게 타올랐던 것이 사실이다. 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내리지 않은 회원 작품집을 품격있게 발간하고자 노력했다. 전통 장르로서의 시학의 미의식과 율조를 내실있게 담아가고자 했으며 독자들의 마음 깊숙이 가 닿아 공명을 일으키는 시조시가 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으리란 가열찬 다짐이 있었다.
부산의 《부산시조》, 대구의 《대구시조》, 문경의 《나래시조》, 충북의 《충북시조》, 영남시조문학회의 《낙동강》, 제주의 《제주시조》 등과 어깨를 나란히, 아니 그 이상의 위치에서 성과를 얻고자 하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이 지역이 한국 시조의 뿌리요 본산지라는 것을 공유하고 인식한 때문이었다.
초창기와 최근 활동을 살펴봐도 호남시조문학회의 의욕적인 출발과 패기를 짐작할 수 있다.
1970~1971 ‘영산강 시조예술 동인회’ 정체를 겪는다
1971. 3. 25 한국시조작가협회 전남지부 결성(회장 정소파 맡음)
1974. 1. 20 동인지 《녹명》 창간호 발간 (국제문화사)
1974. 8. 18 동인지 《녹명》 제2집 발간(남선문화사)
1975. 3. 15 동인지 《녹명》 제3집 발간(남선문화사)
1975. 12월 제1회 ‘녹명 시조 서예 회원전’ (Y싸롱)
1976. 5. 1 동인지 《녹명》 제4집 발간(현대문화사)
1976. 7. 25 광산군 송정리 녹봉정사에서 제1회 시조 창작교실 개최
1976. 10. 7 제1회 호남 민족시 백일장 개최 (광주공원)
1977. 1. 25 동인지 《녹명》을 《시조문예》로 개제하고 제5집 발간(현대문화사)
1977. 8. 10 동인지 《시조문예》 제6집 발간
중앙지 《시조문예》 여름호 특집으로 다룸
1977. 11. 1 동인지 《시조문예》 제7집 발간
월간 《시문학》 11월호, 《시조문예》 특집으로 다룸
2015. 8. 13 회 명칭 ‘호남시조문학회’에서 ‘호남시조시인협회’로 변경
2016. 3. 26 정기모임, 위촉장 수여식(회장 김철학)
2016. 5. 21 이영도 시조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청도 문학기행(29명)
민병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시조 강연
2016. 7. 30 박영학 원광대 신방과 명예교수 시조문학 강연
자문위원 황하택, 조연탁, 조계철 위촉
2016. 10. 9 특별기획 제11회 시조 시화전 (남광주역)
김옥중 광주광역시 문화에술상 수상
2017. 11. 26 제6회 전국시조백일장 대회 및 시상식
2018. 4, 28 정기총회, 김산중 회장 선출
2019. 2. 22 정기총회(광양회관)
2024. 2월 박래흥 회장 취임. 작품집 발간 준비
《시조문예》 제44호 표지(2014) 찾아가는 전국시조 백일장 리플렛
8, 90년대는 보다 역동성을 띠고 활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1982년 현산미술관에서 제2회 동인 시화전을, 같은 해에 중앙일보와 공동 주최로 광주상공회의소 강당에서 시조강연회를, 1984년 남도회관에서 시조 창작 및 낭송회를 열었다. 1986년에는 시조낭송 및 야유회를 목포 유달산에서 가졌고, 같은 해 진도대교에서 해변 세미나와 즉흥시 창작회를 갖기도 했다. 1990년 해남 땅끝과 보길도 부용동에서, 1992년 담양 독수정에서, 1993년 영암 월남 야영장에서, 1997년 담양 소쇄원에서, 2000년 나주 공산 춘성정에서, 2001년 압록 섬진강변에서 창작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회원 상호 창작 역량을 기르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시조에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된 것이 틀림없다. 이후 2008년까지 연 5, 6회 모임을 가졌고 세미나, 시조낭송, 백일장, 문학기행 등 시조발전을 위한 각종 행사를 전개해 나갔다.
2009년 호남시조문학회는 동인 사화집 《시조문예》 39호(도서출판 한림)를 발간하였다. 김옥중 회장의 작품 등 회원들의 시조 작품과, 시조문예상 수상자 특집(차경섭, 임문자, 이보영)과 문학기행의 시조를 게재하였다. 김옥중 회장은 권두언에서 ‘이제라도 우리의 옛 문화를 되찾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구호에 그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모임은 시조를 참으로 사랑하는 모임이기에 이에 대한 실천적인 행동강령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절실할 때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시조의 참된 가치를 재인식하고, 보다 새롭게 이정표를 세워 시조의 앞길을 일구어가자는 실천적 다짐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호남시조문학회는 밀레니엄을 맞은 2000년대를 맞으면서부터 구태의연한 회의 모습에서 일신되고 혁신적인 회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려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찾아가는 시조백일장’ 개최였다. 매년 이러한 행사를 통해 시조 인구를 늘리고 시조 인프라를 구축하는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회의 보람이자 성과로 남게 되었다.
제2회 찾아가는 전국 시조백일장은 2013년에 시행되었다. 안내 팜플렛을 보면 상세한 요강이 나와 있다. ‘호남시조문학회(회장 정춘자)가 주최하는 제2회 찾아가는 전국시조백일장 분청사기 대전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광주시, 광주문화재단 후원, 평촌 도예공방 협찬으로 오는 14일 오전 광주 북구 충효동 천연기념물 왕버들과 충효 역사마을, 호수생태원 일대에서 열린다. 참가 대상은 전국의 초, 중, 고, 미등단 대학·일반부이며 시조부문 등단자와 호남시조문학회 회원은 백일장에 참여할 수 없다.’로 일목요연하게 기술되어 있다.
개최 측은 심사위원과 시제 출제위원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둘로 분류했다. 백일장 행사장 당일 현장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함을 위해 즉석에서 시제를 발표했다.
제3회 찾아가는 전국시조백일장도 세심한 준비와 배려 속에 실시되었다.
2014년 찾아가는 시조백일장은 <전국시조백일장 분청사기 대전>의 성격을 띈 바 10월 3일 개천절, 오후 2시, 북구 충효동 왕버들축제 현장에서 개최되었다. 광주광역시·(재) 광주문화재단이 후원하며 평촌 도예공방이 협찬한 이 백일장 대회는 전국의 학생과 시조부문 미등단인 대학·일반인이 참여하였다.
시상 내역을 보면 초등부·중등부·고등부 및 대학·일반부 시상으로 분류하였고, 대상에 광주광역시장상, 최우수상에 교육감상과 북구청장상, 우수상에 북구청장상, 동상에 호남시조문학회장상, 그밖에 장려상을 수여하였다. 이 행사는 유구한 전통에 뿌리박은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의 위상을 높이고 그 창달에 기여하며 미래 시조에의 발전을 이끌고자 하는 회원들의 의지와 열정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호남시조문학회는 이 날 식전 행사로 이병휘 회장 인사말, 세계 최고령의 문인으로 기록된 정소파 전 명예회장(102세로 별세)을 비롯한 작고 시조시인들에 대한 묵념, 축사, 시조문학 강연, 심사위원장의 요강 발표, 자작 시조낭송 5인의 순서에 이어 시제 발표가 있은 뒤 왕버들 축제 현장 주변에서 백일장을 진행하였다.
특히 백일장 추수작업이 시선을 끌었다. 회원들의 작품과 함께 이날 우수상까지 시상한 작품을 『백일장기념시집』으로 심사평과 함께 엮어 그 의미와 가치를 높일 계획과 실천성을 내보이고 있으며 시상식이 끝난 후 대절한 버스로 화랑궁회관으로 이동, 회원 및 수상자들과의 간담회와 수상작 낭송시간도 가졌다. 일회성의 백일장이 아닌 유의미하고 지속 가능한 백일장으로서의 가치성을 드높이려는 충정과 가열찬 노력의 일환이었다.
본 회는 2015년 8월 13일자로 총회 의결을 거쳐 기존의 ‘호남시조문학회’명칭을 ‘호남시조시인협회’로 변경하였다. 새로운 혁신과 발전적 변모를 꾀하고자 함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던 2019년에도 호남시조시인협회는 어김없이 《시조문예》 48호를 발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특집으로 ‘정소파 시인’을 다루었다. 그는 1957년 동아일보 신춘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 18세인 1930년 《개벽》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현대시조를 개척한 그는 최장수 시조시인으로 주목을 받았고 2013년 7월 101세로 타계하였다.
호남시조시인협회회에서 시행한 <시조문예상>은 제1회 경철을 필두로 많은 수상자를 냈다. 전원범, 정덕채, 이준구, 최일환, 장석주(나래시조문학회장), 민병찬(나래시조문학회부회장), 오승희(부산 동래초등학교 교사), 노창수, 오기일 이전안, 류종영, 이전안, 박재곤, 임문자, 이보영, 차경섭, 김산중, 조선희, 김창현 등이 역대 수상자가 되었다.
48호 표지는 무등산 서석대 사진 작품을 배치했다. 세세년년 어머니의 품이 되어 변함없이 광주를 보듬고 있는 무등산은 광주의 상징이 되었다. 49호는 화순 적벽을 표지로 내걸었다. 무등산처럼 적벽 호수처럼 한 호의 결호도 없이 늘푸른 시조의 사명을 안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시조인으로서의 예지와 기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2024년을 맞아 신임 박래흥 회장을 비롯 회원들은 호남시조시인협회의 결기를 다지며, 질 높은 시조 창작과 작품집 발간을 위해 촉수를 켜고 암중모색하고 있다.
<참고문헌>
《時調文藝》, 44호, 48호, 49호
『한국시조문학전사』, 성문각 1978
『광주문학 대표작 전집』제5권 (평론, 문학사), 도서출판 한림, 1997
《영산강》, 창간호, 1970
『신춘문예 당선시조』, 태학사, 1999
『光州·全南文學通史』, 한국지역문학인협회, 2011
⑶ 전남학생시조협회와 《토풍시》
오종문(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
1. 전남학생시조협회의 발자취
전남학생시조협회全南學生時調協會는 <明脈>으로 활동하다가 1975년 11월 8일, 광주 시내 남녀 고등학생 김종섭, 이표선, 조인숙, 이일룡, 이문희 다섯 명이 전남여고 생활관에서 송선영 시인을 지도교사로 모시고 발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교생 시조 동인회가 첫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全南學生時調協會(土風詩) 회칙’ 제1조에 의하면, “본 회는 ‘전남학생시조협회’ 별칭 ‘토풍시’라 일컫는다.”라고 명칭을 정하고 있으며, “본 회는 순수한 학생 문예활동을 통하여 작품의 질적 내실을 추구하고, 학생 문예활동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제2조)고 모임 성격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제7조에는 “본 회의 회원 자격은 전남지역 현 재학생으로 회원의 추천과 본 회에 2편 이상의 작품을 제출하여 심사를 통과한 자로 한다(심사: 지도교사 또는 선배)”라고 회원 입회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동인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30분, 광주시 충장로 3가 15번지 ‘3·1문화원’에서 모여 시조를 발표하고, 합평은 물론 송선영 지도교사로부터 창작 지도를 받으며 시조 역량을 키워나가는 한편 시조 이론에도 눈떠갔다.
그리고 6개월 후, 1976년 5월 15일 전국 최초의 학생 동인지 《土風詩》(국판, 39쪽) 창간호를 발간했다. “전라도/한 하늘인 걸/우리 얼만 담는다”는 「土風詩頌」에서 밝히고 있듯이, 민족시 시조를 계승 발전시켜 우리 것을 찾자는 의미이다. ‘土風’은 우리 고유의 풍속이란 뜻으로 한문이 아닌 우리말 노래, 즉 시조를 통한 주체성 확보라는 개념으로 토풍시라 한 것이다.
이런 의미로 시작된 토풍시 창간호에는 정소파, 송선영, 배봉수 선생의 서문과 함께 동인 25명 중 19명의 시조 48편이 실렸다. 또한 이인숙의 「이영도 문학론」과 김어채(종섭)의 「이호우 문학론」을 발표하면서 토풍시는 전국 최초로 고등학생이 발간한 동인지로서 문단 선배들의 주목과 격려를 받았다.
전남학생시조협회가 결성된 지 3년째인 1977년 5월 15일, 초대(1기) 선배들이 떠나고 2학년 후배들이 그 뒤를 물려받아 제2집 《無等文學》(1977.5.15. 72쪽)을 발간했다. 월하 이태극·백수 정완영 선생의 발간 축하 글이 실려 있고, 배봉수·김옥중 선생의 초대시조 1편과 동인(2, 3대) 23명 중 17명의 작품 38편과 함께 동문 작품(1대) 5명의 시조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아동문학가 문삼석 선생의 「無等文學의 作品世界」 해설이 실렸다.
동인들은 「無等文學의 再發見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우리는 특히 自由詩가 아닌 時調로서 점점 잊혀져가는 時調 재발굴에 노력하자는 의도로서 시작했다”면서 “어느 文學 선배가 말했듯이 ‘時調는 이미 죽었다’고 성급히 선언하려는 문학인들의 생각을 止揚케 하고 ‘時調도 詩다’ ‘現在 살아있다’”는 시조 존재론의 이유와 그동안 문학잡지에 실린 토풍시 활동을 소개했다. 특히 창간호 발행 때는 이은상, 박재두, 정완영, 조종현, 서벌, 하한주 선생님 등의 격려 글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시조만 급급하다기보다 모든 문학의 전반을 통달”하고자 《무등문학》으로 제호가 바뀌었다면서 “詩 같은 時調, 시조 같은 시” 창작을 위해 모든 문학을 섭렵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남학생시조협회의 동인지 발간은 사회적·경제적 여건 등 여러 제약으로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2집이 발간된 지 5년 만에 제3집 《토풍시》(1982.3.10. 52쪽)가 발간되었다. 제호도 《무등문학》에서 《토풍시》로 돌아갔으며, “참신하고 유능한 신인들이 탄생되어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을 믿는다”는 지도교사 송선영 선생의 기대감을 전하는 머리말과 정소파 선생의 초대시 1편, 현역동인(6, 7, 8대) 20명 중 16명의 시조작품 31편, 동문작품(2~5대) 10명의 작품 11편이 실렸다.
《토풍시》 4집(1985.2.24. 66쪽)은 송선영 선생의 서시 1편과 머리말 그리고 월하 이태극 선생의 격려사 「토풍시의 깃발」, 이한성 시인의 초대시조 1편, 고시조 2편이 실렸다. 동인(9, 10, 11대) 작품으로는 10명의 작품 21편, 동문작품(1~3, 5~8대) 14명의 작품 20편이 실렸다. 그리고 “우리들은 빈약한 시조지 전문서적을 대하면서, 현실과 역사가 빚는 피로감이나 공허한 느낌을 받던 혀 짧은 목소리로 時代를 질서 있게 형상화시킨 잠재력도 적지 않다”면서 “체험을 바탕으로 역사의식 속에다 정서를 정착시키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편집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그 당시 학생의 위치에서는 시조집이나 시조잡지를 구하기 어려웠던 터라 충장로 삼복서점에서 눈치 보면서 책들을 탐독하고, 토요일이면 송선영 선생님 댁을 찾아가 시조집이나 시조잡지를 읽고, 다음날에는 책을 한 보따리 빌려와서 시조 공부를 했다.
《토풍시》 제5집(1989.3.)은 송선영 선생의 서시 「榮山江」과 머리말, 이승량(14대 회장)의 발간사, 초대시조 정덕채 시인의 「우농愚弄」, 이우걸 시인의 「驛」을 싣고 있다. 동인(13, 14, 15대) 총 23명 중 21명의 시조 33편, 동문작품(1~5, 7~12대) 16명의 20편과 함께 「전남학생시조협회의 어제와 오늘」, 동인주소록을 실었다. 그리고 편집후기에서 “근 4년 만에 다시 작품집을 꾸미게 되니 새삼 감개무량하”지만 “85년 2월에 《토풍시》 4집을 낸 후 계속 미루어 온 것이 사실이며, 이번 5집이 나오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토로한다.
《토풍시》 제6집(1991.3.30.120쪽)은 선배 동문의 도움을 받아 동인지로서의 모양새를 갖췄다. 활판인쇄에서 옵셋인쇄로 바뀌고, 판형과 편집 디자인도 세련되어지고 쪽수도 많이 늘었다. 동인과 동문들의 작품 외에도 시조단의 중진시인 초대작품과 시조작법, 송선영 선생이 시조와 접하게 된 동기, 그동안 동인들의 전국백일장 우수작 모음, 전남학생시조협회 회칙 등 다양한 기획으로 구성되었다.
목차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 _ 차례
발간사 _ 서연정 / 7
글 머리 _ 전원범 / 10
일러두기 / 11
PART + 01
광주 전남 시조 발전 역사
1. 광주와 전남의 시조사 약술: 단체를 중심으로 / 20
·시조예술동인회와 《영산강》 _ 윤삼현 / 20
·호남시조시인협회와 《시조문예》 _ 윤삼현 / 26
·전남학생시조협회와 《토풍시》 _ 오종문 / 33
·우리시동인- 새로운 등불을 켜다 _ 서연정 / 45
·해남 시조단 소사- 시조의 본향, 해남 시조 문학의 약사 _ 유춘홍 / 51
·목포, 강진, 장흥 시조단 소사 _ 유헌 / 65
·여수, 순천 시조단 소사 _ 백학근 / 75
2. 광주와 전남의 시조사 약술: 광주에서 태동한 시조전문지 / 85
《겨레시조》의 세월 _ 김종 / 85
《한국동시조》 -동시조문학의 진흥에 진력하다 _ 김종 / 93
정형미학의 꽃을 피운 《열린시조》 창간 _ 박현덕 / 112
PART + 02
광주 전남 시조문학의 시대별 발자취 _ 노창수 / 118
■들머리/현대 광주 전남 시조문학의 연원과 개관 / 118
1920년대 / 125
조운_ 125
1930~1940년대 / 129
조종현_ 130 박용철_ 131 조남령_ 135 고정흠_ 138
1940년대와 해방 이후 / 138
정소파_ 139 이국헌_ 143 허연_ 144 김해성_ 146 송선영_ 147 김제현_ 149 전규태_ 151 최동일_ 152 윤금초_ 154 오영빈_ 156 강인한_ 157 김만옥_ 158 최덕원_ 160 정덕채_ 161 이준구_ 163 문도채_ 164
1970년대 / 165
김종_ 168 양동기_ 171 이한용_ 172 최일환_ 173 이한성_ 174 조병기_ 176
김영재_ 177 황몽산_ 178 이정룡_ 180 박노경_ 181 여지량_ 182 허인무_ 184
경철_ 184 허형만_ 186 최정웅_ 187 전원범_ 188 차의섭_ 190 석가정_ 191
이재창_ 193 김옥중_ 194
1980년대 / 195
김두원_ 198 용진호_ 199 김오차_ 201 오재열_ 201 손동연_ 203 김종섭_ 205
이지엽_ 206 여동구_ 208 고규석_ 209 박녹담_ 211 정병표_ 212 김진혁_ 213
차정미_ 214 오종문_ 215 김선희_ 217 윤삼현_ 218 박석순_ 219 박현덕_ 221
천병태_ 222 이희란_ 223 박정호_ 225 문혜관_ 226 이남수_ 227 염광옥_ 228
강진형_ 230
1990년대 / 231
유춘홍_ 232 박태일_ 233 이성관_ 234 염창권_ 236 오기일_ 238 김진택_ 238
노창수_ 240 김차복_ 242 이병휘_ 242 이해완_ 243 전태봉_ 244 김삼환_ 245
조계철_ 247 황하택_ 248 임용운_ 249 천병국_ 249 임권신_ 250 차경섭_ 250
경희준_ 251 양길섭_ 251 최상환_ 252 이복현_ 253 박재곤_ 254 설상환_ 255
양인용_ 255 장민하_ 255 강무강_ 257 박종대_ 257 나관주_ 258 박진남_ 259
부일송_ 260 진삼전_ 260 최말식_ 261 강정삼_ 262 김계룡_ 262 김옥동_ 265
최지형_ 266 김철학_ 267 서연정_ 268 김동찬_ 269 정춘자_ 271 장옥순_ 271
조재섭_ 271 정혜정_ 271 김정래_ 272 정려성_ 273 김강호_ 273 문주환_ 275
송광룡_ 276 김산중_ 277 임성규_ 278 장수현_ 279 최양숙_ 280 이민규_ 282
2000년대와 그 이후 / 283
이전안_ 286 이구학_ 288 강대규_ 289 김병효_ 290 리인성_ 291 김숙자_ 292
배서진_ 293 장경례_ 294 이인우_ 294 오성수_ 296 조연탁_ 296 권현영_ 297
이보영_ 298 강경화_ 299 임문자_ 300 채홍련_ 301 김진우_ 302 김용철_ 302
이수윤_ 303 조선희_ 304 정혜숙_ 305 선안영_ 306 이송희_ 308 전학춘_ 310
최한선_ 311 홍준경_ 312 이명희_ 313 김창현_ 315 박래흥_ 315 조성문_ 316
박금희_ 318 박청길_ 318 강성남_ 319 박성애_ 320 이상호_ 322 양기수_ 323
박성민_ 324 안천순_ 326 구애영_ 327 조민희_ 329 김화정_ 330 이순권_ 332
백학근_ 332 유헌_ 334 윤갑현_ 335 이형남_ 336 문제완_ 336 강성희_ 337
손예화_ 339 김승재_ 340 이성구_ 341 허승자_ 341 마명복_ 342 김영순_ 343
강경구_ 343 용창선_ 344 이광호_ 345 서문기_ 347 고정선_ 348 곽호연_ 349
고경자_ 350 차상영_ 351 이홍남_ 352 송행숙_ 353 최미선_ 354 백숙아_ 355
강대선_ 356 최문광_ 357 전서현_ 358 김수진_ 359 오미순_ 360 김미진_ 361
조윤제_ 363 김기평_ 364 임순희_ 364 고미선_ 365 노태연_ 366 박정희_ 367
김상수_ 368 김현장_ 368 강원산_ 369 정경화_ 370 이문평_ 372 이금성_ 373
최정애_ 374 이소영_ 375 김미진_ 376 김교은_ 377 손형섭_ 379 김선일_ 380
김현경_ 381 강성재_ 382 조우리_ 384
2000년대 동인지 / 386
■맺는 말 / 387
참고문헌 / 390
PART + 03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연혁 _ 정경화
1.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조직과 운영 - 정경화 / 396
2. 협회 주요사업 - 정경화 / 400
시조전문지 발간: 《광주전남시조문학》 / 400
포상: 공로상, 무등시조문학상 및 무등시조작품상 / 401
학생시조 공모전: 전국학생시조백일장과 전국빛고을학생시조문학제 / 403
시조인구 저변 확대: 시화전, 시조낭송회, 시조창작강좌, 문학행사 참관 / 405
3. 사진으로 보는 협회 발자취 - 임성규 / 410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 발간위원회 기록 / 411
집필진 약력 / 443
『광주 전남 시조문학사』 발간위원회 / 444